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돈으로 월 20만 원에서 150만 원. 이 정도를 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업이 있습니다.
이철원 어피닛 대표가 이들을 고객으로 삼겠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습니다. 그걸로 사업이 되겠느냐고, 너무 작은 틈새시장이 아니냐고요.
그의 계산은 달랐습니다. 인도 인구 14억여 명 가운데 이 소득 구간에 드는 사람이 10억 명을 넘는다는 거죠. 그에게 이 시장은 틈새가 아니라 '매스(대중시장)'였습니다.
그 믿음은 여러 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주거래 은행이 영업 제한을 받는 바람에 회사 돈이 묶였고, 코로나19 때는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2020년에는 투자자를 100곳 넘게 만나고도 자금을 구하지 못했어요. 폐업 절차까지 알아보던 해였습니다.
어피닛(옛 밸런스히어로)은 인도에서 모바일 금융 앱 '트루밸런스'를 운영합니다.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소액 대출을 내주는 회사인데요. 『크래프톤 웨이』를 쓴 이기문 작가가 이 회사의 10여 년을 『매스니치 서바이벌』로 엮어 올해 9월 펴냈습니다.
이번 이오서재에는 두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인도에서 사업해 온 한국인 이철원 대표, 한국에서 31년째 살고 있는 인도 출신 사업가 겸 방송인 럭키입니다. 이철원 대표는 인도 시장을 어떻게 읽었는지, 회사가 무너질 뻔한 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 이야기했고, 럭키는 두 나라에서 겪은 생활과 문화의 차이를 보탰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 남 탓만 하던 창업자가 다시 시작하기까지
- 160원짜리 요금제를 고르는 사람들
- 은행이 빌려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 100번의 거절 끝에 폐업 준비를 멈추게 한 투자
- 5분이면 끝날 회의를 30분 하는 팀
- 창업은 혼자 할까, 함께 할까
남 탓만 하던 창업자가 다시 시작하기까지
어피닛은 이철원 대표의 두 번째 회사입니다.
Q. 첫 창업은 어떻게 흘러갔나요?
이철원 : 첫 창업은 2006년이었습니다. 액세스모바일이라는 회사로, B2B 사업을 했어요. 저희가 가진 시스템이나 기술을 아시아 통신사들에 팔고, 그 서비스가 잘 되면 거기서 나오는 매출을 나눠 갖는 모델이었습니다. 그만큼 통신사에 많이 의존하는 비즈니스였죠.
아이폰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통신사들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게 애플과 구글의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위에서 움직이게 된 거예요. 통신사에만 기대는 B2B가 아니라 B2C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세상은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거의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괴로운 와중에도 '이건 다 남 탓이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스티브 잡스 탓, 우리 직원들 잘못, 통신사 탓.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죠.
사업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에너지도 없었습니다. 명상이나 수양을 하러 들어가면 며칠, 몇 달씩 있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 경험을 했습니다.
럭키 : 진짜요? 어디 가셨어요?
이철원 : 문경에 있는 정토회 절에 들어갔는데, 3일 동안은 정말 힘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3일째 밤이었어요. 스님들은 50분마다 일어나라고 죽비로 때리거든요. 그날은 제가 한 1분쯤 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죽비가 날아오더라고요. 50분이 지나 있었던 겁니다.
그날부터 스님들이 왜 몇 달씩 수양을 하는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경험으로 리셋이 됐어요. 어떻게 보면 2014년에 다시 이 사업을 시작할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절에 들어간 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무렵이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찾기까지는 여러 계기와 시간이 필요했죠.
160원짜리 요금제를 고르는 사람들
새 회사의 무대는 인도였습니다. 이번에는 통신사가 아니라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핀테크였죠.
