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보이지 않는 엔젤투자자를 찾아서

[논문으로 읽는 창업 | 엔젤투자편 ①] 


창업에 관한 논문을 읽다 보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왜 논문 속에만 있을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창업에 관한 여러 연구와 생각들을 개인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봅니다.


초기기업의 자금 부족 문제를 두고 흔히 '자본 공백(capital gap)'이라는 표현을 쓴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외부 자금이 필요한데, 적절한 자금 공급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사업 초기에는 자금조달이 특히 어렵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엔 담보와 실적이 부족하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기엔 기업 규모와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창업자 개인의 자금과 가족·지인의 지원마저 소진하고 나면, 초기기업은 본격적인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초기기업에 투자할 돈은 정말 부족한 것일까. 1983년, William E. Wetzel Jr.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진 사람과 돈이 필요한 창업자가 서로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 제기: 자본 공백은 진짜인가

당시 미국에서는 소규모 기술 기반 기업의 자금 부족이 중요한 정책 문제로 다뤄지고 있었다. 기술 기반 창업기업은 일자리 창출과 기술혁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제품개발과 창업 초기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으로 전문 벤처캐피털과 제도권 금융기관의 투자 행태가 지목됐다. 전문 투자기관은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와 빠른 성장이 가능한 기업을 선호했고, 수십만 달러 이하의 자금이 필요한 초기기업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초기기업에 공급되는 자본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Wetzel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기존 논의가 눈에 보이는 투자기관만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공개 주식시장과 전문 벤처캐피털은 비교적 공식적인 시장이다. 누가 투자자인지 알 수 있고, 투자 규모와 활동도 어느 정도 관찰 가능하다. 반면 자신의 자금을 직접 기업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은 이 공식적인 시장 밖에 흩어져 있었다.

Wetzel은 이 시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The informal risk capital market, on the other hand, is virtually invisible, inefficient, and often misunderstood."

비공식 위험자본 시장은 사실상 보이지 않고, 비효율적이며, 자주 오해되는 시장이다.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보이지 않으니, 그들의 투자 역시 제대로 관찰되지 않았다. Wetzel은 초기기업의 자금 부족에 관한 기존 통념이 비공식 개인투자자의 활동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Capital gaps may be more apparent than real."

자본 공백은 실제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게 보이는 문제'일 수 있다.

 

방법론: 보이지 않는 투자자를 찾아 나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Wetzel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비공식 개인투자자를 직접 찾아 나섰다. 문제는 누가 엔젤투자자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투자자 명부도, 공식적인 협회도 충분히 존재하지 않았다. 연구자는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투자자를 찾고, 한 명을 만나면 그의 친구와 사업 관계자를 소개받는 스노우볼 방식으로 조사 대상을 넓혀갔다. 논문은 이 과정을 스스로 'business angels를 찾아 나선 사냥(hunt)'이라고 표현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원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방식은 오늘날 국내 엔젤 커뮤니티나 창업 네트워크가 초기 투자자를 발굴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식 데이터베이스보다 사람을 통한 소개가 여전히 가장 신뢰도 높은 경로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40여 년 전 Wetzel이 마주한 '보이지 않는 시장'의 성격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발견: 엔젤투자자는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9개월 간의 탐색 끝에 연구자는 133명의 비공식 개인투자자를 찾아냈다. 이들은 1976년부터 1980년까지 320개 기업에 총 1,6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응답했다. 한 건당 평균 투자금액은 약 5만 달러, 중앙값은 약 2만 달러였다.

투자 대상 역시 초기 기업에 집중됐다. 과거 투자 중 44%는 스타트업이었고, 전체 투자의 80%는 설립 5년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향후 투자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도 78%가 스타트업과 초기 단계 기업 투자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전문 벤처캐피털이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영역에,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엔젤투자자는 단순히 돈만 제공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조사 대상의 84%는 투자기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비공식적인 자문을 제공하고, 일부는 직접 업무에 참여했다. 첫 창업을 시작한 기업가에게는 투자자의 경험과 경영 지식이 투자금보다 가치 있는 자원이 될 수도 있었다. 오늘날 엔젤투자자를 설명할 때 흔히 쓰는 '자본과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투자자'라는 특징이, 이미 1983년 연구에서 관찰된 셈이다.

전문 벤처캐피털과 엔젤투자자를 가르는 또 다른 특징은 비금전적 보상(nonfinancial rewards)이었다. 전문 벤처투자자가 재무적 위험과 기대수익을 우선한다면, 개인투자자 중 상당수는 투자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만족을 함께 추구했다.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 의료나 에너지 절감처럼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술을 지원하는 것, 창업자가 성공적인 기업을 만드는 과정을 돕는 것 등이다. 이런 투자에서는 더 낮은 수익을 받아들이거나 더 높은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도 함께 나타났다.

이 대목은 오늘날의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나 ESG 관점의 자본 배분 논의와 닮아 있다. '돈이 되는 곳'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곳'에 자본을 놓겠다는 의지는 이미 비공식 개인투자자 시장에서 오랫동안 작동해온 성격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함의: 자본이 아니라 정보의 문제

흥미로운 점은, 엔젤투자자들 역시 좋은 투자 기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투자 기회를 발견하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는 사업 관계자(52%)와 친구(50%)였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탐색한다는 응답도 41%였다. 반면 투자은행을 주요 정보원으로 꼽은 응답은 15%에 불과했고, 변호사·회계사·상업은행 같은 공식적인 전문기관의 역할도 크지 않았다.

즉, 엔젤투자 시장은 공식적인 투자시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를 따라 움직이는 시장에 가까웠다. 이런 구조에서는 창업자만 투자자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니다. 투자자 역시 좋은 기업을 발견하지 못한다. 실제로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기존 정보 채널에 '완전히 불만족한다'고 답한 투자자는 34%였고, 확실히 만족한다는 응답은 8%에 그쳤다.

여기서 Wetzel은 초기기업의 자금 부족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자본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자본이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인 것은 아닐까. 효율적인 자본시장이 작동하려면 창업자는 투자자를 알아야 하고, 투자자는 적절한 투자 기회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공식 위험자본 시장에는 양측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정보 전달 경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Wetzel의 정책 제안은 새로운 투자기관을 만드는 데 집중되지 않는다. 그는 자본 공백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려면 새 기관을 설립하는 것보다, 민간 위험자본 시장, 특히 엔젤투자 시장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투자가 필요한 초기기업을 발견하고 투자 특성을 정리하는 것, 활동 중인 개인투자자를 찾아 투자 선호를 파악하는 것, 창업자와 투자자를 적시에 객관적으로 연결하는 것, 투자자 네트워크 안에서 더 많은 정보가 흐르도록 만드는 것 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투자 매칭 플랫폼이나 액셀러레이터, 창업생태계의 중간지원조직이 수행하는 역할과 유사해 보인다. 국내에서도 엔젤투자매칭펀드나 팁스(TIPS) 운영사, 각종 데모데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양측을 연결하는 정보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지 않은가?

 


Reference

Wetzel, W. E., Jr. (1983). Angels and informal risk capital. Sloan Management Review, 24(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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