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서비스’를 떠올리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직 명함이 없는 대학생 분들이면 ‘리멤버가 뭐지?’ 싶겠지만 직장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이런 이미지가 떠오를 거 같습니다.
명함 관리 잘해주는 국민 명함 앱
요즘에는 이직 제안 받는 곳
직장인 커뮤니티
스타트업 덕후인 저(=태용)는 한국 그로스해킹의 전설, 미친 노가다로 국민 앱을 만든 곳, 미친 열정 같은 게 떠오릅니다. 2014~15년도에 명함을 사진으로 찍으면 실제 인간이 그걸 수기로 입력해주는 데 한 달에 몇 억씩 쓰고 있는 미친 스타트업이 있다는 얘기가 스타트업 바닥에서 큰 화제였기 때문이죠.
6개월에 수십 억씩 투자를 받았지만 망한다는 소리도 참 많이 들렸습니다. 인공지능 기술로 명함 관리해주는 경쟁자가 나오면 망할 거야, 수익 모델을 만들지 못해서 망할 거야 등등.

리멤버는 그 모든 걸 이겨내고 2021년에는 무려 1,600억 원을 투자 받고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대부분이 쓰는 비즈니스 포털, 일본에서 100만 명 이상이 쓰는 명함관리 앱을 만들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매출이 거의 ‘제로(0원)’였습니다.
11년 차 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의 성장 스토리는 사업에서 중요한 것, 그렇지만 종종 망각하게 되는 원칙을 일깨워줍니다.
화려하고 멋있는 기술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고객이 와우(WOW)하게 만드는 것.
창업자로서 리멤버 서비스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 대표님은 꼭 한 번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요. 대규모 투자 유치를 계기로 비전을 공유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주셔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대표님에 대한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사업에 미친놈(?!)이었어요. ‘고객 와우’에 집착하는 조직 만들기, 더 큰 꿈을 꾸고 그걸 이뤄내는 것 말고는 관심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짜루요!
※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질문 및 답변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국민 명함앱 드라마앤컴퍼니의 시작
Q. 창업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어요?
대학교 때부터도 성장과 성취에 목마른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동시에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돌이(전자공학 전공)인데,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카이스트 다니면서 군대도 병역특례로 갈 수 있었어요. ‘군대에 가면 뭔가 배울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군대도 현역으로 다녀왔어요. 심지어 자대에서 행정병으로 뽑아가려고 했는데 몸 쓰는 일을 경험하려고 군대에 왔다고 거절했고 육군 포병으로 구르다가 전역했습니다.
군대 다녀오니까 대학교 4학년이었어요.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주변 친구들은 군대 안 가고 병역특례, 대학원 등 자기만의 커리어를 밟고 있었고 혼자 뒤쳐진 느낌이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넥타이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친구분께서 OEM 납품하고 남은 넥타이를 개당 7,000원에 팔아볼 사람을 찾으시길래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분께 넥타이를 떼와서 온라인으로 팔다가 나중에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동대문에서 떼와서 팔았어요. 하다 보니 넥타이, 와이셔츠를 꽤 많이 파는 온라인 쇼핑몰이 됐는데 시장 경쟁이 심해지면서 그만두게 되었죠.
아직 젊으니까 나중에 제대로 배워서 커머셜(상업적인) 분야로 창업을 해보자고 결심하게 되었고, 가장 압축적으로 빠르게 일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인턴으로 취업했습니다. 컨설턴트로는 6년 정도 일했는데 다양한 기업의 문제 해결을 하다 보니 창업으로 풀만한 문제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Q. 드라마앤컴퍼니, 리멤버 사업 아이템은 어떻게 발견한 건가요?
BCG에 있을 때 미국에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이 너무 당연하게 링크드인을 쓰고 있더라고요. 미국 직장인이 링크드인을 얼마나 쓰는지 찾아보니 80%가 필수재처럼 쓰고 있었죠.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3%도 안 되는 사람들이 쓰고 있더라고요. ‘링크드인처럼 지식을 교환하고 이직 제안을 받는 등에 대한 니즈는 아시아의 직장인도 똑같을텐데 왜 잘 안될까?’ 생각을 해봤는데 문화적 차이가 있더라고요.
미국 직장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 한 일을 잘 포장해서 어필하는 게 중요해요. 반면 한국은 겸손의 문화가 있고 자신의 성과를 알리는 데 익숙하지 않죠.
