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는 정말 '영감'의 영역일까?
광고 기획 단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형용사를 만납니다. "더 세련되게", "남성적인 미가 돋보이게", "직관적인 느낌으로". 하지만 비즈니스의 사활이 걸린 캠페인을 이런 주관적인 감각에만 맡겨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입니다. 기획한 실무자가 의도한 '세련됨'이 소비자의 뇌에서는 '비싼 가격'으로 읽힐 수도 있고, '남성적 이미지'가 '투박함'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주얼 콘텐츠는 데이터로 기획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것이 통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데이터 기반 기획이 가능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헷갈릴 수 있죠. 오늘은 드래프타입 스튜디오가 일하는 방식을 가상의 브랜드 'B사'에 대입하여 어떻게 데이터 기반으로 광고를 설계하는지 그 과정을 아주 깊이 있게 해부해 보겠습니다.
단계 1: 브랜드 진단
오늘 설명할 내용을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가상의 브랜드를 다음 조건으로 설정해보겠습니다.

프리미엄 면도기 구독 브랜드 B사는 런칭 2년 차를 맞아 성장의 정체기에 직면했습니다.
- 초기 목표: 3040 남성을 타겟으로 한 '구독 유지율' 증대 및 신규 유입 확장.
- 현재 문제: 공격적인 브랜드/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어느 정도의 인지도는 확보했으나, "굳이 기존 대기업 브랜드를 버리고 B사를 써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소비자 반응이 지배적인 상황입니다.
여기서 바로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고민해서는 안됩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비자들에게 물어봐야죠. '왜 안 사는지'를 데이터로 뜯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리서치펌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일단 저희는 자체 패널이 있기 때문에 아래 조건으로 소비자 서베이를 진행합니다. 아래 조건은 사전에 클라이언트와 협의하기도 합니다.
[응답자 스크리닝 조건]
- 지역: 서울/수도권 거주
- 연령: 30~39세 / 남성
- 모집 수: 300명
- 조건: 날 면도기 구매 경험 및 이용자
스크리닝 조건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지나치게 까다로우면 모집이 어렵고, 지나치게 러프하면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일단 위 조건으로 패널을 모집하고 서베이를 진행합니다. 브랜드 인지도, 브랜드 이미지, 구매요인 등 다양한 축에서 질문을 설계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로데이터로 확보합니다.
단계 2: 데이터 분석
2~3일간 확보한 소비자 서베이 로데이터를 3가지 축의 데이터로 분류해 인사이트를 도출합니다.
① 브랜드 인지도 (Awareness): B사의 비보조 인지도(Unaided Awareness)는 3% 미만으로, 구매 시점에 먼저 떠오르지 않는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면 브랜드 이름을 들으면 아는 보조 인지도는 45%로 높았습니다. (*비보조인지도: 도움 없이 상기할 수 는 브랜드)
② 브랜드 이미지 (Image): 기능적 이미지군에서 '절삭력' 관련 이미지 수치는 경쟁사 대비 40% 낮게 형성된 반면, 감성적 이미지에서는 '디자인이 예쁜(72%)'이 압도적이었습니다.
③ 구매요인 (Buying Factor): 소비자의 74%는 구매 결정 전 유튜브 등에서 '실제 절삭력 리뷰'를 검색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실제 서베이 후 분석 과정에서는 더 많은 지표와 분석 과정을 거치지만 콘텐츠로 풀어낼만큼 요약하기는 어려우므로 위 내용만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이제 한 줄로 정리해보겠습니다. B사는 디자인 덕분에 이름은 알렸지만(보조 인지도), 면도기의 본질인 '절삭력'에 대한 기능적 신뢰가 약하여(기능적 이미지 결핍) 소비자들이 구매 직전에 이탈하고 있었습니다.
단계 3: 크리에이티브 전략 수립
이제 가장 치열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클라이언트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죠. B사는 이미 구축된 '예쁘고 힙한 디자인'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제품에 뒤지지 않는 절삭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를 증명하지 못해 성장이 막힌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전략 1. '심미성'을 '공학'의 근거로 치환: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이 디자인이 최상의 절삭력을 구현하기 위한 인체공학적 설계의 결과물"이라는 논리를 세웁니다. '힙한 브랜드'에서 '정밀한 테크 브랜드'로 정체성을 확장하는 전략입니다.
전략 2. 기능적 열위 이미지 극복을 위한 '실험 데이터' 소구: 절삭력을 수치로 증명하는 요소 등의 기능적 소구를 주력으로 배치합니다. 즉, 기존의 심미성 소구를 줄이고 기능적 소구에 올인하는 전략입니다.
전략 3. 구독 모델의 경제성 결합: 대기업 제품 대비 뛰어난 가성비를 강조하여, '프리미엄한 경험을 합리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기능적 소구에 집중합니다.
이 단계의 핵심은 "어떤 영상을 만들까"가 아닙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 브랜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핵심입니다. 우선 1번 전략을 선택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단계 4: 시나리오 도출 및 비주얼 최적화

앞 단계에서 방향성과 전략이 채택되면 이를 기반으로 컨셉을 명확히 하고 시놉시스와 영상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합니다. 시나리오도 감으로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에 기반하여 도출하는 프레임워크를 따르면 좋습니다. 드래프타입 스튜디오가 하는 방식이 따로 존재하지만, 이 부분은 금번 콘텐츠에서 다루기엔 내용이 길어, 첨부드린 링크를 참고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팔리는 광고 기획을 위한 시나리오 도출법: 링크)

위 단계를 거쳐 시나리오가 도출됐다면 스토리보드로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각 장면 별로 광고 실패확률을 줄이기 위해 비주얼 최적화를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AI 시선 예측 기술을 활용해, 기획한 영상 속 모델의 아우라나 디자인의 화려함이 우리가 새로 강조하기로 한 핵심 메시지를 희석하지는 않는지 검증합니다. 해당 내용도 분량이 길어 첨부드린 링크를 참고 부탁드립니다. (AI가 광고를 보는 소비자의 시선을 예측한다: 링크)
결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기획서는 더 이상 의사결정권자의 주관적인 비평이나 취향에 거절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들고 갈 무기는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가 아니라, "타겟 소비자의 결핍된 기능적 이미지 40%를 메우기 위해, 디자인의 강점과 절삭력이라는 기능성 소구를 결합하는 전략 하게 설계된 안입니다"라는 논리적인 데이터 기반의 광고 기획서입니다.
광고가 존재하는 이유는 브랜드의 성장 문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으로 기획해서는 브랜드의 문제를 명확하고 뾰족하게 풀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경쟁사들이 어떤 컨셉의 영상을 많이 만드니까 우리도 만들자'로는 브랜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각 브랜드 마다 처한 환경과 비즈니스 상황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인사이트가 필요하시다면 드래프타입 스튜디오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