Q. 왜 인도였고, 왜 핀테크였나요?
이철원 : 2014년에 밸런스히어로, 지금의 어피닛을 만들면서 어느 시장에서 어떤 서비스를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때 세운 원칙이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시장의 크기. 동네 치킨집을 하든 100조짜리 회사를 만들든 쏟는 노력은 똑같습니다.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결국 타깃하는 시장이 얼마나 큰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큰 시장을 타깃하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성장 속도, 셋째는 시장의 성숙도였습니다. 이미 너무 성숙해 있으면 레드오션이고, 너무 일찍 들어가면 아직 블루오션이 열리기 전이겠죠.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봤을 때 인도는 셋 다 잘 맞았습니다.
특히 핀테크는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먹힐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고 봤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이라고 부를 만한 나라들은 이미 금융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잖아요.
인도는 금융에서 소외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금융에 접근할 수 있게 됐어요. 3분, 5분 만에 결제가 되고, 보험에 가입하고, 대출까지 받습니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죠. 저는 인도에서 핀테크가 굉장히 유망하고 큰 시장이 될 거라고 봤고, 어떻게 보면 믿음을 갖고 시작한 겁니다.
Q. 책 제목이기도 한 '매스니치(mass niche)'는 무슨 뜻인가요?
이철원 : 매스니치는 제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저희가 타깃하는 고객은 소득이 아주 낮은 사람들이에요. 예를 들어 한국 기준으로 월 2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 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면, 그건 너무 니치 마켓 아니냐, 그게 비즈니스가 되겠느냐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게 매스거든요. 인도에서는 이 구간이 10억이 넘습니다. 거의 12억 정도가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요.
그래서 니치처럼 보이고 들릴지는 몰라도 우리는 매스니치를 타깃하는 회사입니다. 작가님과 인터뷰하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책 제목으로 가져가신 것 같습니다.
럭키 : 제목부터가 재밌네요.
이철원 : 처음 이 세그먼트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많은 인도인이 '그게 되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몇 개 던졌죠. '너 인도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내가 한번 물어볼게. 이거 다 맞히면 네가 나보다 인도를 잘 아는 걸 인정하고,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런데 제대로 맞힌 사람이 한 번도 없었어요.
Q. 어떤 질문이었나요?
이철원 : 첫째, 인도에서 제일 많이 쓰는 스마트폰이 뭐냐. 그때가 샤오미가 나왔을 때였습니다. '삼성이 제일 많이 쓰지 않아?' 그러면 제가 '샤오미의 한 모델이다. 7천 루피, 12만 원짜리다'라고 답하죠.
둘째는 제일 많이 팔리는 차. 그 당시 센트로라든지 마루티 스즈키라든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셋째가 사실 제일 놀라운데, 인도는 지금도 월정액 패키지(휴대폰 요금제)가 많이 퍼져 있는데 아직도 제일 많이 팔리는 패키지가 10루피 패키지예요. 160원짜리. 이게 놀라운 겁니다. 매스니치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니치라고, 작은 시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정말 큰 시장이에요.
Q. 매스니치 시장은 지금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이철원 : 저희가 처음 대출 서비스를 시작한 2020년에는 평균 티켓 사이즈(1건당 평균 대출 금액)가 10만 원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0만 원이 넘어요. 고객 타깃 세그먼트가 바뀐 게 아닙니다. 인도 경제가 연 5%에서 7%씩 성장한다는 건 엄청난 겁니다. 인도는 아주 빨리 성장하는 시장이에요.
Q. 한국 기업이 지금 인도에 들어간다면 어떨까요?
이철원 : 이제는 환경이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하나는 꼭 고려하셔야 합니다. 인도는 로컬이 너무 강합니다. 엔지니어링 역량만 보면 정말 강력한 경쟁사가 많아서 그 측면에서는 조금 불리하죠.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거시경제적 관점, 인프라적 관점에서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는 지금 들어와서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봅니다.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든 해외 시장은 다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해외에 나가고 싶다면 인도를 선택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결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럭키 님 생각은 어떠세요?
