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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라는 신기루
2024년 글로벌 피트니스 앱 시장은 106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나이키와 애플이 이미 자리를 잡았고, 펠로톤은 7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 150억 달러를 인정받았습니다. 2025년 5월에는 웨이트워처스가 마이피트니스팔을 3억 4,500만 달러에 인수했고요, 이 시장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막대한 자본, 기술 숙련도, 검증된 데이터 없이는 이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 논리는 타당해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현대의 능력주의 사회는 종종 우리에게 '지도(Map)를 먼저 쥐라'고 말합니다. 더 공부하고, 더 조사하고, 더 전문성을 확보하라고. 우리는 불완전한 데이터와 부족한 자원을 '결핍'이라 이름 붙이고, 그것이 채워지는 날을 기약도 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습관에는 치명적인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전문성이 깊어질수록, 고객이 느끼는 진짜 고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문가, 운동선수의 언어로 설계된 피트니스 앱이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중년 여성의 마음을 잡지 못하는 이유, 똑똑한 영양학 박사가 만든 식단 앱이 "살이 쪄서 속상하다"는 십대 소녀의 감정에 닿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도가 정밀해질수록, 지도 밖의 사람들과는 더 멀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지를 전략으로 바꾼 BetterMe 창업자
1992년생, 올해 34세인 빅토리아 레파(Victoria Repa)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 어린 시절 컴퓨터를 만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IT 창업가라는 개념 자체가 그녀의 세계 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농업에 종사했고, 온 가족이 몸을 혹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상황에서 당연히 건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이 터지자 그녀는 피란길에 올랐고, 키이우 경제대학의 전액 장학금으로 겨우겨우 삶을 이어갔습니다. 졸업 후에는 P&G에서 소비재 마케팅을 배웠고, 이후 미디어 퍼블리싱 회사 Genesis로 옮겨 콘텐츠의 바이럴 패턴을 익혔습니다.
창업 전 빅토리아는 피트니스 전문 지식도, 코딩 능력도, 충분한 자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단 하나의 자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개인적인 고통입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과체중이었어요. 어머니는 '이건 유전이야, 넌 절대 살을 못 뺄 거야'라고 장담을 했죠." 90-60-90이라는 미의 기준에서, 그녀의 몸은 그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다이어트로 고통받으며 자신의 몸과 싸우던 그 처절한 경험들, 살을 빼고 싶어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그 막막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았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경험이 바로 시장의 블루오션이었습니다. 전문가의 지식 없이도 수백만 명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는 연결고리.
Genesis에서 근무했을 당시, 데이터를 분석하던 빅토리아는 어느 날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구글에서 '체중 감량'이 네 번째로 많이 검색되는 키워드라는 것. 수요는 분명했지만, 그 수요를 제대로 채우는 콘텐츠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2016년 BeautyHub를, 2017년 BetterMe를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전략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페이스북에 100개가 넘는 게시물을 먼저 올렸습니다. 게시물 중에 '완벽한 몸매'가 아닌 '실생활의 작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어떤 솔루션을 만들지 결정하기 전에, 어떤 고통이 공명하는지를 먼저 확인한 겁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배운 것은 하나였습니다.
I noticed that in social media, we only have between one and three seconds to catch users' attention as they scroll through their news feeds. We need to pack this message but at the same time, make it as simple as possible for the customers' brains to absorb it. I was surprised by how analytical and technical content creation might be. People might think it's all about creativity, but create what people want, not what you want.
소셜미디어에서 스크롤 중인 사용자의 시선을 잡으려면 1~3초가 전부예요. 메시지는 압축하면서도 고객 뇌가 쉽게 흡수할 수 있게 단순화해야 하죠. 콘텐츠 제작이 이렇게 분석적이고 기술적일 줄은 몰랐어요. 다들 창의력만이 전부인 줄 알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야지, 내가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아니에요.
