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마켓 핏 찾으려고 제품과 광고에 돈을 쓰고 있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상업 5천년의 역사를 틱톡이 바꿔버렸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황학동으로 먼저 가보시죠.
새벽 네 시, 동트기 전 황학동에는 보따리장수들이 손전등을 켜고 돗자리 위에 좌판을 폅니다. 헌 공구, 필름 카메라, 짝 안 맞는 그릇, 출처를 묻지 않는 게 예의인 골동품까지 있습니다. 그러다 해가 뜨고 단속반이 보이면 장은 삼십 분 만에 걷힙니다. 어제 산 물건을 무르러 오늘 그 자리에 가면 장이 없습니다. 물건을 팔던 장수도 없습니다. 시장이 있었다는 증거는 내 손에 들린 물건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도깨비시장입니다.
정겨운 옛날이야기 코너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장이 서고 걷히는 풍경을 매일 보고 계시거든요. SNS계정 “인사이트”라는 창문으로요.
팔로워 1만 명짜리 계정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400에서 멈춥니다. 나머지 9,600명은 오늘 결근하셨습니다. 사유서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올린 릴스 하나가 조회수 삼십만을 찍습니다.
놀라서 인사이트를 열어 보면 조회한 사람의 구십몇 퍼센트가 나를 팔로우한 적 없는 사람들입니다. 생판 남 삼십만 명이 내 게시물 하나 앞에 모여들었다가 사흘 뒤에는 흔적도 없이 흩어졌습니다. 댓글창에는 처음 보는 아이디들이 잔치를 벌이다 갔는데, 정작 단골들은 그런 잔치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장이 서는 장소를 미리 알 수 없고, 걷히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장. 여러분 계정에는 지금 도깨비장이 서고 있습니다. 황학동과 다른 점은 부지런함뿐입니다. 황학동은 새벽에 한 번 열리는데, SNS는 게시물이 뜰 때마다 열립니다.
인류의 상업사는 이 도깨비장을 없애는 방향으로만 진보해 왔습니다.
상업의 오천 년은 한 방향으로만 걸었습니다.
조선의 시골 장은 닷새마다 섰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일장입니다. 닷새로 정해진 데는 계산이 있습니다. 한 고을 사람들이 사고파는 물량만으로는 매일 문 여는 가게가 먹고살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장사꾼들이 이 고을 저 고을 장 다섯 개를 돌았습니다.
보부상입니다. 봇짐장수 보상은 비녀나 바늘처럼 값나가고 가벼운 것을 지고 다녔고, 등짐장수 부상은 소금과 어물과 옹기처럼 부피 나가는 것을 짊어졌습니다. 닷새짜리 순환 근무를 평생 도는 직업인데, 이 직업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시장에 주소가 없어서, 사람이 시장을 등에 업고 뛰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이 사정을 알았습니다.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상인을 신분 서열 맨 끝자리에 앉혀 놓은 나라인데, 그런 나라가 한양 종로에는 관청 돈으로 행랑 건물을 지어 상인들에게 세를 주고 장사를 시켰습니다. 시전입니다. 비단이든 종이든 어물이든, 사려는 사람이 언제 가도 그 자리에 그 가게가 있었습니다. 상인은 사람 취급을 덜 해줘도, 시장에 주소를 주는 일만큼은 국책 사업으로 했다는 얘기입니다.
서양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1852년 파리에서 부시코 부부가 봉 마르셰 백화점을 열면서 발명품 세 개를 한꺼번에 내놨습니다.
- 정찰제
- 자유 입장
- 반품
지금 들으면 발명이랄 것도 없는데 당시에는 셋 다 혁명이었습니다.
