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아티클
#마인드셋 #아이템 선정 #피봇
카카오가 5000억에 산 32살 창업가의 회사 이야기

글로벌 콘텐츠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웹소설 플랫폼으로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래디쉬’ 서비스를 만든 회사, ‘래디쉬 픽션(이하 래디쉬)’입니다. 

 

래디쉬 미디어, “유저와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는 직관보다는 데이터가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래디쉬는 할리우드의 제작 방식인 ‘집단 창작’을 웹소설에 적용해 빠른 속도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며 성장 곡선을 그려왔는데요.

2021년 5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래디쉬를 5000억에 인수하면서, 이승윤 대표는 32세라는 젊은 나이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창업가로 떠올랐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졸업 후 25살에 창업에 뛰어들어 32세에 대규모 엑싯*에 이르기까지, 이승윤 대표의 인생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곧게 뻗은 직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수많은 좌절과 실패에서 얻은 경험이었는데요. 그는 앞으로도 “절박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만큼, 여전히 꿈을 향해 뜨겁게 달리고 있습니다. 도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이승윤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Q.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 철학, 경제를 전공하셨다고요. 창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사업하는 게 멋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와 역사 같은 학문을 좋아해서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했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토론 클럽 ‘옥스퍼드 유니언(Oxford Union)’ 행사 무대에 선 래디쉬 이승윤 대표.

 

Q. 옥스퍼드 유니언의 최초 한국인 회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옥스퍼드 유니언’은 1800년대에 설립돼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인 역사가 긴 토론 단체에요. 여러 명의 영국 총리뿐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 작가, 기업가를 배출했고요. 거기서 한국인 최초로 회장이 됐어요. 소수인종으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까지 경험이 정말 많은 자신감을 주었죠.

회장이 되면 유명한 연사들을 클럽에 초청할 수 있는데요. 당시 ‘강남스타일’이 유행할 때라, 가수 ‘싸이’ 씨를 초청하기도 했어요.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 남는 연사가 있어요. ‘집 없는 억만장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투자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Nicolas Berggruen)’이라는 분인데요. 평소 동양철학이나 아시아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분이세요. 

그분이 연사로 오셨는데, 마침 동양인이 회장을 맡고 있으니 질문이 많이 오고 갔어요.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Q. 그 때 창업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요?

베르그루엔과의 인연이 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대학 졸업 1년 전쯤, 베르그루엔이 한국에 출장을 오게 됐어요. 그분이 유일하게 잘 아는 한국인이 저라서, 베르그루엔이 체류하는 동안 2주 정도 비서 역할을 하게 됐죠.

 

니콜라스 베르그루엔(가운데)과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당시의 래디쉬 이승윤 대표

 

한국의 벤처기업가를 같이 만나는 일정에도 동행했어요. ‘넥슨’의 ‘김정주’ 대표님, ‘다음’의 ‘이재웅’ 대표님 같은 분들이 계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기업의 대표라고 하면 전형적인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다르더라고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호기심 많은 학생처럼 많은 질문을 던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모습이 소년 같더라고요. 오히려 생각이 닫혀 있는 제 또래보다도 더 젊게 느껴질 정도로요. 

더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저 분들처럼 소년 같은 상상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참 부러웠어요.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Q. 그 경험이 대표님을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끌었군요.

저는 항상 학교 내에서 공부, 짜인 선거 등 규칙 속에서 살았거든요. 규칙 속에서 잘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사업처럼 혁신을 이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영역에서는 경험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벤처기업가들처럼 새로움에 뛰어드는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지금 창업하지 않고 바로 취업하면 굉장히 딱딱한 어른, 도전을 안 하는 어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생의 큰 도전 자체를 못 하겠구나 싶었죠. 굉장히 두려웠어요. 그래서 창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Q. 그때 당시와 지금의 마음가짐을 비교해본다면 어떤가요?

첫 창업으로부터 7년 정도가 지났네요. 그 당시에는 취업하면 도전할 수 없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했던 생각은 틀린 생각인 것 같기도 해요.

