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작업실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림이 아니라 바닥이었습니다. 다 그린 캔버스가 바닥과 스티로폼 위에 겹겹이 쌓여 있었고, 환기를 한 번 깜빡했다가 곰팡이가 생길 뻔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이 꽤 알려진 작가였는데도 그랬습니다.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두 가지를 꼽았습니다. 그림을 둘 곳, 그리고 그림을 보여 줄 곳이었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올 때, 졸업작품까지 작업물을 전부 그곳에 버리고 왔습니다. 가져올 방법도, 둘 곳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작품 가격과 팔린 가격을 공개하는 온라인 갤러리 Gallery 751입니다. 지금 사이트에 걸린 가장 싼 원화는 3만 원짜리 1호 그림이고, 가장 비싼 작품은 2,500만 원입니다. 이 글은 왜 3만 원짜리 원화부터 팔기로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한 원칙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림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작가 쪽 문제부터 확인했습니다. 스레드에 작가들을 위한 글을 하나 올렸는데 하루 만에 조회가 5,000회를 넘었고, 댓글로 자기 작품을 직접 올린 작가가 40명이 넘었습니다. 전시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름만 올려 줘도 좋다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홈페이지를 열고 나서는 하루 만에 참여 문의 메일이 6건 왔고, 작가 모집 글을 올린 날에는 하루에 10명이 지원했습니다.
지원한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판매의 대부분이 지인 판매라는 점입니다. 지인에게 팔리면 고맙지만, 내 그림이 모르는 사람에게 얼마에 팔릴 수 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시장의 반응을 들어 볼 기회 자체가 없는 셈입니다. 블로그나 SNS에 올려 가끔 팔기도 하지만, 올린다고 바로 팔리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구매자 쪽은 제 경험이 먼저였습니다. 친구의 그림을 사려다 망설이는 사이, 그 작가의 그림값이 훌쩍 올라 버렸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원화를 사고 싶어도 이 값이 맞는지, 진품인지, 다른 그림은 얼마에 팔렸는지 알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요. 미술시장을 흔히 깜깜이 시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벽에 무언가를 걸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인테리어용 포스터와 프린트는 꾸준히 팔립니다. 그림을 걸고 싶은 마음은 이미 있는 겁니다. 저는 사람들이 원화를 안 사는 이유가 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화를 파는 자리가 사람들이 실제로 물건을 사는 곳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비슷한 가격에,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쌓일 수 있는 원화를 갖게 하고, 산 뒤에도 그 작가의 근황과 신작, 가격 변화를 계속 전해 주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한 Gallery 751의 일입니다.
그래서 먼저 공개한 네 가지
처음 듣는 이름의 그림 앞에서 구매자가 막히는 질문은 결국 몇 가지로 모입니다. 이 값이 맞는지, 진짜인지, 다른 사람은 얼마에 샀는지, 나중에 되팔 수 있는지. 그래서 이것들부터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 가격: 모든 작품의 가격을 공개합니다. 고가 작품이라도 가격 문의로 두지 않습니다. 작가님이 가격 문의로 해 달라고 하셔도 정중히 말씀드리고 가격을 적어 둡니다
- 크기와 호당 가격: 크기를 호수로 함께 적어, 같은 작가님의 다른 작품과 값을 견주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 서류: 팔린 작품에는 작가님이 서명한 진품증명서와 거래확인서, 작가 프로필을 함께 보냅니다
- 되팔 때의 몫: Gallery 751을 통해 다시 팔면 금액과 상관없이 판매가의 2%를 원작 작가님께 드립니다. 2027년 7월부터 시행되는 재판매보상청구권은 500만 원 이상 거래에만 적용되는데, 저희 작품 대부분은 그 기준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류 세 가지는 한 작가님이 직거래를 하며 구매자에게 건넨 서류 묶음을 보고 들였습니다. 작품을 산 사람 손에 무엇이 남는지가 그 작품을 오래 아끼게 만든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름도 보증서가 아니라 미술진흥법에 나오는 진품증명서로 정했습니다.

