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선정 #사업전략 #마인드셋
공무원 지망생에서 미국 진출 K-뷰티 브랜드를 만든 사업가

창업이나 커리어 전환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이 일에 맞는 사람일까?”

경험이 부족해서, 전문성이 없어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서 시작을 미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로 만난 박수지 대표는 이 질문에 조금 다르게 답합니다.

“내가 어디에 맞는 사람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제가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바뀌면 되는 거 아닐까요?”

수지님은 처음부터 창업을 꿈꾼 사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공무원을 꿈꿨고, 대학 시절에는 인턴 경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HR 리크루터가 됐고, 브랜드 매니저가 됐고, AI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을 했습니다. 극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해 서비스 기획과 세일즈도 경험했습니다.

회사 밖에서 직접 돈을 벌어보겠다고 과일을 팔았다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IT 업계 사람 100명을 인터뷰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던 중, 오히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차를 우리는 고요한 경험을 스킨케어에 담은 티 메디테이션 스킨케어 브랜드 ‘인퓨젠(InfuZen)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퓨젠 방아티 퀵 카밍 토너 (출처- InfuZen)

 

이번 이야기는 이미 크게 성공한 창업자의 성공담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어떤 선택과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 사업을 찾아냈는지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이야기입니다.

‘준비가 되면 시작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오늘 수지님의 이야기가 조금 다른 시작점을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이런 분들께 추천드려요

✅ ‘내가 사업에 맞는 사람일까?’라는 생각 때문에 시작을 망설이고 있는 분

✅ 하고 싶은 일과 지금 가진 경험·자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

✅ 커리어 방향을 바꾸고 싶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깝게 느껴지는 분

✅ 자기만의 브랜드 철학을 실제 제품과 고객 경험으로 연결하고 싶은 분


Q. 수지님을 처음 만나는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와 현재 함께하고 있는 브랜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퓨젠(InfuZen) 대표 박수지님

안녕하세요. 저는 티 메디테이션 스킨케어 브랜드 ‘인퓨젠(InfuZen)’을 창업한 박수지입니다.

현재 제품 기획부터 물류, 마케팅, 정부지원사업까지 브랜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직접 하고 있어요.

인퓨젠은 차를 원료로 한 스킨케어 브랜드예요.

첫 번째 제품은 한국에서는 ‘방아’라고 부르는 코리안 민트 성분을 활용한 토너이고요. 앞으로 세럼, 크림, 바디미스트, 마스크팩 등 다양한 제품군을 이어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인터뷰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론칭한 지 약 3개월 정도 됐어요.(인터뷰 시점: 2026.06)

정말 따끈따끈한 초기 브랜드죠.


Q. 수지님은 원래부터 창업을 꿈꿔온 사람이었나요? 창업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전혀 아니에요.

저는 원래 공무원이 꿈이었던 사람이었어요.

공무원 시험도 꽤 오래 준비했어요.

어릴 때부터 거의 한 길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대학생 때 남들이 하는 인턴도 한 번 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험 준비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나?’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대학생 때 아무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게 조금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당시에는 ‘시험은 나중에 다시 보면 되니까 잠깐 멈춰보자’는 마음으로 IT 스타트업 인턴에 들어갔어요.

그 인턴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아요.

대학교 졸업식까지도 공무원을 진로로 생각했던 수지님

저는 행정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는데, 처음에는 스펙도 없고 제가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했죠.

“인사행정론이 제일 재미있었는데… 그럼 인사팀 해야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1차원적인 결정이었어요. 
그렇게 스타트업 리크루팅 HR 인턴으로 들어갔고, 운 좋게 2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사수님이 빠르게 이직하면서 공채 메인 PM 같은 역할도 예상보다 빨리 맡았고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조금 답답한 게 생겼어요. 
제 성과가 숫자로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팀장님께 말씀드렸죠.

“저 퇴사하고 매출과 가까운 직무로 중고 신입 하겠습니다.”

그러자 팀장님이 저를 말리시면서, 회사 신사업부에 주니어 브랜드 매니저 자리가 있으니 먼저 면접을 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HR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직무를 전환하게 됐습니다.

 

브랜드 사업부는 브랜드 규모에 비해 인원이 많지 않았어요.

