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처투자사(VC)부터 터키, 칠레 벤처 투자기관, 실리콘밸리 창업가까지. 도합 120여명의 글로벌 인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28일 역삼 포스코타워에서 개최된 FIT 컨퍼런스는 한국 시장을 두드리는 해외 기업, 투자사나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국내외 기업가들이 만나는 행사였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컨퍼런스. 처음에는 고민도 컸다. 국내에서 (통역 없이) 영어로만 진행되는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에 과연 몇 명이 올까. 뉴스를 통해 한국 시장의 글로벌화와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도약 소식을 접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FIT 컨퍼런스를 찾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양한 인종, 출신, 경력의 참가자들이 현장을 가득 채웠다. 심지어 행사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명함을 교환하며 국내외 스타트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기회를 논했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이런 글로벌 네트워킹에 목말라 있었다. 기사를 통해 이번 컨퍼런스의 배경과 생생한 인사이트를 정리했다.
[아티클 한 눈에 보기]
0.한국에 글로벌 행사가 필요한 이유
1.한국 스타트업은 왜 글로벌에 약할까
2.한국인이라는 강점을 살리는 방법
3.스타트업 인재들을 위한 현실 조언
4.스타트업의 고민은 어디서든 통한다
0.한국에 글로벌 행사가 필요한 이유
‘K-스타트업’이라 표현하면 어색하려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K팝 아이돌의 한류 열풍 등으로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입지를 다지는 지금,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또한 지각변동을 앞두고 있다. 한국인이 세운 스타트업이 글로벌에서 영향력을 펼치거나 해외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탈(VC)이 국내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등 양방향으로 교류가 늘어나는 추세다.
매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코트라) 해외무역관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증가했다. 2020년 22개국 135개사에서 2021년 29개국 198개국, 2022년에는 29개국 259개사가 해외 진출 스타트업으로 활동했다.
외국인을 직접 채용하는 스타트업도 늘었다. 2022년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236개사 중 78%에 해당하는 185개 기업이 “외국인 채용 의향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 채용을 한 기업도 114개(47%)에 달했다. 특히 이중 86개사는 현지 외국인을 채용했다. 본사 직원이 외국 주재원으로 파견되거나 현지 한국인 유학생을 채용하는 방식에서 한 발 나아간 변화를 보여줬다.
국내 생태계도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분위기다.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벤처 지원 사업인 ‘K-글로벌 프로젝트’에 3651억원을 투입한다.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국내외에서, 스타트업이나 유관 기관이 글로벌 진출과 해외 자본 유치에 힘 쓰는 모습이다.
반대로 해외에서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을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해외 VC가 국내 스타트업이나 해외 한인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는 마중물로 활용하는 ‘해외VC 글로벌펀드’ 누적 결성액이 1분기에 8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글로벌펀드는 모태펀드가 일부 금액을 출자하고 해외 VC가 나머지 금액을 조달해 결성하는 펀드다.
(참고 : 디지털 창업·벤처 지원 'K-글로벌' 3651억 투입···두 배 확대 - 지디넷코리아 )
(참고 : K-스타트업 투자 해외VC 글로벌펀드, 1분기에만 1.3조 몰렸다 - 머니투데이 )
하지만 K팝 열풍만큼 국내 스타트업이나 생태계가 글로벌 인지도를 얻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해외 투자 유치를 받는 한국 스타트업은 여전히 어색하다. 글로벌 인재가 일하는 한국 스타트업이라는 구상은 일상이라기보단 청사진에 가깝다. 글로벌에서 한국에 들어서기도, 한국에서 해외를 무대 삼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2023년 포춘 글로벌 500 기업 대상 설문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약점으로 ‘글로벌 진출 준비도’를 꼽았다. 글로벌 교류가 활발한 실리콘밸리를 10점 기준으로 잡았을 때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 경쟁력은 7.4점이지만, 해외 진출 준비는 6.1점라는 평가다. 현지 시장조사, 언론 노출, 전시회 참가 등을 해외 시장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응답이 이어졌다.