— Victoria Repa, Rocketship HQ 팟캐스트 (December 2022)
재미있게도, 이 방식은 우크라이나의 빅토리아 레파만이 쓴 전략이 아닙니다. 비바리퍼블리카(Viva Republica) 이승건 대표도, 여러 번의 실패 끝에 2014년 초, 서비스도 없이 먼저 질문만 페이스북에 던졌습니다. 이 대표도 8번 실패할 때는 자기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9번째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건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가짜 문(Fake Door)' 테스트를 진행한 거예요. "공인인증서 없는 송금"이라는 광고 문구를 올리고, 사람들이 클릭하면 "준비 중입니다. 출시 알림을 받으시겠습니까?"라는 페이지로 연결했습니다. 결과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알림을 신청했습니다. 개발 코드를 한 줄도 짜지 않고 '이 서비스는 반드시 된다'는 데이터를 먼저 손에 쥔 것입니다. 이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을 보고 2014년 4월 토스의 베타 버전이 출시되었고, 2015년 금융당국의 규제를 풀고 토스의 공식 서비스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2025년 기준 누적 가입자 3,000만 명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인구의 58%가 사용하는 국민 앱이 되었고,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의 이용률은 무려 91%에 달합니다. 단순 송금 앱으로 시작해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 1조 9,248억 원을 달성하며 '수퍼앱'으로서의 저력을 증명했지요. 이 모든 경이로운 숫자의 출발점은 거창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왜 전화번호만으로 돈을 보낼 수 없을까?'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처절한 불편함, 그리고 대중들에게 던전 ‘질문’ 이었습니다.
다시 BetterMe 창업자 빅토리아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콘텐츠는 창의성이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찾는 것. 이것은 린 스타트업의 교과서적 방법론이었지만, 그것을 실행하게 만든 힘은 교과서가 아닌 빅토리아 자신의 아픔이었습니다.
저는 제 약점이 시장의 가장 큰 기회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문가라면 당연하게 넘어갔을 질문들이 그녀에게는 사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습니다. 결핍이 필터가 됐습니다. 경쟁사들이 상위 5퍼센트의 엘리트 운동선수를 겨냥할 때, 빅토리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월 스트리트 필라테스, 의자 요가, 다리가 잘린 장애인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 임산부 코스, 당뇨 환자를 위한 식단까지. BetterMe는 웰니스 앱 중에서 가장 inclusive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빅토리아가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었기에 오히려 가능한 선택들이었습니다.
BetterMe는 2022년 기준 1억 1,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Strava나 Headspace보다 넓은 사용자 기반을 가진 앱이 됐습니다. 외부 투자 없이 창업 3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했고, 대규모 투자를 받은 경쟁사들을 매출 기준으로 앞질렀습니다.
그러나 2022년 2월 24일 아침,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 빅토리아는 방공호에 앉아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회사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200명 가까운 직원이 위기 상황에 있었고, 주로 미국에 있는 수십만 명의 이용자들은 이 전쟁과 상관없이 여전히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회사로부터 기대하고 있었고요.
그녀는 좌절하고 포기하는 대신 전략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직원들의 이주와 원격 근무 환경을 지원했고, HR팀이 매일 모든 직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안부를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국민에게 앱을 무료로 개방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와 함께 정신 건강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이 적극적인 행보로, 전쟁 중에도 회사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매출은 20% 올랐고, 신규 직원은 80명을 더 채용했습니다. 2024년에는 BetterMe: Mental Health 앱이 70개국 1만 3,000개 출품작 중 Webby Awards 헬스·웰니스 부문 인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는 Forbes 30 Under 30, Stanford Executive Program, Apple Entrepreneur Camp, 세계경제포럼(다보스)에서의 연설 등 기술과 자본, 전문성 없이 시작한 일로, 어느덧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BETTERME, 검증된 수치 (2025년 기준)
총 앱 다운로드 수: 1억 5,000만 회 이상
연간 매출 (2025년 추정): 약 7,500만 달러
월 매출 최고치 (2022년): 약 500만 달러
월간 활성 이용자 수: 1,000만 명
우크라이나 무료 이용자: 약 200만명
전쟁 이후 매출 증가율(2022): 약 20%
외부 투자 없이 흑자 달성: 창업 후 3개월
초기 투자금 (Genesis 지원): 500만 달러
※ BetterMe는 비상장 기업으로, 매출 및 다운로드 수치는 창업자 인터뷰와 SensorTower 등 제3자 추정치를 기반으로 하며, 공식 감사보고서가 아닙니다.
