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R&R이 모호하다는 말, 사실 R&R 문제가 아닙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호소 다섯 가지를 꼽으라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이겁니다.

“R&R이 모호해요.”

 

 

이 말을 듣고 R&R 매트릭스나 직무기술서를 정비한 회사들을 추적해 봤습니다. 그중 다수가 1년 안에 같은 말을 다시 했습니다.

이번엔 다른 팀들 사이에서. 다른 업무에서. 다른 모양으로.

같은 회사에서 R&R 정비를 두 번, 세 번 반복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패턴을 한참 들여다보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R&R 정비로는 풀리지 않는 R&R 갈등이 있다. 그리고 그 비율이 의외로 크다.

                                                                            . . . 

지난 편에서, 살아있는 SOP의 다섯 가지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만든 매뉴얼이 운영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R&R 갈등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원인 다섯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R&R 매트릭스를 다시 그리기 전에, 먼저 진단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요.


 

R&R 정비를 했는데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회사들

R&R 정비를 한 회사들을 다시 방문해 보면, 거의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매트릭스도 있고, 직무기술서도 있고, 책임 분장표도 정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회의실에서는 여전히 같은 질문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건 누구 일이에요?”

R&R 매트릭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도, 그 질문이 멈추지 않습니다. 분명 책임은 한 팀에 주어졌는데, 그 팀이 실제로는 일을 못 합니다. R&R은 명확한데, 결정은 늘 다른 곳에서 납니다.

직무기술서를 두 번 다시 썼는데도, 같은 갈등이 다른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정비한 R&R이 1년 안에 다시 모호해집니다. 이쯤 되면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R&R 매트릭스를 다시 그리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는 갈등이 있습니다.


 

R&R 갈등은 R&R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컨설팅 현장에서 R&R 갈등을 세 단계로 분리해서 봅니다.

  • 표면 인식 : R&R이 명확하지 않아서
  • 한 단계 위 : R&R 정의 방식이 잘못되어서
  • 진짜 본질 : R&R 옆, 위, 아래에 있는 다른 문제의 증상

 

대부분의 회사는 첫 번째 단계에서 R&R을 정비합니다. “매트릭스를 다시 그리자”, “직무기술서를 다시 쓰자” 운이 좋으면 두 번째 단계까지는 갑니다.

“정의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 더 정교한 매트릭스로 다시 짜자”

그런데 진짜 문제는 세 번째 단계에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R&R 갈등의 대부분은, R&R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R&R 주변의 다른 구조적 문제가 R&R 갈등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 . 

이게 무슨 의미냐면 이렇습니다. A팀과 B팀이 “이건 누구 일이냐”를 두고 다투고 있다고 해 봅시다. 이걸 R&R 정의가 모호해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보면, R&R 매트릭스를 다시 그리는 것으로 풀리겠죠.

그런데 진짜 원인이 결정 권한이 어디에도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R&R 매트릭스를 다시 그려도 같은 갈등이 다른 모양으로 다시 일어납니다. 진짜 원인이 정보가 한쪽에만 흐르고 있다는 것이라면, R&R을 정비해도 정보를 받지 못하는 쪽은 여전히 일을 못 합니다.

R&R 갈등은 R&R 매트릭스로 풀려고 하면, 1년 후에 같은 문제가 다른 모양으로 돌아옵니다. R&R이 모호하다는 호소를 들으면, R&R을 그리지 말고 그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부터 진단해야 합니다.


 

R&R 갈등을 위장하는 다섯 가지 진짜 원인

현장에서 R&R 갈등의 진짜 원인은 보통 다섯 가지 중 하나입니다. 다섯 가지 중 어느 것인지를 정확히 진단해야, 처방이 달라집니다.

 

 

원인1. 흐름 인식의 부재

같은 흐름의 일부인데 조각으로 인식되어 R&R 갈등처럼 보이는 경우. A팀이 자기 일이라고 주장하고 B팀이 자기 일이라고 주장하는 그 일이, 사실은 같은 하나의 흐름의 시작과 끝인 경우입니다.

“그 갈등이 일어나는 일이, 정말 서로 다른 두 일인가? 아니면 같은 흐름의 다른 단계인가?”

처방은 R&R 매트릭스가 아니라 단위업무 흐름 그리기입니다. 이건 시리즈 1편 ‘흩어진 일을 흐름으로 묶는 작업’의 R&R 버전이기도 합니다.

