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C는 정말 B2B SaaS보다 딥테크를 더 좋아할까
· 딥테크에 더 돈이 몰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 SaaS가 과소평가되는 이유
· 딥테크 시대에도 SaaS 창업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
한국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와 미국 VC 시장을 이야기할 때 흔히 던지는 말이 있다.
“요즘 VC는 SaaS보다 딥테크 좋아하잖아요?”
겉으로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전 투자자의 시각에서는 절반만 사실이다. 실리콘밸리 투자 흐름을 오랫동안 지켜보면, 딥테크가 더 핫해 보이는 이유는 기술력 그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의 인지 편향과 시장의 내러티브가 만드는 착시가 크다.
요즘 AI·로보틱스·바이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VC = 딥테크 선호”라는 공식이 굳어졌다. 2025년도 AI·딥테크 펀딩 그래프를 봐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전체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아니다. OpenAI(2/3를 차지), Anthropic, xAi 등이 국가급 경제 규모의 투자를 받아가며 그래프를 찌그러뜨린 것이다. 딥테크가 전체 Early-stage의 투자 흐름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Seed·Pre-A 시장에서는 SaaS·Vertical Software가 여전히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SaaS에 대한 트렌드의 이유는, 딥테크는 큰 이야기로 시장을 확장하고, SaaS는 지표로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시장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에 가깝다. 문제는 한국 창업자들이 이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은 채, “VC가 딥테크 좋아한다니까 우리도 기술 난이도를 높여야 하나?”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1️⃣ 딥테크가 더 뜨겁게 보이는 이유, 희소성의 착시
Behavior Science의 관점에서 보면, 딥테크의 ‘인기’ 현상은 희소성 휴리스 (scarcity heuristic)의 대표 사례다.
투자자들은
·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
· 소수의 팀만 가진 전문성
· 특허와 연구 인프라
이런 요소를 보면 가치가 높아 보이는 심리적 착각을 경험한다. 특히 AI Infra·로보틱스·바이오처럼 “몇 개 팀만 할 수 있는 분야”는 스토리가 크기 때문에 언론 노출과 VC 블로그에서 자주 다뤄진다. 그러다 보니, 마치 시장 전체가 딥테크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하지만 실전 투자에서는 조금 다르다. 딥테크는 스토리는 화려하지만 리스크·기간·자본 레버리지가 모두 높기 때문에,
실제 투자 집행은 상위 퍼포먼스 VC 몇 곳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전체 시장에서 가장 꾸준히 투자되는 모델은 가치 창출 프로세스가 명확하고 회수 속도가 빠른 SaaS다. 그럼에도 한국 창업자들에게는 딥테크가 더 매력적으로 들리기 마련.
왜냐하면 '기술의 난이도 = 사업의 난이도'로 연결시키는 기술 중심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기술이 아닌 Execution, GTM, Distribution Power를 훨씬 높게 본다.
2️⃣ 그렇다면 왜 SaaS는 과소평가될까? 너무 익숙해져서 생기는 문제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과소평가한다. SaaS는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한국 창업자들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도메인이다. 그러다 보니, VC미팅에서 이런 말들을 종종 들을수 있다. “너무 평범한데?”, “기술적 진입장벽이 없지 않나?”, “요즘은 AI Infra가 핫한데 SaaS 해도 되나?”
문제는, 투자자들은 평범함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차별점을 설명하지 못하는 SaaS 창업자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미국 VC 입장에서 SaaS가 과소평가되는 이유는 SaaS 자체가 촌스럽거나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형 SaaS IR 장표 대부분이 ‘문제-솔루션’만 반복하고 고객 행동 변화(Behavior Change)와 구매 프로세스를 전혀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즉, 기술적 난이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비즈니스 메커니즘을 입증하지 못해서 과소평가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VC와 대화해보면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기술보다 지표와 고객 행동을 본다.” “Tech Moat보다 Distribution Moat이 더 크다.” “B2B SaaS는 여전히 가장 안정적인 Early-stage 포트폴리오다.”
3️⃣ 딥테크 시대에도 SaaS 창업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지금 시대에 SaaS가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오히려 탑 티어 SaaS 창업자만 살아남는 시장이 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 초기에는 기술보다 고객 행동 데이터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B/ 고객의 구매·사용·반복 행동을 측정할 수 있는 Micro-Metric을 설계해야 한다. (예: Activation Curve, Time-to-Value, Usage Frequency 등)
C. 딥테크 트렌드를 이용해 SaaS 제품의 내러티브를 재정의해야 한다. (예: “AI를 붙였다”가 아니라 AI가 어떻게 ROI를 단축시키는지 설명)
이 셋을 결합해 우리 SaaS의 차별점을 다시 재정립하자. 다시 강조하지만, 딥테크 시대에도 SaaS는 죽지 않는다. 다만 SaaS 창업자들이 더 계산적이고, 더 심리학적으로 고객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왔을 뿐이다.
질문.
실리콘밸리에서는 SaaS와 딥테크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두 분야를 서열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딥테크가 정말 더 매력적인 시장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생태계가 “난이도 높은 기술 = 높은 평가”라는 인지적 착시에 빠져 있는 것인지. 한국 창업자들만 유독 “기술 난이도 > 고객 행동 변화” 이 공식을 더 강하게 믿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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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봉성리,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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