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아일랜드 서부, 러프 코립(Lough Corrib) 호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짙은 청회색 안개가 모든 것을 감싸서, 땅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 듯했습니다. 코네마라의 산들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가까이, 겹겹의 부드러운 푸른빛으로 서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철학자 존 오도너휴(John O'Donohue, 1956–2008)는 이 순간을 “땅이 오래 감춰온 아름다움이 문득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 호수가 특별하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땅은 원래 이런 감춰진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고, 우리는 매일 그걸 지나치고 있을 뿐이라고 썼습니다. 다정함이 있는 곳, 배려가 있는 곳, 작은 친절이 오가는 곳마다 실은 이미 아름다움이 있다고요. 다만 너무 조용히 우리의 하루하루에 짜여 들어가 있어서, 우리가 그걸 거의 알아채지 못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묻습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언제, 그런 걸 그냥 서서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사진을 찍지도 않고, 캡션을 고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숨만 고르며.

아름다움
우리 대부분은 이제 이런 순간을 거의 갖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갑니다. 오도너휴는 《아름다움, 그 보이지 않는 포옹》이라는 책을, 정치도 종교도 경제도, 심지어 가족과 공동체라는 오래된 울타리마저 갑자기 다 불안해 보이던 시기에 썼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자연스러운 평온이 깨져 버렸고, 미래에 대한 신뢰는 순수함을 잃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이 시대, “아름다움을 다시 불러내자”고 말하는 게 얼마나 순진하게 들리는지 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다시 불러내야 할 때라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해 온 결과로 지금 이런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미디어는 점점 더 추한 것을 ‘정상’으로 만들고, 아름다움은 순진하고 낭만적인 것쯤으로 치부됩니다. 무신경한 부동산 개발은 우아함도 신비도 없는 똑같은 방과 건물과 동네를 계속 찍어내고, 그 결과 땅은 점점 더 빠르게 황무지로 변해 간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여기서 그리스어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것’은 to kalon인데, 이 단어는 ‘부르다’라는 뜻의 kalein과 뿌리를 나눈다고 그는 말합니다. 즉 아름다움은 원래 장식이 아니라 ‘부름’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사실 그 자리로 불려가고 있는 겁니다. 멈추고, 주의를 기울이고, 나 자신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으라는 부름.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삶은 조용히 지치고 기능적으로 변해 간다고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다시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그 안에서 새로운 유연함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사이에 풀려난다고요.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고, 삶은 뜻밖의 용기로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용기는 두려움의 심장부를 건드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겁에 질린 에너지를 붙잡아, 그것을 주도권과 창의성과 행동과 희망 쪽으로 돌려놓는 힘이 용기라는 것입니다. 용기가 살아나면 우리를 가두던 벽은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되고, 어려움은 초대장이 되며, 마음은 신뢰와 확신의 새로운 리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런 용기의 은밀한 원천이 있지만, 그건 깨어나야만 하는 것이고, 아름다움과의 마주침이 바로 그 깨어남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너그러운 시선
피칭을 준비하거나, 투자자를 만나거나, 팀원과 갈등을 겪거나, 제품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결국 창업은 매일 크고 작은 두려움과 씨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단순히 “사무실을 예쁘게 꾸미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그 ‘부름’을 못 들은 척 지나치고 있다면,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용기를 계속 잠들게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먼저, 아름다움은 밝고 완벽한 것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중 빛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시간, 이른바 ‘블루 아워(blue hour)’를 떠올려보세요.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직전, 빛은 조용히 꺼지는 대신 오히려 그 순간 모든 색을 한꺼번에 피워 올립니다. 하늘이 다가오는 어둠에게 자기 자신을 통째로 내어주는 바로 그 문턱에서, 아름다움은 가장 강렬해집니다. 잃을 게 없고 오직 내어줄 것만 남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안전한 중앙이 아니라, 밝음과 어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혼돈과 의미가 서로 부딪히는 위태로운 경계에서 삽니다.
그런데 이걸 보려면 특정한 눈이 필요합니다. 서두르는 마음과 오만한 정신에는 그 안으로 들어갈 부드러움도 인내심도 없습니다. 반대로 여유 있고 너그러운 시선은 어디서든 아름다움을 찾아냅니다. 아름다움은 완벽한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특별하고 엘리트적인 찰나만을 위해 자신을 아껴 두지도 않습니다. 이미 모든 것 안에 조용히 숨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붙잡히거나 통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단한 사실이라기보다 하나의 ‘방문’에 가깝습니다. 춤추는 햇살처럼 장난스럽고, 예측할 수 없고,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순간에 갑자기 나타납니다. 아름다움이 삶을 건드리는 순간 그 자리는 환해지고, 그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선물이 됩니다. 우리의 계획과 전략에는 아예 면역이 되어 있어서, 가장 예상하지 못할 때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가 ‘매혹당했다’고 부르는 상태의 정체일지도 모릅니다. 준비하고 계획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방심한 틈에 붙잡히는 것.
고통과 상처의 자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조용히 묻혀 있지만, 그 상처가 연민으로 다듬어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깊은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진짜로 상상할 수 있고, 그렇게 태어난 연민이야말로 지금도 세상을 지켜주는 아름다움입니다.
가장 깊이 연결되는 순간
이 이야기는 그저 시적인 비유만은 아닙니다. 막스플랑크 경험미학연구소의 인지신경과학자 에드워드 베셀(Edward Vessel)과 동료들은 fMRI로 실험했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뇌에서는 시각피질과 보상 회로만 켜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우리가 몽상에 잠기거나 ‘나는 누구인가’를 곱씹을 때 켜지는, 자기 자신을 참조하는 바로 그 뇌 회로가 함께 켜졌습니다(NeuroImage, 2019).
다시 말해 아름다움은 스쳐 지나가는 자극이 아니라, 뇌가 그것을 자기 곁에 나란히 두고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때 일어나는 통합의 신호입니다. 문턱에서, 방심한 순간에, 붙잡을 수 없는 방문으로 다가온다고 여겨졌던 그 감각이, 결국 뇌 안에서는 우리 자신과 가장 깊이 연결되는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Editor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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