 

원인2. 권한·결정 구조의 부재

“누가 하는지”는 명확한데 “누가 결정하는지”가 없는 경우. R&R 매트릭스에는 “이 일은 A팀 담당”이라고 적혀 있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할지 최종 결정은 누구의 권한인지 명문화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A팀이 일하고 있는 중간에 B팀이나 C팀이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결정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갈등이 생깁니다.

“이 일에 대해, 최종 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시되어 있는가?”

처방은 R&R 옆에 결정 권한 매트릭스를 함께 두는 것입니다. R&R은 책임의 정의이고, RACI는 권한의 정의입니다. 둘은 다릅니다.

 

원칙3. 위임 구조의 결함

책임은 줬는데 권한, 자원, 정보가 따라가지 않은 경우. “이건 네 일이야” 했지만,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결정권, 예산, 접근권은 안 줬다면, R&R은 명확하지만 실제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책임을 받은 사람에게,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한 모든 권한이 함께 주어져 있는가?”

처방은 R&R 정비가 아니라 위임의 완전성 점검입니다. 이건 다음 편 리더가 리더 일을 못하는 이유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주제이기도 합니다.

 

원칙4. 정보 흐름의 단절

R&R은 명확한데 그 일을 하기 위한 정보가 안 오는 경우. A팀이 책임지는 일인데, 그 일에 필요한 고객 피드백은 영업·CS팀으로 들어오고, 그 정보가 A팀으로 자동으로 흘러오지 않는다면, A팀은 R&R상 책임자이지만 정보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책임자에게, 그 일을 하기 위한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흘러오는 구조가 있는가?:”

처방은 R&R 매트릭스가 아니라 정보 동기화 구조 설계입니다. 회의 구조, 보고 라인, 채널 설계 — 이게 R&R과 어긋나 있으면 R&R은 무의미합니다.

 

원인5. 평가·보상 구조의 어긋남

R&R 정의와 평가 기준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 "이건 네 책임이야" 했는데, 그 사람의 평가는 다른 성과 지표로 측정되는 경우입니다.

사람은 결국 평가받는 일에 시간을 씁니다. R&R에 적힌 일을 하지 않고 평가받는 일에 집중하면, R&R 매트릭스는 있는데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R&R상 그 사람의 책임과, 그 사람의 KPI·평가 기준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처방은 R&R과 KPI·평가 체계의 정렬입니다. 이건 시리즈 5편 ‘업무가 안 보이는 회사’ 편에서 다시 짚을 영역이기도 합니다.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빠져 있으면, R&R 매트릭스를 아무리 다시 그려도 같은 갈등이 다른 모양으로 돌아옵니다. R&R 매트릭스는 책임의 지도입니다. 그런데 책임의 지도만으로는 일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흐름의 지도, 권한의 지도, 위임의 지도, 정보의 지도, 평가의 지도 ─ 이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R&R이 살아있는 상태가 됩니다.


 

R&R 매트릭스로 안 풀리던 갈등이 풀린 과정

 

 

한 회사의 마케팅팀과 영업팀 사이의 갈등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는 6개월 전, 마케팅과 영업의 R&R 정비를 끝낸 상태였습니다.

 

[R&R 매트릭스 (1.0 버전)]
- 마케팅 콘텐츠 기획, 제작 : 마케팅팀 책임
- 영업 자료 제작, 고객 응대 : 영업팀 책임
- 브랜드 톤, 메시지 가이드 : 마케팅팀 책임

깔끔하게 정리된 매트릭스였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 같은 갈등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갈등의 풍경

마케팅팀이 새 콘텐츠를 만들어서 발행 직전에 영업팀에 공유합니다. 영업팀이 즉시 반응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이 문구는 좀 그래요. 이건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마케팅팀이 답답해합니다.
“이건 저희 R&R인데, 왜 자꾸 영업팀에서 결정을 바꾸려고 하세요?”

영업팀이 반박합니다.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의견 드리는 거잖아요.”

대표가 묻습니다.
“근데 그 의견은 반영하는 거에요, 안 하는 거에요?”

아무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콘텐츠는 마케팅팀이 책임진다는 R&R은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콘텐츠의 최종 톤은 누구의 결정 권한인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진단

5가지 원인을 차례로 점검해 봤습니다.

