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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 실리콘밸리에는 ‘돈을 인터넷으로 보낸다’는 개념이 아직 낯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는 오프라인 중심이었고, 개인 간 거래에서 결제는 느리고 번거로웠죠. 하지만 온라인 경매 플랫폼 이베이(eBay)의 성장과 함께,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무렵, 연이은 실패를 겪던 한 젊은 프로그래머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한 보안 기술을 기반으로, 그는 이메일을 통해 돈을 보내는 방법을 고안했고, 예상과 달리 그 단순한 기능이 사용자들에게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훗날 그는 유튜브, 링크드인, 테슬라 등의 창업자들과 함께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은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업자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의 Day 0,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네 번은 망했지만, 다섯 번째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2. 생각하면 바로 움직이는 사람, 피터 틸을 만나다
3. 아무도 쓰지 않은 보안 앱, 모두가 원했던 결제 시스템
4. 페이팔 마피아와 또 다른 Day 0의 시작
1. 네 번은 망했지만, 다섯 번째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1991년,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열다섯 살의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은 가족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측정 업무를 맡았던 과학자 어머니, 예술가였던 아버지, 그리고 조부모님과 함께였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곳은 당시 소련 치하의 우크라이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물리학자였고, 유대인 탄압을 피해 수용소를 전전한 생존자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출국을 꿈꿔오던 가족은 마침내 위조된 출생증명서와 뇌물을 통해 탈출에 성공합니다.
시카고에 도착한 가족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베이비시터 일을 시작했고, 아버지는 간판을 그리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맥스는 시카고 도심의 공립학교에 편입했죠. 억양 때문에 “넌 어디 출신이야?”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지만,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섞인 환경 덕분에 큰 충돌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억양 이상한 수학 잘하는 애가 왔네”—그 정도의 편견 섞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당시 맥스는 MIT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러시아식으로 “MTI에 가고 싶다”고 말한 탓에 학교 상담교사가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해프닝도 겪었습니다. “SAT도 안 봤잖아. 일단 적응부터 하렴”이라는 교사의 말에 실망하던 그에게 길을 열어준 건 친구 에릭이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제일 똑똑한 애들은 UIUC(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 대학교)에 가. 나도 거기 갈 거야.” 그렇게 그는 UIUC 컴퓨터과학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출처: https://storied.illinois.edu/maximum-impact/)
📒 Editor’s Note: 맥스의 할머니는 국방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였다. 맥스는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순간 중 하나가 하버드 도서관에서 할머니의 논문을 발견했을 때였다고. “와, 내가 이런 분의 손자였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맥스는 처음에는 교수가 되는 길을 고민했습니다. 할머니의 조언이었죠. 하지만 2학년 무렵, 밤을 새워 코딩을 즐기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3년, 마크 안드레센이 만든 최초의 그래픽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Mosaic)’가 캠퍼스에서 공개되며 인터넷 혁명의 물결이 밀려옵니다. 그는 그 현장을 지켜보며 “지금 이곳에서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곧 창업에 도전합니다. 첫 번째는 웹 기반 광고 플랫폼이었죠. 하지만 시장과 자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완전히 실패합니다. 이후 신문 뒷면의 분류광고를 온라인으로 옮기자는 아이디어로 두 번째 창업을 시도했고, 일부 지역 신문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연간 1,200달러의 매출도 발생했지만 큰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맥스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시카고에서 피칭을 하고 완전히 거절당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다음엔 뭘 하지?”라는 질문만 머릿속에 가득했죠. 졸업 즈음엔 이미 서너 번의 창업을 경험했고, 수익은커녕 학생 대출만 한가득이었지만, 마음속엔 확신이 있었습니다.
“슬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전혀 슬프지 않았고, 다음 회사가 너무 기대됐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할 때쯤엔 ‘1번, 2번, 3번, 4번 다 망했지만, 5번은 분명 성공할 거야’라는 마음뿐이었죠. 빨리 시작하고 싶었어요.”
이 무렵, 그의 대학 친구이자 창업 동료였던 루크 노섹(Luke Nosek)과 스콧 배니스터(Scott Banister)는 이미 실리콘밸리로 향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맥스를 부추겼죠. “너 왜 아직도 샴페인에 있어? 여기가 진짜 판이야. 빨리 와.” 결국 맥스는 그 말을 듣고 짐을 쌉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2. 생각하면 바로 움직이는 사람, 피터 틸을 만나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지 팔로알토에 도착한 맥스는, 스콧의 허름한 아파트에 얹혀 살며 또 한 번 창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장단점을 따져보고, 코드를 짜는 반복된 하루였죠.
그는 이전의 실패를 돌아보며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사용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고민하며, 제품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콧은 좋은 파트너였습니다. 그는 맥스에게 “왜 그게 나쁜 아이디어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1998년 여름, 맥스는 무더위를 피해 에어컨을 찾아 스탠포드 대학교의 한 강의실로 피신합니다. 그 강의실에는 단 여섯 명만 있었고, 연사는 피터 틸(Peter Thiel)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였고, 통화 거래 이론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었죠. 처음 보는 피터의 지성에 맥스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 정말 똑똑하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합니다.