또 링크드인에 프로필을 올려놓는다는 것 자체가 이직, 커리어 제안을 열어둔다는 건데 그런 행위가 회사에서 눈치보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대기업들에서는 링크드인에 프로필 올려놓는 임직원들을 모니터링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링크드인 본사에서도 링크드인이 아시아에서 성공하지 못한 원인을 문화 때문이라고 꼽고 있더라고요. 링크드인을 한국적 정서로 잘 풀어낼 수만 있다면 큰 사업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퇴사하고 창업 준비를 했죠.
Q. 링크드인의 어떤 부분에서 사업의 기회를 봤나요?
카카오톡이 메신저를 바탕으로 개인 소셜네트워크를 독점하고 그 위에 쇼핑, 헤어샵 등등 모든 것들을 붙여나간 것처럼 링크드인은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에 뭐든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아시아의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를 독점할 수 있다면 큰 사업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시작부터 명함앱으로 출발했나요?
아뇨. 일단 ‘링크드인의 구조를 한국에 맞게 로컬라이즈(현지화) 하는 것만으로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가 작동할까?’ 라는 가설을 세우고 링크드인과 비슷하게 프로필미라는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온라인으로 오픈되어 있는 프로필을 만들어놓고 만인에게 보여주는 형태였죠.

(그렇게 하니) 저희 사이트에 들어오는 분들 대부분이 비즈니스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보험 영업을 하시는 분들, 중고차 딜러 등 자신을 열심히 알려야 하는 분들이었어요. 이 방법으로는 한국의 링크드인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한 달 만에 서비스를 접었어요.
어떻게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핵심은 비즈니스 프로필이다’, 일단 이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지 식별이 가능한 프로필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된다고 생각했죠. 유독 아시아에서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명함으로 자신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명함 관리 솔루션을 제대로 만들수 있다면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를 독점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제품을 만들면서 초기 투자 유치를 하러 다녔습니다.
테헤란로의 미친놈들,
전설적인 노가다로 만든 고객 와우
Q. 리멤버 서비스 기획은 어떻게 했어요?
한국형 링크드인을 만들려면 국민 명함앱을 만들어야 했어요. 사용자들이 열광한 적 없는 앱을 만드는 게 첫 단추니까 이걸 성공 못하면 그냥 다 망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외면하지 않을 앱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고객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는데 그중 한 분이 엄청난 인사이트를 주셨는데 이런 내용이었죠.
나는 너무 명함관리가 힘들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 나서부터 너무 편하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명함 관리를 다 해줬는데 지금은 비서가 대신 다 해준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했죠. 인간 비서가 해주는 것처럼 앱으로 명함을 정확하게 입력해준다면 사람들이 열광하고 쓸 것이다! *OCR 같은 기술을 쓸 수도 있지만, 가장 정확한 건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기로 명함을 입력하기로 했어요.
처음 명함앱을 출시할 때 리멤버의 *태그라인이 이거였어요. 명함 관리 비서 리멤버.

개발자 두 명과 함께 앱과 앱 뒷단에서 손으로 입력하는 시스템까지 만들어서 출시하는 데 딱 한 달 정도 걸렸죠. 2013년 10월 31일에 앱을 출시했고 회사에 남은 돈은 12월까지밖에 남지 않았었죠.
절박한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잖아요? 단 한 명이라도 와우(WOW)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든지, 아니면 100만 명이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든지. 후자는 너무 챌린징한 일이니 전자에 절박한 마음으로 집중했죠.
예전에 시도했던 프로필미는 몇 개월 걸려서 만들었다가 한 달만에 접었어요. 당시 하루에 이 앱에 30-50명 정도 들어왔거든요. 어찌 보면 예쁜 쓰레기였던 거죠.
그런데 한 달만에 만든 리멤버는 (너무 많은 명함 입력 요청이 올까 봐) 처음 론칭했을 때는 주변에만 알음알음 홍보했는데 금방 입소문을 타고 엄청나게 많은 사용자들이 들어왔어요. 고객이 열광하는 서비스를 만든 거죠. 오히려 회사에 돈도 많고 기간도 많았으면 잘 안 됐을 거 같아요.
Q. 와, 그걸 어떻게 다 했나요?
그냥 다 사람이 하는 거죠. 명함을 찍으면 입력해드리겠다고 했지만 처음에 입력해야 될 명함을 500장, 1000장 이렇게 갖고 계신 분들도 있을 거잖아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입력하면 다 찍을 수 있는데 그것도 귀찮아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저희는 그런 거 그냥 사무실로 보내라고 했죠. 진짜 명함 관리 비서가 돼 드리겠다고요.