저도 시작한 지 이제 막 7~8년밖에 안 된 거잖아요. 성공한 창업자들을 보면 첫 직장이 창업이 아니었던 경우도 많고요.

 

Byline Wants To Crowdfund Media Pluralism | TechCrunch
2014년 당시 이 대표가 창업했던 미디어 ‘바이라인’(Byline).

 

Q. 2014년, 런던에서 ‘바이라인(Byline)’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회사였나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한 저널리즘 플랫폼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정치와 언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당시, 탐사보도 같은 것들이 죽어가고 있었어요. 탐사보도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수익화 구조로 크라우드 펀딩을 택했고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탐사보도 하고 싶은 기자나 지식인이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그 사람들이 만들 결과물을 미리 발표하고, 플랫폼에서 독자에게 자금을 펀딩 받아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저널리즘을 수익화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Q. ‘위키리크스(WikiLeaks)’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를 인터뷰하기도 했죠?

줄리안 어산지가 주영 에콰도르 대사관에 대피하고 있을 때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요. 논란이 많은 인물이잖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인터뷰하러 갔을 때, ‘세계 정부의 적을 만나면 나도 감시 당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뭔가 금지된 일을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재밌었던 기억이에요.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체포될 당시의 CNN 보도

 

Q. ‘웹소설’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피봇을 결정하셨던 이유가 있었나요?

저의 재미와는 별개로, 결국 정말 소수의 이슈만 크라우드 펀딩받을 수 있더라고요.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없어졌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현실적인 가설을 붙잡고 있었죠. 운영 자금이 3~4개월 치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텍스트 콘텐츠로써 저널리즘의 반대편에 있는 소설을 다루는 래디쉬로 피봇(Pivot)*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7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서 스피치하고 있는 래디쉬 이승윤 대표. (출처 : 스타트업얼라이언스)

 

Q. 왜 웹소설에 주목했나요?

그때가 딱 적절한 시기인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당시 한국은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보는 시장이 미국보다 먼저 열린 상태였어요. 반면 미국은 스마트폰이 아닌 킨들 같은 e북 리더기로 책을 읽는 분위기가 여전히 대부분이었어요. 한국보다 3~4년 뒤에야 모바일 독서 시장이 열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마션>도 웹을 기반으로 연재되어 흥행한 웹소설이거든요. 이런 성공 사례들도 이미 있겠다,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Q. 피봇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실리콘밸리에 진출했는데요.

바이라인에서 래디쉬로 피봇 하고 투자받을 경로를 탐색하고 있을 때였어요. 대학교 선배이면서 실리콘밸리 엔젤투자자로 활동하시던 ‘찰리 송허스트(Charlie Songhurst)’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께서 런던에서 시드 투자를 받기까지는 12개월 걸리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1개월 걸린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배우가 되고자 하면 할리우드에 가는 것처럼, 기업가로 성공하려면 실리콘밸리로 빨리 나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조언을 믿고 2016년 1월에 실리콘밸리로 갔죠.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Q. 네트위크 등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한두 달 만에 월매출이 1만 달러(한화 약 1200만원) 정도 생겼어요. 이 지표를 가지고 엔젤투자자를 만나기 시작했죠.

실리콘밸리에는 인맥이 전혀 없으니, 링크드인을 통해 실리콘밸리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창업자들에게 계속 연락했어요. 계속 연락하며 투자자를 소개받으려 했고 인연의 끈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자기가 이미 투자한 창업자에게서 오는 소개를 굉장히 좋은 레퍼런스라고 생각하더라고요.

 

Q. 실리콘밸리에서의 첫 투자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맷 험프리(Matt Humphrey)’라는 투자자가 저희의 첫 투자자였어요. 맷 험프리는 네다섯 번 정도 사업에 실패하고, 다시 시도한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사업에서 18개월 만에 회사를 2,000억 원에 매각하며 큰 성공을 이루신 분이에요.