흥정 없이 붙어 있는 가격표와 살 마음이 없어도 들어와서 구경해도 되는 문과 마음이 바뀌면 무르는 권리라는 건 엄청난 혜택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위 세가지 장치 모두 시장을 예측 가능한 장소로 만들어줬습니다. 이 장치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사반세기 만에 매출이 백 배 넘게 뛰어서, 소설가 에밀 졸라가 아예 이 백화점을 취재해 장편소설을 한 권 썼습니다. 제목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인데 내용은 제목만큼 행복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백화점은 동네 포목점들을 차례로 고사시키는 포식자거든요. 그 뒤로 백화점은 24시간 불이 안 꺼지는 온라인 쇼핑몰이 됐고, 시장은 주머니 속에 상시 개장 상태로 들어왔습니다. 이 주소 체계의 완성입니다.
오천 년 상업사의 방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시장에 주소를 준다.
- 영업시간을 늘린다.
- 언제 가도 거기 있게 만든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낭비를 줄이는 것, 이 일방통행이 장사의 진보였습니다.
그런데 관심을 사고파는 SNS 시장 하나만 거꾸로 걷고 있습니다. 백화점까지 다 지어 놓고도 도깨비 시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왜 하필 이 시장에서만 역주행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창업이라는 게임의 지도가 왜 다시 그려져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옛날 지도부터 펼치겠습니다.
실리콘밸리는 의외로 족보를 따지는 동네입니다.
옛날 지도의 이름은 프로덕트 마켓 핏(Product Market Fit)입니다.
세쿼이아캐피털을 세운 돈 발렌타인은 일찍이 “위대한 시장이 위대한 회사를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앤디 라클레프가 이 생각에 프로덕트 마켓 핏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마크 안드레센이 실리콘밸리의 교리로 퍼뜨렸습니다.
훌륭한 팀이 형편없는 시장을 만나면 시장이 이긴다. 형편없는 팀이 훌륭한 시장을 만나도 시장이 이긴다.
좋은 팀과 좋은 제품이 있어도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회사는 죽습니다. 반대로 시장의 수요가 충분히 크면 다소 부족한 제품도 고객의 반응을 먹으며 자랍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은 늘 같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을 원하는 시장이 정말 있는가.”
프로덕트 마켓 핏이 스타트업의 생사를 가르는 기준으로 대접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교리에는 아무도 적어 놓지 않은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시장은 저기 어딘가에 있다. 이름을 붙일 수 있고, 크기를 잴 수 있고, 찾아갈 수 있는 덩어리로 존재한다.”
2007년에는 이 전제가 대체로 맞았습니다. 가정용 TV 시장, 기업용 보안 솔루션 시장처럼 시장마다 문패가 달려 있었습니다. 조사 회사는 그 크기를 달러로 계산했고, 업계 컨퍼런스에 가면 구매 담당자들이 명찰을 달고 한 호텔에 모여 있었습니다. 좋은 시장을 찾으라는 조언이 성립한 것은 시장이 실제로 찾아갈 수 있는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장이 지난 20년 사이에 형체를 잃었습니다.
시장은 어쩌다 주소를 잃었을까요.
세단계로 한번 알아볼게요.
첫 단계는 가마니의 시대입니다.
옛날 장사꾼들이 시장을 눈에 보이는 덩어리로 대접한 데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손님 한 명 한 명이 뭘 원하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거든요. 방송사가 서너 개에 신문이 몇 종이던 시절입니다. 시청률 조사라는 것도 표본 몇천 가구의 거실에 기계를 달아 놓고 전 국민의 취향을 짐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수요를 가마니 단위로 셀 수밖에 없었습니다. 30대 주부, 2030 직장인, 대한민국 남성 등으로 나눴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침 방송 편성표가 사실상 그 시절의 가마니 목록이었습니다. 광고는 이 가마니를 향해 던지는 투망이었고요.
문제는 이 가마니가 통계청 바깥에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30대 직장인 여성 세 사람을 실제로 만나 보면, 한 명은 캠핑 장비를 검색하는 중이고 한 명은 이직 공고를 검색하는 중이고 한 명은 이유식을 검색하는 중입니다. 같은 가마니에 담겼을 뿐 같은 수요였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가마니를 열어 볼 도구가 없었으니 다들 가마니째 사고 팔았습니다.
그 시대 해상도의 한계입니다.
둘째 단계에서 가마니가 열렸습니다.
