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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랙'은 사실 망한 게임 회사의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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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목요일, 창업가들의 인사이트를 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창업가들의 Day 0로 돌아가, 그들의 ‘처음’에 담긴 고민과 배움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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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제품이네요, 행운을 빌어요. (Good luck with your stupid little thing.)"

당시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가 내린 평가였습니다. 그 '별 볼 일 없는 것'은 출시 3년 만에 기업가치 50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업무용 메신저 툴 '슬랙(Slack)'이 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성공담으로만 생각한다면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슬랙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는 슬랙 이전에 게임 회사를 두 번 만들었고, 두 번 다 게임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 망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무언가가 태어났습니다. 첫 번째 실패에서 플리커(Flickr)*가 나왔고, 두 번째 실패에서 슬랙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플리커와 슬랙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의 Day 0로 돌아가봅니다.

*플리커(Flickr): 2004년 출시된 사진 공유 웹서비스. 2005년 야후에 인수되었으며 인스타그램 이전 시대 가장 대표적인 사진 공유 플랫폼이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망해가던 게임에서 태어난 플리커
2. 성공 이후, 두 번째 실패는 더 무거웠다
3. '팔려던 것'은 사라지고 '쓰던 것'이 남았다

 

1. 망해가던 게임에서 태어난 플리커

스튜어트의 부모님은 1970년대 히피* 문화를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깊은 산골에 오래된 통나무집을 구해 자급자족하며 살았는데, 스튜어트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수돗물이 없었고, 네 살이 될 때까지 전기도 없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폴란드에서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캐나다로 이민해 어렵게 살아남은 분이었는데, 통나무집 마당에 놓인 욕조를 보고 기가 막혀했다고 합니다. "폴란드를 탈출하느라 그 고생을 했고, 너희들 모두 대학까지 보냈는데, 이제는 이런 데서 사느냐."

*히피(hippie): 1960~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기성 사회의 질서와 가치관, 물질 문명을 거부하고 자유와 평화를 추구한 반문화 운동.

 

그렇게 자란 스튜어트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합니다. 원래 목표는 철학 교수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컴퓨터에 빠져들었고, 방학마다 HTML 코딩을 독학해 지역 기업들의 웹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기술 분야가 교수보다 더 좋은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졸업 후 밴쿠버로 거처를 옮겨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1999년 커뮤니케이트닷컴(Communicate.com)이라는 스타트업에 합류합니다. 브라질닷컴, 베트남닷컴, 퍼퓸닷컴처럼 '황금 도메인'을 수백 개 사두고 그 위에 이커머스 제국을 세우겠다는 야심 찬 곳이었죠. 하지만 아무도 자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회의는 매일 고성으로 끝났습니다.

이 회사가 제대로 된 무언가를 만들어낼 리 없다고 판단한 스튜어트는 2000년 2월 회사를 나왔습니다. 지분으로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금액은 약 1,000만 달러(약 130억 원)였는데, 실제로 손에 쥔 돈은 3만 5천 달러(약 4,600만 원)였습니다. 그런데 10일 뒤, 닷컴 버블이 터졌습니다. 일찍 떠난 덕에 오히려 얼마라도 챙겨 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는 "결국 내가 3만 5천 달러를 더 받은 셈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1973년 9월, 생후 6개월의 스튜어트와 부모님. (출처: flickr.com/stewart)
1973년 9월, 생후 6개월의 스튜어트와 부모님. (출처: flickr.com/stewart)


📒 Editor’s Note:


스튜어트의 본명은 '다르마(Dharma)'. 힌두교와 불교에서 '길(道)'을 뜻하는 이름인데, 열두 살에 "그냥 평범한 아이가 되고 싶어서" 스스로 '스튜어트'로 바꿨다고 한다. 훗날 그는 "다르마 버터필드는 정말 멋진 이름이었다"고 말하며 이름을 바꾼 선택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그가 관찰한 바로는, 소설·영화·드라마에 등장하는 스튜어트(Stewart/Stuart)라는 이름의 캐릭터는 두 가지 유형밖에 없다고 한다. 루저 스튜어트, 그리고 나쁜 놈 스튜어트. 유일한 예외는 미국 아동 문학 고전에 나오는 생쥐 스튜어트 리틀(Stuart Little)이라고.


 

2002년, 스튜어트는 친구 에릭 코스텔로(Eric Costello), 제이슨 클래슨(Jason Classon), 그리고 당시 여자친구였던 카테리나 페이크(Caterina Fake)와 함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름은 '게임 네버 엔딩(Game Never Ending)'. 웹 브라우저에서 돌아가는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싸움이 아닌 창의성과 사회적 교류를 중심에 두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닷컴 버블 붕괴 직후였고, 인터넷 기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게임 완성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팀은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릭만이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월급을 받았고, 나머지는 무급이었습니다.