사무실에 사과박스로 명함들이 쏟아지고 막상 해보니까 수기 입력 비용이 많이 드는 거예요. 많을 때는 수기 입력 비용이 거의 1억 가까이 들었어요. 이게 비용을 줄이려면 줄일 수 있었지만 고객이 와우(WOW)하는 것, 원하는 비즈니스 프로패셔널들의 명함을 모으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냥 돈 쓰면서 달린 거죠.
회원 수 백만 명이 넘어갈 때쯤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비용을 줄여보자는 프로젝트를 했고 4달만에 80%까지 줄였죠. 지금은 거의 대부분 자동으로 입력하고 있고요.
Q. 투자 유치는 어떻게 했나요?
타는 돈이 많다 보니까 투자를 빨리, 많이 받았어요. 2014년 초에 엔젤 투자 2억 원, VC 투자 3억 원, 정부연계 5억 원 정도로 초기 시드를 10억 원 정도로 만들었고 그해 여름에 다음 라운드를 열어서 20억 정도를 유치하고, 또 6개월 있다가 65억 원을 유치했죠.
출시하고 1년 반 동안 100억 정도 빠르게 확보를 했는데 유저 성장 속도도 빨라서 투자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명함앱을 만드는 거랑 한국형 링크드인을 만드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냐” 등등 질문은 많이 받았는데, 결국 아시아 시장에서도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기회가 열린다는 것, 그리고 그건 리멤버팀이 잘할 것이라는 걸 믿어주시는 분들이 투자해주셨어요.
2년 만에 200만 사용자를 확보했고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던 거 같아요. 오히려 이후가 더 힘들었죠.
스타트업이여, 신의 한 수를 찾지 말라!
Q. 2년 만에 200만 명이 쓰는 국민 명함앱을 만들었는데 뭐가 힘들었나요?
스스로 압박감을 준 거죠. 투자자들도 한국의 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크를 독점한다고 했는데 그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고, 임직원들도 그 비전 언제 되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움츠러든 거죠.
스타트업이면 빠르게 많은 시도들을 해야 하는데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오래 고민하고 큰 거 한 방을 찾았어요. 국민 명함앱까지 잘 왔으니 신의 한수를 찾아서 강펀치 날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달까요.
그러면서 모든 게 굉장히 느려졌던 것 같아요. 차라리 기반이 없었으면 오만가지를 해보면서 잽을 날려봤을 텐데. 2017년도에 처음으로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처음으로 고민해봤던 거 같아요. 그때 했던 모든 프로젝트는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Q. 어떤 시도들을 했나요?
200만 유저 기반으로 비즈니스 SNS 형태의 서비스를 론칭해봤습니다. 세 가지 시도를 했는데 첫 번째는 ‘인맥 라운지'였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 찾는다’는 글을 쓰면 연결된 일촌들에게 보여지고 서로 사람을 소개해주는 거였어요. 해보니까 비즈니스 SNS를 하기에는 아직 규모가 너무 작았어요. 고객이 와우하는 경험을 만들지 못했죠.
두 번째는 비즈니스 메신저를 했거든요. 뭔가 카톡에서는 일 이야기 같은 걸 얘기하기 싫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일 이야기는 리멤버에서 하시라고 메신저 기능을 넣었는데 그것도 잘 안됐죠.
‘선물하기’기능도 출시했었오요. 연초면 승진, 이직 등등 축하하면서 선물 많이 보내잖아요. 리멤버에서 커리어 업데이트 소식을 보고 선물을 보내는 기능이었는데, 그것도 잘 안 됐었고요. 이때 시도했던 것들이 지금 다시 하면 다 일리 있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그때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죠.

Q. 왜 다 잘 안 됐던 거 같아요?
SNS 접근이 성공하려면 리멤버 안에서 연결될 수 있는 관계망이 컸어야 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평균 연결망이 25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무모한 시도를 했던 거예요.
그때 생각은 이랬어요. ‘평균 25명이지만 100명, 200명인 사람들도 있잖아? 그들부터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질렀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죠.
이때 ‘스타트업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좀 하게 됐던 거 같아요. 스타트업은 세상에 아직 안 풀리고 있는 그 문제를 찾아서 고객에게 놀라운 경험을 줘서 가치를 만들고 싶은 혁신의 집단이라는 것까지는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하나가 더 붙어야 된다는 걸 몰랐죠. 방법론적으로는 빠른 가설 검증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잊었던 거죠.