서울은 2022년 ‘스타트업 하기 좋은 도시’ 10위권에 처음 진입했다가 2023년 다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아시아 국가에서 비교적 높은 순위다. 눈에 띄는 특징이 있었다. 벤처 투자 자체는 활발하게 이뤄지만, 글로벌 시장 점유율(Market reach)에서 눈에 띄게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K-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은 이제 막 떠오르는, 그래서 아직은 낯선 이름이었다.
(참고 : 국내 외국인중 창업자는 0.01%… “비자, 법인 설립 등 외국인에 장벽”|동아일보 )
이런 맥락에서 FIT 컨퍼런스는 의미 있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인재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이 창업과 벤처 투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국내외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국내 행사가 영어로, 글로벌향으로 진행된다는 소식에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생태계 일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 채널도 따로 운영하나요? 꼭 참가하고 싶어요.”
개인 일정으로 인해 중간에 행사장을 나서는 참가자들은 꼭 다음을 기약했다. 다들 바랐던 모양이다. 해외에서 벤처 투자 및 네트워킹을 위해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글로벌 진출을 고민하며 경험이나 인연을 찾는 한국인 창업가도, 국내외에서 스타트업을 사랑하는 직장인들도 국내에 글로벌 네트워킹이 가능한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다려왔다.
경량화 솔루션을 적용한 인공지능 스타트업 클리카의 창업자 김나율 대표는 3자 토론 세션에서 “국내에서 글로벌 생태계 일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성공 경험뿐 아니라) 무엇이 힘들었고,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경험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는 후문이다.
EO스튜디오(이오)와 스타트업 그라인드 서울(Startup Grind Seoul)이 연 이번 행사에는 창업가, 투자자, 공공기관 및 미디어 종사자까지 여러 연사가 참석했다. 현장에선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해외에서 보는 ‘한국인의 강점과 협업 포인트’, 글로벌 스타트업 인재를 위한 현실 조언 등 대화가 오갔다. K-스타트업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는 깊이와 너비였다.
1.한국 스타트업은 왜 글로벌에 약할까
“한국이 인류를 대표하지 못 하고 있다.”
행사의 포문을 여는 키노트에서 이오 창업자 김태용 대표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섰다.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이 어려운, 그래서 가치 있는 도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많아야 7,500만 명. 스타트업이 그 규모와 시장에 자신을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는 조언이었다.
물론 한국인으로써 창업을 하는 데, 특히 해외 진출을 하는 데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한국인 창업가는 “무언가 새로운 걸 창조하거나 문제를 찾아 풀어나가는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은” 교육 환경에서 자라왔고, 회의론을 딛고 글로벌 출사표를 던지는 낙관주의도 의식적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성 문제도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이오 창업자 김태용 대표 : 와이콤비네이터(YC) 출신의 40%가 외국인이나 이민자 출신이다. 반면 국내 외국인 중 창업가는 0.01%에 불과하다. 글로벌을 바라본다면 인도인, 미국인, 유럽인, 중국인 등 다양한 인재들과 머리를 맞대고 프로덕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다양성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세계를 담지 못 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거론됐다.
행사 첫 번째 세션의 게스트였던 500글로벌 프로그램 매니저 Peter Shin(피터 신) 리드와 모더레이터 선민승 대표(센드타임)는 입을 모아 글로벌 진출의 경험을 나눴다. 특히나 스타트업은 세일즈부터 투자유치 등 고강도의 커뮤니케이션을 요구받기에 언어와 문화 차이를 뼈저리게 체감한다.