덕분에 CS부터 마케팅 리포트까지 정말 많은 일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지금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본기를 그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매출이 바로바로 숫자로 보인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그러다 다시 커리어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늦게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할 산업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AI나 메타버스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결국 컴퓨터 비전 AI 회사의 사업개발 매니저로 이직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콘텐츠·커리어 플랫폼을 만드는 극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했고요. 
처음에는 사업개발로 들어갔지만 초기 스타트업이라 사실 직무 구분이 거의 없었어요. 세일즈도 하고, 처음으로 서비스 기획도 해보고, 다양한 IT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그때부터 처음 조금씩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도 내 일을 해보고 싶다.’

창업이 처음 제 선택지 안에 들어온 순간이었어요.


Q. IT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셨고, 그때 만난 분들과 ‘아이티백’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아이티백 인스타그램 (@it100.bitwn)

제가 원래도 인터뷰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김지수 작가님의 인터뷰집도 좋아했고, 롱블랙 같은 긴 인터뷰 콘텐츠도 좋아했어요.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 회사나 그 사람의 삶을 잠깐 대신 살아본 기분이 들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IT 여성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언니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줬어요.

“그거 제 버킷리스트였는데요?” 하면서 바로 합류했죠.

 처음 그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모임에 갔던 날도 기억나요.

거기 계신 언니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희 엄마가 전업주부이기도 하셨고, 제가 큰 회사를 오래 다닌 경험도 없어서 저보다 훨씬 연차가 높은 여성들이 계속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경험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날 집에 가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프로젝트를 제안해주셨던 것 같아요.

아이티백(IT 업계에서 일하는 우리 동료들과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팟캐스트)

  • 기획서에도, 코드에도 없는, IT 속 이야기
  • 기술보다 사람, 정답보다 경험. IT 업계 진짜 이야기
  • 언젠가 함께 일했던 것 같은, 익숙한 우리 동료 이야기

아이티백 바로보기👉 https://buly.kr/BpEDUGF 


Q. 아이티백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을 만나셨잖아요. 
반복적으로 들었던 고민이나 인상 깊었던 주제가 있었나요?

일단 너무 속상하게도 다들 걱정이 너무 많아요. 
특히 저와 비슷한 주니어, 중니어 연차 분들에게 많이 느꼈어요.

‘A를 할까, B를 할까.’

이런 고민을 정말 오래 하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가만히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제가 100명을 만나면서 크게 세 가지를 느꼈어요.
 

첫째, 작게라도 빨리 해본 사람이 빨리 멀리 간다

무작정 지르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만 뭐라도 작은 형태로 직접 해보는 게 생각보다 훨씬 빠른 길인 것 같아요. 
걱정을 오래 하는 것보다 작은 실험 하나를 해보면 바로 새로운 정보가 생기니까요.

테스트에서 시작했던 인퓨젠 (출처- InfuZen)

 

둘째,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도 처음부터 대단하지 않았다

시니어 분들도 정말 많이 인터뷰했는데요.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분들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면 처음부터 ‘나는 엄청난 커리어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분들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 한 걸음씩 쌓아온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저분의 20대와 내 20대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저분의 30대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책에서 이런 말을 읽으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살아 있는 사람 100명이 제 앞에 나타나서 하나씩 이야기해주니까 어느 순간 체화되더라고요.

제품 형태가 잡혀간 과정 (출처- InfuZen)

 

셋째,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 만족한다

각자의 선택은 전부 달랐어요.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춰 선택한 분들은 자기 선택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구나라고 느꼈어요.

완제품 형태로 만들어진 과정 (출처- InfuZen)

Q. 아이티백에서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한 경험이 수지님의 커리어나 창업 방향에도 영향을 줬나요?

정말 많은 영향을 줬어요. 다른 사람을 인터뷰할수록 오히려 저 자신에게 질문하게 됐어요.

인터뷰를 하려면 상대방에게 묻잖아요.

‘무엇을 좋아하세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똑같은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져봤을 때 답을 못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나는 뭘 원하지?’

‘나는 어떤 걸 원하는 사람이지?’

그때부터 저 자신에게 질문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제품 개발을 위해 공장을 방문했던 수지님 (출처- 본인 제공)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사람들이 결정을 못 하는 이유가 꼭 정보나 리소스가 부족해서는 아니라는 것이에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신을 잘 몰라서 A와 B 사이에서 계속 망설이는 경우도 많아 보였어요.