검색창과 소셜 피드가 수요를 낱알 단위로 보여주기 시작한 겁니다. 캠핑 장비를 검색한 사람에게 캠핑 장비를 보여줄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낱알들을 주워 담는 장사가 2010년대의 채널 운영입니다. 이 장사의 창세기 문서가 2008년에 나온 케빈 켈리의 "1,000명의 진짜 팬"입니다. 인터넷 덕에 창작자는 이제 대중을 잡을 필요가 없다, 내가 만드는 것이면 뭐든 사 주는 진짜 팬 천 명만 모으면 먹고산다는 계산서였습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그 업의 사업계획서가 먼저 나온 셈입니다.
팔로워를 모은다는 건 말을 멋부리지 않고 말하자면, 단골 장부를 만드는 일중 하나입니다. 구독자 명단, 팔로워 목록, 이메일 리스트 등으로 만든거죠. 시장이 가마니에서 낱알로 쪼개지긴 했어도, 내 장부에 이름을 올린 단골들에게는 언제든 다시 말을 걸 수 있던 시대입니다. 장부가 곧 자산이고 자산이 언젠가 매출이 된다는 믿음 위에 한 업계(시장)가 통째로 세워졌습니다.
셋째 단계에서 그 장부의 효력이 정지됐습니다. 틱톡 때문입니다.
틱톡이 발명한 콘텐츠 도달 방식을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계정이라는 단위가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새 영상이 올라오면 일단 몇백 명 규모의 표본 관객에게 뿌려 봅니다. 채점 기준은 1) 끝까지 봤는가, 2) 다시 봤는가, 3) 퍼 날랐는가입니다.
성적이 나오면 더 큰 관객에게 뿌리고, 거기서도 성적이 나오면 판을 또 키웁니다. 낙방하면 그대로 사장시켜 버립니다. 올린 사람의 팔로워가 0명이든 천만 명이든 상관없이 매번 이 오디션에 예외없이 줄을 서야 합니다. 이 회사에서는 천만 팔로워를 경력으로 안 쳐준다는 말입니다. 경력직 채용이 없고 신입 공채만 있는 회사인 셈입니다. 쇼츠 한 편 한 편이 이력서 없이 혼자 실기 시험을 봅니다.
기존 소셜 미디어의 채점표에는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들어갔습니다. 친구, 팔로우, 구독이었던거죠. 틱톡의 채점표에는 그 조건이 없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쇼츠 앞에서 엄지를 멈추는지만 있습니다.
관계를 묻던 알고리즘이 반응을 묻는 알고리즘으로 갈아타는 순간입니다.
이 방식이 대호황을 누리며 사람들의 시간을 쓸어 담기 시작하자 나머지 플랫폼이 전부 따라갔습니다. 마크 저커버그가 2022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직접 예고했습니다. 지금 페이스북 피드의 15퍼센트쯤이 팔로우하지 않는 계정에서 온 AI 추천인데, 내년 말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고요.
이듬해에 그 약속대로 인스타그램 피드의 40퍼센트 가까이가 팔로우 관계없는 추천으로 채워졌다고 밝혔습니다. 유튜브 첫 화면에서 구독 채널 신규 영상 찾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힘들어졌는지 떠올려 보세요. 이게 되돌릴수 없는 알고리즘의 뉴 노멀입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사용자의 시간을 놓고 틱톡과 전쟁 중인데, 단골 장부를 존중하다가 재미없는 피드를 보여주면 사용자가 앱을 닫으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10년째 팔로워가 달랑 100명인 사람은 그 100명의 연애, 취직,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고만고만한 일대기를 봐야 합니다. 근데 이 사람에게 갑자기 전세계 82억 명의 에피소드와 인사이트가 쏟아지면 어떨까요? 피드를 버리고 릴스탭만 보는 이유입니다.
다만 그 합리성의 계산서는 채널 운영자에게 청구됐습니다. 만 명이 내 장부(팔로워)에 이름을 올렸어도 도달 알고리즘은 장부를 안 보고 낱장(콘텐츠)만 봅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같은 콘텐츠인데도 조회수300,000이 나오던 게 400으로 줄었죠.
