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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인공지능 특허를 확보하려면? - 이단계 심사와 COMVIK 접근법 중심으로

 

지난 미국 인공지능 특허 확보 관련 칼럼에서 소개한 딥러닝 발명이슈를 이어서 설명한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신경망으로 분석하고, 이상 거래를 탐지해 결과를 표시하는 청구항이었고 미국 심사관은 이를 추상적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청구항이 유럽 특허청(EPO)에 갔다면 어떤 통지를 받았을까.

흥미롭게도 유럽 심사관은 '추상적'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이렇게 통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청구항은 컴퓨터를 사용하므로 발명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경망으로 이상 거래를 탐지하는 것은 기술적 성격에 기여하지 않으므로 진보성 판단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일반적인 컴퓨터뿐이므로 진보성이 없다.”

결론은 같은 거절이지만 거절이유의 근거가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유럽 AI 특허 실무의 출발점이다.

미국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은 특허법 제101조 한 곳에서 적격성 논쟁을 모두 끝낸다.

AI는 '추상적 아이디어'로 먼저 분류되고, 청구항이 그것을 실용적 응용(practical application)에 통합했는지가 승부처다. 일반 컴퓨터를 얹는 것만으로는 추가 요소로 인정되지 않는다.

유럽은 다르다. 유럽특허조약(EPC) Art. 52는 수학적 방법, 정신적 활동, 영업 방법, 컴퓨터 프로그램을 '발명이 아닌 것'으로 열거하되, Art. 52 (3)에서 이들이 '그 자체로서(as such)' 청구된 경우에만 배제되는 것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EPO 특유의 이단계(two-hurdle) 접근이 나온다.

첫 번째 관문인 적격성은 매우 낮다. 청구항에 컴퓨터, 프로세서, 메모리 같은 기술적 수단이 하나라도 있으면 통과다(Hitachi, T 258/03). 미국이라면 Prong 2에서 걸러낼 '일반 컴퓨터 + 알고리즘' 청구항도 유럽에서는 일단 발명으로 인정된다.

대신 두 번째 관문인 진보성(제56조)이 엄격하다. COMVIK 접근법에 따라 청구항의 특징 중 기술적 성격에 기여하는 것만 진보성 판단에 넣고 나머지는 빼버린다. 알고리즘이 기술적 목적과 연결되지 않으면 진보성 판단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미국에서 적격성으로 거절될 청구항이 유럽에서는 진보성으로 거절되는 셈이다.

결국 두 나라의 심사실무의 질문 자체가 다르다. 미국 심사관은 "추상적 아이디어를 실용적 응용에 통합했는가"를 묻고, 유럽 심사관은 "청구항의 어떤 특징이 기술적 성격에 기여하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적격성 대응 논리보다 진보성 대응 논리, 즉 기술적 목적과 정량 효과를 명세서와 청구항에 어떻게 심어두었느냐가 훨씬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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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유럽의 AI 발명 심사 프레임 비교 >

 

 

유럽의 출발점, AI는 수학적 방법이다. 

EPO 심사가이드 라인은 AI와 머신러닝을 이렇게 규정한다. 신경망, 유전 알고리즘, SVM, k-means 등 분류,군집,회귀,차원축소를 위한 계산 모델과 알고리즘에 기반하며, 이들은 학습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추상적 수학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미국이 AI를 추상적 아이디어라 부른다면 유럽은 수학적 방법이라 부른다. 출발선이 배제 대상이라는 점은 같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안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기술적 응용(technical application)에 결합하는 것이다. 심전도 신호로 부정맥을 분류하거나, 디지털 이미지,오디오를 분류하거나, 자율주행 차량이 객체를 인식하거나, 화학공정의 파라미터를 자동 조정하는 데 신경망을 쓴다면 그 신경망은 기술적 목적에 봉사한다.

다른 하나는 특정 기술적 구현(specific technical implementation)이다. GPU/TPU 같은 하드웨어에 맞춘 신경망 설계, 메모리 절감을 위한 모델 압축,양자화, 분산 학습의 통신 최적화, 추론 지연을 줄이는 아키텍처 변경처럼 컴퓨터 내부의 기술적 고려가 설계에 반영된 경우다.