저 역시 원래는 제 자신을 그렇게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복잡하게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받는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남들의 정답부터 찾기보다 먼저 물어봐요.

“그래서 나는 뭘 원하지?”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Q. 원래는 팸테크 쪽으로 창업을 하고 싶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펨테크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저를 정의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여성’인 것 같아요. 여성을 위한 무언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중에서도 처음 팸테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생리대 때문이었어요. 
여성들이 매월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필수품인데도 안전성 논란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이상했어요. 
저에게는 그냥 제품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처럼 느껴졌고요. 
그래서 한동안 팸테크 사업을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Q. 그런데 최종적으로는 화장품을 만들게 됐잖아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막상 제가 창업하려는 시점에 시장을 다시 보니까 저보다 전문성을 가진 멋진 여성 대표님들이 이미 문제를 잘 해결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성도 없는 내가 굳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그와 동시에 화장품 브랜드를 미국 아마존에 론칭하는 프로젝트를 경험했어요. 
그때 진행한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성과가 잘 나왔어요. 그걸 하면서 처음으로 VC들이 왜 그렇게 시장 크기를 이야기하는지도 몸으로 이해했어요.

K-뷰티 시장은 크고, 글로벌 수요도 있었고, 제가 과거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과일 장사를 하면서 찾았던 공급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공산품이라는 조건에도 맞았어요.

무엇보다 저는 이미 아마존을 운영해본 경험이 생겼잖아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망설였어요.

제가 예전에 웰니스·건강기능식품 브랜드의 브랜드 매니저로 일할 때 ‘이거 먹으면 예뻐져요.’, ‘이거 먹으면 살 빠져요.’ 같은 카피를 많이 써야 했거든요. 제품은 정말 좋은데, 그런 메시지를 반복해서 쓰는 게 저 스스로 너무 피곤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뷰티를 하는 게 맞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같이 창업한 친구가 이런 취지로 얘기해줬어요.

“네가 화장품 브랜드를 안 만든다고 여성들이 화장품을 안 살 건 아니잖아.
이미 여성들이 많은 돈을 쓰고 있는 시장이라면 네가 들어가서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방법을 고민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도 의미 있겠다.

고객이 곧 저이기도 하니까요.


Q. 많은 사람들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지금 가진 자원’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수지님은 어떻게 균형을 잡으셨나요?

저도 처음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벤다이어그램처럼 적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두 가지가 꼭 대립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형태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창업할 때 제품의 MVP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 자신의 MVP가 뭔지를 찾는 게 창업의 시작 아닐까?’

저에게 마음만 놓고 보면 팸테크가 더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게는 팸테크 사업을 바로 시작할 만한 자원이 없었어요.

반면 K-뷰티는 제가 원하는 ‘여성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유지하면서도 이미 가진 아마존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하고 싶은 일을 버린 게 아니에요. 
같은 욕구를 지금의 내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 것에 가까워요.

나 자신의 MVP에서 시작된 뷰티 브랜드 ‘인퓨젠(InfuZen)’ (출처- InfuZen)

Q.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무엇이었나요?

제일 큰 고민 중 하나가 ‘내가 진짜 사업에 맞는 사람일까?’ 였어요.

저는 오랫동안 공무원을 준비했던 사람이잖아요. 제가 스스로를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여러 커리어를 경험하고 아이티백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내가 어디에 맞는 사람인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제가 브랜드 매니저에 맞는 사람이어서 브랜드 매니저를 한 것도 아니고, 사업개발에 맞는 사람이어서 사업개발을 시작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시작했고, 그 일을 잘하고 싶어서 배우다 보니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 사업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면 되는 것 같아요.

두렵고 스스로 의심도 들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 수출 브랜드가 된 인퓨젠(InfuZen) (출처- InfuZen)

저는 실패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공에는 이상하게 하나의 모습을 정해두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그런데 실패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면 성공도 다양하게 할 수 있잖아요.