296,000이 당신이 치룬 값입니다.
오천 년의 진보는 왜 여기서만 유턴했나?
답은 창고에 있습니다.
물건을 파는 시장이 주소를 갖게 된 것은 물건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재고를 쌓아 둘 창고가 필요하고, 실어 나를 길이 필요하고, 그 창고와 길은 옮기는 데 돈이 듭니다. 그러니 한 번 목 좋은 자리를 잡으면 지키는 게 남는 장사였습니다. 권리금이라는 이상한 돈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건물주도 못 받는 돈을 앞 세입자가 받는 이유는, 그 자리에 쌓인 유동인구가 이사를 못 가기 때문입니다.
보부상의 등짐이 무거울수록 시전의 문패는 값이 나갔습니다. 주소는 물류의 산물입니다.
관심을 사고파는 시장에는 창고가 없습니다.
콘텐츠는 무게가 0이고 배달은 빛의 속도로 됩니다. 지킬 물류가 없으니 주소를 유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남는 최적화 변수는 딱 하나입니다. 이 사람 앞에 무엇을 놓아야 더 오래 머무는가 하는 매칭의 정확도입니다. 그 정확도를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가 계정도 장부도 안 보는 콘텐츠의 보급 방식입니다.
위 세 단계를 통과한 뒤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 게시물 하나가 올라옵니다.
- 알고리즘이 몇백 명에게 먼저 뿌려서 간을 봅니다.
- 엄지 손가락이 멈추면 지구 전역에서 그 주제에 반응할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긁어모아 도깨비 장을 세웁니다.
- 구경꾼이 앵간히 모였다 싶으면 그 게시물과 관련있는 광고를 슬며시 끼워 넣습니다.
- 반응이 식으면 구경꾼은 해산하고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섰다가 사라지는 장, 도깨비장의 물리학이 온라인의 기본 콘텐츠 도달 방식이 된 겁니다.
그래서 시장이 대체 뭐길래
장이 서는 단위가 콘텐츠 한 편이면, 시장의 최소 단위도 콘텐츠 한 편입니다. 이 문장이 억지로 들리신다면, 완전히 납득할수 있게 한번 해부해 드리겠습니다.
시장이 뭔가요? 건물과 좌판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정의는 하나입니다. 수요가 있는 장소입니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든 시장이고, 수요가 “흩어지면” 좌판이 아무리 번듯해도 시장이 되지 않습니다. 21세기 폐광촌이 되어버린 신도시의 텅 빈 상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간판도 있고 진열대도 있는데 시장은 없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지금 사람들의 수요는 어디에 모이는가
오프라인에서 수요는 장소에 모였습니다. 매트리스가 필요한 사람은 가구 거리로 갔고, 전자제품이 필요한 사람은 전자상가로 갔습니다. 그래서 시장의 단위가 장소였고 장소에는 주소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수요는 장소에 모일 수가 없습니다. 장소가 없으니까요. 대신 관심이 머무는 곳에 모입니다. 그리고 관심이 머무는 단위가 스크롤을 멈추게 한 게시물 하나, 끝까지 보게 만든 영상 하나입니다.
시장을 계속 쪼개 보세요. 산업에서 카테고리로, 카테고리에서 키워드로, 키워드에서 피드로 바뀝니다. 그리고 원자 단위까지 쪼개고 나면 손바닥에 남는 알갱이는 콘텐츠 한 편 앞에 잠깐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시장의 원자는 콘텐츠였던 겁니다. 예전에는 이 원자를 알아볼 해상도 높은 도구가 없어서 덩어리째 사고팔았을 뿐이고요.
지금 SNS를 열고 콘텐츠를 하나 올려 보세요. 제가 말한 것처럼 틀림없이 도깨비 장이 설 것입니다. 근데 성에 찰 정도로 구경꾼이 모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프콘핏 웹북에서 그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아무도 이렇게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비법도 알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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