당시 그분의 나이가 28~29살 정도였다고 해요. 저보다 대여섯 살 많은 사람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크게 성공한 경우를 그때 처음 봤죠. 그래서인지 그 분도 제가 이미 한 번 실패해서 피봇 해봤다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웹소설 플랫폼은 이미 아시아에서 증명된 비즈니스 모델이고, 초기 매출 데이터도 나왔다고 하니까 제 발표를 들은 지 30분 만에 “내일 입금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Real Estate Whiz | Carnegie Mellon Today
카네기 멜론(CMU) 투데이와 창업가로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맷 험프리. (출처 : CMU Today)

 

Q. 엄청나게 빠른 속도네요. 실리콘밸리의 강점이 그런 데 있는 것 같아요.

런던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요. 영국에서는 뭔가 새로운 걸 하겠다고 하면 “Why?” 이런 식이었거든요. ‘왜 하냐’는 반응이 전반적이었어요.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는 “Why not?”, 그러니까 “한번 해보면 어떠냐”는 식이에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자기가 조언해줬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5~10년 뒤에 억만장자가 되어있는 경험을 많이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 성과가 없는 친구들도 크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도전을 막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태도가 되게 감명 깊고 감동적이었고요.

 

Q. 이후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 다방면으로 뛰어다니셨다고요. 어떤 전략이 있었나요?

맷 험프리가 투자하고 나서 “Be a machine gun, not a sniper”라고 하더라고요. 머신 건처럼 총알을 쫙 뿌려야지, 저격수처럼 한 명만 설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웬만한 엔젤투자자들은 자기 시간이 워낙 소중한 사람들이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기 때문에 안 되는 사람을 계속 설득해봤자 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그래서 매일 두세 명씩 찾아가서 발표하고 또 발표했어요. 잘 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을 소개받기도 하고요. 

그렇게 2016년 말까지 30억 정도를 모았던 것 같아요. 이제 드디어 인생이 풀리는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괜찮은 투자자들이 나한테 투자해줬으니까 드디어 사업이 풀리겠구나’라는 기대감에 벅차서 뚜껑을 열었는데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거의 4년 동안 매출이 거의 변동 없더라고요.

 

Q. 스타트업에 4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인데요.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중요했겠네요.

정체가 계속되니 전략이 틀린 건지, 아이템이 틀린 건지, 팀이 틀린 건지 하나씩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시기에는 정말 좋은 분들이 와주셨는데도, 팀이 와해돼서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하기도 했고요. 계속해서 리빌딩에 들어갔죠.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사업을 할 자격이 있나?’, ‘나한테 경영자의 자질이 있나?’ 생각하면서 한계를 느꼈어요. 그 누구보다 성장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스타트업을 키워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을 모셔와 CPO(최고제품책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같은 리더진을 꾸렸어요. 그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마음, 도움이 되어달라는 마음으로 다가갔고요. 겪어보니 “다 안다”고 말하는 창업자보다 “잘 모른다”고 하는 창업자에게 손을 내미는 리더들도 많은 것 같아요. 오너십을 갖고 창업자의 여백을 채워주고 싶은 분들이죠. 

그렇게 구성원을 새로 꾸린 후 계속해서 브레인스토밍 했어요. 정말 많은 고민을 나눴어요.

 

Kakao aims to acquire Radish to compete against Naver Webtoon
래디쉬(Radish) 서비스 화면.

 

Q. 이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래디쉬만의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했군요.

‘다들 플랫폼, 플랫폼 하지만, 사실 콘텐츠 플랫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콘텐츠다’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새로운 모델을 찾아 나섰어요.

유튜브처럼 아마추어들이 콘텐츠를 올리는 플랫폼도 있지만, 넷플릭스처럼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제작 스튜디오와 플랫폼의 결합 모델도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넷플릭스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을 시작했죠.

