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풍경
"대표님, 이 부분은 나중에 보완해도 되는데, 먼저 우리 사업의 핵심 가치를 명확하게..."
"아니에요! 이 기술 스펙이 정확해야 해요. 여기 보세요, 이 알고리즘의 정확도가..."
초기창업패키지 사업계획서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합니다. 정작 중요한 '큰 그림'은 흐릿한데, 지엽적인 디테일에만 집착하는 창업자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사업계획서는 대부분 탈락합니다.
심사위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사례
A사는 AI 기반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는 팀입니다.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면서 발견한 문제점은 명확했습니다.
집중한 부분
- AI 모델의 정확도 수치 상세 설명 (2페이지): "ResNet-50 기반 아키텍처로 validation accuracy 94.3% 달성, confusion matrix 분석 결과..."
- 기술 스택 세부 명세 (1.5페이지): "백엔드는 Django 3.2, 프론트엔드는 React 18.2, 데이터베이스는 PostgreSQL 14.5..."
- 개발 일정의 주 단위 상세 계획 (1페이지): "1주차: 데이터 수집 모듈 개발, 2주차: 전처리 파이프라인 구축...“
부족한 부분
- 이 서비스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 단 3줄로 뭉뚱그림
- 왜 지금 이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가? → 언급조차 없음
- 경쟁사 대비 우리만의 차별점은? → "AI 기반"이라는 모호한 표현뿐
심사위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들이 빠져있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1.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심리
기술자 출신 창업자일수록 자신 있는 기술 설명에 매달립니다. 알고리즘 정확도, 개발 스택, 구현 방법론... 이런 건 설명할 수 있죠. 반면 시장 분석, 고객 가치 제안, 경쟁 전략 같은 부분은 어렵고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됩니다.
2. 완벽주의의 함정
"이것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야 설득력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기술 세부사항을 끝없이 다듬습니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그 디테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창업자는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나?"라는 의구심만 들게 만듭니다.
3. 심사위원 관점의 부재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 심사위원이 궁금해하는 것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써도 탈락입니다. 심사위원은 기술자가 아니라 투자자, 사업가, 정책 전문가입니다. 그들이 보고 싶은 건 '기술 논문'이 아니라 '사업 계획'입니다.
심사위원이 5분 안에 판단하는 것들
초기창업패키지 심사위원은 하루에 수십 개의 사업계획서를 봅니다. 한 건당 정밀 검토 시간은 5~10분 남짓. 이 짧은 시간 안에 다음이 명확하지 않으면 자동 탈락입니다.
1. 문제의 명확성
"아, 이건 진짜 문제네. 시장이 원하는 거구나"
심사위원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문제 정의입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이게 3줄 안에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관심을 잃습니다.
2. 솔루션의 차별성
"다른 곳도 비슷한 거 하는데... 이 팀은 뭐가 달라?"
경쟁자가 없는 시장은 거의 없습니다. 심사위원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기존 솔루션으로는 왜 안 되는가? 당신들만의 차별점이 뭔가?" 여기에 명쾌한 답이 없으면 통과 못합니다.
3. 실행 가능성
"이 팀이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 팀이 해낼 수 있을까? 팀 구성, 핵심 역량, 기존 성과(트랙션)를 봅니다. "우리 기술력 좋아요"는 증거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수치와 실적이 필요합니다.
4. 시장 매력도
"이게 돈이 될까? 얼마나 클까?"
정부 지원사업이라고 수익성을 안 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봅니다. TAM(전체 시장), SAM(도달 가능 시장), SOM(실제 목표 시장)이 명확해야 하고, 성장 가능성이 보여야 합니다.
기술 스펙의 정확도 수치? 개발 일정의 주 단위 계획?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2순위, 3순위 정보입니다.
관점 전환은 거시 → 미시 순서로
Before (미시적 접근)
"우리 AI 모델은 ResNet-50 기반으로 구축되었으며, 10,000개의 학습 데이터셋을 활용해 정확도 94.3%를 달성했습니다. 추가로 data augmentation 기법을 적용하여 overfitting을 방지했으며...“
→ 심사위원 반응 : "그래서 뭐? 이게 고객한테 어떤 의미인데?“
After (거시적 접근)
"한국 당뇨 환자 600만 명 중 40%가 합병증 관리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주요 원인은 '개인별 맞춤 관리의 부재'. 우리는 AI 기반 개인 맞춤형 식단·운동 가이드로 합병증 발생률을 30% 낮춥니다. 이미 파일럿 테스트에서 200명의 환자가 평균 혈당 수치 15% 개선이라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 심사위원 반응 : "오, 흥미롭네. 어떻게 하는 건데?" (이제 기술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됨)
차이가 보이시나요? 같은 기술을 설명하는데, 순서와 맥락이 완전히 다릅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드리는 조언
디테일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심사위원의 관심은 5분 안에 도망갑니다.
여러분의 사업계획서를 다시 펼쳐보세요. 첫 3페이지에서 "우와, 이거 재밌는데?"라는 반응이 나오나요? 아니라면, 기술 스펙 설명 2페이지 지우고 고객 가치 설명 1페이지부터 다시 쓰세요.
초기스타트업 사업화 지원사업에서는 '기술력'을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기술력 보다 '사업성'을 평가합니다.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건 정확도 94.3%가 아니라, "이 팀이 진짜 시장을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확신입니다. 그 확신은 거시적 관점에서 나옵니다.
기억하세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