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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억 vs 100만원, 투자자가 ‘100만원’ 택한 이유

“월 매출 1억 5천. 전월 대비 200% 성장”

A스타트업 대표는 자신만만하게 투자설명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정중한 거절이었습니다.

“매출은 좋습니다만...
저희가 보고 싶은 건 ‘다른 숫자’입니다.”

대체 무슨 숫자를 말하는 걸까?

지난 2편에서 ‘하나 팔 때 남는 돈(유닛 이코노믹스)’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투자자가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그 숫자를 보여줄 차례입니다. 투자자와 시장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그것, 바로 ‘트랙션(Traction)’을 보여줄 시간입니다.

지난 1편에서 제가 트랙션을 자동차의 ‘현재 속도’라고 비유했었죠? 오늘은 이 ‘속도’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헛바퀴 도는 건 ‘진짜 속도’가 아닙니다

 

 

자동차 계기판의 바늘이 시속 100km를 가리키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만약 지금 차가 꽁꽁 언 얼음판 위에 있다면 어떨까요? 바퀴는 미친 듯이 돌고 계기판 숫자도 올라가지만, 차는 제자리에 있거나 미끄러지고 있을 겁니다.

스타트업도 똑같습니다.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 일시적으로 방문자 수를 늘리는 건, 얼음판 위에서 엑셀을 밟아 헛바퀴를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숫자는 오르지만, 실제 사업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죠.

트랙션(Traction)이라는 단어의 본래 뜻은 '견인력(타이어가 땅을 움켜쥐는 힘)'입니다.

즉, 우리가 보여줘야 할 트랙션은 단순한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고객이 우리 제품을 확실하게 움켜쥐고 반응하는 진짜 성장"이어야 합니다. 이 '진짜 성장'을 증명하는 방법은 여러분의 현재 단계에 따라 다릅니다.

 

예비창업자라면 “기대감”을 증명하세요.

"아니, 제품이 아직 없는데 어떻게 트랙션을 증명합니까?"

가능합니다. 제품이 없어도 '고객의 관심'은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보여줘야 할 트랙션은 "우리 문을 열면 사겠다고 줄 선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다"라는 기대감입니다.

추천하는 트랙션 지표

  • 사전 예약자 수 (Waitlist) : "랜딩 페이지만 열었는데 1,000명이 이메일을 남겼습니다."
  • 커뮤니티/SNS 모객 수 : "제품 출시를 기다리는 오픈채팅방에 500명이 모여서 매일 떠들고 있습니다."
  • 크라우드 펀딩 달성률 : "와디즈/텀블벅에서 목표 금액의 500%를 달성했습니다."
  • 고객 인터뷰 수 : "직접 만난 잠재 고객 100명 중 80명이 '나오면 무조건 산다'고 약속했습니다."

 

럭키밀(모난돌컴퍼니)의 초기 검증결과 (출처 : EO Planet)

 

마감 할인 서비스 ‘럭키밀’은 처음부터 막대한 자금과 개발자를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노코드 툴인 ‘버블(Bubble)’을 활용해 단 3일 만에 최소 기능만 갖춘 MVP를 만들었죠.

그들은 “맛있는 빵을 마감 직전에 저렴하게 사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을 시장에 던졌고, 이에 반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눈과 숫자로 확인했습니다. 완벽한 앱이 없어도 사람들이 줄을 서는 현상(트랙션)을 먼저 증명한 뒤에야, 확신을 가지고 본격적인 개발자 채용과 고도화에 착수했습니다.

투자자는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믿는 게 아니라, 그 아이디어에 반응한 '사람들의 숫자'를 믿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없다고 핑계 대지 마세요. 제품을 만들기 전에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사람부터 모으세요. 그것이야말로 초기 단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트랙션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만족감”을 증명하세요.

제품이 출시된 이후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때부터는 ‘지표 관리’라는 걸 해야 하는데, 여기서 많은 대표님이 길을 잃습니다. LTV, CAC, ROAS, 코호트 분석....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시죠?

복잡한 영어 약어들, 지금은 잠시 다 잊으셔도 좋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이 반드시 챙겨야 할 지표는 딱 하나, ‘리텐션(Retention, 재구매율/유지율)’입니다.

투자자들(예:카카오벤처스 등)이 초기 기업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현란한 분석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한 번 온 고객이 안 떠나고 계속 남아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앞서 1편에서 봤던 ‘오늘회’나 ‘부릉’처럼, 마케팅 돈을 태워서 신규 고객을 데려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떠나려는 고객을 붙잡는 건 돈으로 안 됩니다. 오직 ‘제품의 매력(만족감)’으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엔진(유닛 이코노믹스)이 튼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추천하는 트랙션 지표

  • 재구매율 (Retention) : "지난달에 산 고객의 40%가 이번 달에 또 샀습니다." (가장 중요! 이 숫자가 높다면, 다른 지표가 좀 부족해도 투자자는 여러분을 주목합니다.)
  • 구매 전환율 : "사이트에 들어온 100명 중 5명이 결제까지 합니다." (보통 1~2%인데 5%면 대박이죠)
  • 고객 추천 지수 (NPS) 혹은 바이럴 : "광고도 안 했는데 친구 추천으로 가입한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 월간 성장률 (MoM ) : "매달 매출이 전월 대비 20%씩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초기 맘카페 중심으로 바이럴 된 마켓컬리 (출처 : 마이맘TV, 구글검색 캡쳐)

 

마켓컬리는 초기에 전국에 광고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강남/서초 지역의 '깐깐한 맘카페'에서의 평판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가입자 수를 늘리는 것보다, 그들이 '매일 아침 습관처럼 주문하게 만드는 것(리텐션)'에 목숨을 걸었죠. 가장 까다로운 고객들이 "이거 없으면 못 산다"라는 만족감을 보이자,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밑 빠진 독(낮은 재구매율)'에 물 붓기(마케팅)를 하고 있다면, 매출이 아무리 커도 그건 '나쁜 트랙션'입니다. 초기에는 1만 명의 뜨내기보다 100명의 단골(Fan)을 만드는 것이 훨씬 훌륭한 트랙션입니다.


 

숫자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기세'입니다

 

많은 초기 창업자가 "저희는 아직 숫자가 너무 작아서 보여주기가 민망해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죽지 마세요.

스타트업 평가에서 중요한 건 현재의 '절댓값(크기)'이 아니라, 그래프의 '기울기(방향과 기세)'입니다.

  • 지금 매출이 1억 원이지만 매달 줄어드는 기업
  • 지금 매출이 100만 원이지만 매달 2배씩 늘어나는 기업

투자자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합니다.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것은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라는 기세(Momentum)입니다.


 

엔진과 속도가 만나면 벌어지는 일

 

자, 이제 우리는 두 가지 무기를 모두 갖췄습니다.

  1. 건강한 엔진(유닛 이코노믹스) : 하나를 팔면 남는 구조
  2. 확실한 속도(트랙션) : 고객이 우리를 원한다는 증거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 스타트업에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투자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고, 모든 창업자가 꿈꾸는 그 지점.

바로 PMF(Product-Market Fit, 제품과 시장의 궁합)가 맞춰지는 순간입니다.

다음 마지막 편에서는 이 두 가지 축(엔진과 속도)을 통해 우리 회사가 지금 PMF를 찾은 건지, 아니면 아직 헤매고 있는 건지 진단하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이전 글 : 매출은 2배 뛰었는데 왜 통장은 비었을까?

(마지막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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