럭키 : 제가 인도에 가라고 하면 '인도 사람이니까 또 저런 말 하네' 하시겠지만요.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요즘 주변에서 너무 힘들다,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오히려 한국에 있는 기술을 인도로 가져가서 하는 게 서로 잘 맞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피닛의 첫 서비스는 대출이 아니었습니다. 선불 휴대폰은 미리 충전한 요금을 다 쓰거나 기한이 지나면 다시 충전해야 하는데, 어피닛은 그 잔액을 확인해 주는 앱으로 출발했어요. 이후 충전과 결제로 서비스를 넓혔고, 2020년부터 대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은행은 신용 기록으로 대출을 심사합니다. 어피닛은 그 기준으로는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의 신용을 스마트폰에 있는 여러 정보, 이른바 대안 데이터와 AI 기술로 평가해 돈을 빌려줍니다.
Q. 충전 서비스에서 대출로는 어떻게 서비스와 사업을 넓혀 가려고 했나요?
이철원 : 저희 원래 그림이 그거였습니다. 선불제 유저에게 요금 충전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Paytm이나 PhonePe 같은 게 이미 많았어요. 저희는 그 앞 단계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충전하기 전에 요금의 사용 기한이 지났거나 잔액이 다 떨어진 걸 알려주는 거죠. 그냥 충전만 해 주는 서비스보다 우리가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봤고, 초기에는 유저를 많이 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결제 서비스로 넓혔습니다. 충전뿐 아니라 전기료, 수도료, 가스료에 위성 TV 요금까지 결제하는 빌 페이먼트 서비스도 했어요. 그렇게 모인 결제 유저가 대출이나 보험 같은 다른 금융 서비스도 이용하게 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유저가 자연스럽게 대출 유저로 전환되지 않더라고요. 대출의 니즈와 결제의 니즈는 완전히 다릅니다. 결제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출은 특정 니즈를 가진 사람만 받게 되니까요. 결국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고 고객 모집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럭키 : 전기세 이런 서비스도 거기서?
이철원 : 네, 지금도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럭키 : 왜 여쭤보냐면, 인도는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세, 수도료를 내는 게 직장인이 하루 휴가를 내고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아침에 가서 줄을 서면 오후쯤에나 대기표가 나왔으니까요. 돈을 주고 남에게 대신 내 달라고 맡기기도 했고, 그걸로 수수료를 받는 업체도 있었어요. 10년도 안 된 얘기예요.
이철원 : 스마트폰 하나로 1, 2분 만에 결제할 수 있는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죠.
QR코드 결제 쪽에는 아주 큰 회사들이 많습니다. 몇억 명의 사용자를 가진 Paytm이라든지 Google Pay라든지 PhonePe라든지. 이런 회사들도 결국에는 대출로 들어옵니다. 사실상 돈이 되는 건 대출이거든요.
저희는 그런 결제 회사들과 바로 경쟁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저희는 매스니치라고 불리는 세그먼트에 특화된 신용 서비스와, 이 사람들이 원하는 금융 서비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Q. 그렇다면 어피닛이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철원 : 제가 이렇게 표현합니다. 신용카드 수가 1억 2천만 장이에요. 저희는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겁니다.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다 우리 타깃이에요.
럭키 : 정말 감사한 일을 하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도에서는 대출받기가 진짜 어려워요. 서류도 많이 필요하고, 은행 직원한테 돈을 주고 승인해 달라는 사람도 꽤 많아요. 그래도 거의 안 나오니까요. 그런 사람들한테는 계좌나 보험을 갖는 것도 꿈 같은 얘기였어요.
이철원 : 회사의 미션이 '모두를 위한 금융'이었고, 지금도 금융 접근성을 저희 회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숫자만 보게 되고 데이터 분석에 매몰돼 있다 보면,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가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우리 고객이 어떤 사람들인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두 달에 한 번씩 타운홀을 열어요. 고객관리팀이 우리 서비스로 정말 도움을 받은 유저와 문제를 느꼈던 유저의 인터뷰를 꼭 네다섯 개씩 공유하도록 제가 정해 놨습니다.