강의가 끝나고, 맥스는 어색하지만 용기 내어 말을 겁니다. “저는 맥스라고 합니다. 샴페인에서 막 이사 왔어요.” 피터는 반가운 듯 대화를 이어가다가, 마치 준비한 듯 말합니다. “우리 얘기 더 해봐요. 내일 아침에 만날까요?” 맥스는 이것이 바로 ‘피터 틸 스타일’이라며, 그는 ‘생각나면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회상합니다.
(출처: https://grainger.illinois.edu/news/features/making-of-max-levchin)
다음 날 아침, 둘은 팔로알토의 작은 식당 ‘호이즈(Hoy’s)’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맥스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꺼내놓습니다. 하나는 웹 기반 마케팅 경쟁 정보 플랫폼, 다른 하나는 팜파일럿(Palm Pilot)* 기기를 위한 보안 암호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팜파일럿(Palm Pilot): 스마트폰 이전 시대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용 단말기). 전화 기능은 없지만 스케줄, 주소록, 메모, 계산기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첫 번째 아이디어에 피터는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그의 표정이 확 바뀝니다.
“이거야말로 정말 최고의 아이디어네요. 꼭 회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맥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죠. 그런데 피터는 곧바로 “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묻습니다. 맥스가 “50만 달러 정도요”라고 대답하자, 피터는 “좋아요. 제가 30만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스무디를 채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이루어진 투자 약속이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공동 창업자가 됩니다. 이후 맥스는 CEO 자리를 피터에게 제안하고, 자신은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실패를 반복하던 청년과, 실행력을 가진 젊은 투자자. 실리콘밸리의 작은 식당에서 손을 맞잡은 이 둘이 함께 만든 회사가 바로 훗날 페이팔(PayPal)의 시작이었습니다.
3. 아무도 쓰지 않은 보안 앱, 모두가 원했던 결제 시스템
맥스와 피터가 함께 시작한 첫 회사의 이름은 ‘필드링크(FieldLink)’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팜파일럿 기기 간 데이터를 암호화해 전송하는 보안 소프트웨어였죠. 당시만 해도 PDA는 혁신적인 기기로 주목받고 있었고, 맥스는 언젠가 이 작은 기계가 모두의 손에 들려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는 팜파일럿의 개발자 제프 호킨스를 직접 만나 시연까지 해봤지만, 돌아온 반응은 “언젠가는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였죠. 시장은 보안보다는 사용성과 접근성에 집중하고 있었고, 소비자들도 당장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맥스와 피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제품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밤마다 팀이 모여 “이 기술로 도대체 뭘 만들 수 있을까”를 두고 브레인스토밍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디지털 차용증’이었습니다. 친구와 식사 후 현금이 없을 때 팜파일럿으로 차용 메시지를 보내고, 나중에 상환하는 구조였죠. 이 개념은 점차 P2P(Peer-to-Peer: 개인 간) 송금 시스템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문제는 여전히 사용자 경험이었습니다. 팜파일럿을 가진 사람끼리만 사용할 수 있었고, 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해 데이터를 전송해야 했습니다. 불편했죠.
그러자 맥스는 아주 간단한 웹 기반 송금 기능을 만들어 봅니다. 상대방의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송금할 수 있는 구조였죠.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기능이 사용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습니다. 이베이(eBay)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능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페이팔은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출처: https://grainger.illinois.edu/news/features/making-of-max-levchin)
📒 Editor’s Note: 페이팔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을 때, 맥스의 대학 친구이자 페이팔 초기 멤버인 루크 노섹(Luke Nosek)은 “가입하면 20달러, 친구 초대 시 또 20달러”를 지급하는 리워드 전략을 제안했다. 단순하지만 강력했던 이 구조는 대학생과 이베이 판매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확산을 일으켰고, 이때 많은 사용자들이 이메일 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 리워드를 반복 수령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당시 이베이에서는 개인이 신용카드 결제를 받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절차 없이 이메일만으로 송금 가능한 페이팔은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최고의 대안이었습니다. 맥스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우리가 개발한 복잡한 보안 시스템은 아무도 안 썼고, 덤으로 붙여둔 단순한 웹 송금 기능만 쓰이더군요.”
결국 회사의 중심은 웹으로 완전히 이동합니다. 팜파일럿 기반 P2P 결제라는 원래의 목적은 점점 흐려지고, 이메일 기반 개인 간 결제 플랫폼이 주력 서비스가 됩니다. 맥스는 이 과정을 통해 “결국 가장 단순한 사용자 경험이 승리한다는 걸 배웠다”고 말합니다.
‘페이팔(PayPal)’이라는 이름도 이 시기에 탄생합니다. ‘결제(pay)’와 ‘친구(pal)’를 조합하여, 사용자 경험을 직관적으로 표현해주는 동시에 브랜드 정체성을 간결하게 담아낸 이름이었죠. 그렇게 1999년 10월, 페이팔은 정식으로 론칭됩니다. 실패한 보안 앱이 가장 단순한 방식의 결제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었죠.
