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이 안 되는 이유를 어디서 찾나
마케터 채용이 잘 안 될 때 회사가 먼저 의심하는 건 대체로 정해져 있다.
연봉 밴드가 낮은 건 아닐까. 회사 인지도가 부족한 건 아닐까. 공고 문구가 매력적이지 않은 걸까.
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앞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지원자가 우리 공고를 볼 수 있는 화면에 있었는가.
서울에 올라온 마케터 공고 491건을 자치구별로 세어봤다. 채용하는 쪽에서 보면 꽤 불편한 그림이 나온다.
491건이 어디에 있나
강남구 188건. 전체의 38.3퍼센트다.
2위 마포구가 41건이니 4.6배 차이가 난다. 성동구 38건, 서초구 36건을 더하면 이 네 곳이 303건, 전체의 62퍼센트를 가져간다. 남은 스물한 개 구가 나머지 38퍼센트를 나눠 갖는다.
한 가지 더. 상위 네 곳을 뺀 서울 전 지역의 공고를 다 합치면 188건인데, 강남구 한 곳과 정확히 같다.
구직자에게 이 숫자는 "어디를 봐야 하나"의 문제다. 채용하는 쪽에서는 다른 문제가 된다. 우리 회사가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겪는 어려움의 종류가 아예 다르다.
강남에 있는 회사의 문제: 묻힌다
강남에 사무실이 있다면 노출은 걱정할 게 없다. 지원자 대부분이 강남을 조건에 넣고 검색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 공고는 같은 화면에서 다른 187개와 나란히 놓인다. 지원자는 그 목록을 스크롤로 훑는다. 회사명, 한 줄 소개, 연봉 표기. 여기서 손가락이 멈추지 않으면 우리 공고는 열리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공고 본문을 아무리 정성껏 써도 소용이 없다. 본문은 클릭한 사람만 읽는다. 승부는 목록 화면에서 이미 끝나 있다.
강남 소재 회사가 점검할 건 공고 본문이 아니라 목록에 노출되는 세 줄이다. 회사명 옆에 붙는 한 줄이 "OO 마케터 모집"이면, 187개도 전부 그렇게 쓰여 있다.
강남 밖에 있는 회사의 문제: 아예 안 보인다
성수, 여의도, 판교, 구로. 좋은 회사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 여기 있는 회사는 앞의 문제를 겪을 기회조차 없다.
지원자는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지역을 걸어둔다. 합리적인 설정이고, 대부분 그렇게 한다. 그 필터에 우리 지역이 들어 있지 않으면 우리 공고는 검색 결과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력이 부족해서 탈락한 게 아니라, 평가받는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회사 안에서는 똑같이 "지원자가 안 온다"로 보고된다. 그래서 엉뚱한 처방이 나간다. 노출이 안 되는 회사가 공고 문구를 고치고 있는 식이다.
그래서 뭘 하면 되나
하나. 우리 문제가 어느 쪽인지부터 가른다
공고 조회수와 지원 전환율을 나눠서 본다. 조회수가 낮으면 노출 문제이고, 조회수는 나오는데 지원이 없으면 설득 문제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어떤 개선도 정확히 꽂히지 않는다.
둘. 지역 필터를 무력화하는 조건은 사실상 하나다
재택이나 하이브리드 근무. 이게 가능한 회사라면 공고 맨 앞에 써야 한다. 복지 항목 열두 번째 줄에 적힌 '주 2회 재택'은 없는 것과 같다. 지원자가 지역을 좁히는 이유는 출퇴근 시간이고, 그 전제를 깨는 유일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거점 오피스나 셔틀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위치는 바꿀 수 없지만, 위치가 만드는 부담은 바꿀 수 있다.
셋. 강남에 있다면 첫 줄에 회사를 설명하지 말자
"OO는 AI 기반 커머스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입니다"로 시작하는 공고는 187개 중 절반쯤 된다. 지원자가 목록에서 궁금해하는 건 회사가 뭘 하는지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내가 뭘 하게 되는지다. 그 문장을 앞으로 당기는 것만으로 클릭률이 달라진다.
위치는 못 바꾸지만
채용이 안 될 때 우리는 보통 회사의 매력을 의심한다. 그런데 숫자를 보고 나면, 애초에 매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경우도 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무실을 옮길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겪는 게 노출의 문제인지 설득의 문제인지는 오늘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둘을 헷갈린 채 공고만 고쳐 쓰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서울에 올라온 마케터 채용 공고 491건을 자치구별로 집계했다. 표본이 30건 미만인 구는 '그 외'로 묶었다. 자료는 스타트업 채용 플랫폼 그룹바이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