스플랩(센드타임) 창업자 선민승 대표 : 샌프란시스코 한 행사장에서 밋업 마케터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이 사는 코리빙 숙소에 초대해 가보니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창업을 한 열댓명의 업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온 창업자라고 소개했더니 질문 세례를 받았다. MAU가 몇이냐, 비전이 뭐냐, 경쟁사는 어디냐 등등 단도직입이었다.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위와 같은 차이를) 고맥락-저맥락(High-Low context)이라는 프레임워크로 문화 차이를 이해하는 편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저맥락 사회인데 비해 러시아나 한국은 고맥락 사회다. 예를 들어 (고맥락 사회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거나 학연, 지연 등이 중요하다. 때때로 이런 문화권에선 질문이 공격처럼 여겨지기도 하더라.
하지만 미국은 그야말로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다. 멕시코 사람, 필리핀 사람, 한국 사람 등이 한데 섞여 있다. 그러니 직접적으로, 명확하고 간결한(concise) 단어로 소통한다. 무엇보다 창업자들이 시간 자원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러니 더더욱 요점으로 바로 들어가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렇다면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창업가나 스타트업 인재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첫번재 세션 에서 2가지 해법이 언급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대화할 뿐 아니라 능동적인, 깊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게 키포인트다. 한국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실리콘밸리 특유의) 신뢰 기반의 관계주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스플랩(센드타임) 창업자 선민승 대표 : 적극적이면서도 민첩하게 미팅 일정을 잡는 게 중요했다. 줌콜도 좋다. 망설이기보다는 능동적으로(proactive) 네트워킹 하는 게 어떨까.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창업가들은 보통 자신의 아이디어를 피칭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창업가 최고의 미덕은 상대방에게 컨설턴트가 돼 주는 것이다.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흥미를 갖고 궁금해 하는 역할을 자처할 때 해외 네트워킹에서도 분명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깊이 대화하는 게(going deep) 항상 최우선이다.
스플랩(센드타임) 창업자 선민승 대표 : 특히 좋은 친구, 들어주는 사람, 혹은 훗날의 파트너로써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해외에서 풀타임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나 샌프란시스코 가는데 오랜만에 근황 토크할래?(catch-up)”,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이 있다.
또한, 투자 유치를 위해 해외 VC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도움을 구한다거나 피드백을 받고 싶다고 관계를 쌓아가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런웨이가 다 됐다고 말하기보다는. 이게 의외로 한국식(?)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런웨이(Runway) : ‘활주로’라는 뜻으로 스타트업들에게는 효과적인 제품을 개발하기 이전에 생존할 수 있는 기간, 그리고 생존을 위한 자금을 의미한다.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비슷한 의미에서) 특정 VC를 만나고 싶다면 (직접 컨택하는 것보다) 그 VC가 투자한 스타트업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요령이다. 그들이 나를 VC에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형태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내수 시장을 벗어나는 시도를 강조했다. 파운틴 창업자이자 현재 엔젤투자자로도 활동하는 류기백 이사는 “똑똑한 한국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합류하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원한다”며 “한국의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컬 스타트업이 주를 이룬다는 점을 아쉬운 점으로 손꼽았다.
파운틴 창업자 류기백 이사 : 대체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담론이) 쿠팡, 토스, 당근마켓 등 로컬 스타트업에 국한돼 있는 듯하다. 한국 시장을 조금만 벗어나도 네이버, 카카오를 잘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서비스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볼 순 없을까?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챗GPT 같은 서비스는 아예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했다.
(참고 : 해외진출 스타트업 절반이 '본 글로벌'…실리콘밸리 진출 '최다' - 정보통신신문)
실제로 탄생과 동시에 해외 진출에 나서는 한국계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코트라의 해외진출 스타트업 창업 현황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로 진출한 스타트업 중 51%가 국내 모기업 없이 해외 시장에서 첫 발을 뗐다. 실리콘밸리(36.7%), 중국(19.7%), 동남아(15.4%), 유럽(10.8%), 일본(6.2%) 등 타깃 시장도 다채로웠다. 그야말로 ‘글로벌 조짐’에 해당한다.
