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프로덕트 #마인드셋
5조 회사도 실패와 방황이 있었다. (feat.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 의장)

"세련된 A급을 흉내 내지 마세요. 우리만의 유쾌한 언어로 문화를 만들 때, 거대 자본도 넘볼 수 없는 브랜드의 독점이 시작됩니다."

2021년 2월. 세계 최고의 부호들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글로벌 기부 클럽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공식 홈페이지에 한 한국인의 서약서가 올라왔습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이 서명한 그 자리에, 재산의 절반 이상(수천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국인 최초로 선언한 인물.

그는 다름 아닌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의장이었습니다.

5조 원이라는 경이로운 가치로 회사를 글로벌 기업에 매각하고 성공한 창업가의 정점에 선 그는, 자신이 번 돈을 움켜쥐는 대신 세상을 향해 과감히 흘려보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 웅장한 순간만 보면, 그는 처음부터 거대한 자본과 경영학적 시스템을 통달하여 승승장구해 온 '정통 엘리트 경영자'처럼 보입니다.

"저는 정통 경영학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저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비즈니스의 부조리를 바라보았고, 우리다운 유쾌함으로 고객의 삶에 문화를 이식했을 뿐입니다."

그의 성취 뒤에는 지방 전문대 출신 무명 디자이너라는 열등감, 첫 수제 가구 창업의 처절한 실패와 억 대 빚더미, 그리고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전단지를 줍던 디자이너의 묵묵한 시간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경직된 경영학의 틀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B급 키치 문화'로 거대 공룡들을 제패했던 김봉진 의장의 다섯 가지 장소를 따라갑니다.

이 글이 끝날 때쯤, 당신은 남들의 성공 공식을 따라 하지 않고 나만의 시각과 톤앤매너를 지키는 것이 어떻게 비즈니스에서 가장 강력한 독점적 브랜드가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유명인들의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화이트크로우 뉴스레터

 

장소 1. 지방 전문대 출신 디자이너의 묵묵한 다짐 (1990년대 수유동 & 작은 디자인 사무실)

김봉진은 1976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 수유동으로 이사했습니다. 부모님이 가구점 식당을 운영하던 시절, 온 가족이 가게 구석의 작은 방에서 함께 모여 살아야 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는 명문대 디자인과 출신들이 엘리트 코스를 밟을 때, 지방 전문대(서울예대 실용미술과)를 졸업했습니다. 작은 디자인 회사에 입사해 밤낮없이 야근을 밥 먹듯 했지만, 주변에는 화려한 학벌과 스펙을 자랑하는 엘리트 디자이너들이 가득했습니다.

"내 배경과 학벌로는 이 판에서 남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경쟁하면 필패한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두려웠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나만의 시각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학벌과 스펙의 트랙에서 경쟁하지 마라. 정직하게 바닥에서부터 다져진 디자이너의 시각과 문제 의식이야말로 후일 판을 뒤엎을 진짜 무기가 된다.

 

장소 2. 경매 통지서와 억 대 빚더미가 덮친 영등포의 원룸 (2000년대 중반)

디자이너로 일하며 모은 돈과 대출을 쏟아부어 야심 차게 시작했던 첫 창업 '수제 가구 스튜디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혹했습니다. 디자인만 예쁘면 팔릴 것이라 믿었던 안일함은 억 대의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가구는 압류당했고, 매일 아침 빚독촉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집 문을 열고 나가는 것조차 공포였던 나날들. 영등포의 좁은 원룸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제품이 고객의 진짜 삶과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을 뼈아프게 반성했습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이너의 꿈은 깨졌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빚더미에 앉은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이 현장에서 그가 느낀 것은 거대한 절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예쁜 껍데기를 만드는 디자인은 무력하다. 고객의 일상 속 진짜 불편함을 해결하고 라이프스타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제품만이 생존한다.

 

장소 3. 쓰레기통과 길거리를 뒤지며 전단지를 줍던 강남의 도로 (2010년 배달의민족 시작)

다시 디자이너로 복귀해 빚을 갚아나가던 중, 스마트폰(아이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는 '전단지를 앱으로 옮기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동료들과 '배달의민족'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자본이 없던 그가 굵직한 배달업소 데이터를 모은 방법은 지독할 정도로 수작업이었습니다. 매일 밤 강남과 신촌의 길거리를 뒤지며 쓰레기통과 바닥에 떨어진 찌라시, 전단지를 수천 장씩 주워 담았습니다.