빅뱅 같은 걸 한 번에 터뜨려서 세상에 보여준다는 건 스타트업이 해야 되는 기본적인 일하는 방법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고객이 “와우” 할지 아닐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뭐든 빨리 해보는 쪽으로 조직 구조, 체질을 바꾸었습니다.
네이버의 300억 투자, 프로덕트의 전설 라인 신중호 대표와의 만남
Q. 네이버, 라인한테 인수된 건 언제에요?
이게 네이버한테 드라마앤컴퍼니, 리멤버가 인수됐다고 기사가 나오는 바람에 그런 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이 아니에요.
면접 볼 때도 항상 이야기하거든요. “우리 네이버 계열사 아니고 그들은 주주일 뿐이다.” 정확히는 2017년 말에 네이버에서 기존 투자자들의 주식을 사가면서 신주로 300억을 투자해주신 것이고 저도 제 지분을 하나도 팔지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2017년 8월 초였거든요. 라인의 신중호라는 모르는 분한테 연락이 왔어요. 알고 보니 라인의 CEO이자 과거 검색 엔진 ‘첫눈'을 장병규 대표님과 같이 창업했던 전설적인 분이었죠. 신중호 대표님을 카페에서 만났는데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리멤버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 설명해달라”
자료 같은 것도 안 들고 가서 15분 정도 설명을 드렸어요. 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크를 독점할 것이다, 비즈니스 포털을 만든다는 얘기였어요. 신중호 대표님이 쭉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만약 그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뵙자고 했어요.”
“지금 라인이 10조 정도 하는 회사인데 사람 찾는 비즈니스, 사람 검색 사업에 또 그만큼 기회가 있을 거 같습니다. 누군가 이 사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하려고 했는데 잘 풀고 계신 걸 보니 우리가 도와서 같이 하고 싶습니다.”
남의 말 안 들으려고 창업을 한 건데 대기업한테 투자 받으면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싫다고 말씀드렸죠. 그렇지만 그게 인연이 돼서, 또 신중호 대표님이 전설적인 프로덕트를 만드신 분이었기 때문에 이후로 몇 번 더 만나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나누었어요.
Q. 어떤 고민을 나누었나요?
두 가지 정도였는데, 그때가 계속 실패하고 있을 때였잖아요? 하나는 ‘올해에 이러이러한 시도를 했었고 다 실패하고 있다. 우리를 너무 좋게 보지 말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조직 내부에서 최재호 대표 마이크로 매니징이 심하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질문에 신중호 대표님은 이렇게 답했어요.
“원래 프로덕트는 잘 안 됩니다. 100개 시도하면 한두 개 될까, 말까 하기 때문에 결국 성공의 99할은 실행력입니다. 원래 안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조직 규모가 30명 규모인데 대표가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조직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도 그렇게 일을 한다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요.”
이러한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 점점 더 신뢰하게 됐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을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앤컴퍼니 경영진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도 네이버, 라인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게 재무적, 전략적인 측면 모두에서 좋은 방향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결정할 때는 되게 편안하게 결정했어요. 네이버, 라인이 기존 VC분들의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기존 투자자분들께서 더 함께 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셨죠.
Q. 투자 받고 뭐가 달라졌나요?
네이버에서 기존 투자자분들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회사 성장자금으로 300억을 투자해주셨는데, 이 과정에서 깨달은 건 우리가 이것저것 확장하기에는 아직도 규모가 작다는 것이었어요.
‘적은 규모에서 신의 한 수를 찾겠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것을 접고 진짜 국민 명함앱이 되자. 명함 앱으로 회사를 2배 더 빠르게 성장시키고 일본에 아직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을 때 빠르게 진출해서 거기서도 대표적인 명함 앱이 되자’는 방향으로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

7년 간 돈 안 벌었습니다. 못 번 게 아니에요.
Q. 잡코리아에 드라마앤컴퍼니 2019년도 매출이 3억원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이게 맞나요?
네. 놀라실 수도 있는데 2019년도까진 돈을 안 벌었습니다. 그 2019년도 매출 3억도 어떤 이벤트 같은 게 있어서 잡힌 걸 거예요.
Q. 투자자들이 뭐라고 안 하던가요?
얘기는 많았죠. ‘명함관리 어차피 다 리멤버로 하고 있고 이거 유료화만 해도 손익분기는 금방 맞출 거다’ 등등.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면 훨씬 임팩트가 큰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Q. 매출 없이 성장하는 게 겁나는 일일 것 같은데, 북극성 지표 같은 게 있었나요?