사업가의 모습도 정말 다양하고요. 꼭 어떤 성격이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Q. 지금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실물 제품을 만드는 대표님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것 같은데, 자금과 재고예요. 
특히 뷰티는 마케팅 비용도 많이 필요하니까 자금 문제는 아직 해결됐다고 말하기 어렵고요. 
그냥 계속 버티면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재고도 정말 해봐야 아는 것 같아요.

처음 아마존 재고를 운영했을 때 저는 되게 ‘쫄보’였어요. 그래서 정말 조금씩 제품을 넣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소량으로 여러 번 넣으니까 물류비가 더 많이 들더라고요. 주변 대표님들을 보니까 저보다 훨씬 과감하게 재고를 넣는데도 생각보다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원래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넣어봤어요. 그런데 괜찮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내 걱정이 실제 비용보다 앞서 있었구나.’

물론 무조건 재고를 많이 넣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자금이나 재고처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문제는 결국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플랜 B와 C는 만들어두되, 계획을 반드시 맞혀야 한다는 강박은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출처- InfuZen)

Q. 인퓨젠이 ‘여성이 여성을 위해 만든 화장품’이라는 방향을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고객이 곧 저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미 소비자로서 외모 강박적인 메시지에 꽤 지쳐 있었어요. 
제품이 좋은 건 알겠는데, ‘더 예뻐져야 해., ‘살을 빼야 해.’, ‘더 어려 보여야 해.’라는 메시지를 계속 듣는 게 피곤했거든요.

그래서 인퓨젠은 외모에 집착하게 만드는 화장품보다 나 자신을 돌보게 만드는 스킨케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퓨젠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제품 소개 이미지 (출처- InfuZen)

물론 제가 외모에 집착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세상의 외모 강박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그리고 화장품이기 때문에 제품력과 효능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요.

대신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더라고요.

브랜드가 사용하는 언어.

그래서 적어도 인퓨젠에서는 “이거 쓰면 예뻐 보여요”, “더 젊어 보여요.”, 보다는

‘오늘 나 자신을 돌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라는 식의 언어를 쓰려고 해요.

“세상의 외모 강박을 제가 없앨 수는 없어요. 
다만 적어도 인퓨젠만큼은 거기에 기름을 붓지 않는 브랜드였으면 좋겠어요.”


Q. 외모에 대한 메시지 외에도 기존 화장품 시장에서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나요?

화장품처럼 트렌드가 빠른 시장에서는 과도한 단계와 빠른 유행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해요. 
이 제품을 사면 이것도 같이 써야 하고,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제품을 사야 하고. 결국 계속 새 제품을 사게 만드는 구조인 것 같아요.

사업적으로는 이해해요. 매출을 만들려면 당연히 필요한 부분도 있죠.

그런데 저는 좋은 브랜드란 많이 바꾸지 않아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효용을 느끼게 하는 브랜드’ 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퓨젠 역시 ‘더 많이 사게 만드는 브랜드’보다는 고객이 가진 제품 하나의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합니다.


Q.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나요?

결국 제품인 것 같아요.

마케팅으로 한 번은 팔 수 있잖아요. 그런데 다시 찾게 만드는 건 결국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이 기준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나 했어요. 
원래 세럼이 아마존 프라임데이 전에 나와야 했어요. 그 시점에 토너와 세럼이 함께 있으면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할 이유도 더 강해지고, 매출 면에서도 유리했을 거예요.

그런데 사용감과 효능을 조금 더 다듬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함께하는 친구와 고민하다가 출시를 미뤘습니다.

“프라임데이 때 부스트해서 잠깐 많이 팔고, 고객이 다시 안 사면 똑같은 거 아니야?”

결국 장기적으로 다시 찾게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IT 여성 커뮤니티와 아이티백에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가 브랜드나 제품 방향에도 영향을 줬나요?

처음에는 이 질문을 보고 ‘제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없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말 근본적인 부분에 영향을 줬더라고요.

인퓨젠의 시작에는 제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요. 
공무원 시험이 끝나고 삶이 힘들었을 때, 아침저녁으로 차를 우려 마시면서 명상을 했어요. 
그 시간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백수여서 가능한 루틴 아닌가?’ 싶었어요.(웃음) 
일하는 사람이 매일 차를 천천히 우리고 명상할 시간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 과정이 스킨케어와 굉장히 닮아 있었어요.

