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22년 회고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콘텐츠를 꼽아보니, 내게는 넷플릭스 시리즈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플레이리스트는 스포티파이의 창업기 전후 스토리를 6명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다큐드라마다. 창업가, 자본을 책임졌던 코파운더, 변호사, 개발자, 음반업계 음반사 대표, 아티스트까지. 스포티파이라는 기업의 핵심적인 인물과 한 단계 더 넓혀 산업과 고객의 이야기까지 담은 드라마였기에 이 시리즈를 본 주변 스타트업 사람들과 이야기해봐도 대부분 흥미롭게 봤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 것은, 이 시리즈 안에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바라보는 내용도 많았다는 것이다. 각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우리 회사의 목표를 어떻게 생각하고 스스로 어떻게 동기부여 되는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를 해결할 돌파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각자가 가진 배경이 모두 달랐고,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도 달랐다. 그럼에도 스포티파이는 풀고자 하는 문제를 해결했고 그들은 팀으로 뭉쳤다.
“우리는 팀으로서 해냈어요!”라는 메시지만 느껴졌다면 이 시리즈가 그렇게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다가오고, 팀 내에서의 마찰도 어찌할 바 모를 외부의 압력도 모두 보여주었기에 그들이 개개인으로서, 그리고 팀으로서 갖고 있는 신념 역시 빛났다고 느꼈다.
22년을 마무리하면서 올 한 해 무엇을 느꼈는가 하고 되돌아보니 두 가지였다.
- 팀이 정말 중요하다.
- 나 스스로 뚜렷한 관점을 가진 채로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무래도 이 플레이리스트 시리즈 역시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어, 이 시리즈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2가지를 되짚어보며 22년을 마무리한다. (아직 시리즈를 안 본 분들에게는 이 내용이 스포일러라기보다는 티저로 작용하기를 바라며) 창업자의 집념이 드러난 장면과 인재를 팀에 영입하는 장면, 두 가지를 소개한다.
아직 안 본 분들은 그 외 장면들을 꼭 본 시리즈를 보며 직접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1. 창업자의 집념
창업자 다니엘 이에크(Daniel Ek)는 시리즈 내내 고객이 플레이를 눌렀을 때 로드가 걸리지 않고 음악이 바로 재생돼야 함을 강조한다. 당시에 불법 P2P 유통서비스는 음악을 무료로 듣게 했지만 (그러려면) 하나 하나를 다운 받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기에, 다니엘이 풀고자 했던 문제는 ‘지연 없는 스트리밍’이었다.
제품 단에서 그 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구현될 수만 있다면 음반 관계자도 스포티파이도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는 모델링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
한 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개발자 안드레아스가 재생 시 지연속도를 0.5초까지 줄여서 다니엘에게 선보였을 때, 둘 사이에는 다음의 대화가 오간다.
“너무 늦잖아.”
“이 정도면 정말 예술이야.”
“0.5초는 너무 늦어. 노래 듣자고 쓸데없이 0.5초를 왜 기다려. ”
“얼마면 수긍하겠어?”
“0초.”
한참 시간이 지나, 0.5초에서 0.25초까지 줄였을 때의 대화다.
“현재 지연속도는 0.25초야. 0.2초 이하면 인간의 귀는 바로 듣는 차이를 못 느껴. 겨우 0.05초 차이야.”
“내겐 충분하지 않아.”
개발자 안드레아스는 불가능하다며 화를 내고 사무실을 뛰쳐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인터넷 규약의 일부를 깨고 데이터 유실을 감수하면서도 서비스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풀어내고야 만다.
우리 팀에서 해결해야 할 고객의 정말 중요한 문제를 다니엘은 시작부터 강조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 가혹해보이기도, 독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집념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2. 인재를 팀에 영입하는 방법
다음 장면은 변호사 페트라의 합류 장면이다.
코파운더였던 마틴이 변호사 페트라를 영입하기 위해 사무실에 초대하고, 소피아에게 팀과 제품을 소개하는 장면이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커피챗을 하기 위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어색한 사무실에 가본 경험, 혹은 반대로 누군가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사무실로 초대해서 팀과 사무실(때론 공유오피스)을 열심히 소개해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좋다.
현재 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뛰어나고 천재적인지를 설명하는 그에게 아직은 회의적인 변호사 페트라가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사무실에 평범한 사람은 없어?”
그러자 마틴은 말한다. ‘플레이어를 직접 시험해봐.’
재생 지연이 없는 스포티파이를 경험해보자마자 이어지는 페트라의 반응.
“이게… 잠깐만 어떻게 바로 나오지? 노래를 받아야 하는 거잖아.”
영입하고자 하는 한 명의 인재는 고객이나 다름없는,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고객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업이나 제품이 무엇인지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시켜주는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와서부터 줄곧 외부인의 자세로 있던 페트라는 스포티파이를 경험하자마자 그 효용에 대해 바로 체감해버렸다. 그리고는 음반사가 이 서비스를 무조건 막으려 할 것이라며, 이 서비스가 마주한 문제에 대해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자연스럽게 마틴은 그래서 당신을 불렀고, 그것이 고용하려는 이유라고 말한다. 공감을 이끌어냈고, 이제 문제를 꺼내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는 단계. 여기서 마틴은 비전을 꺼낸다.
"우린 음악 산업 전체를 뒤집고 싶어, 페트라. 네가 음악 역사의 새로운 장을 쓸 기회라고. 뭔가를 창조하는 거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할 동력과 법적 문제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 때와 장소가 여긴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아."
어느덧 8부 능선을 넘은 페트라, 본인도 모르는 새 고객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서버에 몇 곡이나 있어?”
“전부 다 있어.”
“어떻게 노래가 다 있어?”
“맞아. 몽땅 있어. ”
명확하게 보여주고, 왜 당신을 필요로 하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전으로 설득하고, 명확하고 간단하게 한 번 더 보여준다.
이 시퀀스까지 도달하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분명히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목표로 해야 할 장면임은 분명하다.
시리즈를 보고 스포티파이에 더욱 관심이 생겨 여러 자료들을 찾아봤다. 창업자 다니엘 이에크의 한 인터뷰가 시리즈에서 받았던 것과 동일한 인상을 주었다. 스트리밍으로 음악 시장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고, 정말 잘 될것이라 생각했더라.
‘스포티파이를 시작하는 데만 2.5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계속 했다는 점. 그리고 경험과 실력이 쌓이면서 점점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힘이라는 것.’
다니엘 이에크의 단단한 인터뷰로 글과 2022년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