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튜브에서 1시간~3시간 정도의 플레이리스트는, 유튜브 초창기부터 잘 되던 콘텐츠였다.
2. 왜냐하면 시청자들이 다른 일을 할 때, 해당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아서 → 시청 시간이 대폭 증가하면서 → 노출도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 쉽게 말해, 플레이리스트는 유튜브 들어갔을 때의 첫 화면(=탐색)에 뜨는 빈도 수가 매우 높다.
3. 경기화성태안농협에서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하는 것도, 채널명과 제목이 없는 개구리 페페의 플레이리스트가 구독자 64만까지 빠르게 찍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4. 하지만 아티스트 던은 자신이 선별한 플레이리스트를, 이미지 형태가 아닌 강아지와 함께 운전하는 모습을 1시간동안 촬영한 후, 여기에 플레이리스트를 넣었다.
5.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레이리스트 청취 형태도 ‘틀어놓는 영상’에서 오히려 ‘보는 영상’의 흐름이 되어버린 것. 브이로그, 여행, Study With Me 등, Lean Back류 콘텐츠와의 반대 흐름이기도 하다.
6. 던의 플레이리스트보다 먼저 유행한 건, 성수동 매장에서 직원이나 손님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그대로 녹화하여, 거기에 플레이리스트를 붙인 영상들이다.
7. 옷가게 위주였는데, 시청자들의 여러 취향에 맞는 곡만 선별하면, 자연스럽게 매장 홍보가 된다.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면서, 시청자는 영상을 틀어놓는 것만으로 자신의 방을 성수동 편집숍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8. 이는 브랜딩과도 연결되는데, 유튜브에서 브랜드 채널을 운영하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웃도어 브랜드라면, 비 오는 숲속 캠핑 영상에 ASMR 형태로 올린다든지, 가구 브랜드라면 안락한 거실에서의 독서 영상에 플레이리스트를 박아서 올리는 방식이다.
9. 브랜드가 추구하는, 제품이 사용되는 이상적인 순간과 맥락을, 플레이리스트에 접목하여 보여주는 것. 제품의 기능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브랜드가 지향하는 '무드'를 느리고 감각적인 영상 언어로 전달하는 '앰비언트 마케팅'의 일종이기도 하다.
10. 아티스트의 던테이블(=플레이리스트 영상)도 일맥상통하는데, 던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의 감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9cm 브랜드 채널인 '29오픈하우스(구독자 3.1만)'에서 던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보여줬고, 조회수 19만 회에, 댓글은 500개 넘게 달렸다.
11. 더군다나 던의 팬 입장에선, 아티스트가 선별한 음원을 같이 들으며, 사회적으로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1인 가구라면 느낄 수 있는 고립감을 희석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된 실재감을 제공하는 것. 심리학에서는 '앰비언트 친밀감(Ambient Intimacy)'이라고 부르는데,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타인의 존재를 배경처럼 느끼며 위안을 얻는 현상이다.
12. 사실, 이렇게 틀어놓는 영상의 원조는 노르웨이에서 2009년에 실험한 SLOW TV다.
13. 오슬로에서 베르겐 기차 여정 7시간을 편집 없이 방영했고, 2011년엔 연안선 후르티그루텐 항해를 134시간 생중계했다. 그 당시 다른 동시간대의 프로그램보다 월등히 시청률이 나왔고, 134시간 항해 영상의 경우 노르웨이 국민 500만 명 중 320만 명이 봤다.
14. 10시간 빗소리, 장작 소리와 같은 ASMR에 대해 '숏폼에 대한 반작용’과 팬데믹 때 갇혀 있어 자연의 소리에 대한 결핍, 그리고 수면에 도움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숏폼뿐만 아니라 2020년대 이후의 유튜브 중심이 아니었던, 2009년, 2011년에 이미 히트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SLOW TV 형태의 느린 호흡의 영상에 대한 니즈가 본능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15. (팬데믹 때, 자연의 소리 ASMR 외에도, Seoul Night Drive 4K 영상에 로파이 음악을 붙인 영상이 475만 회 조회수가 나오거나, 설경 속 기차 영상도 1,475만회가 나왔다)
16. 정리하자면, SLOW 기반의 '틀어놓는 영상'은 시청자들에게 '보는 재미를 주는 영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느림의 화면 속에 플레이리스틀 붙인다면, '시청 시간 폭증에 따른 노출도 측면'에서,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 속에 제품을 녹이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