작가님을 고르는 방식
Gallery 751에는 공모도, 포트폴리오 서류 심사도, 부스비도 없습니다. 대신 제가 지원한 작가님을 한 분씩 직접 인터뷰하고 게시 여부를 정합니다. 구매자 입장에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원서는 처음에 작품 사진과 작품별 정보, 이력서까지 받게 만들었다가 같은 날 바로 줄였습니다. 입력할 게 많으면 지원하다 이탈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 홈페이지 지원서는 이름, 이메일, 작품 가격, 프로필 링크만 받고, 1차 검토를 통과한 분께만 자료 요청 메일을 보내 작품 사진과 소개를 받습니다. 작품 사진은 작가님이 직접 찍어 보내 주십니다.
부르는 말도 정했습니다. 입점 작가님 중에는 30년 넘게 그림을 그려 온 분도 계셔서, 초기 작가나 아마추어 같은 말은 쓰지 않고 모두 작가님으로 부릅니다. 같은 이유로 작가님께 성장 같은 표현도 쓰지 않습니다.
판매 기록 0건인 페이지를 먼저 만든 이유
가장 오래 고민한 건 판매 기록 페이지였습니다. Gallery 751에서 팔린 그림은 언제, 얼마에 팔렸는지 모두 이 페이지에 남깁니다. 작가가 따로 알려 준 과거 판매가는 싣지 않고, 실제로 저희를 통해 성사된 거래만 올립니다. 팔린 작품도 내리지 않고, 같은 작품이 다시 팔리면 그 기록을 이어 붙입니다. 구매하신 분의 이름과 연락처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이 페이지에 기록된 거래는 0건입니다. 등록된 작품 45점 가운데 아직 이 페이지에 오른 거래가 없습니다. 빈 페이지를 먼저 공개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지만, 기록이 쌓이는 과정까지 보여 주는 게 이 서비스의 약속이라고 봤습니다. 경매 기록이 없는 작가님의 그림값을 가늠할 근거는 결국 이렇게 쌓이는 실제 거래뿐이기 때문입니다.

3만 원부터 시작한 이유
가격대를 넓게 잡은 데에는 현장에서 본 장면이 있었습니다. 프리즈 서울 주간에 한 경매사 지점에서, 큐레이터가 3,000만 원대 달항아리 구매를 고민하는 손님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걸 곁에서 들었습니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주변 작품, 보관하는 법,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한 이 작품의 장점까지 하나하나 짚어 주었습니다. 고가 작품일수록 그림 자체만큼이나 그 그림을 설명해 주는 사람의 역량이 구매를 좌우한다는 걸 그날 느꼈습니다.
막 시작한 갤러리가 처음부터 그 영역에서 겨룰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가격대를 나눴습니다. 20만~30만 원대 이하의 작품은 사람들이 이미 물건을 사는 큰 쇼핑 채널에도 올려 누구나 살 수 있게 할 준비를 하고 있고, 그 이상 가격대는 제가 직접 컬렉터를 만나며 소개합니다. 3만 원짜리 1호 그림은 원화를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사람이 처음 문을 여는 가격입니다.
그래서 낮은 가격대의 경쟁 상대는 다른 갤러리가 아니라 포스터와 프린트라고 보고 있습니다. 비슷한 돈으로 벽을 채울 때, 복제본 대신 한 점뿐인 그림을 고를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게 이 가격대의 일입니다.

어디서 팔리든 작가님 몫은 같게
판매 자리를 여러 곳으로 넓히면 곧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채널마다 수수료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채널별로 작가님 정산액이 달라지면, 작가님 입장에서는 어디서 팔리느냐에 따라 받는 돈이 바뀌고, 다른 스토어에 작품이 걸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무너지면 구조 전체가 흔들린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원칙을 하나 정했습니다. 어느 채널에서 팔리든 작가님이 받는 금액은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팔리면 판매가의 60%, Gallery 751이 여는 전시에서 팔리면 65%를 작가님께 드립니다. 플랫폼 수수료와 카드 수수료는 Gallery 751이 부담하고, 그만큼 저희 수수료를 넉넉하게 잡았습니다. 저희 쪽에서는 구매자를 자체 사이트로 모을수록 남는 몫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전시 판매를 65%로 조금 더 높게 둔 건, 참가비를 내고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님의 부담을 덜고 전시를 자주 열기 위해서입니다. 작품을 사들이지 않는 위탁판매라서, 구매자가 Gallery 751 계좌로 입금하면 저희가 수수료를 뗀 뒤 작가님께 정산합니다.
처음 몇 달 동안 배운 것
- 작가는 생각보다 빨리 모였습니다. 어려운 건 작가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처음 사는 순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 구매자는 갤러리 소개보다 실용적인 답을 먼저 찾습니다. 어디서, 얼마에, 무엇을 받고 사면 되는지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도 컬렉터」라는 구매자 연재를 쓰고 있고, 이번 7편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님의 그림을 어디서 어떻게 살지 정리한 글입니다
- 투명성은 빈 칸까지 공개해 두는 쪽이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판매 기록 0건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앞으로 확인할 것
지금 가장 궁금한 숫자는 첫 거래가 판매 기록 페이지의 첫 줄이 되는 날, 그리고 그 기록이 다음 구매자를 설득하는지입니다. 원화를 일상적인 쇼핑 자리에 놓았을 때 실제로 구매가 늘어나는지도 채널을 넓히며 정리해 다시 공유하겠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모두의 창업 1라운드에 선발되어 그 지원으로 준비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여러 판매 채널을 운영하며 공급자 정산을 맞춰 보신 분, 혹은 첫 거래를 만드는 데 효과가 있었던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도 컬렉터 7편: https://www.gallery751.com/journal/collector-07?src=eo
판매 기록: https://www.gallery751.com/records?src=eo
Gallery 751: https://www.gallery751.com/?sr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