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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르는 유재석의 오만했던 신입 시절 (feat. 9년의 무명과 하나의 기도)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만약 훗날 제가 조금이라도 교만해진다면 어떤 가혹한 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유재석을 '타고난 성인군자'이자 '처음부터 완벽했던 천재 MC'로 생각합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설수 하나 없이 대한민국 예능의 정상을 지켜온 그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굳건한 바위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지독하게 찌질하고, 오만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 MC가, 사실은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고 카메라 앞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던 다섯 개의 장소를 따라갑니다.

이 글이 끝날 때쯤, 당신은 그가 긴 무명을 견뎌낸 '특별한 마음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유명인들의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화이트크로우 뉴스레터

장소 1. 귀를 후비적거리던 건방진 스무 살의 시상식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그는 훗날 KBS '해피투개더' 등 여러 방송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의 '오만함'을 털어놓았습니다. 1991년, 스무 살의 유재석은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 출전하며 자신이 당연히 대상을 받을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남들을 웃기는 데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가장 낮은 상인 '장려상'에서 호명되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무대로 걸어 나가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한 손으로 주머니를 찔러 넣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는 태도를 보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치기 어린 반항. 하지만 이 건방진 태도는 선배들의 눈 밖에 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그는 험난한 무명의 늪으로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장소 2. 메뚜기 탈을 쓰고 떨던 카메라 뒤편 (1990년대 중반)

유튜브 '핑계고' 등에서 지독했던 카메라 울렁증을 자주 고백하곤 합니다. 자신만만했던 스무 살의 패기와 달리, 프로의 세계는 냉혹했습니다. 동기인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이 스타덤에 오르며 승승장구할 때, 그는 카메라 불만 켜지면 준비한 대사를 까먹고 덜덜 떠는 심각한 징크스에 시달렸습니다.

NG를 연발하며 PD와 선배들의 호통을 듣는 것이 일상. 그는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개인기도 없었습니다. 결국 스스로의 얼굴을 가리는 '메뚜기 탈'을 쓰고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가야만 했습니다. 방송국 한구석에서 탈을 쓴 채,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는 이 길이 아닌가 보다'라며 개그맨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뼈아픈 자각이었습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나는 카메라 앞이 두려운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이다.'

 

장소 3. 어느 텅 빈 방안에서의 간절한 기도 (1990년대 후반)

MBC '무한도전' 300회 쉼표 특집 등에서 9년이라는 긴 무명 시절을 떠올리며, 어느 텅 빈 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이런 식으로 간절히 기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부디 제발,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단 한 번만 개그맨으로서 기회를 주신다면,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만약 제가 훗날 조금이라도 스타가 되어 교만해진다면, 세상이 제게 어떤 가혹한 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한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그는 매일 드렸다고 한다. 이 기도는 훗날 그가 30년 동안 단 한번의 스캔들도 내지 않고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들 수 있었던 자신만의 약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장소 4. 콩트 대신 '일상의 관찰'을 무기로 꺼낸 토크쇼 (1999년 서세원쇼 '토크박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예능 인생을 바꾼 결정적 터닝포인트로 1999년 '서세원쇼'를 꼽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그에게 찾아온 코너 '토크박스'에서 그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당시 예능의 필수였던 화려한 콩트 연기나 개인기 대신, 자신의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의 소소하고 찌질한 일상을 찰진 입담으로 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남들처럼 화려하게 연기하지 않았지만, 일상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공감 가는 이야기로 조립해 냈습니다. 이 무대에서 그는 마침내 '토크박스 왕'에 오르며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현장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억지로 나를 꾸며내어 남들을 웃기려 하지 말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상의 관찰과 솔직한 이야기'로 승부하자.

 

장소 5.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한 세트장 (2000년 목표달성 토요일 '동거동락')

그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나 시상식 등에서 "아무것도 아니던 나를 단독 MC로 강력하게 추천해 주신 분이 고 최진실 선배님이었다"며 깊은 감사를 표하곤 합니다. 그렇게 2000년 예능 프로그램 '동거동락'의 단독 메인 MC를 맡게 된 그는 전혀 다른 진행을 선보입니다.

당시 MC들은 자신이 돋보이고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려 했습니다. 하지만 9년의 무명을 겪으며 카메라 앞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유재석은 전혀 다른 진행을 선보입니다. 자신이 웃기는 대신 게스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묻혀있는 신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며 그들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판을 까는 진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무대가 보여준 사실은 분명합니다. 긴 무명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빛나기를 포기하고 타인을 빛내주는 순간 오히려 자신이 가장 빛나는 중심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Epilogue

그가 9년의 긴 무명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천재다'라는 자기 최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부족하다'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 그리고 '단 한 번의 무대'를 향한 맹렬하고 처절한 갈망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근본은 바로 '기회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불러주지 않던 그 서늘하고 외로웠던 방 안에서의 기도를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매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마침내 예능의 정상에 오른 그가, 어떻게 30년 동안 구설수 하나 없는 완벽한 '스캔들 제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지독한 금욕주의와 자기 관리의 근본을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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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민 화이트크로우 · CMO

여행과 창업에서 얻어지는 인사이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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