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가 아닌 본능을 건드려라
저 팀은 기술도 좋은데 왜 투자를 못 받았을까?
지난 칼럼에서는 권위와 구체성, 그리고 희소성의 법칙을 다뤘습니다.
투자자의 이성을 설득하는 강력한 무기들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보다 더 깊은 곳을 파고듭니다.
바로 투자자의 무의식입니다.
18년간 700여 개 스타트업의 IR을 컨설팅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내용이 같아도 구성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데이터가 아닙니다.
바로 인간의 심리입니다.
투자자도 결국 사람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지갑을 열게 만드는 3가지 심리학 법칙을 공개합니다.
제1법칙, 사회적 증명 (Social Proof)
투자자는 아주 신중합니다.
수십억 원을 굴리는 심사역도 불확실성 앞에서는 두려움도 느낍니다.
이때 그들이 본능적으로 찾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를 '사회적 증명의 법칙'이라 정의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제품이 좋다"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강력한 한 방이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우리 기술을 선택했다"는 한 문장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랑이 아닙니다.
투자자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행위입니다.
IR 자료에서 이 안도감을 심어주는 방법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사의 로고를 배치하십시오.
단순한 나열은 의미가 없습니다.
로고 옆에 구체적인 협력 내용을 명시해야 합니다.
카카오 로고만 덩그러니 두지 마십시오.
"카카오 플랫폼 입점 완료, 월 3만 건 거래 발생"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증명입니다.
둘째, 고객의 날 것 그대로의 추천사를 활용하십시오.
B2B 비즈니스라면 담당자의 실명과 직함이 들어간 한 마디가 천금 같습니다.
"업무 시간이 40% 단축되었습니다"라는 김철수 팀장의 증언.
이것은 그 어떤 마케팅 카피보다 강력합니다.
셋째, 제3자가 수여한 훈장을 보여주십시오.
CES 혁신상이나 언론 보도는 당신의 주장에 객관성을 더합니다.
넷째, 압도적인 숫자로 증명하십시오.
"누적 다운로드 50만"이나 "월 거래액 12억" 같은 지표는 반박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품질을 보증합니다.
단, 명심하십시오.
과장은 금물입니다.
작더라도 진짜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신뢰의 지름길입니다.
제2법칙, 프레이밍 효과 (Framing Effect)
같은 물도 컵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관점의 틀(Frame)에 넣느냐에 따라 투자자의 해석이 달라집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프레이밍 효과'라 불렀습니다.
"생존율 90%"와 "사망률 10%"는 수학적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존율이라는 표현에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당신의 IR 자료도 이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합니다.
성장을 돋보이게 하는 기술
데이터를 보여줄 때 전략적 선택이 필요합니다.
절대값이 작다면 성장률(%)을 강조하십시오.
"월 매출 30% 성장"은 폭발적인 속도감을 줍니다.
반대로 성장 속도가 둔화되었다면 누적 수치(Scale)를 강조하십시오.
"10만 명 돌파"라는 숫자가 주는 묵직함이 있습니다.
시간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방법입니다.
단순히 "10만 명"이 아니라 "출시 6개월 만에 10만 명"이라고 말하십시오.
시장을 재정의하라
경쟁 구도 또한 프레이밍의 영역입니다.
레드오션에서 허덕이는 200개 중 하나가 되지 마십시오.
"MZ세대 타겟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 1위"처럼 시장을 좁히고 쪼개십시오.
그 안에서 당신은 독보적인 1등이 되어야 합니다.
손실 회피 본능 자극
사람은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에 두 배 더 민감합니다.
"우리 솔루션으로 3억을 벌 수 있다"보다 더 강력한 말이 있습니다.
"기존 방식을 고집하면 매년 3억을 잃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이것이 바로 손실 회피 심리를 활용한 프레이밍입니다.
물론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진실이라도 가장 빛나는 각도로 깎아서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제3법칙, 피크-엔드 법칙 (Peak-End Rule)
5분 발표가 끝난 후 투자자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안타깝게도 전체 내용의 10%도 남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평균값이 아닙니다.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만이 기억을 지배합니다.
이것이 '피크-엔드 법칙'입니다.
뇌리에 박히는 한 장면
발표 중간에 투자자의 졸린 눈을 번쩍 뜨게 할 '한 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피크(Peak)입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급격한 우상향 그래프일 수도 있습니다.
경이로운 기술 시연 영상일 수도 있습니다.
"매출 10배 성장"이라는 문구를 거대한 폰트로 박아 넣으십시오.
그 한 장면이 당신의 회사 전체를 대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운이 남는 퇴장
마지막 슬라이드에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지 마십시오.
그것은 최악의 엔딩입니다.
투자자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당신의 목소리가 맴돌아야 합니다.
원대한 비전이나 강력한 초대의 메시지로 마무리하십시오.
"2027년, 우리가 이 시장의 30%를 점령합니다. 그 여정에 함께하십시오."
이 정도의 포부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심리학은 속임수가 아닙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이런 기법들이 투자자를 현혹하는 트릭 아니냐고 말입니다.
단언컨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도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심리학 법칙은 당신의 진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달하는 운송 수단입니다.
사회적 증명으로 안심시키십시오.
프레이밍으로 가치를 재조명하십시오.
피크-엔드로 강렬한 잔상을 남기십시오.
이 모든 기술의 전제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당신의 정직함과 진정성입니다.
진실한 알맹이를 가진 대표님들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