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기타
10년이 지난 아트테크 시장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거품이 꺼진 미술품 시장, 10년의 기록

 

2021년, “그림을 사면 돈이 된다”는 아트테크(Art-Tech) 열풍은 NFT 광풍과 맞물려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2025년 12월 현재, 그 뜨거웠던 시장은 조용히 식었습니다. 잘나가던 스타트업들은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투자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습니다.

도대체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미술 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단순히 ‘경기가 안 좋아서’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비즈니스 모델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걸까요?

오늘은 시간대별로 국내 아트테크 시장의 흐름과 투자자의 시각에서 혁신을 만들어 낼 것 같았던 미술품 렌탈 및 거래 시장을 해부하고, 살아 남은 시장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봅니다.

읽기 전 참고해주세요. 이 글은 지난 10년 간의 한국 미술 시장 흐름을 공부하고 분석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특정 서비스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이해하는 참고 자료로만 활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장의 4단계 변천사 : ‘혁신’이 아니라 ‘돈’이 키웠다

지난 10여년간 미술 시장의 그래프는 거시경제(유동성) 사이클과 소름 돋을 정도로 일치했습니다.

 

태동기(2016년 ~ 2019년) : “소유에서 경험으로, 캔버스가 집으로 들어오다”

#공유경제, #구독모델, #아트테리어(Art-terior)

 

이 시기는 ‘공유 경제(Sharing Economy)’가 산업 전반을 강타하던 때입니다. 에어비앤비가 숙박을, 타다와 쏘카가 이동을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꿨듯, 미술 시장에서도 “굳이 비싼 그림을 사야 해? 빌려 보면 되잖아?”라는 물음표가 던져졌습니다.

2016년에 처음 “그림도 구독하세요”라는 슬로건으로 렌탈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시장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오픈갤러리, 핀즐 같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월 3~5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수천만 원짜리 원화를 커피 몇 잔 값에 집에 걸 수 있다는 점은 대중의 심리적 진입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미술품의 넷플릭스화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소비의 핵심은 투자가 아닌 ‘공간의 가치’였습니다. 인스타그램 열풍과 함께 ‘집 꾸미기’가 유행하면서, 그림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내 공간의 품격을 높여주는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Art-terior)으로 소비되었습니다. 3개월마다 큐레이터가 그림을 교체해 주는 서비스는 단순 렌탈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케어’로 환영받았습니다.

 

폭발기(2020년 ~ 2022년 상반기) : “감상의 대상에서 욕망의 투기처로, 광기의 시대”

#유동성 파티, #조각투자, #FOMO(고립 공포감)

코로나19 팬데믹을 방어하기 위한 전 세계 중앙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제로 금리’는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2030세대의 심리였습니다. 이미 2018년 비트코인 1차 폭등장을 목격하며 “근로 소득만으로는 자산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학습한 이들에게, 제로 금리는 단순한 저금리가 아닌 ‘생존의 위협’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나만 가난해진다(벼락거지)”는 집단적 공포감은, “이번 파도에는 무조건 올라타야 한다”는 자산 증식에 대한 강박(FOMO)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절박한 유동성이 주식과 코인을 넘어, 아직 오르지 않은 ‘미술품’으로까지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때마침 등장한 조각투자 플랫폼들은 이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수억 짜리 명작을 1,000원 단위로 쪼개 팔며, 소액으로도 ‘자산가들의 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NFT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렌탈 서비스마저 “연 8% 확정 수익”을 내세우는 금융 상품처럼 소비되었습니다. 예술적 가치보다는 “이게 제2의 비트코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이 시장을 지배했던, 말 그대로 ‘광기의 시대’였습니다. 예술이 ‘향유’에서 ‘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붕괴기(2022년 하반기 ~ 2024년) : “썰물이 빠져나가자 비로소 드러난 민낯”

#금리 인상, #신뢰의 추락, #규제 리스크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 연준(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파티의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이었습니다. 유동성 수도꼭지가 잠기자, 가장 위험하고 거품이 많이 낀 자산부터 무너져 내렸습니다. 코인과 NFT 시장의 폭락은 미술 시장의 투자 심리를 급속도로 냉각시켰습니다.