주의할 것은 단어의 선택이다. 심사기준서는 'support vector machine', 'reasoning engine', 'neural network' 같은 표현이 나오면 주의 깊게 본다고 명시한다. 보통 기술적 성격이 결여된 추상 모델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청구항에 신경망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기술적 성격이 자동으로 부여되지는 않는다.

 

 

진보성, 문제-해결 접근법과 COMVIK Approach.

유럽 진보성의 표준은 문제-해결 접근법(Problem-Solution Approach)이다.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을 정하고, 발명과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기술적 효과로부터 '객관적 기술적 과제'를 정식화한 뒤, 통상의 기술자가 그 차이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could)뿐 아니라 그렇게 할 동기가 있었는지(would)를 본다.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출원인이 명세서에 적어둔 과제를 따라가지 않는다. 선행기술과의 실제 차이가 만드는 효과만 본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으면 과제는 '단순한 대안 제공'으로 격하되고, 대안 제공은 거의 언제나 자명하다.

AI 청구항처럼 기술적 특징과 비기술적 특징이 섞인 청구항에는 COMVIK 접근법(T 641/00)이 적용된다. 2002년 COMVIK 사건은 휴대전화 SIM에 업무용,개인용 두 개의 사용자 ID를 할당하는 발명이었다. 영업적 아이디어와 GSM 네트워크의 기술적 특징이 섞여 있었고, 심판부는 여기서 새 프레임을 세웠다. 기술적 성격에 기여하지 않는 특징은 진보성 판단에서 제외하되, 그 비기술적 특징은 통상의 기술자에게 주어진 '제약 조건'으로 객관적 기술적 과제 안에 넣는다는 것이다. 이 심사기준은 심사기준서 G-VII 5.4에 정식화되어 오늘날 AI 발명 심사의 판단의 기초로 판단된다.

실무적으로 심사관은 청구항의 특징을 세 그룹으로 나눈다.

첫번째 그룹은 센서, GPU, 차량 제어부처럼 그 자체로 기술적인 특징이고, 두번째 그룹은 가격 결정 규칙이나 광고 노출 규칙처럼 그 자체로 비기술적인 특징, 그리고 세번째 그룹은 수학적 알고리즘이나 데이터 구조처럼 그 자체로는 비기술적이지만 맥락 속에서 기술적 효과에 기여하는 특징이다.

AI 발명의 판단은 세번째 그룹에서 갈린다. 신경망 알고리즘이 의료,신호처리,제어라는 기술적 목적에 기여한다고 인정받으면 진보성 판단에 들어가고, 아니면 빠진다.

 

 

심사례로 보는 함정, 뉴로-퍼지 컨트롤러. 

심사기준서 G-VII 5.4.2.5의 다섯 번째 예시(T 1968/08 기반)가 AI 발명이 세번째 그룹으로 인정받고도 진보성 이슈가 발생하는 케이스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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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O Guidelines G-VII 5.4.2.5 Example 5의 요지 >


첫번째 프로세스는 쉽게 통과한다. 열용사 코팅이라는 특정 기술 공정을 향한 방법이므로 기술적 성격이 있다. 진보성의 관점에서도 뉴로-퍼지 제어기는 수학 모델이지만 그 출력이 코팅 공정 파라미터 조정에 직접 사용되므로 기술적 기여가 인정되어 진보성 판단 대상에 포함된다. 여기까지는 출원인이 의도한 바이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객관적 기술적 과제를 정식화하려는데, 명세서 어디에도 뉴로-퍼지 제어기의 입력,출력 변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학습시켰는지, 그 결과 코팅 품질이 얼마나 좋아졌는지가 없다. 과제는 '코팅 품질 향상'에서 '단순 신경망의 대안 제공'으로 격하된다. 그런데 뉴로-퍼지 제어기는 D2에서 이미 공지된 기술이다. 통상의 기술자가 대안으로 골라 쓰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판단되어 진보성 부정 결론이다.

