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 “바쁘시면 근처 다른 가게로 가라”는 팻말을 붙여둔 햄버거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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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미국의 3대 버거 중 하나인 파이브가이즈(Five Guys)를 아시나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즐겨 먹는 것으로 화제가 된 햄버거 브랜드인데요. 2023년 6월 드디어 국내에도 1호점 매장이 오픈했는데, 첫 날 오전에만 700명이 몰리고 이후에도 하루 평균 300팀이 넘는 어마어마한 웨이팅이 발생하며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죠.

파이브가이즈는 원하는 토핑으로 커스터마이즈한 햄버거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매장 주방에 냉동고와 타이머, 전자레인지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23개의 국가에서 1,80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이러한 파이브가이즈의 창업자인 제리 머렐(Jerry Murrell)은 유복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자라지도, 주목받는 학창 시절을 보내지도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만의 경영 철학으로 차별화된 햄버거 브랜드를 만들어냈고, 오늘날까지도 가족들과 함께 그 철학을 이어가고 있죠. 오늘은 파이브가이즈의 창업자 제리 머렐의 Day 0, 1960년대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자.
2. 마요네즈 블라인드 테스트: 오직 맛으로만 승부한다는 신념
3. 투자자들에게는 신뢰를, 매장에는 경영 철학을.
 

 

1.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자.

 

제리 머렐은 1948년 미시간주 북부의 작은 광산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부분 집을 떠나 시간을 보냈던 제리의 아버지는 그다지 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제리의 부모님은 일찍 이혼하게 되죠.

제리는 어린 시절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이후 광산 마을을 벗어나 미시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그는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졸업 후 사회로 나오는 것이 무척이나 겁이 났다고 하네요.

 

대학교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온 제리는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보험 판매 일을 하며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죠. 이혼 후 아내는 세 아이들을 데리고 플로리다로 떠나게 됩니다.

제리는 가족을 잃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심경으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늘 한 가지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세 아이들과 다시 함께 사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돈을 모으기로 결심합니다.

1970년대 중반 워싱턴 DC 지역에서 컨설턴트 일을 제안받은 제리는 버지니아주로 거처를 옮기며 두 번째 아내인 제이니를 만납니다. 일자리를 얻고 제이니와 결혼을 한 후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자, 드디어 지난 이혼 후 떨어져 지내야 했던 세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죠.

 

이 무렵 워싱턴 DC 지역에 정말 많은 돈이 있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제리는 재무 설계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한 학위를 다시 취득한 후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는데요.

한편 제리는 본업인 재무 설계사 일을 하면서도 부업으로 몇 가지 사업에 도전합니다. 텍사스에서 석유 사업을 하기도 하고, 생수 판매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죠.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해보았지만 어느 것도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제리가 햄버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 한 남자의 공이 컸다고 합니다. 제리가 자랐던 마을에서 작은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던 토니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항상 행복한 모습의 토니와 그의 햄버거를 먹으러 찾아오던 사람들의 모습이 늘 제리의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어느 날 제리는 우연히 메릴랜드주 오션시티라는 곳에서 감자튀김을 파는 ‘스래셔 프렌치 프라이(Thrasher's French Fries)’라는 가게를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20개가 넘는 가게들이 감자튀김을 팔고 있었지만 오직 스래셔에만 하루종일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이 모습을 본 제리는 햄버거 가게를 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제리의 파이브가이즈 창업에 영감이 되었던 스래셔 프렌치 프라이(Thrasher’s French Fries)
(출처: https://thrashersfries.com/)

 

📒 Editor’s Note: 작은 광산 마을에서 자란 제리의 고향 사람들에게는 햄버거를 만들 줄 아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햄버거 만드는 법을 어떻게 배웠냐는 질문에 제리는 “제 고향 출신 사람들은 햄버거를 만들 줄 모르면 살 수 없어요.”라고 답하기도. 가톨릭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던 제리에게 수녀님들은 “언젠가는 햄버거를 팔게 될테니 열심히 공부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고 한다.

 

아내 제이니를 설득한 끝에 제리는 3만 5천 달러의 사업 자금으로 1986년 버지니아주의 알링턴에서 첫 햄버거 가게를 오픈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제리는 오래된 햄버거 장비를 사들여 직접 수리를 했고, 임대료가 저렴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 가게를 얻었죠. 모두들 왜 그런 곳에 가게를 열려고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이에 제리는 “찾기 어려운 곳에 가게를 열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오도록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성공할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한편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지만 막상 그 이름은 고민하지 않고 있었던 제리는, 법인 설립을 위해 가게 이름이 필요하다는 변호사의 말에 우선 급하게 ‘파이브가이즈’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요. 첫 결혼 때 낳은 세 아들과, 제이니와의 결혼에서 얻은 넷째 아들 그리고 제리 본인을 포함해 생각해낸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제이니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또한 아들이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재무 설계사인 제리가 부업으로 시작한 햄버거 가게, 파이브가이즈의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1986년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첫 오픈한 파이브 가이즈 매장
(출처: https://www.fiveguys.com/the-five-guys-story)

 

