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창업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습니다.
"창업은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던 곳에 돈을 쓰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돈을 쓰고 있는 구매 행위를 개선해 주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1년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만들어낸, 제 첫 수익의 이야기입니다.
1. 5만 원의 지출, 그리고 '시장'의 발견
어느 날, 재미 삼아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복채는 5만 원. 대학생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재미있었습니다. 같이 같 친구의 사주를 듣는것도, 제 사주를 듣는 것도 참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솔직히 '콘텐츠치고는 비싼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놀라운 건,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포스텔러' 같은 모바일 앱 시장도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었고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존 앱들은 왜 인기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이 부족할까?"
제가 보기에 기존 서비스들은 '디지털 포춘쿠키'에 가까웠습니다. 정해진 데이터베이스에서 운세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보여주는 방식이죠. 사람들은 내 고민을 들어주고, 그 맥락에 맞는 해석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생성형 AI가 이걸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AI라면 정해진 운세가 아니라, 사용자의 구체적인 고민에 맞춰 타로 리딩을 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수요는 이미 검증된 시장(Red Ocean)이었지만, 기술로 경험을 개선할 여지(Solution)가 보였습니다.
2. 타로 깎는 대학생 : 익명 게시판의 상담사가 되다
무턱대고 개발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타로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책을 한 권 사서 매일 타로 일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에브리타임' 비밀게시판에서 무료 타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무료로 타로 봐드립니다. 고민 있으신 분?"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렇게 타로를 봐주며 타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안면을 튼 뒤 사용자 인터뷰를 부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놀라웠습니다. 익명 뒤에 숨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를 간절히 바라는 분의 사연을 들었을 때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상담사로서의 책임감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로 자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잠재고객의 범위가 넓은 것이겠지만, 사용자 인터뷰의 타겟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마침내 타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고민을 상담해드리고 사용자 인터뷰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3. 결정적 피벗(Pivot) : 기술 뽕에 취하지 말 것
수소문 끝에 평소 온라인 사주를 즐겨 보는 '헤비 유저' 한 분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당시 RAG(검색 증강 생성) 기술을 공부하며, "이전 상담 내용을 기억하는 AI"가 킬러 기능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결과는 제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전 내용을 기억하는 거요? 그것보단... 그냥 해석이 길었으면 좋겠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용자에게 중요한 건 고도화된 기억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내 고민에 대해 충분히 길게 설명해 줌으로써 얻는 '상세함'과 ‘위로’였습니다.
저는 준비하던 RAG 기술 공부를 잠시 접었습니다. "기술 구현보다 실행이 먼저다." 개발 난이도가 확 낮아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사람들이 진짜 돈을 내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4. 990원짜리 '오즈의 마법사' 실험
바로 실험용 웹사이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거창한 앱이 아니었습니다. [질문 입력] -> [타로 카드 선택] -> [결제] 가 되는 간단한 웹페이지였습니다.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추되, '유료 수요'를 검증하기 위해 99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무료는 검증이 안 되고, 비싸면 시도조차 안 할 테니까요.
⚙️ 시스템의 비밀 (Wizard of Oz)
이 서비스의 백엔드는 '저'였습니다. 자동화? API 연동? 그런 건 없었습니다.
1. 사용자가 990원을 입금하면 제 폰으로 알림이 옵니다.
2. 입금을 확인하면 제가 프롬프트에 사용자의 고민을 입력합니다.
3. AI가 내놓은 답변을 제가 직접 다듬어 예쁜 PDF 보고서로 만듭니다.
4. 이메일로 발송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수동이었고, 한 건당 약 10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한 달을 쓰는 것보다, 몸으로 때우며 하루 만에 런칭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5. 강의실에서 맛본 첫 매출의 짜릿함
학교에 전단지를 붙이고, 에브리타임에 홍보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교양 과제용 영화를 보고 있던 그때였습니다.
띠링-
첫 입금 알림이 떴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에만 6명의 유료 고객이 생겼습니다.
총매출, 약 6,000원. 누군가에게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돈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내 아이디어와 상품이 시장에서 통했다" 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이게 되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6. 마치며 : 창업은 '왜 사는가'를 묻는 과정
이 작고 소중한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완벽한 앱을 만들려고 했다면, RAG 기술을 구현하느라 몇 달을 보내고, 정작 고객이 원하지 않는 기능을 만드느라 지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존재하는 수요'를 찾았고, '고객이 원하는 포인트(분량)' 를 인터뷰로 발견했으며, '최소한의 비용(990원)'으로 가설을 검증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 많은 실험과 개선으로 이 사업을 키워나가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