럭키 : 한두 개 좀 여쭤봐도 돼요?
이철원 : 최근에 소개된 유저는 아버지가 굉장히 아프셨는데, 3만 루피, 우리 돈으로 50만 원 정도가 급하게 필요했던 분이었습니다. 이미 대출이 몇 건 있었고, 은행 같은 다른 데서는 대출을 못 받는 상황이었는데 저희 쪽에서는 거의 5분 만에 됐습니다. 저희는 다른 거 요청하지 않거든요. 그냥 휴대폰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안 데이터를 가져와서 하기 때문에요.
덕분에 아버지가 잘 살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정말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게 하는 얘기가 되게 많습니다.
Q. 그런 앱이 없던 시절에는, 급한 돈을 어디서 구했나요?
이철원 : 그전에는 사후카르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전당포 같은 곳입니다.
럭키 : 깜짝 놀랐어요. 31년 동안 살면서 한국 사람 입에서 '사후카르'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대표님 기가 막히네요. 처음 들었어요.
이철원 : 이런 분들이 하루에 1퍼센트 이자를 받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금을 좋아하니까 집에 있는 금을 맡겨 놓고 돈을 빌리거나, 아니면 연대보증을 세워서 빌리거나요.
럭키 : '전통 은행'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철원 : 전통 은행. 이분들한테 가서 빌리는 거예요. 문제가 있는 시장은 그 문제를 풀고자 하는 니즈(필요)와 디맨드(수요)가 아주 강합니다. 여기에 제대로 된 밸류(가치)를 맞춰준다면 저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100번의 거절 끝에 폐업 준비를 멈추게 한 투자
2019년 어피닛의 인도 자회사 트루크레디츠(True Credits)는 은행이 아니어도 대출할 수 있는 비은행 금융회사(NBFC) 라이선스를 받았습니다. 대출 사업을 막 시작하려던 때였죠.
Q. 그 무렵 위기의 순간은 없었나요?
이철원 : 아유, 많았죠. 한두 개가 아닙니다. 특히 2019년, 2020년 코로나 전후 시점이 그랬어요. 한 번은 예스뱅크 때문이었습니다. 인도에서 4, 5위쯤 되는 커머셜 뱅크(상업은행)인데, 그때 저희 주거래 은행이었어요.
럭키 : 예스뱅크가 약간 위기가 있었죠.
이철원 : 회장이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은행이 그냥 바로 셧다운이 돼 버렸어요. 저희 돈이 거기 묶여 있었고요.
럭키 : 그 은행에 있었어요?
이철원 : 거의 한 달 동안은 비즈니스를 사실 못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큰 위기가 한 번 있었고요.
두 번째가 코로나19인데, 사실 제일 큰 위기였죠. 그때 저희는 회사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부도율이 70%까지 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못 갚는 상황이었고, 인도 정부는 모라토리엄(대출 상환 유예)을 선언했어요.
이게 사실 좀 재미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해할 수가 없는 건데, 금융기관들한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너희 국민들이 지금 먹고살기 너무 힘드니까 너네가 갖고 있는 대출은 6개월 동안 안 갚아도 된다고 한 거죠.
럭키 : 근데 누가 갚은 거예요, 그러면?
이철원 : 아무도 안 갚은 거죠. 그래서 그때 금융기관들이 많이 망했습니다. 저희는 다행히 대출이 많이 나가 있지는 않았지만, 성장하려고 하던 시기에 그걸 맞은 거죠.