📒 Editor’s Note: 첫 매장을 열기 위한 사업 자금이었던 3만 5천 달러.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이 돈은 사실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위해 모았던 돈이라고 한다. 제리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두 아들 채드와 맷을 앉혀놓고 “그동안 너희가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자금을 모았는데, 만약 너희가 대학에 가지 않는다면 이 돈은 햄버거 가게를 여는데 쓸거야.”라고 말했다고. 놀랍게도 제리의 말을 들은 두 아들은 망설임 없이 대학교에 가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2. 마요네즈 블라인드 테스트: 오직 맛으로만 승부한다는 신념

 

파이브가이즈는 현재 가족 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지만,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제리는 가족 모두가 참여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아내인 제이니와 아이들이 함께 뛰어들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제리는 정말 놀랐다고 하는데요. 매장 오픈 후에도 직원들의 대부분은 제리의 아이들이었고, 자연스럽게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햄버거 가게가 되었죠.

 

파이브가이즈의 첫 오픈날 1시간 반이 넘도록 손님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12시 30분을 기점으로 가게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첫날부터 많은 매출을 내며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임대료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제리는 이러한 파이브가이즈의 성공 비결이 ‘재료’에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파이브가이즈는 다른 프랜차이즈 햄버거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죠. 1986년 당시에도 맥도날드보다 서너 배 가량 비싼 가격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비싼 가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리는 고객들이 값싼 제품이 아닌 최고의 제품을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다른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 믿었고, 이를 위해서는 최고의 햄버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그는 가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좋은 재료를 선별해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80년대 파이브가이즈 매장 앞에 서있는 제리의 첫째 아들 짐(Jim Murrell)
(출처: https://www.reddit.com/r/80sfastfood/comments/11ingne/five_guys_in_the_80s/)

 

📒 Editor’s Note: 제리는 햄버거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스래셔(Thrasher)의 감자튀김 봉지를 살펴보았고, 감자로 유명한 아이다호주 릭비 지역의 감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릭비 지역의 릭 마일스라는 감자 공급업자에게 연락하여 파이브가이즈에 감자를 납품하기를 요청했다고. 당시 릭이 운영하던 업체는 굉장히 소규모였는데, 파이브가이즈와 계약을 맺은 후 현재 수백만 달러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좋은 재료가 옳은 선택이라는 제리의 신념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햄버거에 넣을 마요네즈를 고를 때, 제리의 아들들은 뉴욕의 한 브랜드 제품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해당 제품은 맛이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두꺼운 제형의 마요네즈여서 햄버거 안의 다른 재료들을 잘 고정해주는 역할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해당 마요네즈를 공급하던 사람이 정말 까탈스럽고 같이 일하기 힘들었던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파이브가이즈에서 식자재 구매를 담당하던 에이전트는 이렇게까지 힘들게 마요네즈를 구매해야 할 정도로 햄버거를 만들 때 마요네즈가 중요한 요소인지 의문을 표했죠.

 

그래서 제리와 가족들은 9개의 각기 다른 브랜드의 마요네즈를 가져와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놀랍게도 제리와 제이니,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뉴욕에서 온 바로 그 마요네즈를 골랐죠.

결국 해당 제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제리는 월말에 매출을 정산하며 재료값을 살펴보았는데요. 해당 마요네즈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미 비싸게 책정되어 있는 햄버거 가격을 더 올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리의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그는 “가격을 걱정해야 한다면 이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우리의 제품이 맛있고, 비싼 가격을 지불할만큼 고객들이 파이브가이즈를 좋아한다면 고객들은 우리를 찾아올 것이고, 만약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제리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지금도 파이브가이즈는 매장에 냉동고, 타이머, 전자레인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신선한 재료로 햄버거를 만들고 있고, 여전히 맥도날드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지만 약 40년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3. 투자자들에게는 신뢰를, 매장에는 경영 철학을.

 

버지니아주의 알링턴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가게로 시작한 파이브가이즈. 입소문을 타고 파이브가이즈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신문에 기사도 실리며 매장에는 점점 줄이 길어졌습니다. 이에 제리와 가족들은 두 번째 매장을 여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죠.

제리는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했지만, 햄버거 가게를 하나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리의 아들들은 파이브가이즈가 잘 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몇 명 있으니, 오픈 자금을 어느 정도 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죠. 결국 아들들의 노력 끝에 돈을 빌려줄 의향이 있는 이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리는 이들에게 단순히 대출을 받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로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제안합니다. 당시에는 투자를 받은 후 이익이 발생하면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말하며 투자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제리는 달랐습니다. 이익이 아닌 총 수익의 일정 비율을 매달 투자자들에게 지급하고, 언제든지 돈을 돌려받고 싶으면 돌려주기로 약속합니다.

제리의 주변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여 제리를 말렸습니다. 파이브가이즈가 조금이라도 사정이 안 좋아진다면 사람들이 모두 돈을 돌려달라고 할 것이 뻔하지 않겠냐고 했죠.