매일 아침저녁 반복하고, 잠깐 멈추고, 내 몸을 돌보는 시간.

그래서 그 경험을 스킨케어 안으로 옮기고 싶었어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발로 뛴 수지님 (출처- 본인 제공)

 

그리고 고객 페르소나를 구체화하다 보니 결국 떠오르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들이더라고요.

아이티백을 하면서 정말 많이 느낀 게 있어요. 여성들이 일을 진짜 열심히 해요. 그러다 보니 번아웃도 굉장히 잘 와요. 
그런데 더 속상한 건, 열심히 하다가 지친 자기 자신에게 다시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예전에 써둔 인퓨젠의 페르소나 문서를 다시 봤는데 이런 사람이 적혀 있었어요. 
하루 종일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와, 밤에는 자신을 내려놓고, 아침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자신을 정돈하고 싶은 사람.

그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아, 나도 모르게 제 페르소나가 아이티백에서 만난 분들이었구나.”

그래서 기존 뷰티가 힘든 사람에게도 “그래도 더 예뻐져야죠.”라고 말한다면 저는 반대로 말하고 싶었어요.

“외모는 우리가 알아서 챙길게. 너부터 돌봐.”


Q. 처음 고객을 만나고 고객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었나요?

이전에 제가 아마존에서 운영했던 브랜드는 브랜드 스토리보다 제품력과 성분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였어요.

그래서 고객 리뷰도 대부분 기능적인 이야기였죠.

“제품이 좋아요.”, “효과가 좋아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퓨젠의 첫 리뷰는 조금 달랐어요. 
제품 효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브랜드 철학을 먼저 이야기해주신 고객이 있었어요. 
저희 패키지에 브랜드가 추구하는 경험과 태도를 적어두었는데, 고객이 실제로 그 의도대로 제품을 경험했다고 써주신 거예요.

그때 처음 ‘브랜드가 정말 경험으로 전달되는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고객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이었나요?

또 기억나는 리뷰가 하나 있어요.

‘바르면 명상하는 기분이 진짜 들어요.’

인퓨젠이 ‘티 메디테이션’이라는 포지셔닝으로 전달하려던 경험을 그대로 느꼈다는 이야기였어요. 
그 경험이 되게 신기했어요.

인퓨젠 토너 사용 후 달린 고객 리뷰 (출처- InfuZen)

 

그리고 B2B에서는 박람회에서 바이어들을 만났던 경험이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첫 제품에 사용하는 방아라는 원료는 향이 꽤 독특해요. 한국 사람에게도 낯설 수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는 더 낯설겠죠.

그래서 방아 특유의 개성은 살리면서 해외 고객에게 어느 정도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향을 별도로 개발했어요. 바닐라와 여러 원료를 조합하면서 정말 오래 조율했습니다. 스킨케어 브랜드가 향수 브랜드도 아닌데 왜 향에 그렇게까지 시간과 돈을 쓰냐는 시선도 있었어요.

그런데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니까 비슷한 표현을 반복해서 하더라고요.

“낯선데 익숙하다.”

저희가 의도했던 걸 정확히 느낀 거죠.

그때 ‘가장 오래 걸렸던 것이 결국 우리 차별점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요?

‘잘 팔리는 것과 돈이 되는 것은 다르다.’

이걸 정말 크게 배웠어요.

예전에 프로젝트로 운영했던 아마존 화장품 브랜드가 꽤 잘됐어요. 순위도 올라가고 제품도 계속 팔렸어요. 
그런데 계속 데이터를 추적해보니까 돈이 안 남는 거예요. 
기존에 존재하던 제품을 미국에 가져다가 판매하는 구조였는데, 실제로 필요한 비용을 전부 고려하고 나니 마진 구조가 좋지 않았어요.

매출은 나오는데 고생만 하고 돈은 안 남는 거죠.

그래서 인퓨젠을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다르게 접근했어요. 
제조원가만 보고 가격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플랫폼 수수료, 해외 물류비, 프로모션, 고객에게 제품이 도착하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포함해 가격을 설계했어요.

처음 사업할 때는 제조원가에 몇 배를 곱해서 판매가를 정하고 싶잖아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제품이 고객 손에 도착할 때까지 총 얼마가 드는가’ 인 것 같아요.


