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관련 주제를 다루는 머니코믹스에서 "아저씨가 말아주는 최고의 애니 순위"가 올라왔다.
2. 숏폼 도파민 시대에 오히려 책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여주는 2030 여성 브이로그, 김독지 채널에서도 '일본 콘텐츠(애니)에 빠진 30대 모임'이 올라왔다.
3. 2020년 진용진이 오덕페이트짱과 함께하며 "오타쿠들은 어떤 만화를 봤길래 이 정도로 빠진 걸까?"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4. 10대~30대 여성으로 쫙 퍼졌고, 4050 중년 남성으로도 쫙 퍼졌다. 그 이유가 뭘까?
5. 첫 번째, 진입 장벽이 매우 낮아졌다. 과거엔 DVD나 어둠의 경로,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만 애니를 볼 수 있었다. 이는 음침하게 컴퓨터 앞에 숨어서 보는 행위를 연상시키며, '오타쿠=서브컬처'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6. 하지만 라프텔뿐 아니라 넷플릭스, 티빙 같은 OTT를 통해 접근이 쉬워졌다. 2024년 기준 국내 OTT 이용률은 79.2%에 달하며, <솔로지옥>을 보다가 알고리즘이 옆에 <주술회전>을 띄워주니 한 번쯤 클릭해 볼 수 있는 구조다. 애니 전문 OTT인 라프텔도 사용자 100만을 돌파했다.
7. 두 번째, 애니메이션 자체가 변했다. 일본의 문화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오타쿠를 단순한 취미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
8. 오히려 즉각적인 욕구 충족만으로 행동하는 동물적 상태로의 변화를 가리키는데, 핵심 개념은 '이야기 소비'가 아닌 '데이터베이스 소비'다.
9. 과거엔 국가관, 이념, 교훈적 서사라는 '커다란 이야기' 중심으로 애니가 소비됐지만, 지금은 거대 서사보다 ‘파편화된 매력 요소’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다.
10. 캐릭터 외모나 성격, 제작사(=작화), OST, 성우 등 파편화된 데이터가 종합적으로 구성된 것이 애니메이션이며, 이 중 하나만 취향에 맞아도 빠지게 되는 구조라는 뜻.
11. 즉, 캐릭터가 좋아서, 작화가 좋아서, 분위기가 좋아서 보는 것이다. 거대한 서사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아니라,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며 잔잔한 힐링을 얻는 것. 대표적으로 <장송의 프리렌>이 있고, 559만 관객의 <스즈메의 문단속>도 마찬가지다.
12. 여기에 1030 여성들 중심으로 K-POP 덕질 문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이식되며, 최애 캐릭터를 정하고 포토카드를 수집하듯 굿즈까지 사는 소비로 이어졌다. 실제로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체 관객 중 여성이 55%, 20대가 39%를 차지했다.
13. 세 번째, 숏폼의 대중화다. 아이돌도 당당하게 애니를 이야기하고, <주술회전>의 젠인 아오이 대결이나 레제 춤을 따라하는 것처럼 숏폼 중심으로 애니 장면과 캐릭터를 따라하는 방식이 퍼지고 있다. 이제 애니를 본다고 말하는 건 숨길 일이 아니라 트렌디한 취향이 됐다.
14. 네 번째, 3050 세대는 투니버스 세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492만 흥행이 촉발제가 되기도 했는데, 3040 남성의 향수에서 시작해 여성 관객이 47.5%까지 올라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보다 전반적인 퀄리티가 올라갔다는 점도 크고, 앞서 말한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파편화된 소비와도 일치한다.
15. 결국 프랭크버거, 스파오 같은 브랜드들이 <진격의 거인> 같은 메가 애니 IP를 통해 비즈니스를 연계하고 있고, 메가박스 <귀멸의 칼날> 팝업이나 더현대 <슬램덩크> 팝업도 마찬가지다.
16. "너가 찐 오타쿠냐?", "근본 애니는 봤냐?" 같은 오타쿠들의 방어 기제이자 소속감은 점점 희석되고 있으며, 이는 애니가 대중 영역으로 침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7. 과거엔 너드나 보던 히어로물이 영화화되어 MCU(마블)를 보고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사람을 아무도 놀리지 않는 것처럼, 애니는 믿고 보는 웰메이드 영상 장르가 되고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한국 웹툰이 일본 제작사를 통해 애니화되는 흐름도 한몫한다.
18. 앞으로 오타쿠는 '빵덕후'와 같은 가벼운 이미지가 될 것이며, 여러 산업에서 애니메이션 IP는 확실히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19. (참고로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 1위는 주토피아2(860만), 3위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570만), 6위는 체인소맨-레제 편(344만)이다.)
*참고
-김인규 에디터. 이 시국에 공부하는 오타쿠론.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