안개는 장애물이 아니다
C.S. 루이스는 1941년 옥스퍼드 설교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신 앞에 놓인 영광을 잘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가짜의 즐거움에 만족해 버린다"고. 우리는 현재의 편안함, 혹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보상, 반짝이는 어떤 즐거운 일들에 정신이 팔려 진짜인 것을 보지 못하거나 혹은 어렴풋이 보더라도 그쪽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계속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빅토리아의 여정은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있어야 한다는) 믿음과 상상력으로 용기 있게 한 걸음을 내딛는 중에 길이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녀가 한 일의 핵심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과 실행’이었습니다. 완벽한 지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대신, 앞이 안 보이는 흐릿한 안개 속으로 직접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실행한 겁니다. 먼저 검증하고, 서비스 구축은 그다음에.
그녀는 이 원칙을 비즈니스에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방공호에 앉아 있던 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먼저 관리했어요." 전쟁 중에도 매일 명상하고, 의자에 앉아서라도 2~3시간 신체 활동을 유지했습니다. 리더는 자신의 에너지를 팀에 전이시키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단, 지금 빅토리아의 이야기를 낭만화해선 안 됩니다. 오늘날의 모바일 앱 생태계는 2017년에 통했던 방식, 소액 초기 투자와 바이럴 콘텐츠만으로 글로벌 시장을 뚫는 것은 시장 조건이 달라진 지금 그대로 반복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용자 획득 비용은 매년 오르고, 피트니스 앱 시장은 이미 포화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의 프로토콜의 본질은 유효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이나 기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객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닿고, 구체적인 솔루션은 그다음에 내는 전략. 나의 결핍을 자원으로, 무지를 일종의 필터로 쓰는 역발상. 이 원칙들은 자본이 많든 적든, 시장이 크든 작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 문제에 대한 무지라는 개인적 상처를 갖고, 전쟁통에도 1.5억 다운로드의 글로벌 웰니스 플랫폼을 만든 빅토리아가 보여준 건 딱 하나입니다. 가장 견고한 구조는 빌려온 돈이 아니라, '결핍'과 끊임없는 '반복'이 빚어낸 ‘거룩한 마찰’ 위에서 세워진다는 것.
결핍 기반 100 포스팅 테스트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아이디어가 있는데 "더 조사하고 준비해야 시작할 수 있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 완벽한 계획 대신 이런 질문을 한 번 스스로에게 해보세요. 빅토리아는 이 단순한 방법으로 1.5억 다운로드, $80M BetterMe 비즈니스를 만들었습니다. Toss의 이승건 대표도 이렇게 서비스를 런칭했습니다.
당신의 결핍은 무엇인가요? '비전공자', '경험 없음', '돈 없음', '인맥 없음', '난독증' 나열해 보세요. 그리고 그 결핍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3~4개 메시지로 풀어보세요.
- "살 빼고 싶은데 어디서 시작할지 모르겠어"
- "의지가 약해서 다짐한 걸 지키기 힘들어"
-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
여기서 핵심은 해결책을 이야기하지 말고, 그 고통만 언어로 풀어내세요. 마지막으로 SNS에 100가지 다양한 형태의 이 메시지를 대중에게 던져보세요.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아마도 그 메시지가 당신의 지도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댓글이 곧 기획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분노가 섞인 댓글(Pain Point)을 그대로 서비스의 상세 페이지 문구로 활용하세요. 반응이 없다면 '문제 정의'가 잘못된 것이니 빠르게 타깃팅을 바꿔 보시고요.
꿈꾸는 미래는 있지만 발걸음이 무겁다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BetterMe의 빅토리아, Toss의 이승건 대표, 두 거물은 모두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겪고 있는 ‘날 것 그대로의 고통’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지도가 그려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세요. 당신이 느낀 그 답답함이 곧 시장의 결핍입니다. 두려움은 고민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행과 수정의 과정 속에서만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왜 이렇게 불편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겪는 그 불편함, 어쩌면 시장이 당신에게 던지는 “초대장” 아닐까요?
Editor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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