있었죠. 하고 싶은 사업이 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크를 독점하는 것이니 커리어, 경력직 채용 플랫폼으로 매출을 발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리멤버 커리어의 경우 첫 번째 북극성 지표로 인재 풀 숫자 자체가 중요했고, 두 번째는 앱 내에서 발생하는 이직 제안 건수가 중요했죠. 그 다음으로는 결과적으로 채용, 스카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건수를 봤습니다.
일단 충분한 인재 풀을 갖추고 이직 제안이 활발해지는 시점까지는 매출은 제일 나중의 일이었어요. 돈을 벌려면 기업들한테, 헤드헌터한테 받아야 하는데 충분히 트래픽이 쌓이기 전에 돈을 받기 시작하면 트래픽이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과금을 시작해서 돈이 쭉쭉쭉 벌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계산이 안 서지만 이 무모한 여정을 뚝심 있게 지지해준 동료들과 파트너들이 있어서 긴 시간을 인내해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지지가 없었으면 저도 마음이 쫄려서 앱을 유료화한다든지 했을 수도 있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ㅎㅎ) 밀어붙인 결과 진짜로 낙이 왔죠. 그동안 돈을 못 번 게 아니라 안 벌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Q. 리멤버 커리어 내에서 얼마나 이직 제안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10,000개의 기업과 2,000명의 헤드헌터가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맞는 잡포지션을 제안하고 하루 10,000건의 이직 제안이 오가고 있습니다. 요즘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리멤버 커리어로 이직 제안 안 받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입소문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Q. 그래서 리멤버는 돈을 뭘로 버나요?
경력직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매출 성장의 메인입니다.
또 기업에서 필요한 잠재 고객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B2B 광고 솔루션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B2B 비즈니스는 영업 대상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에게 세일즈나 마케팅이 닿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운데, 리멤버의 솔루션을 통하면 바로 닿을 수가 있죠.
나아가서는 각 산업별 기업의 다양한 직군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솔루션도 내놓았어요. 그것도 굉장히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고요.
기분이 굉장히 좋은 것은 이건 우리만 할 수 있는 사업이고 경쟁사가 없다는 겁니다. 리멤버가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인의 정신 : ‘고객와우’, ‘빠른실행’, ‘팀웍’
Q. 명함 수기 입력 같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 소위 ‘노가다'는 기피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인식을 바꾸는, 드라마앤컴퍼니만의 조직문화가 있나요?
저희 회사 이름이 드라마앤컴퍼니(DRAMA&COMPANY)인데요. 창업을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크게 꿈꾸고 그걸 이루어내는 것이었어요. 영어 문장으로는 “dream it and make it happen”이죠. 이걸 줄이고 줄이다 보니 드라마앤컴퍼니가 됐습니다.
꿈을 꾸는 건 많은 사람이 하지만 이루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회사 이름처럼 원하는 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 것이 저희 DNA에 있습니다. 꿈을 실현하려면 본인이 높은 기준, 치열함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드라마앤컴퍼니의 핵심 가치는 고객와우, 빠른실행 그리고 팀워크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자면 고객의 놀라운 경험을 위해서 미친 듯한 지향점을 갖고 있는 사람, 완벽함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한 사람, 서로 동기부여할 수 있는 팀웍을 가진 사람이 드라마앤컴퍼니에 부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만 회사에 입사해야 하고 입사하셔서도 조직의 롤모델이 돼야 됩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드라마앤컴퍼니의 롤모델은 ‘역량과 열정으로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사람’입니다. 매달 ‘이 달의 드라마인’을 한 분씩 뽑아서 시그니엘 숙박권을 드리면서 박수쳐드리기도 하고 사내 슬랙 칭찬하기 채널을 통해 원팀스피릿, 고객집착 등을 칭찬하면서 이러한 가치가 우리 회사에 중요하다는 걸 알리죠.
우리가 기회를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데 스스로 의미 있는 일터가 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기회를 연결해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고로 수준 높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 확실하게 보상 받는 곳, 일하는 재미가 있는 곳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기업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예가 있다면?