Q.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빨리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예전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없어요. 빨리 실행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어떤 일에는 실패가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요즘 ‘녹진하게 실패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해요.

저에게는 퇴사 후 방황했던 6개월이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6개월 아껴서 제품을 빨리 론칭했으면 되지 않았을까?”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힘들었던 그 시간이 가장 값졌어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하면서 BM을 깊게 고민해보기도 했고, 정부지원사업도 써봤고, 사업 아이템도 계속 고민했어요.

무엇보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 일에 치여서 나 자신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거든요. 
30대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정말 오랫동안 저 자신을 생각해본 시기였어요.

녹진하게 실패하는 시간을 겪은 후 방향을 찾은 수지님

 

물론 “그러니까 퇴사하고 6개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뜻은 아니에요.

저도 그동안 계속 뭔가를 시도했어요. 다만 어떤 실패는 충분히 경험해봐야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실패도 숙성될수록 농익어지는 실패가 있는 것 같아요.”


Q. 일과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수지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저는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 같아요.

“할지 말지는 마음으로 결정하고, 
하기로 결정한 뒤의 How-to는 숫자로 하려고 해요.”

아무리 숫자가 좋아도 제가 마음이 안 가는 일은 오래 못 하거든요.

저라는 사람이 그래요.

그래서 처음 시작할지는 ‘내가 이걸 정말 하고 싶은가?’ 를 봅니다.

대신 하기로 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숫자를 봐요.

원가 / 마진 / 매출 / 데이터 등 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결국 숫자가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아무리 제가 정말 좋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라도 지속하려면 자원이 필요해요. 
그래서 제 기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마음은 시작하게 하고, 숫자는 지속하게 한다’는 것 같아요.


Q. 창업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기도 하잖아요. 
힘든 시기를 어떻게 지나가세요?

저는 오히려 일 자체가 힘든 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더 힘든 건 ‘매일 열심히 하는데 아무런 성취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순간’이에요. 
실제로 성취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결과로 쌓이는 순간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거죠. 
그게 저를 정말 힘들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를 하고 있어요.

 

첫째, TO-DO 리스트를 씁니다

한동안 너무 바빠서 투두도 안 쓰고 그냥 눈앞의 일을 계속 처리했어요.

그런데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도 ‘오늘 내가 뭘 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무의미하게 느끼게 돼요. 
그래서 요즘에는 한 일을 최대한 기록합니다.

 

둘째, 블로그를 다시 씁니다

대학생 때 쓰다 만 블로그가 있는데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업무는 투두로 남기고, 업무 밖에서 든 생각은 블로그로 남겨요.

그러면 ‘이번 한 주도 내가 마냥 무의미하게 살지는 않았구나’라고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웃긴 건 제가 원래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진짜 생존 방법이에요.”

기록은 저에게 취미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진척을 보이게 만들어주는 장치인 것 같아요.

일과 삶을 꾸준히 기록해가는 수지님 (출처- 본인 제공)

Q. 창업을 하면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에너지가 고갈될 때도 있을 텐데, 어떻게 회복하시나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박람회처럼 하루 종일 사람을 많이 만나서 사람에게 치인 날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혼자 맥주 한잔하면서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저는 생각보다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그렇게 사람에게 많이 치인 날이 아니라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한잔하면서 풀어요.

특히 초기 창업가는 자기 상황을 편하게 이야기할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현재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이 좋은 것 같아요.

다만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아?’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 생각이 비슷하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남았어요..


Q.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창업하고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나를 검열하는 마음을 조금 덜어냈으면 좋겠어요.”

많은 여성분들이 능력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거에 맞는 사람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잘라내다가 결국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 검열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해낸 모습을 진짜 많이 보는 거에요.’ 적어도 제 경험에선 그랬어요. 

실제로 만나면 제일 좋아요.

저에게는 아이티백 인터뷰가 그런 역할을 했어요. 그게 어렵다면 관련 팟캐스트를 듣고, 인터뷰를 읽고, 여성 창업가 커뮤니티에 나가보고, 창업가의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자신만의 마음속 레퍼런스를 많이 만들어두는 것.

