- 경북대 하숙방 4인방의 30년
30년 전 하이텔·천리안 접속할 때 누구나 띄우던 파란 화면, '이야기'. 보통은 천재 개발자 한 명이 만든 공짜 프로그램으로 기억하시는데, 실제와는 좀 다릅니다. 대학 동기 넷이 만들었고, 6.0부터는 돈을 받았어요. 본인들 말로는 경쟁사보다 윈도우 버전을 6개월 늦게 내는 바람에 시장을 통째로 빼앗겼다고 해요. 그런데 회사는 아직 안 망했습니다. 지금은 알뜰폰을 팝니다.
"졸업할 즈음 이미 통신인구의 95%가 이야기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1997년 1월 신문에 실린 큰사람 공동대표들의 말입니다. 같은 기사에 그 회사 한 해 매출이 나와요. 20억 원 정도. 지명도에 비해 적어 보이긴 하죠.
PC 통신 세대 거의 전부가 썼던 프로그램의 이후 30년이 오늘 얘기입니다.
2년 전 PC통신 추억 글을 쓰면서 '이야기'를 딱 한 줄로 지나간 적이 있어요. 도스 시절 이야기, ...오늘은 그 사람들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PC통신을 안 겪은 분들께: '이야기'는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에 접속할 때 쓰던 PC통신 접속 프로그램입니다. 업계에선 에뮬레이터라고 불렀죠. 이야기 뒤를 이은 새롬 데이타맨도 있습니다.)
1. 대구 하숙방에서 시작된 '이야기'
• 만든 사람은 넷
경북대 전자공학과 동아리 '하늘소'. 처음 이 프로그램을 구상한 황태욱, 3.x부터 주 개발을 맡은 이종우, 코딩을 맡은 정재흠, 그리고 하늘소 회장 이영상.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채팅창에 한글 좀 제대로 띄워 보자는 거. "태욱이가 영감을 내놓으면, 저랑 영상이가 주로 코딩을 했어요. … 근데 저랑 영상이가 좀 엉망으로 했거든요, 하하." 그 엉망인 코드를 꼼꼼히 다시 손본 사람이 이종우 씨였다고 합니다.
• 공짜로 풀었더니 다들 썼다
1989년 12월 첫 버전을 무료로 공개합니다. 몇 년 안 돼 PC통신 하던 사람이면 거의 다 쓰는 프로그램이 됐어요. 졸업은 다가오는데 버전업을 손 놓을 수도 없고, 회사를 차리는 게 "숙명같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1992년, 환기도 잘 안 되는 대구 하숙집에 회사를 차립니다. 이름이 큰사람.
• 시작 화면 한 장의 뒷얘기
사진 속 5.3 시작 화면에 '(저) 큰사람, 4325'라고 찍혀 있습니다. 4325는 단기 연호, 그러니까 1992년이에요. 그 아래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길"이라는 문구도 보이는데, 한글날은 13년 뒤인 2005년에야 국경일이 됩니다. 프로그램 첫 화면에 이런 문구를 넣던 공대생들이었습니다.
2. 잘 만들었는데, 돈이 안 됐다
• 사실 6.0부터 유료였습니다
'이야기 = 공짜'로 기억하는 분이 많은데, 무료는 1992년 5.3까지였습니다. 1993년 6.0부터는 5만 원 가까운 패키지로 팔았어요. 그리고 안 팔렸습니다. 어제까지 공짜로 쓰던 걸 돈 주고 살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실제 수입은 해설서 인세였습니다. 책값의 10%를 받아 넷이 나누면 월 백만 원 남짓이었다고 하네요. 전국이 다 쓰는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이 그 돈으로 버텼습니다.
• 엎친 데 덮친 불법복제
1996년 윈도우용 7.3이 나올 즈음, 성능평가용으로 맡긴 프로그램을 아르바이트생이 전자우편으로 뿌려 버립니다.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을 땐 이미 2만 명 넘게 받아 간 뒤였고요. 황태욱 사장은 이듬해 인터뷰에서 불법복제 때문에 큰 회사 말고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한탄합니다.
• 그리고 "겨우 6개월"
본인들이 꼽은 실패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도스에 너무 오래 매달렸다는 것. 경쟁자 새롬 데이타맨이 윈도우 버전을 먼저 냈고, 본인들 말로는 겨우 6개월쯤 늦었을 뿐인데 그 사이 시장이 뒤집혀 있었다고 해요. 도스에서 잘나갔던 게 오히려 윈도우로 넘어갈 때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이야기를 밀어낸 새롬은 몇 년 뒤 닷컴 버블의 상징이 됩니다. 그 얘긴 따로 하죠.)
3. IMF 이후, 네 사람은 어디로 갔나
• IMF, 그리고 친구 사이
IMF는 터졌고 다음 제품은 없던 시절. 이종우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힘드니까 동업하던 친구들에게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회사는 인터넷전화(VoIP)로 업을 바꿨고, 2000년엔 한국IBM 출신 전문경영인을 데려오고 LG그룹 투자도 받습니다. 그 무렵 회장이던 이영상 씨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남들보다 빨리, 좋게 만드는 것은 자신있어요. 그런데 늘 거기까지였어요." 2001년, '이야기'는 마지막 버전을 무료로 풀고 개발을 멈춥니다.
• 회사는 안 망했습니다
큰사람은 지금 큰사람커넥트라는 알뜰폰 회사로 살아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이 무려 '이야기 모바일'. 넷 중엔 이종우 씨만 남아 아직 연구소장을 하고 있고, 2015년 기준으로 황태욱 씨는 업계 기술고문, 정재흠 씨는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했다고 합니다.
• 하늘소 회장은 싱가포르로
이영상 씨는 이후 삼성물산에 경력직 특채로 입사 해 신사업개발팀장과 싱가포르 지점을 거쳐,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법인 설립·회계·회사 서기(CorpSec) 일을 하는 Leekim이라는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2001년에 "늘 거기까지였어요"라고 했던 개발자가,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남의 회사를 세워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지금은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일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이 네 사람 얘기가 지금도 쓸모 있는 건, 모두가 쓰는 프로그램이 왜 돈이 안 되는지를 한국에서 거의 처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일단 공짜로 사용자부터 모으고 돈은 나중에 받겠다는 사업계획서, 요즘도 정말 많죠. 결과는 30년 전 대구에서 이미 나와 있었어요. 공짜로 쓰던 사람은 돈 내라고 하면 잘 안 냅니다. 그 사이에 불법복제까지 끼어들고요. 도스에서 윈도우로 넘어가던 6개월은... 요즘 AI 판이라면 6주쯤 되지 싶어요. 지금 1등 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특히 남 얘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패담으로만 볼 일도 아닙니다. 회사는 업을 두 번 바꿔 살아남았고, 하늘소 회장은 '팔고, 투자하고 지원하는 일'로 다시 일어섰으니까요. 망했다기보다 수업료를 크게 냈다고 보는 게 맞지 싶어요.
정재흠 씨는 2015년 인터뷰를 이렇게 끝냅니다.
"잘 만드는 것과 잘 파는 건 완전히 별개의 것이더라고요. … 친구랑 동업이요? 절대로 하지 마세요(웃음)."
동업으로 몇 번 데어 본 사람으로서, 저 (웃음)이 어떤 웃음인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지금 친구들과 뭔가 만들고 계신 분들, 그거 누가 어떻게 팔지는 정해 두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