"디자이너라는 놈이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다닌다"는 주변의 비웃음.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단지 전화번호를 앱에 직접 타자 쳐서 입력했습니다. (Scale이 안 되는 지독한 수작업)

이 길거리에서 그가 본 사실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남들이 찌질하다고 기피하는 현장의 흙먼지 속에서 비로소 시장의 진짜 데이터가 싹튼다. 

둘째, 위대한 비즈니스는 화려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찌질한 수작업을 견뎌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장소 4. B급 키치와 무료 폰트로 대기업을 무장해제시킨 석촌호수 사옥 (2010년대 중반)

배달앱 시장이 커지자 네이버, 카카오, 해외 대기업 자본이 엄청난 마케팅비를 쏟아부으며 배달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자본력으로 싸우면 배달의민족은 며칠 만에 사장될 위기였습니다.

이때 김봉진은 완전히 다른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자본으로 싸우지 않는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디자인과 B급 문화'로 싸운다."

그는 유쾌하고 위트 있는 '한나체·주아체' 폰트를 만들어 세상에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전국의 버스정류장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르네상스 패러디 광고를 걸었고, 배민문방구를 통해 유쾌한 B급 감성을 브랜드에 이식했습니다.

이 현장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완벽하고 엄격한 A급 브랜드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가장 유쾌하고 솔직한 B급 문화를 무기로 삼자. 남의 세련된 문법을 따라 하지 않고 자신만의 위트로 엣지를 세웠을 때, 대기업 공룡조차 넘볼 수 없는 독점적 팬덤이 형성되었습니다.

 

장소 5. '송파구에서 일하는 11가지 방법'으로 일의 문화를 재정의한 사옥 벽면 (2017년)

회사가 수백 명의 조직으로 커지자, 김봉진은 또 한 번 독창적인 포스터를 사옥 벽면에 내걸었습니다. 바로 '송파구에서 일하는 11가지 방법'이었습니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팩트에 기반한 보고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그는 딱딱한 사규 대신, 직원들이 일상에서 유쾌하게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규범을 정립했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러 올 만큼 독보적인 조직문화 OS를 구축했습니다.

이 벽면에서 그가 보여준 사실은 분명합니다. 조직의 경쟁력은 거창한 경영 이론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그 조직만의 고유한 일하는 방식(OS)에서 나온다.

 

Epilogue

우리는 흔히 사업을 이끄는 창업가는 화려한 스펙과 완벽한 엘리트 경영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봉진의 궤적은 그 편견을 완벽하게 깨줍니다.

지방 전문대 출신의 무명 디자이너, 첫 사업 실패로 억 대 빚더미에서 울던 가장,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지며 전단지를 줍던 창업가. 그는 자신의 디자이너적 직관과 B급 기질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유쾌함과 B급 감성을 무기로 대기업 자본을 이겨내고 세상에 없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본인이 가진 성향이나 시각이 당장의 기존 성공 방식과 맞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것을 무기로 바꾸는 맥락을 찾아내는 순간 그것은 가장 독보적인 당신만의 장르가 됩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5조 원 매각 후 그가 왜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했는지, 폰트 무료 배포부터 더기빙플레지 서약까지 이어진 김봉진만의 '나눔의 비즈니스학'과 그 철학적 영향력을 따라가겠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유명인들의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화이트크로우 뉴스레터

※ 본 뉴스레터의 사실관계는 김봉진 의장의 서울예대 실용미술과 졸업, 첫 창업 수제 가구 사업 실패 및 억 대 빚 부담, 2010년 우아한형제들 설립 및 초기 전단지 수작업 수집 경험, 한나체·주아체 등 무료 서체 배포,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르네상스 명화 패러디 마케팅, '송파구에서 일하는 11가지 방법' 조직문화 정립 등 공개된 자서전, 언론 인터뷰 및 공식 기록을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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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민 화이트크로우 · CMO

여행과 창업에서 얻어지는 인사이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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