‘저 사람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구나.’ 
‘저 사람의 20대와 지금의 내가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 
‘나 같은 사람도 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사례가 마음속에 쌓이면 자기 검열도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업에 관심이 있다면 아이티백 같은 인터뷰도 많이 들어보시고, 파운시스에서 다양한 여성 사업가의 이야기도 계속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수지님이 참여했던 아이티백 팟캐스트 인터뷰 (출처- 아이티백)

Q.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처음 창업을 고민하던 수지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

그리고 “사업에 맞는 사람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실패도 정말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성공도 정말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사업가의 모습도 정말 다양하니까요.

처음부터 어떤 모습이 되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수지님은 어떤 사업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인퓨젠(InfuZen) 창업자이자 대표 박수지님

이 질문이 저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고민 끝에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이거였어요.

“뭐든 해내는 아마추어.”

저는 매번 정말 아마추어로 시작했거든요. 전문가여서 시작한 일이 거의 없어요.

리크루팅도 처음이었고, 브랜드 매니저도 처음이었고, 사업개발도 처음이었고, 서비스 기획도 처음이었고, 과일 장사도 처음이었고, 아마존도 처음이었고, 화장품 브랜드도 처음이에요.

그런데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해보고, 배우고, 결국 어느 정도 해냈어요.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나는 그거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하겠어.”

“나는 전문가가 아니잖아.”

그런데 처음부터 전문가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아마추어인 채로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전문가가 될 때쯤 또 다른 분야의 아마추어가 되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수지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7가지

 

1. ‘나에게 맞는 일’을 찾기보다, 해보면서 맞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

수지님은 처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공무원을 준비했고, HR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브랜드 매니저와 사업개발을 거쳐 지금은 K-뷰티 브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매번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완벽하게 확인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단 해봤고, 잘하고 싶어서 배웠고, 그 과정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다면 적성을 완벽하게 증명하려 하기보다, 작게라도 직접 해보면서 나와 맞는지 확인하는 편이 더 빠를 수 있습니다.

 

2. 하고 싶은 일과 지금 가진 자원은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수지님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업은 처음에는 팸테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관련 전문성과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K-뷰티에는 아마존 운영 경험과 브랜드 실무 경험,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여성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은 유지하되, 지금 가진 자원으로 시작할 수 있는 K-뷰티를 선택했습니다.

수지님이 표현한 ‘나 자신의 MVP’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지금 가진 자원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형태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최종 버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3. 고민을 오래 하는 것보다 작은 실행 하나가 더 많은 정보를 준다

아이티백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을 인터뷰한 수지님이 반복적으로 발견한 모습은 ‘걱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A를 선택할지 B를 선택할지 오래 고민하지만, 정작 그 고민은 생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지님 역시 과거 사이드 프로젝트로 과일을 직접 팔아보기 전에는 유통 구조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팔아본 뒤에야 공급가 변동이 큰 신선식품은 자신이 원하는 사업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실패였지만 동시에 다음 사업의 기준을 얻었습니다. 
작은 실행의 목적은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결정을 더 잘하기 위한 데이터를 얻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4. 매출이 나는 사업과 돈이 남는 사업은 다르다

수지님이 사업을 하며 가장 크게 배운 시행착오 중 하나입니다.

‘잘 팔리는 것과 돈이 되는 것은 다르다.’

아마존에서 운영했던 브랜드는 제품도 잘 팔리고 순위도 올라갔지만, 실제 비용을 모두 계산하니 충분한 마진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 경험 이후 인퓨젠에서는 제조원가만 보고 가격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플랫폼 수수료, 물류비, 할인과 프로모션 등 고객의 손에 제품이 도착할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함께 고려해 가격을 설계했습니다.

특히 실물 제품을 처음 만드는 사람이라면, 
‘얼마에 만들 수 있는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개를 판매했을 때 실제로 얼마가 남는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5. 좋은 브랜드 철학은 거대한 선언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지님은 화장품 시장의 외모 강박적인 메시지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세상의 외모 강박을 없애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인퓨젠만큼은 거기에 기름을 붓지 않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세상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의 브랜드가 사용하는 언어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예뻐져야 한다’, ‘더 어려 보여야 한다’는 메시지보다 ‘오늘의 나를 돌보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초기 브랜드일수록 거창한 미션보다, ‘우리가 실제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은 무엇인가’를 먼저 정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6. 성취가 보이지 않는 시기에는 ‘기록’이 자신을 지켜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수지님에게 창업하면서 힘든 것은 일이 많다는 사실보다,

‘매일 열심히 하는데 아무 성취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초기 사업은 오늘 한 일이 오늘 바로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지님은 투두리스트와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을 좋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표현으로는 ‘생존 방법’이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남겨두면,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업 초기에 필요한 것은 늘 더 큰 성취가 아니라, 때로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작은 진척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7. 자기 검열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비슷한 사람의 사례’를 많이 보는 것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창업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수지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나를 검열하는 마음을 덜어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사업에 맞는 사람일까?’

