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식대학의 이용주 개인 채널 '용쥬르 이용주'(구독자 2.8만)에서 한 달 전 시작한 '선민이네 집 급습 브이로그'는 꾸준히 40만~75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댓글도 천 개 이상, Hype 상위권에도 올라가고 있다.
2. 이유가 무엇일까?
3. 시리즈명처럼 이용주는 유영우와 함께 새벽 4시, 아침 8시, 크리스마스 이브 등 무례할 수도 있는 시간에 급습한다. 심지어 이선민이 집에 없을 때 몰래 들어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새벽 4시엔 헬스장, 아침 8시엔 세차, 크리스마스 이브엔 김장. 이선민은 "아 또 왔어?"라며 짜증을 내지만, 금세 그들과 어울려 신나게 논다.
4. 댓글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저 셋 조합이 ㄹㅇ 친구 자취방 느낌이라 존나 재밌음", "개초딩같이 놀아서 개웃김ㅋㅋ".
5. 이 콘텐츠는 TV 예능의 작위적인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다. 사전 섭외, 메이크업, 대본 리딩을 거친 '준비된 재미' 대신, 일단 문 따고 들어가서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준비되지 않음' 자체가 콘텐츠의 핵심 동력이다.
6. 그 속에서 이선민의 지저분하고, 계획 없고, 때로는 찌질해 보이는 날것의 일상이 드러난다. 화려한 연예인의 삶이 아닌, 대학 시절 자취방에서 보던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감과 진정성이 올라갈수록 시청자는 '친구처럼 느끼는 관계'가 강화되고, 이것이 신뢰와 호감으로 이어진다.
7. 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은 3040 세대가 짊어진 사회적 압박을 잊게 해준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그 장면 자체가 힐링이 된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철없는' 모습, 그 속에서 현대 사회에서 희석되고 있는 찐친 관계가 보인다.
8. 서로 욕하고, 깎아내리고, 짜증내는 '친근한 비하'는 친밀감을 확인하는 고도의 사회적 행위다. "너와 나는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깝다"는 신뢰의 표현이다. 대표님, 팀장님으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쌍욕 속에 깊은 유대감이 깔린 이들의 모습은 심리적 안전지대가 된다.
9. 이 과정에서 대학교 때 친구 자취방에 놀러갔던 향수가 떠오른다. 향수는 사회적 연결감을 높이고, 과거와 현재의 연속감을 강화해 정서적 안정을 준다. 삶이 퍽퍽할수록 과거를 추억하게 되는 이유다.
10. 이는 최근 MZ세대 중심으로 '경찰과 도둑'이 유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30일 방송된 <MBC 연기대상>에서 자우림이 '스물다섯, 스물하나' 무대를 과거 배우들의 영상과 함께 선보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돌아갈 수 없는 젊음이 너무 찬란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나이들어가는데, 마음은 아직이라서 다 아련하다”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11. 또한 이선민, 이용주, 유영우이 보여주는 '철없음'은 인간적인 매력의 척도로 다가온다. 2010년대 후반부터 SNS는 전시와 큐레이션의 공간이었다. 성공, 미모, 부유함 같은 빈틈없는 행복을 선별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편집된 완벽함은 피로감과 박탈감을 안겨줬다. 급습 브이로그는 이 피로감을 깨부순다.
12. 이 구조는 침착맨이 인기 있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성공한 웹툰 작가이자 40대 가장인 그가 딸과 유치한 말싸움을 하고, 뜬금없는 주제로 몇 시간씩 떠드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ㄹㅇ 철없는 동네형 같다'며 빠져든다. 권위적인 꼰대가 아닌, 수평적으로 소통 가능한 인간. 엄숙함 대신 건강한 퇴행을 보여주는 것이다.
13. 퇴행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미성숙한 단계로 돌아가는 방어기제다. 하지만 통제된 환경에서의 일시적 퇴행은 자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창의성을 회복시킨다.
14. 점점 더 치열해지는 한국 사회 속, 연공서열 문화와 준비된 완벽함에 지친 이들이, 대학교 친구 자취방에서 노는 것 같은 이 모습에 열광하고 있다. '안녕하세미' 채널의 이선민 집 방문 영상의 “이선민 집구조 이제 눈감고도 설명 가능함”의 댓글엔 1,700개 이상 좋아요가 달렸고, 한샘 브랜드 채널에 '88년생 독거남' 이선민이 나온 영상이 69만 조회수를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5. 결국 이선민 급습 브이로그의 인기는, 빈틈없는 완벽함에 지친 시대가 '빈틈 있는 날것'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는 증거다. 동심과 철없음은 더 이상 미성숙함의 증거가 아니기에, 이러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들은, 더 큰 인간적 매력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