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품이 남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증하라고요?"
최근 중소기업이 거래처로부터 이런 요구를 받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게 된 제조 기업, 대형 유통 플랫폼에 입점하게 된 브랜드 기업, 공공 조달에 참여하는 기업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바로 계약서 뒷부분 어딘가에 조용히 들어 있는 ‘지식재산권 보증 및 면책’ 조항이다.
몇 줄 되지 않는 문구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이 조항은 사실상 "제3자가 특허 분쟁을 걸어오면 그 결과를 우리가 책임진다"는 각서에 가깝다. 그리고 2025년, 이 조항을 정면으로 다룬 국내 판결이 처음 나오면서 그 무게가 확인되었다.
1. ‘특허 보증’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실무에서 ‘특허 보증’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 특허 보유 요구: "이 제품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라"는 요구다. 조달 혁신제품 지정, 대기업의 협력사 심사나 오픈이노베이션 선정, 각종 인증의 가점 심사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권리를 확보하는 일정 관리의 문제이며, 우선심사 등을 활용해 등록 시점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 특허 비침해 보증: "이 제품이 제3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음을 보증하고, 분쟁이 생기면 책임진다"는 요구다. 납품계약서, 거래기본계약서, 플랫폼 판매자 약관에 조항으로 들어간다. 이는 권리를 많이 확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위험을 떠안는’ 문제다.
이번 칼럼에서 다루려는 것은 두 번째다. 내 특허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남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되지 않기 때문에, 특허를 수십 건 보유한 기업조차 이 조항 앞에서는 똑같이 위험에 노출된다.

2. 구매자는 왜 이 조항을 요구할까
이 조항의 본질은 위험의 분배다. 구매자는 부품을 받아 완제품을 팔 뿐, 그 부품이 어떤 기술로 설계되었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반면 공급자는 자신이 설계하고 제조했으므로 선행 특허를 조사하고 회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침해 위험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쪽이 부담하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여기에 더해 이 조항은 공급자에게 침해를 피해 설계할 유인을 주고,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공급가에 반영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한다. 조항 자체가 부당하다기보다, 그 범위와 한도가 협상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문제다.
3. 2025년, 법원이 처음으로 정면 판단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1월 9일 선고한 2023가합54172(본소), 2024가합111829(반소) 판결에서 부품거래기본계약에 포함된 특허 비침해 보증 조항을 정면으로 해석했다. 국내에서 이 쟁점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사실상 첫 사례로 평가된다.
법원은 비침해 보증 위반을 채무불이행으로 보아 공급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면서 구매자 측의 과실 등도 참작하여 배상액을 감액했다.
이 판결에서 기업이 눈여겨볼 점은 두 가지다.
- 보증 조항은 장식이 아니다. 계약서에 관행적으로 들어가는 문구처럼 보여도, 위반하면 실제로 배상 책임이 발생한다.
- 그러나 공급자가 무조건 전액을 물어내는 것도 아니다. 구매자가 사양을 지정했거나 위험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은 책임 범위를 줄이는 근거가 된다. 바꿔 말해, 그런 사정을 나중에 입증할 수 있도록 협의 과정과 조사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방어 수단이 된다.

4. 조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특허 침해 예방 조사(FTO)부터 시작한다
현실적으로 거래상 지위 때문에 조항을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항의 문구를 다듬는 것은 변호사와 함께할 일이지만, 그 보증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근거를 만드는 일은 특허 실무의 영역이다. 그 출발점이 특허 침해 예방 조사, 이른바 FTO(Freedom to Operate) 조사다.
FTO 조사는 우리 제품이 판매될 국가에서 현재 유효한 제3자의 특허 가운데 우리 제품이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특허가 있는지 찾아내는 조사다. 출원 전에 하는 선행기술조사가 "이 발명이 특허받을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라면, FTO 조사는 "이 제품을 팔아도 되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 대상은 공개된 기술 전체가 아니라, 등록되어 살아 있는 특허의 청구항이다. 비침해 보증 조항과 같은 질문을 계약 전에 미리 던져보는 셈이다.
조사를 진행할 때 정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 시점과 대상: 계약 서명 전, 늦어도 양산 전에 진행한다. 제품 전체를 다 볼 필요는 없으며, 매출 비중이 크거나 경쟁사가 많은 주력 제품의 핵심 구성부터 시작한다. 구매자가 사양을 지정한 부분과 우리가 설계한 부분을 구분해 두면 나중에 책임 범위를 따질 때 유용하다.
- 국가: 납품처가 국내에서만 판매하는지, 해외로 수출하는지에 따라 조사 국가가 달라진다. 특허는 국가별로 효력이 있으므로, 우리가 국내에서 만들더라도 최종 제품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팔린다면 그 나라의 특허가 문제 된다.
- 결과에 따른 대응: 위험 특허가 발견되면 선택지는 세 가지다. 해당 청구항을 피하도록 설계를 바꾸거나(회피 설계), 그 특허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해 두거나, 특허권자와 라이선스 협의를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계약 전에 알고 결정하는 것과 분쟁이 터진 뒤에 알게 되는 것은 비용이 전혀 다르다.
- 한계와 보완: 특허출원은 출원 후 1년 6개월 동안 공개되지 않으므로, 아무리 철저히 조사해도 조사 시점에 존재를 알 수 없는 출원이 있다. 계약 후 새로 등록되는 특허도 있다. 따라서 한 번의 조사로 끝내기보다 주요 경쟁사의 출원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조사 결과는 반드시 보고서로 남겨야 한다. 앞서 본 판결에서 법원이 배상액을 정하면서 당사자의 사정을 참작했듯이, "계약 전에 이 정도의 주의를 기울였다"는 기록은 분쟁이 생겼을 때 책임 범위를 다투는 가장 구체적인 자료가 된다.

마무리하며
특허 비침해 보증 조항은 이제 대기업·중견기업·플랫폼과 거래하려는 중소기업이 피하기 어려운 관문이 되었다. 이 조항을 형식적인 문구로 넘기느냐, 준비가 필요한 위험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그 보증을 뒷받침할 조사와 기록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기업이 감당해야 할 위험의 크기는 크게 달라진다.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때는 서명하기 전이다. 서명한 뒤에는 조항을 바꿀 수 없고, 남는 것은 조사와 대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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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일효 파트너 변리사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2009년 제46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국내외 특허·상표·디자인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으며, 기업 상황에 맞는 지식재산 전략을 제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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