이런 질문을 계속하다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가능성을 잘라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수지님은 그 마음을 줄이는 방법으로 ‘마음속 레퍼런스’를 이야기했습니다.

나와 비슷했던 사람이 시작한 사례 / 처음부터 자신 있었던 건 아니었던 사람 / 여러 번 실패했지만 결국 자신의 방식을 찾은 사람

그런 사례가 하나씩 쌓이면 ‘저 사람도 했는데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능해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여성 사업가의 이야기를 더 많이 기록하고 공유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이번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해본다면

글을 다 읽고 나서 바로 답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아래 질문 중 지금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만 골라 생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1. 나는 지금 어떤 일을 ‘나와 맞는지 확신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나요?
완벽하게 시작하지 않고 1주일 안에 해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실험은 무엇인가요?

2.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특정 직업이나 아이템을 제외하고도 남는 욕구는 무엇인가요?

3. 그 욕구를 지금 내가 가진 경험·기술·네트워크로 구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의 나로 만들 수 있는 ‘나 자신의 MVP’는 무엇인가요?

4. 최근 실패했던 일에서 나는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나요, 아니면 다음 선택을 위한 기준을 얻었나요?

5. 내 사업은 매출이 늘어날수록 실제 이익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인가요?
제조원가 외에 물류비, 수수료, 할인, 마케팅비까지 포함해서 계산해본 적이 있나요?

6. 내가 브랜드를 통해 해결하고 싶은 큰 문제 중, 지금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영역은 무엇인가요?

7. 요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지난 한 달 동안 실제로 한 일을 모두 적어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요?

8. 내가 생각하는 ‘좋은 커리어’의 기준은 정말 내가 선택한 기준인가요?

9.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나는 정보가 부족해서 고민하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걸까요?

10. 내 마음속에는 ‘나와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한 사람’의 레퍼런스가 몇 명이나 있나요?


뭐든 해내는 아마추어

이번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수지님이 자신을 설명한 이 표현이었습니다.

‘뭐든 해내는 아마추어’

공무원을 준비하던 사람이 HR 인턴을 했고, HR을 하던 사람이 브랜드 매니저가 됐고, 브랜드 매니저가 AI 회사의 사업개발자가 됐습니다.

회사 밖에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 과일을 팔아봤고, 과일 장사에 실패한 뒤에는 공산품의 사업 구조를 고민했습니다.

화장품 브랜드를 아마존에서 팔아본 경험이 지금의 K-뷰티 브랜드로 이어졌고, 100명의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니 결국 자신에게도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 될 거라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작은 선택을 했고, 해봤고, 실패했고, 그 실패에서 다음 선택의 기준을 하나씩 얻었습니다. 
그래서 수지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전문가가 된 다음 시작해야 한다’는 순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실제 순서는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아마추어로 시작하고, 해보면서 배우고, 조금씩 잘하게 되는 것.

그 경험으로 다음의 나를 결정해도 됩니다.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두 알 수 없으니까요.

오히려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 내가 생각보다 잘하는 것.
  • 내가 절대 못 견디는 것.
  • 계속하고 싶은 것.
  • 돈이 되는 것.
  • 돈은 되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
  •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 데이터가 하나씩 쌓이면서 결국 나만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파운시스는 이미 완성된 여성 사업가의 성공담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선택했고, 어디에서 실패했고, 어떤 기준을 새롭게 만들었는지. 결과에 도착하기 전의 과정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과정 하나가 ‘저 사람도 처음에는 몰랐구나’, ‘나처럼 고민했던 사람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라는 마음속 레퍼런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오늘 수지님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이 있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아마추어인 채로라도 한번 시작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도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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