‘확정 수익’을 미끼로 덩치를 키웠던 일부 렌탈 업체들이 자금난으로 정산금을 미지급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미술품 투자는 안전하다”는 믿음을 산산조각 냈고, 정상적인 서비스 업체들까지 ‘잠재적 사기’로 의심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금융당국은 우후죽순 생겨난 조각투자를 ‘인가받지 않은 증권’으로 규정했습니다. “혁신”이라 불리던 사업 모델은 하루아침에 “불법 소지가 있는 영업”이 되었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막대한 법률 비용을 쏟아부으며 혹독한 구조조정의 터널을 지나야 했습니다.

 

재편기(2025년 ~ 현재) : “환상은 끝났다, 진짜들만 남은 생존자들의 리그”

#양극화, #제도권 편입(STO), #본질 회귀

 

저성장이 고착화된 ‘뉴노멀(New Normal)’ 시대입니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대박’을 꿈꾸지 않습니다. 대신 ‘원금 보장’과 ‘법적 보호’가 되는 안전한 자산만을 선호합니다.

시장은 ‘돈 놓고 돈 먹는 금융 시장(STO)’과 ‘공간을 꾸미는 서비스 시장(렌탈)’으로 완벽하게 갈라섰습니다. 어설프게 양다리를 걸치던 기업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토큰증권(STO)이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졌습니다. 토큰증권 시장은 이제 증권사와 손잡은 소수 대형 업체들만의 리그가 되었습니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증권 신고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블루칩 작품’만이 거래됩니다.

렌탈 시장은 다시 태동기 때의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투자 수익을 약속하는 대신, 병원이나 기업 로비에 그림을 걸어주는 B2B(기업 간 거래) 중심의 건실한 서비스 모델로 내실을 다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3대 전략적 오판(Why They Failed)

많은 아트테크 스타트업들이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넘지 못한 원인을 단순히 ‘불경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시장을 너무 낭만적으로 해석했다는 데 있습니다. 업(業)의 본질적인 구조보다는, 눈앞에 불어닥친 일시적 트렌드에만 매몰되었던 것이 진짜 패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 고객 행동에 대한 오판 : “트레이더를 컬렉터로 착각했다”

 

스타트업들은 MZ세대를 '문화적 소양을 갖춘 새로운 컬렉터'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이들이 '단기 트레이더' 성향이 강했음을 보여줍니다.

2021년 아트테크 붐은 코인과 주식으로 돈을 번 2030세대의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미술 시장으로 흘러들어온 결과였습니다. 2022년 루나 사태 등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붕괴되자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여윳돈이 사라진 투자자들은 환금성이 낮고 필수재가 아닌 '미술품' 구매부터 중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로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83%에 달했던 경매 낙찰률은 2023년 50%대까지 급락했습니다. 이러한 지표는 당시 고객들이 ‘그림이 좋아서’ 시장에 남은 것이 아니라, 유동성 파티가 끝나자마자 이탈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단기 투자자’였음을 방증합니다.

 

2) 시장 구조에 대한 오판 : “플랫폼인 줄 알았으나 물류업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신들을 ‘확장성 높은 플랫폼’으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 모델을 뜯어 보면 운송, 설치, 보관, 보험 관리가 필수적인 ‘고비용 물류/관리업’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IT 플랫폼은 유저가 10배 늘면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합니다. 하지만 실물 미술품을 다루는 사업은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품 100점을 관리하는 비용은 10점을 관리하는 비용의 10배, 혹은 그 이상으로 비례하여 증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작품 한 점을 이송하려면 전문 무진동 차량과 인력이 필수적이며, 통상 전시품 보험은 작품 평가액의 110% 수준을 가입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고가의 유명 작가의 작품을 많이 확보할수록 유지 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일부 플랫폼이 “모든 작품 보험 가입”을 강점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매출 성장과 함께 고정비가 동반 폭증하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실제 주요 렌탈/거래 플랫폼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매출이 성장할수록 운반비, 보관료, 지급수수료 등 변동비가 비례하여 급증하는 비용 구조가 명확히 확인됩니다. 아트테크 주요 기업의 실적도 매출은 매년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거나 적자가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결국 ‘물리적 실물 자산’이 가진 비용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점이, 최근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한 주된 원인 중 하나로 풀이됩니다.