2.한국인이라는 강점을 살리는 방법
한국 스타트업이라서 글로벌 진출에 진입장벽을 겪는다면 반대로 한국 스타트업이라서 해외 시장에서 장기를 발휘할 수도 있을 테다. 현장에서도 한국의 스타트업, 한국의 화장품 같이 ‘코리아 프리미엄’이 붙은 비즈니스 분야가 분명 존재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경력자, 해외 자본의 눈으로 본 한국인만의 강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FIT 컨퍼런스에서 반복해서 등장한 한국인의 강점은 강한 ‘직업 윤리’(work ethic)다. 한국인은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특유의 끈기와 추진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글로벌 협업 포인트로 이해하는 해외 연사들도 적잖았다.
파운틴 창업자 류기백 이사 : 한국에서 야간자습을 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등 학교 생활을 해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직업 윤리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배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해내는 데 어디까지 힘을 쏟아부을 수 있는지 깨닫는 경험이었다.
매지컬 시니어 포트폴리오 매니저 마리아 노엘 드 라 파즈 : 한국 창업가들은 굉장히 전문적이고 일에 전념한다(commiting). 직업 윤리 의식이 강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창의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라틴 아메리카 창업가들과 시너지가 날 것이라 생각한다.
튀르키예 투자청 한국지부장 타하 사란 : 한국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짜임새 있게(structured) 문제에 접근하는 편이라고 느낀다.
반면 터키는 (시스템적인 접근에는 다소 약할 수 있어도) 회복탄력성(resilience)를 중시해왔다. 지리적으로 늘 생존의 문제를 직면해온 역사가 사회적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창업가 개개인이 (불확실성 속에서)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을 때 터키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상호보완 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현장에선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들은 ‘한국이 더는 한국에 국한해 있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시장 사이즈가 작지 않고, 얼마든지 국내에서도 글로벌에서 들어맞는 프로덕트를 구축하고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발돋움 할 만큼 한국이 성장했다는 관점이다.
파운틴 창업자 류기백 이사 : 한국이 물리적으론 작아 보여도 국내총생산(GDP)를 따져봤을 때 거대한 국가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한국이) ‘작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수십 년 전에 한국에 아무런 사회 인프라가 없었다는 걸 떠올리면 지금 한국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게 다르게 와닿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혜택을 받는지 체감할 수 있다.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글로벌 진출이 가능한 한국 스타트업을 가르는 다른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다. 해외로 진출하려면 어느 때보다 플레이북*을 고수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의 플레이북은 한국이든 해외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이다. 유저를 만날 것. 에이전시가 아닐 창업가 본인이 세일즈를 일으킬 것. 프로덕트 개발 및 고도화를 반복할 것. 내 정답을 고집하지 않는 것.
*플레이북(playbook) : 특정 활동, 산업, 직업 등에 적합한 것으로 간주되는 일련의 규칙이나 제안 또는 방법. 스포츠에서는 팀의 작전을 기록한 책을 의미한다.
3.스타트업 인재들을 위한 현실 조언
‘FIT’은 3가지 단어를 합친 명칭이다. Founder(창업가), Investor(투자자), 그리고 Talent(인재). 그래서 컨퍼런스 현장에서는 스타트업 창업가, 투자자, 인재를 위한 현실 조언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특히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스타트업 인재에게 필요한 마인드셋, 초기 스타트업 투자 기준, 공동창업자 이슈와 생성형 인공지능 트렌드에 대한 대담이 이뤄졌다.
1.피드백을 통한 ‘코칭 가능성’(coachability)
첫번째 세션에서 각각 게스트와 모더레이터를 맡은 500글로벌의 Peter Shin 리드와 스플랩 선민승 대표는 투자자와 피투자사 관계다. Peter Shin 리드가 스플랩에 투자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코칭 가능성’(coachability)였다. 쉽게 말해 코칭 가능성은 실제로 코칭을 통해 피드백이 주어졌을 때 이를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기는 역량을 가리킨다.