그러나 제리는 본인의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자금 사정이 곧 나아질 것이라 믿고 있었고, 오히려 언제든지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매달 정시에 정확하게 돈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2호점을 내기 위한 목표 금액인 15만 달러를 거뜬히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그때까지도 재무 설계사 일을 본업으로 이어가고 있던 제리는, 직장에서 고객에게 빗자루로 머리를 맞을 뻔한 사건이 있던 날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아내인 제이니는 극구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파이브가이즈가 2호점까지 오픈하기는 했지만, 햄버거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리는 본업이었던 재무 설계사 일을 그만두게 되고, 그 후 모든 가족이 파이브가이즈 사업에 전념하게 됩니다. 아내 제이니는 매우 체계적으로 가게의 전반적인 운영과 사무 업무들을 관리했고, 아들들은 투자자를 찾아다녔죠. 제리는 이러한 가족들이 없었다면 파이브가이즈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파이브 가이즈 매장에서 햄버거 모양의 모자를 쓴 제리와 제이니 부부
(출처: https://www.lecho.be/dossier/portraits/five-guys-une-histoire-de-famille/9970695.html)

 

제이니와 아이들은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17년동안 사업에 전념한 제리와 가족들은 2002년도에는 매장을 5개까지 확장하게 됩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리는 프랜차이즈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1990년도 말부터 제리의 아들들은 프랜차이즈를 하자고 제리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제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도록 설득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프랜차이즈에 대한 아이디어를 반대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제리의 아들들은 다른 브랜드에서 프랜차이즈 영업을 담당하고 있던 마크 모슬리라는 남자와 제리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한동안 파이브가이즈를 눈여겨 보고 있었던 마크는 파이브가이즈에 세일즈맨으로 합류하게 되죠.

그리고 아들들이 선물해준 ‘초보자를 위한 프랜차이즈’라는 책을 읽게 된 제리는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규칙들과 법적인 내용들이 굉장히 놀라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들들의 노력과 설득 끝에 결국 파이브가이즈는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제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가맹점에 파이브가이즈의 경영 철학을 설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제리 스스로도 “햄버거와 감자튀김만 팔면서, 비싼 식재료 비용에 대한 걱정을 하면 안 되고, 광고도 하지 않을 거다”라고 가맹점주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멍청한 말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 가맹점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이는 파이브가이즈에서 영업을 담당한 마크의 공이 컸다고 합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파이브가이즈의 프랜차이즈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마크
(출처: https://x.com/theMMQB/status/1014963890793443337/photo/1)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마크가 파이브가이즈에 합류했을 때, 제리는 마크의 프랜차이즈 영업 목표치를 늘 절반으로 낮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마크가 50개를 영업하려고 하면 제리는 25개로 줄였죠. 당시 제리는 그렇게 많은 가게를 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2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파이브가이즈는 미국 전역에 3,500개나 되는 프랜차이즈 가맹 영업을 성공하게 됩니다. 2000년도 초반 당시에도 파이브가이즈는 여전히 맥도날드보다 훨씬 비싸고, 조리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실제로 파이브가이즈의 한 매장에서는 “바쁘시면 이 근처에 좋은 햄버거 가게가 많이 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붙여두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오히려 사람들은 계속해서 파이브가이즈를 찾았고, 맛있는 햄버거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가격과 시간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지켜오며 파이브가이즈는 미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제리는 파이브가이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두 가지의 이유로 첫 번째는 자신의 직감에 귀를 기울이고 믿은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함께한 가족들을 꼽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제리와 가족들은 여전히 사업 초창기 때처럼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제리의 아들들은 각자의 관심 분야를 살려 매장 관리, 요리, 국제 금융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파이브가이즈의 사업에 기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리와 그의 다섯 명의 아들
(출처: https://x.com/TripleNetInvest/status/1749960724271841786/photo/1)

 

현재 23개의 국가에서 약 1,800여 개의 매장을 오픈한 파이브가이즈의 전 세계 프랜차이즈의 매출을 합산하면 20억 달러(약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한편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단순한 메뉴 구성으로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전략에 집중해온 파이브가이즈는 고객들의 계속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밀크쉐이크를 판매하지 않았었는데요. 결국 고객들의 성원에 못이겨 2014년부터 밀크쉐이크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햄버거와 마찬가지로 밀크쉐이크 또한 땅콩 버터, 베이컨, 딸기, 카라멜 등 고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직접 커스터마이즈를 할 수 있게끔 만들었죠.

오늘날까지도 파이브가이즈는 좋은 맛과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 스태프 교육, 임금,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며 “고객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 찾아오게 한다”는 경영 철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도 한국에 첫 매장을 오픈할 때도 파이브가이즈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본사 직원들이 파견되어 직접 트레이닝을 진행했다고 하네요.

 

 

💬 ”찾기 어려운 곳에 가게를 열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오도록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성공할 것임을 알 수 있을거라고 말했죠.” - 제리 머렐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제리는 함께한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파이브가이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요. 나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와 함께였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 좋은 품질과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가격을 비싸게 책정한다는 제리의 경영 철학에 공감하나요? 경영을 하며 타협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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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제로 인사이트 데이제로 인사이트 · 에디터

창업의 Day 0에서 마주한 고민을 전합니다.

댓글 1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두꺼운 제형의 마요네즈"는 뻑뻑한으로 번역하는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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