그러던 중, 전(前) ABC 방송국 부사장이었던 ‘수 존슨(Sue Johnson)’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이분이 얘기하길, 연재형 콘텐츠 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포맷은 TV 드라마라는 거예요. 그분은 ABC 일일드라마 총책임자를 되게 오랫동안 맡으셨는데, ABC 일일드라마는 수십 명의 작가와 프로듀서들이 한 방에 들어가서 매일 50분에서 1시간짜리 대본을 생산해내는 방식이래요.

 

Q. 웹소설 집단창작 시스템에 관해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할리우드 시스템 같은 집단창작 방식을 웹소설에 가져온 것인데요. 웹소설도 똑같은 연재 콘텐츠이기 때문에, 연재 콘텐츠만이 가지는 특수성을 갖고 있거든요. 그 특수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집단으로 창작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연재 콘텐츠에는 기승전결이 한 회에서 다 나오면서도, 다음 회를 보고 싶게 만드는 절단 신공이 있어야 해요. 이 과정에서 베테랑 드라마 작가들을 데려와서 TV처럼 집단창작 방식으로 소설을 만들면 하루에 2회를 쓰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퀄리티의 소설을 빠르게 생산해낼 수 있을 거라고요.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Q.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계속됐다고요.

프리미엄 웹소설을 집단창작으로 만든다는 뾰족한 전략과 올스타팀이 생기면서 투자 의향을 표현한 곳들도 있었어요. 50억 정도를 약속받았어요. 그런데 그게 막판에 안 들어왔어요.

좋은 팀원들을 비싼 연봉에 데려왔는데 제가 현금 관리를 잘 못 해서 돈이 3개월치 밖에 안 남은 상황이 됐죠. 3억 정도의 빚을 내면서, 제 개인 신용으로는 더 빚을 낼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어요. 멘붕 상황이었죠.

Q. 전환사채까지 쓸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15년 지기 친구이면서 팀원으로 같이 일하는 친구가 선뜻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줬어요. 그 친구도 워낙 많은 일을 당한 친구예요. 집안이 망하면서 대학에 진학을 못 하고 돈이 없어서 5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돈을 번 친구거든요. 

그러다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나름의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에 온 거예요. 둘 다 꿈을 갖고 미국에 왔는데 어려운 상황에만 놓이니까 서로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선뜻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2억을 고금리로 대출 받아줬어요. 정말 고마웠죠.

 

 

다른 팀원들에게는 투명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팀이 와해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자꾸 밖에서 돈을 투자받으러 다니니까 다른 팀원들도 다 알았을 텐데 감사하게도 다 참아주셨어요.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압박감은 컸어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생각하며 매일 돈에 쪼들려 살았거든요. 돈에 쪼들려 살면 압박감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한 번에 50~100억을 모으는 게 불가능하기도 한데다가 지표도 안 나오니 잘게라도 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빚과 투자의 중간 성격인 전환사채라는 개념이 있어요. 회사가 투자사에 돈을 꾸는 방식이죠. 2018년 9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25번 전환사채를 발행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빚만 내다가 진짜 마지막이라고 느껴질 즈음에 여유 현금이 80억 정도 남는 상황을 마주했어요. 드디어 팀, 돈, 아이템이 다 나온 거죠. 그 시기가 2019년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Torn Between Alphas (Selling Myself To The Alpha) - Panda - Wattpad
래디쉬의 성공을 이끌었던 늑대인간 웹소설 <Torn Between Alphas>.

 

Q. 2019년 하반기, <Torn Between Alphas>가 성공을 거두며 드디어 자금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019년 11월 29일이었던 것 같아요. 추수감사절이라 원래 가족들과 만나는 기간이지만, 저는 가족이 미국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친구랑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매출이 막 올라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5년 동안 본 적 없던 우상향 커브였어요. 매 순간 정신이 깼던 것 같아요. 드디어 성공 같은 느낌이 왔는데, 긴장을 조금이라도 놓아서 이 성공이 손 밖으로 나간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거든요. 잠이 안 왔어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거의 밤을 새우면서 일했던 것 같아요.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Q. 성공의 문턱에 다다르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상황이었잖아요. 당시의 심정은 어땠나요?