 

3) 규제 환경에 대한 오판 : “혁신이 법을 이길 것이라 믿었다”

어쩌면 “혁신 서비스인 만큼 기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최우선 가치는 ‘혁신’보다는투자자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결국 제도권 편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법률 자문, 증권 시스템 구축 등)은 기초 체력이 약한 스타트업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장벽이 되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투자자가 미술 스타트업에게서 멀어진 3가지 이유

한때 앞다퉈 돈을 싸 들고 왔던 투자자들이 지금은 왜 지갑을 닫은 것일까요? 단순히 기업의 실적이 나빠져서일까요? 투자 심사역의 관점에서 보면 더 구조적인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과거 투자를 많이 받았던 기업들의 후속투자가 멈춘 부분에 대한 의견입니다.

 

1) 꽉 막힌 회수 통로

투자자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회수(Exit)’입니다. 보통은 기업공개(IPO)나 M&A를 통해 수익을 실현합니다. 하지만 현재 미술 시장은 이 두 가지 문이 모두 닫혀버렸습니다.

IPO의 좌절 : 한국거래소(KRX)의 기술특례상장 심사 기준이 매우 깐깐해졌습니다. 적자를 내더라도 성장성이 있으면 상장시켜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확실한 수익성’을 요구합니다. 업계 1위 기업조차 상장 예비심사를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들에게 투자해 봤자 ‘상장 불가능한 주식’이 될 공산이 큽니다.

M&A 시장의 실종 : 과거에는 카카오, 네이버 같은 플랫폼 대기업이나 백화점 등이 잠재적 인수자였습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대기업들도 긴축 경영에 들어가면서, 시너지가 불분명한 미술 스타트업을 인수할 여력이 사라졌습니다. "사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VC에게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입니다.

 

2) 밸류에이션 딜레마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투자를 ‘너무 잘’ 받은 것이 독이 되었습니다. 2021년 유동성 호황기에 매출 규모(GMV)만으로 기업 가치를 1,000억 원, 2,000억 원씩 인정받은 것이 문제입니다.

다운 라운드(Down Round)의 공포 : 현재 실적으로 냉정히 평가하면 기업 가치는 과거의 절반 수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값을 낮춰서 투자를 받으려면(다운 라운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훼손되기에 동의를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창업자 입장에서도 지분이 대거 희석되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협상의 교착 : 신규 투자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고, 기존 주주와 창업자는 "헐값에 넘길 수 없다"고 맞서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3) 수익성 증명의 실패

과거 VC들은 "적자라도 점유율을 높이면(J커브) 나중에 돈을 번다"는 논리에 설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 지금 1원을 쓰면 얼마를 버는데?"라는 단위 경제(Unit Economics) 증명을 요구합니다.

낮은 영업이익률 : 앞서 언급한 물류/보험 비용 등 높은 변동비 구조 탓에, 미술 스타트업들은 매출이 늘어도 영업이익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을 숫자로 보여주었습니다.

섹터 로테이션 : 투자 자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VC들의 자금은 높은 마진과 확장성이 증명된 AI(인공지능), 딥테크, 방산 분야로 쏠리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성장 한계가 뚜렷해진 ‘라이프스타일/취향’ 플랫폼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거품이 걷히고, 비로소 ‘산업’이 시작되다

그렇다면 지난 10년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난 걸까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투기판’에서 ‘산업’으로 진화하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유동성이 만든 거품이 걷히자, 이제야 시장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설프게 금융과 서비스를 오가던 '회색 지대'는 사라졌습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증권사와 결합한 ‘제도권 금융 상품(STO)’과, 공간 가치를 창출하는 ‘순수 B2B 렌탈 서비스’로 철저히 양분되어 재편될 것입니다.

화려했던 축제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속 가능한 진짜 비즈니스는 거품이 모두 걷힌 지금 이 순간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환상’이 아닌 ‘숫자’와 ‘실력’으로 증명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진짜 승부가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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