Q. 2020년, 투자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철원 : 6년 동안 매년 저희가 투자를 받았는데, 2020년에는 100곳 넘는 투자자를 만나고도 처음으로 단 한 곳도 저희 얘기를 믿어 주지 않았어요. 진짜 망하는 줄 알았고, 저희 경영지원팀에 있는 친구한테 회사 폐업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절차 한번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 준비까지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사실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님께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만드셨고,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가 2015년도에 저희 회사에 처음 투자한 엔젤 투자자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희 회사를 계속 지켜봐 오신 거죠. 강한 외부 이벤트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진 건데 여기서 문을 닫기엔 너무 아깝다고 보신 거예요.
너무 감사하게도 장병규 의장님이 사재로 직접 저희 회사에 한 200억 원 정도를 투자해 주셨고, 그걸 계기로 다른 투자자분들도 조금씩 들어오셔서 300억 원 정도를 투자받으면서 저희가 살아남은 거죠.
럭키 : 이게 인도식으로 말하면 좋은 일을 해야 또 좋은 일을 얻는다고 합니다. 대표님이 아마 그 많은 사람한테 작은 단위로, 10루피 이런 거를 좋은 일을 많이 해주셨으니까 또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인도식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철원 : 감사합니다. 그 이후에 오히려 저희를 더 많이 도와주셨어요. 투자는 시작이었을 뿐이고요. 2020년에 투자를 받은 뒤로 장병규 의장님과 거의 2주에 한 번씩 이사회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한테 정말 많은 걸 배웠고, 그 배우는 과정이 물론 혹독했죠.
Q. 그 혹독했던 이사회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이철원 : 많은데, 그중 하나는 이겁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딱 그 얘기만 해라.’
정확하게, 누구한테 불만이 있으면 딱 그것만 얘기해라. 그리고 그걸 10번 해라. 그러면 상대방은 한 번 정도는 아마 했다고 알아들을 거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인도 사람들도 그걸 잘 못하거든요.
럭키 : 특히 윗사람한테 그런 거, 포장을 많이 해서.
이철원 : 그게 어떤 경우에는 스무스한 사회생활의 스킬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죠. 스타트업들은 여유가 없어요.
그런 걸 저희한테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또 그 당시에 의장님 덕분에 성장과 기술, 리스크 같은 여러 가지를 관리하는 기본적인 틀을 크게 갖추게 됐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희 회사를 있게 만든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서 어피닛은 빠르게 성장했고, 2022년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5분이면 끝날 회의를 30분 하는 팀 문화?
위기를 버티는 동안, 어피닛은 조직의 중심도 옮기고 있었습니다.
Q. 한국 직원과 인도 직원을 한 팀으로 묶는 일은 순탄했나요?
이철원 : 2018년, 2019년 정도부터 2022년, 2023년까지 4, 5년 동안은 저희가 원팀을 강조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 중심의 조직에서 인도 중심의 조직으로 전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부러 한 팀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불만이 엄청나게 심해지기 시작했죠.
Q. 지금 매니지먼트 회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철원 : 지금 매니지먼트는 인도 사람 4명, 한국 사람 3명인데, 회의를 하면 서로 토론을 되게 많이 해요. 우리 같았으면 5분 정도면 끝날 이야기를 한 30분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합의를 완벽하게 해요. 저렇게 토론이 되는구나 싶어서 보고 있으면 신기할 정도예요.
럭키 : 토론 문화. 어렸을 때 저희들은 말을 길게 하는 걸 많이 강조했어요.
이철원 : 말로 이걸 합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몸에 배어 있는 거죠. 저는 그게 인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문화가 굉장히 다르죠. 그래서 서로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할 순 없지만, 제가 제일 많이 강조했던 건 우리가 결국 인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인도를 이해하고 인도화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Q. 책에 '인도에서는 친구가 먼저 돼야 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가요?
럭키 : 무조건 처음 만난 분들은 집에 초대하려는 게 인도 문화예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밖에서 계속 대접하는 게, 나랑 좀 거리를 두고 싶은 건가, 왜 자기 집을 오픈 안 하는 건가 싶고요. 저도 한국에 31년 동안 살면서 저를 집으로 초대해 주신 분이 5명도 안 될 거예요. 한국 문화는 밖에서 다 대접하니까요. 정말 그냥 각자의 문화예요.
