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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도 피하지 못한 실수, '지식의 저주'에 빠진 사업계획서

심사위원이 당신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워>를 보셨나요? 빌런인 타노스가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에게 건네는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토니 스타크는 천재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가올 우주적 위협과 이를 막을 비전이 4K 고화질 영상처럼 생생하게 펼쳐져 있죠. 하지만 동료들은 그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토니는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답답해하고, 때로는 독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재미있는 건, 수많은 창업가들이 사업계획서를 쓸 때 이 ‘아이언맨’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고 부릅니다. 내가 어떤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면, 그걸 모르는 사람의 입장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게 되는 심리적 편향이죠.

창업가의 머릿속에는 우리 아이템이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미래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역이나 투자자는 그 미래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요.

오늘은 사업계획서를 ‘암호문’으로 만드는 이 지식의 저주에서 탈출하는 법, 즉 ‘쉽게 써서 합격하는 방법’을 두 가지 구체적인 사례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증상1. 있어 보이려다 ‘못 알아듣게’ 만든다 (전문용어의 늪)

 

초기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전문 용어를 써야 우리 팀이 기술력 있어 보이겠지?”입니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당신의 기술을 배우러 온 학생이 아닙니다. 이 기술이 시장에서 팔릴지, 즉 ‘돈이 될지’를 판단하러 온 사람입니다. 현란한 기술 용어는 오히려 핵심 가치인 ‘고객 효용’을 가려버립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의 나쁜 작성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문장을 본 심사위원 또는 심사역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뜹니다. “그래서 이게 고객한테 뭐가 좋다는 거지?”

 

이 말을 ‘고객(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가요? 중학생 조카에게 설명하듯 풀어쓰니, “아 거짓말 안 하고 바로 쓸 수 있는 AI구나!”라는 핵심 가치가 훨씬 명확해집니다. 쉽게 쓰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력입니다.


 

증상2. 내 머릿속에만 있는 징검다리 (논리의 비약)

 

창업자는 이 사업에 대해 24시간 고민한 사람입니다. 머릿속에서는 ‘A(현상)’를 떠올리면 아주 자연스럽게 ‘B(이유)’를 거쳐 ‘C(결론)’로 생각이 이어지죠.

하지만 이 과정이 본인에게만 너무 익숙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너무 당연하니까, 막상 남들에게 보여줄 사업계획서에는 정작 중요한 연결고리인 ‘B’를 빼먹고 A에서 바로 C로 넘어가 버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심사위원은 고개를 갸웃합니다. “1인 가구가 느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왜 하필 반찬 구독이지? 편의점도 있고 배달도 있잖아?” 창업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논리의 연결고리’가 심사위원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심사위원이 의문을 가지지 않도록, 친절하게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어떤가요? ‘1인 가구의 딜레마’와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먼저 언급해주니, ‘왜(Why)’ 이 서비스가 필요한지가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이렇게 논리의 빈틈을 채워줄 때, 심사위원은 비로소 여러분의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심사위원에게는 당신의 암호를 해독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냉혹한 현실을 말씀드려야겠네요.

여러분은 이 사업계획서를 며칠, 몇 주에 걸쳐 썼지만, 심사위원이 서류 심사 단계에서 여러분의 문서를 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길어야 5분, 짧으면 1~2분 내외입니다.

심사위원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합니다. 그들은 피로한 상태입니다. 만약 첫 페이지부터 이해할 수 없는 전문 용어가 튀어나오거나, 두 번 세 번 읽어야 논리가 파악되는 문장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요?

‘이 팀은 정말 기술력이 뛰어나서 내가 모르는 걸 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이해해줘야지’라고 생각할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팀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 핵심이 정리가 안되어 있어.”라고 판단하고 다음 문서로 넘겨버립니다.

즉, 쉽게 쓴다는 것은 단순히 친절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백 개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 문서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입니다.


 

내 사업계획서는 안전할까? ‘지식의 저주’ 자가 진단법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 사업계획서를 펴고 아래 3가지를 체크해보세요.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지식의 저주’에 걸려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1. ‘업계 용어’가 한 페이지에 3개 이상 나온다 : 괄호( )를 치고 설명을 달거나, 아예 쉬운 우리 말로 바꿔보세요. 초등학생도 아는 단어라면 가장 좋습니다.

2. 한 문장이 3줄을 넘어간다 :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와 서술어가 꼬이고 논리가 흐려집니다. 접속사를 줄이고 문장을 툭, 툭, 끊으세요. 단문이 힘이 셉니다.

3.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라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없다 : 배경 설명만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았나요? 문단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핵심 메시지)’이 첫 줄이나 마지막 줄에 명확히 박혀 있어야 합니다.


 

마치며, 배려가 곧 경쟁력이다

 

사업계획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자랑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내 사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편지입니다.

토니 스타크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어도, 동료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혼자 싸워야 합니다. 창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자와 심사위원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사업계획서를 덮고, 이 사업을 전혀 모르는 친구나 가족에게 한번 설명해 보세요. 그들이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다면, 바로 그 지점이 여러분이 수정해야 할 곳입니다.

쉽게 쓰세요. 읽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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