해당 요소 자체는 진보성 판단의 요소로 특정되었지만, 진보성의 확보 여부는 다르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즉, 이 케이스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은 유럽에서 AI 모델을 특정 기계 제어에 적용해 기술적 성격을 인정받는 것과 진보성을 인정받는 것은 별개라는 것이다. 그 모델의 입출력 변수와 학습 방법이 해당 기술분야에 어떻게 '적응(adapted)'되어 어떤 실질적 향상을 내는지를 명세서와 청구항이 보여주어야 비로소 두 번째 관문을 넘는다. 미국이라면 이 청구항은 공정 제어라는 실용적 응용 덕에 적격성을 통과하고 순수 진보성 판단으로 넘어갔을 텐데, 유럽에서는 처음부터 그 판단만 남는다.

 

 

유럽에서 인공지능 특허를 확보하려면 명세서를 어떻게 작성하여야 할까?


첫째, 청구항 안에 기술적 목적을 제시한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신경망'이 아니라 '심전도 신호를 입력받아 부정맥을 검출하는 신경망', '조향각을 결정하는 신경망'이어야 한다. 그래야 알고리즘 특징이 세번째 그룹으로 분류되어 진보성 판단에 살아남는다.

둘째, 알고리즘이 그 기술분야에 어떻게 적응되었는지를 쓴다. 입력 변수는 무엇이고, 출력은 어디에 쓰이며, 학습 데이터는 어떻게 만들었고, 손실 함수는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다. 위에서 설명한 Example 5가 진보성 결여 판단을 받은 부분이 이 부분이다.

셋째, 정량 효과를 명세서에 제시한다. 문제-해결 접근법에서 객관적 기술적 과제가 '대안 제공'으로 격하되지 않게 막는 가장 확실한 무기가 효과의 입증이다. 정확도, 지연시간, 메모리, 수율 같은 숫자는 could-would 판단에서 비자명성의 강력한 신호가 된다. 다만 EPO도 출원 후 제출하는 실험 데이터는 원 명세서에 그 효과가 시사되어 있을 때에만 받아준다(G 2/21). 미국의 실무와 마찬가지로 출발점은 결국 명세서다.

넷째, 기재요건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유럽은 Art. 83 실시가능성과 Art. 84 명확성,뒷받침 요건을 AI 발명에 엄격하게 적용한다. 심판부는 신경망으로 심박출량을 추정하는 발명에서 학습에 어떤 입력 데이터를 써야 하는지 명세서에 없다는 이유로 실시가능성과 진보성을 모두 부정한 바 있다(T 161/18). 학습 데이터의 성격, 하이퍼파라미터, 네트워크 구조의 기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Amgen 판결 이후 실무와 결론이 같다.
 

정리하면 미국은 "추상적 아이디어를 실용적 응용에 통합했는가"를 35 USC 101에서 한 곳에서 판단하고, 유럽은 "어떤 특징이 기술적 성격에 기여하는가, 그 특징만으로 비자명성이 남는가"를 적격성과 진보성 두 단계로 나누어 판단한다.

심사 구조는 다르지만 결론의 방향은 같다. AI 모델 자체의 추상화에 일반 컴퓨터와 일반적 결과를 얹은 청구항은 두 곳 모두에서 거절되고, 구체적 기술 응용과 구현 디테일, 정량 효과를 갖춘 청구항은 두 곳 모두에서 인정된다. 하나의 명세서로 미국의 실용적 응용 테스트와 유럽의 COMVIK 테스트를 동시에 통과하도록 설계하는 것, 그것이 AI 발명의 해외 출원 실무가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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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기현 변리사는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2015년 52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국내 대기업의 기술 권리화, 특허 분쟁 대응 및 컨설팅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율 주행, 영상 처리, 의료기기, 기계학습, 디스플레이, 단말 UI/UX, IP 포트폴리오 설계 및 IP 심판 소송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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