“무조건 처음 만난 분들은 집에 초대하려는 게 인도 문화예요.” 출처: EO 이오서재
이철원 : 인도 사람들은 일을 참 잘합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를 뿐이죠. 한국 직원들한테서 불만도 많이 들었지만, 인도를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Q.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 좋은 인재는 어떻게 데려왔나요?
이철원 : 저희는 사람을 뽑는 데 굉장히 많이 투자했어요. HR 매니저뿐만 아니라 HR 리크루터들도 적극적으로 뽑았는데, 그 리크루터들이 '러브 밤'이라고 부르는 걸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데 있는 좋은 인력이 하나 있으면 저희 리크루터들이 직접 벵갈루루도 가고 하이데라바드도 가서, 기다렸다가 만나서 꼬시는 거예요. 인터뷰를 통과하면 직원들이 '러브 밤' 메일을 보냅니다. 나는 너하고 너무 일하고 싶다, 네가 훌륭한 애라며.
이런 식으로 좋은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지금은 우리 회사의 프로덕트와 엔지니어 쪽 직원 중 30~40%가 IIIT(인도 명문 공대)급, 그 이상입니다.
Q. 그렇게 회사를 키워 온 지금, 어피닛은 어떤 국면에 있나요?
이철원 : 2014년에 창업했으니 이제 12년이 됐습니다. 업앤다운이 굉장히 많았지만 지금은 빠르게 성장하는 국면에 있어요. 저희가 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도 시장, 특히 핀테크 산업이 워낙 빠르게 크고 있으니까요. 상장도 저희가 이제 준비를 하는 막바지에 있습니다.
창업은 혼자 할까, 함께 할까
Q. 스타트업은 ‘젊은 사람의 일’이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늦게 시작해도 될까 두려워하는 분들께 해 주실 말이 있을까요?
이철원 :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크게 봤을 때 이게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저는 그 판단을 세 가지 관점에서 했습니다. 이 시장의 크기, 이 시장의 성장 속도, 이 시장의 성숙도.
이런 관점에서 크게 봤을 때 될 만한 좋은 아이템과 시장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 믿음을 잃지 않는 게 저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거에 대한 제 믿음이 흔들리거나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두 번째는 결국 좋은 파트너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이라고 부르는 이재용 공동 창업자와 같이 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장병규 의장님, 저희 투자자들, 직원들처럼 좋은 파트너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걸 철저하게 인정해야 됩니다. 자기 메타인지가 너무 중요합니다. 혼자서는 가능하면 하지 마세요.
럭키 : 인도 사람이 말이 길다고 하셔서 짧게 말씀드릴게요ㅎㅎ 제가 항상 믿는 명언이 하나 있어요. Impossible이라는 단어를 분리하면 I'm possible이거든요. 세상에 불가능은 없고, 도전해 봐야 하고, 도전에 나이는 없습니다. 저는 리셋하고 리프레시해서 아주 멋진 도전을 언제든지 하면 잘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전에 나이는 없습니다.” 방송인·사업가 럭키. 출처: EO 이오서재
이철원 : 대표는 인도 10억 명의 시장을 향한 믿음이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일이 처음 그린 그림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어요. 결제 고객이 자연스럽게 대출 고객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는 빗나갔고, 회사는 고객 모집부터 새로 해야 했습니다. 폐업을 준비하던 2020년에도 그 믿음은 그대로였습니다.
문을 닫기 직전에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2015년 본엔젤스의 첫 투자 이후로 회사를 지켜봐 온 장병규 의장이 사재를 걸었고, 다른 투자자들이 뒤따랐죠. 늦은 창업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그가 건넨 조언은 두 가지였습니다. 믿음을 잃지 말 것, 혼자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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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사업해 온 한국인, 한국에서 사업해 온 인도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인터뷰 진행·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