  • 원인 1 (흐름 인식) : 콘텐츠와 영업 자료가 같은 흐름인가? - 다른 흐름, 해당 없음
  • 원인 2 (권한, 결정 구조) : 콘텐츠 톤의 최정 결정 권한이 명문화되어 있는가? - 명문화되어 있지 않음
  • 원인 3 (위임) : 마케팅팀에 콘텐츠 결정에 필요한 권한이 있는가? — 책임은 있지만 권한이 모호함
  • 원인 4 (정보 흐름) : 마케팅팀에 고객 피드백이 흘러오는가? — 흘러오지 않음
  • 원인 5 (평가) : 마케팅팀의 KPI가 콘텐츠 성과로 측정되는가? — 측정됨

이 갈등의 진짜 원인은 원인2와 원인4의 결합이었습니다. 콘텐츠 톤의 최종 결정 권한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고, 영업팀에 들어오는 고객 피드백이 마케팅팀에 자동으로 흘러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업팀은 자기들이 현장에서 듣는 고객의 목소리를 마케팅 콘텐츠에 반영하고 싶었고, 그게 자연스럽게 결정에 개입하는 모양으로 드러나고 있던 겁니다.

R&R 매트릭스를 다시 그려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해결

두 가지 구조를 함께 설계했습니다.

[결정 권한 매트릭스 도입] : 원인2 처방
- 콘텐츠 기획과 제작 : 마케팅팀 단독 권한
- 콘텐츠 톤, 메시지 최종 결정 : 마케팅팀 단독 권한
- 영업팀은 발행 전 24시간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 (의견 반영 여부는 마케팅팀이 결정)

권한과 책임을 분리해서 결정의 흐름을 명문화한 겁니다.

[고객 피드백 동기화 구조 설계] : 원인4 처방
- 영업팀에 들어오는 고객 피드백 중 콘텐츠, 메시지에 관한 것은 별도 채널에 자동 수집
- 마케팅팀이 주 1회 그 채널을 점검하는 의무 부여
- 분기에 한 번 마케팅·영업 합동 워크숍에서 피드백을 콘텐츠 전략에 반영

마케팅팀이 권한만 권한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정보도 함께 받도록 구조를 짠 겁니다.

 

결과

3개월 후 다시 가봤을 때, 회의실 풍경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영업팀은 더 이상 콘텐츠 발행 직전에 결정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별도 채널에 고객 인사이트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마케팅팀은 그 인사이트를 보며 콘텐츠를 기획했고, 콘텐츠 발생 시점에는 영업팀이 결정자가 아니라 현장 정보 제공자의 역할로 자리잡았습니다.

R&R 매트릭스는 그대로였습니다. 바뀐 건 R&R이 아니라, 그 옆의 권한 구조와 정보 흐름이었습니다. R&R 갈등이 풀린 건, R&R을 손봤기 때문이 아니라 R&R 주변의 구조를 손봤기 때문이었습니다.


 

R&R을 그리기 전에, 진단부터

 

 

많은 대표님들이 R&R 갈등이 일어나면 즉시 R&R 매트릭스부터 떠올리십니다. "매트릭스를 다시 그리자", "직무기술서를 다시 쓰자." 그런데 컨설팅 현장에서 반복해서 확인하게 되는 건 이겁니다.

"R&R이 모호하다"는 호소는 사실 진단을 요청하는 신호입니다. 그 호소를 받으면 R&R 매트릭스를 그리지 말고, 먼저 그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부터 진단해야 합니다.

흐름인지, 권한인지, 위임인지, 정보인지, 평가인지.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이 정확해집니다. 잘못된 표면 처방은 1년 뒤 같은 문제를 다른 모양으로 다시 만듭니다.

성장기에 접어들었는데 R&R 갈등이 자꾸 반복되거나, R&R 매트릭스를 그렸는데도 같은 문제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고 느끼시는 대표님이 계시다면, R&R을 다시 그리기 전에 진단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 . 

이 글은 사람 머릿속에서 회사 시스템으로의 세 번째 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리더가 리더 일을 못하는 이유 — 위임의 함정에 대해 다뤄볼 예정입니다.

R&R·조직 진단 컨설팅 문의는 기획하는별 채널(spark.612@daum.net) 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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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하는별 기획하는별 · 전략 기획자

예비창업 부터 IPO, 상장사 IR 컨설팅 경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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