저를 실리콘밸리로 보냈던 찰리가 해준 말 하나를 항상 생각했어요. 

“Every startup is an overnight success. But it happens on 500th night.” 

밖에서 볼 때 모든 스타트업은 벼락 성공처럼 느껴지지만, 벼락 성공은 첫날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500일째에 발생한다는 말이에요.

당시에 이 얘기를 듣고는 사실 웃었어요. ‘500일씩이나 걸린다고? 나는 이제 90일째인데 500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라는 거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맞는 말이더라고요. 제가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곳에 도달하기까지 거의 2,300일 정도 걸렸으니까요.

500일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찰리가 말하고 싶었던 건, 긴 시간 동안 쌓은 노력의 결과예요. 가만히 정제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수많은 전략의 시행착오와 많은 피봇이 이루어지면서 축적되어온 게 500일째에 빵 터진다는 거죠.

그래서 밖에서 보기에는 ‘얘네 벼락 성공했네?’ 싶겠지만, 사실 정말 오랫동안 축적해온 노력의 결과인 것이고요.

 

Radish Fiction Chat Stories | AD - YouTube
래디쉬 채팅형 웹소설 서비스 화면.

 

Q. 버티는 힘이 스타트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네요. 지금까지 대표님을 버틸 수 있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저도 2,000일을 넘길 정도로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요. 긴 시간 동안 지칠 때도 있었지만 낙관주의를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뭐가 안 되더라도 ‘이걸 아직 안 해봤네?’, ‘다음에 이걸 시도하면 될 거야!’라는 낙관주의를 놓지 않았어요.

안 되는 이유가 만 가지 있어도 이 문제 하나가 풀리면 잘 풀릴 거라는 믿음과 낙관주의를 갖는 게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버틸 수 있어요. 창업자는 버텨야 해요. 버텨야 기회가 오니까요.

 

Q. 여러 매체가 래디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빠른 실행력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금난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다 싶었을 때, 한 10월까지 지표가 전혀 안 움직이는 거예요. 또 전략이 문제인가, 인도 시장으로 가야 하나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 당시 이두행 CPO 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전략은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짰으면 웬만하면 괜찮은 전략일 거다. 이 전략을 끝까지 실행해봤는지를 한번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사실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 전략을 얼마나 촘촘히 실행해봤는지, 정말 디테일하게 실행해봤는지를 기준으로 갈리는 것 같거든요. 당시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고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서 실행해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임했죠.

 

Q.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하는 래디쉬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래디쉬의 비즈니스 모델은 새로운 창조 모델이 아니에요. 혁신도 아니고요. 이미 한국에서 잘 되고 있던 ‘기다리면 무료’ 모델과 할리우드의 집단창작 시스템, 게임 산업에서 쓰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좀 낙후된 출판업계로 가져온 것뿐이에요. 마음만 먹으면 베낄 수 있는 모델인 거죠.

베낄 수 없는 건 현재 우리 팀의 케미스트리, 실행력, 실행속도 같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디테일하게 실행했거든요. 늑대인간이 잘되는 것 같으면, 늑대인간 소재를 계속 테스트하는 거죠. 집단창작 시스템을 통해 매일 5회씩 연재했어요. 그래서 어떤 다른 재밌는 소설보다도 더 빠르게 연재할 수 있었죠. 덕분에 히트작이 나오기 시작했고요.

 

이진수(前 카카오페이지 대표/ 現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

“카카오페이지로부터 IP를 확보하고 제작하는 일은 회사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회사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죽어가던 카카오페이지를 일으켰던 것도 <달빛조각사>라는 소설 하나의 힘에 의해서예요. IP라는 것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배우면서 이 모든 사업이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 이진수 카카오엔터 대표

 

Q. 래디쉬를 두고 ‘웹소설 계의 넷플릭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콘텐츠 IP를 확장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 같아요.