스플랩(센드타임) 창업자 선민승 대표 : 유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투자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자신이 ‘잘 모른다’는 마음으로 수정할 줄 아는 것이 코칭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창업가는 (코칭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해관계자들의 말을 경철할 줄 알아야 한다.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애플,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조차 변화한다. 시장도, 유저도, 문화적인 측면도 계속 바뀌고 업데이트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창업가들이 피드백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걸 바라진 않는다. 코칭 가능성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냥 A에서 B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기 위함이다. 초기 창업팀이 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딥하게 헤쳐나가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2.초기 스타트업은 사람과 영업이 전부?
이처럼 코칭 가능성이 중요하다면 결국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 역량을 갖춘 사람, 혹은 팀이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팀이 피드백을 거쳐 시장에서 프로덕트의 핏을 찾을 수 있는지, 성장을 견인하는 과정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수 있는지. 특히 투자자의 시선에서 창업가의 대인 관계와 세일즈 역량이 초기 스타트업의 핵심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파운틴 창업자 류기백 이사 : (투자를 하는 판단 기준으로는) 종국에 이 사람들이 무엇을 이룰지 상상하게 된다. 내가 그 성공의 일부가 되고 싶은지 생각한다. 어려운 문제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오히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어려운 스타트업일수록 창업하기(build) 수월하다. 가능하다면 외주 인력 없이 최소기능제품(MVP)를 만들 수 있는 팀인지도 살펴본다.
뤼튼테크놀로지스 이동재 CSO : 창업가와 산업 사이에서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면 창업가를 고를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개인적으로 산업을 그렇게까지 중시하진 않는다. 뤼튼 또한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실행 계획을 듣고 흔쾌히 엔젤라운드 투자를 제안했다. 당시엔 막 GPT-2가 나온 시점이라 생성형 AI라는 단어조차 흔치 않았다.
창업가나 대표에게는 사람을 대하는 스킬(people skill)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언가를 팔 수 있는 세일즈 역량도 마찬가지다. 결국 특정 프로덕트를 팔아 시장에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대표가 (상대방과) 상호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영업을 해서 파트너십, 투자 유치, 비즈니스 실행 등을 해내야 한다. 인공지능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든 중요한 능력치다.
3.초기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 이슈
FIT 컨퍼런스에서는 초기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에 대한 흥미진진한 대화가 오갔다. Peter Shin은 투자를 받은 초기 스타트업의 60~70%에 공동창업자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프로덕트가 없더라도 일단 사람을 찾아다닐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공동창업자가 필수는 아니지만, 초기 스타트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여겨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동창업자와의 관계에는 양면이 있다. 심리치료사 에스더 페렐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65%가 초기 창업 멤버와의 내부 갈등으로 인해 실패한다. 공동창업자 중 35%가 일정 시점에 자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을 떠나며, 보통 첫 투자를 유치한 후 2년 이내에 회사를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해 창업가가 올바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조언도 빠지지 않았다.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대표와 공동창업자의 관계는 마치 결혼을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공동창업자가 끝까지 함께 남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마치 이혼을 하는 것과 같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름 아닌 ‘투명성’이다. (공동창업자가 떠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서 진심을 다해야만 한다.
스플랩(센드타임) 창업자 선민승 대표 : 종종 공동창업자에게 ‘떠나달라’고 말하는 것조차 HR팀에 맡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피드백이 힘들다는 심정은 알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 공동창업자와 헤어지는 과정은 통화, 슬랙, 화상미팅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면대면으로 해야 한다. 적어도 수개월 걸리는 과정이며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가감 없이 털어놔야 한다.
500글로벌 프로그램 리드 Peter Shin : 무엇보다 공동창업자에게 갑작스런 통보가 돼선 안 된다. 평소에 씽크를 맞추고 체크를 해야 한다. 상대방이 회사에 대해, 사업 방향 전환(피봇)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팀의 발전 방향이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등등. (공동창업자가 떠나는 시점 또한) 마지막 대화를 하기 전에 미리 수차례 대화를 거쳐야만 한다.
