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선정 #사업전략 #운영
솔루션에 성급하게 꽂히는 함정

지난 문제 정의 노트의 마지막 편에서 저는 책상에서 나가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완성한 문제 문장 하나를 들고 고객 앞에 서서 이게 정말 당신의 문제가 맞는지 확인받고 오라고요.

 

 

그 관문을 통과하고 돌아온 분들이 있을 거예요. 문장이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고 어떤 분은 통째로 다시 썼을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손에 쥔 게 생겼어요. 현장에서 한 번 검사받은 문제 정의요. 그러면 이제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와요.

“자, 그럼 이제 뭘 만들까요?”

당연한 흐름이에요. 문제를 확인했으니 이제 답을 만들 차례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순간이 늘 조금 조마조마했어요. 그렇게 공들여 문제를 벼려놓고도 딱 여기서 미끄러지는 팀을 자주 봤거든요.

그래서 솔루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히려 잠깐 브레이크를 거는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해요.


 

사실 우리는 솔루션에서 출발했을지도 몰라요

 

솔직해져 볼게요. 창업 아이디어를 처음 처음 떠올리는 순간부터 문제에서 시작하는 경우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만났던 초기 팀들 중에도 만들고 싶은 것에서 출발한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AI로 이런 거 만들면 재밌겠는데?”, “이런 앱이 있으면 내가 쓸 것 같은데?” 이렇게 먼저 만들고 싶은 게 생기고 그 뒤에 이 아이디어가 해결할 만한 문제를 찾아가는 거예요.

문제의 층도 파보고 고객도 만나고 한 문장까지 완성해요. 그런데 막상 솔루션 단계에 오면 처음 떠올렸던 그것이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속에서는 이미 답이 정해여 있었던거죠.

이걸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자연스러워요. 창업은 대개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호기심이나 설렘에서 시작되니까요. 문제는 그 설렘이 이후의 판단까지 대신하기 시작할 때 생겨요.


 

솔루션에 마음을 뺏기면 벌어지는 일

 

 

한번 만들고 싶은 솔루션이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그다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져요. 모든 정보가 그 솔루션을 지지하는 쪽으로 해석되기 시작하거든요.

고객이 “그건 좀 애매한데요”라고 하면, 속으로 “아직 이해를 못 했네”하고 넘어가요. 비슷한 서비스가 이미 있으면, “걔넨 제대로 못 만들었지”하고 지나가요. 반응이 미지근하면, “홍보가 부족했을 뿐이야”하고 미뤄둬요.

문제를 검증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솔루션을 방어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지난 노트에서 이야기한 신호가 여기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요. 고객을 만나고 왔는데 내 생각이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면, 잘 확인했다기보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죠. 솔루션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정보를 접했는데도 처음 아이디어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가 정말 완벽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답을 정해둔 건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해요.

이렇게 되면 그렇게 공들인 문제 정의는 어느새 장식품이 돼요. 실제 의사결정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가 아니라, “내 솔루션을 어떻게 지킬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요.


 

혹시 지금 답을 정해놓고 있지는 않나요?

 

말로만 하면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제가 현장에서 눈여겨보는 신호들을 적어볼게요.

  • 고객 반응이 좋지 않을 때 제품보다 고객의 이해 부족을 먼저 의심한다.
  • 경쟁 제품을 보면 “우리와는 다르다”는 설명부터 찾게 된다.
  • 문제를 설명할 때보다 솔루션을 설명할 때 말이 훨씬 길어진다.
  • 고객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필요한 기능 목록이 꽤 구체적이다.
  • “이 기능은 꼭 있어야 해요”라고 말하지만, 왜 필요한지를 문제와 연결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 솔루션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아이디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낀다.

 

이 중 몇 가지가 익숙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 문제보다 솔루션에 애착이 더 클 가능성은 있어요. 그걸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솔루션을 제대로 검토하는 시작이에요.


 

솔루션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를 기억해두면 좋아요. 솔루션은 우리가 지켜야 할 목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에요. 같은 문제를 더 잘 푸는 방법이 있다면 솔루션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오히려 문제를 깊이 들여다봤을수록 해결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펼쳐져요.