글로벌 콘텐츠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요. 넷플릭스부터 디즈니까지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싸우고 있거든요. 그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 좋은 스토리, 좋은 IP예요.‘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경우는 IP가 만들어내는 시장가치가 30조쯤 된다고 해요. 정말 무궁무진한 거죠.

사실 래디쉬를 시작했을 때 소설에서 끝내려는 마음은 없었어요. 소설만이 목표는 아니었어요. 여러 종류의 미디어 게임부터 드라마까지 다 만들겠다는 큰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거든요. 그 비전이 좋아서 사업을 시작한 거고요.

 

몸값 높아지는 콘텐츠 IP... 웹소설의 웹툰화 &amp;#39;주목&amp;#39;
해리포터 IP는 소설을 시작으로 영화, 게임, 후속 시리즈 등으로 확장됐다. (출처 : 워너 브라더스)

 

Q.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5,000억 원 규모의 인수합병을 발표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상황들 때문에 카카오를 선택하신 건가요?

전선이 확대되면서 기회가 많아지는 동시에 경쟁도 심화됐어요.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시간이 제일 중요해요. 비전을 빠르게 실현하려면 나의 비전을 앞당겨줄 수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서 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조직은 웹소설, 웹툰부터 영화제작사, 배우 매니지먼트 등 엔터 산업의 모든 가치사슬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요. 이 파트너와 어떻게 하면 더 잘해볼 수 있을까 고민되더라고요.

옛날에는 생존 문제에만 급급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큰 자원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사업을 키워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에 좀 더 익숙해져 가고 있어요.

 

Q. 인수합병을 겪으며 여러 변화를 맞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면요?

사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카카오의 래디쉬 인수는 정말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니까요. 저는 항상 절박함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절박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해요.

사업이 반등했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매번 다시 뛰어오르는 힘은 절박함에서 나왔던 것 같거든요. 다른 동기부여에서 그 힘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절박함을 통해서 사업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봐요. 그때마다 느꼈던 기분을 잊지 않고 계속 사업하고 싶어요. 이 마음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래디쉬 이승윤 대표 인터뷰.

 

Q. 스타트업 창업의 매력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사실 창업이라는 일이 되게 재밌는 게, 매일 새로운 걸 꿈꿀 수 있어요. 다음엔 이런 걸 해봐야지, 저런 걸 해봐야지 생각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바로 실행해나갈 수 있거든요. 매일 꿈을 꾼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훨씬 더 빠르게 콘텐츠 투자도 할 수 있을 거고 콘텐츠를 2차 창작물로 만들 수도 있을 거고 다른 회사들을 인수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새로운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 자리를 빌려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분들, 도전하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고요.

제가 마치 경영의 구루인 것처럼 비치고 싶지는 않아요. 사업 성공 방식은 너무 다양해서 제 방식이 정답이라고 얘기할 수 없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시작 단계에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제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저는 힘들 때마다 창업해보셨던 분들의 이야기나 그분들이 겪었던 고난을 들으면서 무척 많은 힘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다 똑같이 문제투성이구나’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었어요. 어려운 상황도 ‘다른 창업자가 먼저 겪었겠구나’ 생각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도 사실 한 방 딱 날리면 처음부터 잘될 줄 알았어요. 대학생 때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도 있다 보니까, 제가 좀 잘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진짜 열심히 해서 한 방을 딱 날리면 바로 확 잘될 줄 알았죠.

그런데 6~7년 동안 성과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그 과정을 겪어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처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사업하시는 분들, 또, 매일 버티면서 다음 성과를 내야 하는 분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요. 그 분들께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 됐으면 합니다. 하나의 사례로요.

 

 

* 본 아티클은 2021년 7월 공개된 <이것은 실패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로 북미 시장을 사로잡은 후, 카카오와의 인수합병으로 주목받은 래디쉬 이승윤 대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 유정미 에디터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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