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프로덕트
플랫폼은 고객까지 데려와야 할까?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제로피를 처음 만들 때는 해결하려는 문제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전자책, PDF, 온라인 강의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하려면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상품 페이지를 만들고, 결제를 받고, 입금을 확인하고, 구매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고, 주문 내역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특히 구글폼과 계좌이체로 판매하는 사람들은 상품이 한 건 팔릴 때마다 직접 확인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로피는 판매자가 자신의 상품을 쉽게 등록하고, 결제부터 콘텐츠 전달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문제도, 해결 방법도 꽤 선명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거래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로피는 오픈마켓이 아닙니다.

플랫폼 안에서 상품을 노출해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는 구조보다는, 판매자가 자신의 SNS, 유튜브, 블로그나 기존 고객에게 판매 링크를 공유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가능할지부터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플랫폼이 고객을 데려오지 않아도 판매자가 자신의 고객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제로피에서는 84건, 약 521만 원의 거래가 발생했습니다.

 

아주 큰 숫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판매자가 이미 자신의 고객을 가지고 있다면, 플랫폼이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지 않아도 거래는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계도 명확했습니다.

판매자가 SNS에 글을 올리고, 영상을 만들고, 커뮤니티에 상품을 소개할 때는 고객이 들어옵니다.

홍보를 멈추면 유입도 함께 줄어듭니다.

제로피가 결제와 콘텐츠 전달을 아무리 편리하게 만들어도 상품을 발견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결제 플랫폼이어야 할까,

판매 플랫폼이어야 할까

 

판매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항상 결제라고 답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자주 나오는 고민은 단순합니다.

“상품은 만들었는데 어떻게 팔아야 할까요?”

이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제로피의 역할은 크게 달라집니다.

한쪽에는 상품 등록, 카드결제, 콘텐츠 전달, 주문과 고객 관리처럼 판매자가 거래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능이 있습니다.

이 영역에 집중하면 제품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판매자는 고객을 데려오고, 제로피는 거래가 잘 이루어지도록 돕습니다.

 

반대 방향도 있습니다.

검색엔진에서 상품이 발견되도록 돕고, 생성형 AI가 상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구조화하고, 나아가 고객이 상품을 발견하는 과정까지 제품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 방향이 훨씬 커 보인다는 점입니다.

고객 유입이라는 문제는 분명 중요합니다.

동시에 광고, 콘텐츠, 검색, 추천, CRM 등 끝이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한 문제를 더 해결하려다가 제품이 무엇을 하는 서비스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제품을 만들다 보면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문제를 발견했으니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고객에게 중요한 문제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콘텐츠 판매자의 가장 큰 고민이 고객 유입이라고 하더라도, 제로피가 광고 플랫폼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결제만 한다”고 선을 긋는 순간, 고객이 실제 판매 과정에서 가장 크게 어려워하는 문제를 외면하는 제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제품의 범위를 결정하는 문제로 돌아옵니다.

고객의 전체 문제 중 어디까지를 우리가 책임질 것인가.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기능을 추가하는 것보다

경계를 정하는 일이 어렵다

 

개발사로 일할 때는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만드는 것이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요구사항이 있고, 그것을 구현하면 됩니다.

자체 제품은 다릅니다.

만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기능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제품이 설명해야 하는 영역도 넓어지고, 유지해야 할 것들도 함께 늘어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 기능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다른 질문을 먼저 보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제로피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

SEO·GEO 기능을 고민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판매자의 홍보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자가 등록한 상품이 검색엔진과 생성형 AI에서 이해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판매 인프라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여기서 더 나아가 직접 고객을 데려오는 영역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제로피는 지금과 전혀 다른 제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경계를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로피가 판매 운영 인프라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지, 고객 유입까지 해결해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판매 인프라에 집중하면 제품은 선명해집니다.

하지만 판매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어떻게 고객에게 알릴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대로 남습니다.

고객 유입까지 확장하면 더 큰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 제품이 복잡해지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보다 해결해야 할 영역이 더 빠르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쪽이 맞다고 먼저 결론 내리기보다 실제 사용자의 행동을 더 보고 있습니다.

어떤 판매자가 반복적으로 거래를 만드는지, 판매자가 어디에서 이탈하는지, 고객이 어디에서 상품을 발견하는지, 그리고 제로피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은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가 우리 문제인지 결정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제로피가 결제를 잘 처리하는 도구로 남을지, 상품이 발견되는 과정까지 함께 해결하는 플랫폼이 될지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고객이 겪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끝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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