(참고 : Making Co-founder's Exit a Seamless Process | Entrepreneur )
4.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
특히 스타트업 인재에게는 ‘인공지능과 친해지는 법’이 와닿았다. 뤼튼테크놀로지스 이동재 CSO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가 단지 광고 카피를 대신 써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스타트업에 몸 담은 팀원으로써, 혹은 앞으로 스타트업을 차릴 예비창업자로써 인재들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십분 활용하길 바란다는 입장이었다.
뤼튼테크놀로지스 이동재 CSO : 지금까지 비즈니스는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큰 시장을 타깃해야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오로지 당신을 위한, 혹은 소수를 위한 앱을 10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비용이 줄어들었다. 굳이 앱스토어에 올리지 않아도 되고, 수익 모델이 붙으면 훨씬 임팩트가 커지는 구도다.
다만 인공지능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기계가 대신 해준다고 볼 수 없다. 개인화한 검색을 간접적으로 구현해주거나 아이디에이션 과정에서 조수로 사용할 수 있는데, 누구보다 당신이 맥락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생성형 AI에게 입력하는) 질문을 쪼갤 줄도 알아야 한다.
어차피 AI는 다들 접근할 수 있는 도구다. 거기에 모든 걸 의존하는 건 당신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winning straetgy)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4.스타트업의 고민은 어디서든 통한다
이번 FIT 컨퍼런스에는 특히 2가지가 돋보였다. 첫째, 연사들뿐 아니라 일반 참가자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비전을 발표하는 피칭 세션이 별도로 마련됐다. 마케터부터 예비창업자, 초기 창업가까지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K스타트업이라는 기반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고 인사이트를 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글로벌 인재들이 K스타트업이라는 구심점으로 모였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행사 후기를 남긴 참가자들은 ‘연결’(connect)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 내년도 FIT 컨퍼런스를 기약하는 피드백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다양성이 가시화하는 현장에서 서로 연결되는, 진정으로 네트워킹이 빛을 발하는 기회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진행된 크로스보더 세션에서는 한국 시장과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터키, 칠레 등 자국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부흥하는 국가에서 한국 시장에 거는 기대감을 접할 수 있는 세션이었다. 각국 스타트업, VC에서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K스타트업의 글로벌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FIT 컨퍼런스를 통해 취업도, 창업도, 스타트업 투자도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가 열렸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글로벌과 한국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이 100명 이상 모여 공통 관심사를 나눴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행사가 모두 끝난 후에도, 쉬는 시간 틈틈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킹을 이어가는 참가자들이 FIT 컨퍼런스의 필요성을 자연스레 드러냈다.
현장을 지휘한 이오 이효빈 PD는 “진짜 글로벌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보는 콘텐츠, 내가 접하는 사람들부터 더욱 다양하게, 더욱 넓게 늘려가야 한다"며 “이런 세계관들이 충돌하고, 또는 놀랍게도 유사한 관심사를 찾아나갈 때 우리는 더욱 많은 기회를 연결하고 생성할 수 있다”고 행사의 취지를 전했다. FIT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에 있는 글로벌 창업가들에게 충격이자 영감이 되고자 했다는 메시지다.
이오스튜디오 이효빈 PD : FIT 컨퍼런스는 모든 세션이 영어로 진행됐다. 별도의 통역을 준비하지 않았다. 각자의 컴포트존을 넘어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도 작은 단위로나마 ‘진짜 글로벌’ 컨퍼런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테스팅 그라운드를 만들어본 셈이다.
놀랍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고, 생각보다도 훨씬 더 활발한 네트워킹과 Q&A가 이뤄졌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글로벌 진출에) 훨씬 더 준비가 돼있는 듯하다. 이제는 정말 더 큰 기회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다음 글로벌 행사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컨퍼런스와 네트워킹 자리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