그리고 바로 그 시기, 페이팔과 같은 문제를 풀고자 하는 또 하나의 스타트업이 바로 옆 사무실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 Editor’s Note: 처음 회사 이름은 ‘필드링크(FieldLink)’였다가 곧 ‘컨피니티(Confinity)’로 바뀌었다. ‘신뢰(Confidence)’와 ‘무한(Infinity)’이라는 단어의 조합이었지만, 누군가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 이름에 ‘con’이 들어간다고?”라는 반응을 보였고(*’con’은 신뢰를 악용한 사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말에 맥스도 “이건 오래 못 가겠구나” 싶었다고. 그리고 결국 모두가 기억하게 될 이름, ‘페이팔’이 탄생했다.
4. 페이팔 마피아와 또 다른 Day 0의 시작
페이팔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던 1999년 말, 바로 옆 사무실에서도 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엑스닷컴(X.com), 창업자는 일론 머스크(Elon Musk)였습니다. 이미 Zip2를 매각하며 부를 쌓은 그는, 온라인 금융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두 회사는 이베이 결제 시장을 두고 정면으로 맞붙습니다. 같은 기능을 제공하며,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심지어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죠. 서로의 웹사이트를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기능을 빠르게 모방하며, 더 큰 보상을 걸고 사용자 확보 경쟁을 벌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경쟁이 극심해지자, 엑스닷컴은 핀테크 업계 출신 빌 해리스를 CEO로 영입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가 꺼낸 카드는 합병이었습니다. “경쟁하지 말고 하나로 합치자.” 결국 2000년 3월, 페이팔과 엑스닷컴은 공식적으로 합병됩니다. 이후 머스크는 CEO가 되었고, 피터 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맥스는 CTO로 기술을 계속 책임지게 됩니다.
하지만 두 조직은 기술 스택도, 문화도, 운영 방식도 달랐습니다. 유닉스냐 윈도우냐를 두고 개발팀 간에 거의 ‘종교 전쟁’ 수준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죠. 윈도우 기반 시스템을 고집하던 머스크에 대한 내부 반발이 커지며, 결국 이사회는 머스크를 CEO 자리에서 해임합니다. 피터 틸이 다시 CEO로 복귀했고, 맥스는 기술 총책임자로서 회사를 지켜냅니다.
한편 그 무렵, 시장 전체는 닷컴 버블 붕괴로 휘청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무너졌고, 투자자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 상황을 미리 감지한 피터가 선제적으로 자금 유치에 집중한 덕분에 페이팔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베이의 성장과 함께 페이팔도 빠르게 서비스를 확장했고, 맥스는 당시를 “우린 너무 바빠서 무서워할 틈도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출처: https://www.webdesignmuseum.org/gallery/paypal-2000)
📒 Editor’s Note: 당시 페이팔 사무실에선 매주 월요일이면 “서버가 또 죽을 시간이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이베이 결제량이 몰리던 월요일에는 트래픽이 폭주해 몇 시간씩 사이트가 멈췄고, 이를 막기 위해 개발자들이 야근과 철야를 반복했다고. 개발팀의 한 데이터 엔지니어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는데, 어느 월요일에는 실제로 기타를 들고 와 사무실에서 ‘월요 블루스(Monday Blues)’를 연주했다고 한다.
2002년 2월, 페이팔은 나스닥에 상장됩니다. 첫날 주가는 55% 급등했고, 실리콘밸리는 이 작은 결제 스타트업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상장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습니다. 전체 결제 트래픽의 70% 이상이 이베이에서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협력하면서도 경쟁해야 하는 이베이와의 관계는 계속 긴장 상태였죠.
이베이는 자체 결제 시스템 ‘빌포인트’를 밀고 있었고, “페이팔을 못 쓰게 하자”는 내부 논의까지 오갔습니다. 하지만 판매자들은 “결제가 빠르고 편하다”며 페이팔을 고수했고, 집단적인 반발에 이베이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 이베이는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합니다. 수년간 이어진 경쟁과 긴장이 마무리되면서, 페이팔은 글로벌 결제 플랫폼의 중심으로 공식 편입됩니다. 맥스는 27세의 나이에 약 3,000만 달러 규모의 지분을 정산받고 회사를 떠나게 되죠.
초기 멤버들 역시 대부분 페이팔을 떠났지만, 그들은 훗날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로 불리며 실리콘밸리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유튜브, 링크드인, 테슬라, 옐프, 팔란티어—그 모든 시작엔 페이팔이 있었습니다. 특히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기술 생태계를 넘어 정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되었죠.
한편 맥스는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었지만, 회사를 떠난 직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확한 목표가 없던 시기였어요.” 창업을 반복하며 실패를 견디는 삶에는 익숙했지만, 오히려 성공 이후의 공허함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음 뉴스레터에서 다룰 예정인, 맥스가 어펌(Affirm)을 창업하게 되는 또 다른 Day 0로 이어집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yPal_Mafia)
💬 “저도 제 아이디어를 들고, 세상의 온갖 회의론자와 싸우고 싶었거든요.” - 맥스 레브친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내가 만들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었나요? 처음에 그 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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