저희는 일단 화려한 거, 효율화에 관심이 없어요. ‘얼마나 고객에게 주는 효과가 크냐, 고객이 와우를 하는가’에 모든 임직원이 다 몰입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멤버 커리어 내에 인간AI 계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AI인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이에요. 어떤 기업에 어떤 인재를 추천해줬을 때 기업이 ‘와우’ 하는지를 최대한 인간AI들이 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기술로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도 회사가 성장했으니 좀 더 화려하게 AI랩의 연구원분들이 기술로 커리어를 연결해주는 것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술로 2–3달 동안 연구해서 배포하는 게 중요하냐 고객이 지금 와우하는 게 중요하냐’를 따져보면 고객이 중요하죠. 사람의 상상으로 사람이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 손으로 해보고 방법을 찾으면 효율화하고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B2B 광고모델도 알고리즘을 먼저 연구하고 짜는 게 아니라 사람 눈으로 확인해서 일단 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자동차 광고를 많이 봤던 사람들한테 자동차 광고를 또 보여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수만 개의 데이터를 사람들이 다 발라내서 테스트를 해봅니다. 거기서 고객 와우를 찾아냈을 때 AI 기술을 붙여서 고도화, 효율화를 하는 겁니다.
Q. 대표님이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저희는 5명 조직도 대기업일 수 있고 10,000명 조직도 스타트업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더 커지고 플랫폼 파워가 더 커져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고객 와우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절박한 실행력'이고 이걸 잃는 순간 저희는 스타트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 갖고 잘 됐으면 애진작에 잘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우리의 일하는 정신이 돈으로 인해서 희석되지 않도록 더 조직을 단단하게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머릿 속에는 온통 그것밖에 없어요. 요즘에도 면접을 직접 다 보는데 마지막 20분 동안은 계속 문화 핏에 대한 얘기를 해요. 오퍼레터를 받더라도 절박하고 치열한 실행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오시지 말라고 해요.
리멤버의 정신을 더 공고히 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혁신적인)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정신을 잃는 순간 우리는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만드는 ‘인적자원 재배치 프로젝트' 리멤버
Q. 최근 1,600억 원의 투자를 받았어요. 어떤 배경에서 유치하게 된 건가요?
더 과감해지기 위해서 받았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더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그림을 더 크게 상상해보자. 그리고 우리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좋은 연합군도 만들어서 미친 짓 한번 해보겠다’고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Q. 무슨 얘기를 하면서 투자 유치를 클로징했나요?
대한민국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인적자원 재배치를 해내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대한민국에서 경제활동에 필요한 사람과 정보의 비대칭을 저희가 다 풀어내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이를 통해 개인은 더 나은 커리어 기회로 연결돼서 더 많은 행복이 주어질 수 있고 기업에서는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들이 배치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죠.
투자자분들께 이 게임에 베팅하고 싶다면 투자를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7년 간 매출 없이 성장하다가 이제 몇 가지 강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냈지만, 지금까지 어떤 매출을 만들었고 어디까지 검증을 했느니 그런 얘기보다는 대한민국 경제에도 임팩트를 만드는 데 가슴이 뛴다면 같이 해보자고 말씀드리면서 투자자분들을 설득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기회를 연결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과 다른 나라 간의 연결, 다른 나라 내에서의 연결까지 하고 싶죠. 이미 오래전에 일본에 진출해서 시장을 이해하고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습니다. 유니콘에서 그치는 가능성이 아니라 10조 이상, 데카콘 이상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저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리멤버의 비전이 말이 되는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커리어 시장이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우리나라 채용 시장은 신입 공채 중심의 시장이었죠. 기업에서 신입을 뽑아서 교육한 후 부서에 배치하고 평생 쭉 한 직장을 다니는 구조였죠. 하지만 지금은 경력직 수시채용 형태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력직의 속성을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지금 현재 이직을 알아보고 계시고 준비하시는 분은 경력직 전체의 5%밖에 안 됩니다. 반면 좋은 커리어 기회가 있다면 직장을 옮기겠냐는 질문에는 70%가 그럴 수 있다고 답을 합니다.
전통적인 잡포탈에서는 경력직이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가야 되는 구조에요. 하지만 경력직 대부분은 현직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포지션을 찾아가야 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께는 이러한 기회가 당신의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제안이 가야 하고, 리멤버 커리어가 그 기회를 열어드리는 거죠.
Q. 리멤버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잠자는 시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이고 20-30년 동안 일을 하는데, 일할 때는 불행하고 집에서만 행복하면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일할 때 행복하려면 성장하는 기쁨, 그를 통한 성취의 기쁨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느끼는 것에 일조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데 정보비대칭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요. 리멤버 커리어를 통해 커리어 관점에서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으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 본 아티클은 2022년 3월 공개된 <2000억 투자받은 직장인 어플 '리멤버' 창업부터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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