제가 만났던 한 팀 이야기를 해볼게요. 중독에서 회복 중인 분들을 돕는 서비스를 준비하던 팀이 있어요. 이 팀이 처음 잡은 문제는 뚜렷했어요. 회복은 혼자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충동이 올라오는 순간을 놓치면 그동안의 회복이 무너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처음 구상한 솔루션도 거기에 맞춰져 있었어요. 당사자의 신체 신호를 감지하거나 스스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신호를 곁에서 돕는 분들에게 즉시 전달해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 쌓인 데이터로 재발률을 낮추겠다는 그림까지 있었고요.

그런데 당사자들과 현장 실무자들을 만나고 온 뒤, 팀은 다른 선택을 했어요. 곁에서 돕는 분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필 시간을 확보해주는 쪽으로요. 기술적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단기간에 만들 수 있고 현장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건 이쪽이라고 판단한 거예요.

회복을 지속시킨다는 큰 문제는 그대로였어요. 바뀐 건 그 문제의 어느 지점을 건드릴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건드릴 것인가였어요. 문제 하나 앞에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고 팀은 현장에서 배운 것을 근거로 다른 길을 고른 거예요.


 

문제에는 집착하고, 솔루션에는 유연해지세요

 

 

사실 초기에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쉬워요. 문제는 자꾸 바꾸면서 처음 떠올린 솔루션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거든요. 고객을 만날 때마다 문제 문장이 흔들리는데, 만들려는 것만은 그대로인 경우요.

하지만 문제를 충분히 확인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해요. 확인한 문제는 기준점으로 두고 솔루션은 여러 번 바꿔볼 수 있어야 해요. 고객이 겪는 문제가 그대로인데 더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다면, 기존 아이디어를 내려놓는 건 실패가 아니에요. 오히려 문제를 제대로 붙잡고 있다는 뜻에 가까워요.

이건 저만의 생각은 아니에요. 창업 쪽에서는 “솔루션이 아니라 문제와 사랑에 빠지라”는 말로 오래전부터 돌아다녔고 아예 그 제목으로 나온 책도 있어요.

다만 하나만 덧붙이고 싶어요. 앞에서 본 팀도 세부적으로는 문제가 조금 움직였어요. ‘충동의 순간을 놓친다’에서 ‘곁에서 돕는 사람에게 시간이 없다’로요. 그러니 붙잡아야 할 문제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래요.

“누구의 어떤 고통을 줄이려고 했는가.”

그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어느 지점을 건드릴지와 어떻게 건드릴지는 현장에서 배운 대로 옮겨도 괜찮아요.


 

이 노트에서 함께 볼 것

 

 

문제정의 노트가 “무엇을 풀 것인가”를 다뤘다면, 이번 솔루션 노트는 그 다음을 다뤄요. 어떻게 풀 것인가, 왜 우리여야 하는가, 그리고 정말 되는가.

먼저 하나의 문제에서 솔루션 후보를 여러 개 펼쳐보는 방법을 살펴볼 거예요. 그 다음에는 구중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기준을 보고 차별화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실제로 만들기 전에 우리가 세운 솔루션 가설을 어떻게 확인할지도 차례로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한 가지 미리 짚어둘 게 있어요. 뒤에서도 다시 ‘검증’이라는 말이 나올 텐데, 지난 시리즈에서 했던 검증과는 묻는 질문이 달라요. 지난번에는 “이게 진짜 문제가 맞나요?”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이 방법이 그 문제를 실제로 풀 수 있나요?”를 확인해요. 문제는 앞단계에서 1차적으로 통과했으니 이번에는 해법을 시험대에 올리는 거죠. 이 차이는 뒤에서도 그때그때 다시 짚어볼게요.


 

솔루션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사실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내 아이디어를 잠깐 의심할 수 있는 여유예요.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렸잖아요. 그 문제를 찾고 다듬고 고객에게 확인까지 받았는데 만들자마자 떠오른 첫 번째 솔루션으로 다시 덮어버리면 아깝거든요.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딱 하나만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세요.

“지금 생각하는 솔루션을 쓸 수 없다고 가정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정말 하나도 없을까?”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 막막함이 다음 편의 출발점이에요.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 하나의 문제에서 여러 솔루션 후보를 펼쳐보는 ‘발산’과 그중 가능성 있는 답을 골라내는 ‘수렴’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스타트업의 “성장”을 기획합니다. 기획하는별 (블로그 : https://sparkle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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