 

그 무렵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뉴욕 출장길에 오른 스튜어트는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공항에서도 토하고, 택시 안에서도 토하고, 호텔 체크인을 하자마자 카펫에도 토했습니다. 그리고 열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새벽 5시, 무언가 떠오른 스튜어트는 종이를 꺼내 머릿속 아이디어를 적기 시작합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 둔 기술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채팅하고, 오브젝트를 주고받고, 화면 위에 직접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웹 기반 인터페이스였습니다. '게임 속 아이템' 자리에 사진을 넣으면 어떨까? 기술을 새로 짜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의 용도를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팀원 대다수는 여전히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스튜어트의 설득 끝에 결국 팀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2004년 2월, 플리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2004년 베타 서비스 당시 플리커 초기 화면.
2004년 베타 서비스 당시 플리커 초기 화면. "실시간 드래그 앤 드롭 공유"를 핵심 기능으로 내세웠고, 하단에는 게임 회사 루디콥(Ludicorp)의 이름이 남아 있다. (출처: Web Design Museum)

 

💡 Insight Note

플리커의 시작은 이미 만들어 둔 기술의 용도를 바꾼 것이었다. 절박함이 새로운 발명을 만든 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던 것을 다르게 본 것이 전환점이 됐다.

→ 지금 내가 가진 것 중, 원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을 다시 보는 것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2. 성공 이후, 두 번째 실패는 더 무거웠다

플리커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습니다. 구글이 블로거(Blogger)를 인수했는데 사진 호스팅 기능이 없었고, 공식 도움말 페이지에 "사진은 플리커를 쓰세요"라는 안내가 올라가면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2005년 초, 야후가 약 2,500만 달러(약 330억 원)에 플리커를 인수했습니다.

스튜어트는 인수 조건에 따라 야후에서 3년간 근무한 뒤, 2009년 다시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이번에는 조건이 달랐습니다. 플리커를 성공시킨 명성이 있었고, 투자금 1,750만 달러(약 230억 원)도 있었습니다. 팀원들도 플리커부터 함께해온 동료들이었습니다. 이번엔 될 것 같았습니다.

게임 이름은 글리치(Glitch). 나비의 젖을 짜고, 나무에서 달걀을 수확하는 기묘하고 몽환적인 세계였죠.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료 플레이어 한 명이 연간 평균 70달러를 쓸 만큼 팬층의 열의는 강했습니다.

스튜어트의 두 번째 게임, 글리치(Glitch)의 게임 화면. (출처: CNET / Tiny Speck)
스튜어트의 두 번째 게임, 글리치(Glitch)의 게임 화면. (출처: CNET / Tiny Speck)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은 있어도, 계속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습니다. 처음 3분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이 떠났습니다. 창업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는 "새는 양동이(leaky bucket)" 문제였습니다. 위에서 아무리 사용자를 부어 넣어도,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어 쌓이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새로운 게임 기능을 추가하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 다음 기능을 붙이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 다음. 하지만 사용자를 붙잡을 마법 공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12년 늦가을 새벽 2시, 스튜어트는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아침이 되자마자 공동창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글리치를 닫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수년간 쌓아온 방대한 애니메이션과 오리지널 음악이 게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직원들에게 이 결정을 알리기 위해 전체 회의를 소집한 스튜어트는, 첫 문장도 채 마치기 전에 울기 시작했습니다. 회의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 스튜어트가 "이 회사에 와야 한다"고, "나를 믿어도 된다"고 말하며 직접 설득해 데려온 이들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이제 스스로 깨야 한다는 사실, 그게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직원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불과 3개월 전,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타지로 이사까지 한 엔지니어였습니다.

이것이 스튜어트의 두 번째 게임의 끝이었습니다.

 


📒 Editor’s Note:


글리치를 닫은 뒤, 스튜어트는 해고된 직원 37명의 재취업을 위해 '하이어 어 지니어스(Hire a Genius)'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포트폴리오 정리와 추천서 작성, 채용 담당자 소개까지 직접 챙겼다. 결국 37명 전원이 재취업했고, 대부분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얻었다고. 당시에는 생각치 못했지만, 훗날 이 경험이 슬랙 초기에 커뮤니티의 신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Insight Note

버텨야 할 때와 그만둬야 할 때의 차이는 의지의 크기가 아니다. '아직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다. 스튜어트가 내린 판단의 기준은 하나였다. "나는 더 이상 이것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였다.

→ 지금 계속하고 있는 것의 이유가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서'인가요, 아니면 '그만두기가 창피해서'인가요?

 

3. '팔려던 것'은 사라지고 '쓰던 것'이 남았다

게임을 닫기로 결정한 그 주, 스튜어트는 직원들에게 글리치 폐업을 알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습니다. 글리치를 개발하는 수년 동안, 팀이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 채 특별한 도구를 만들어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글리치 팀의 내부 커뮤니케이션 도구, 필요에 의해 당연하게 써온 툴이었고 딱히 이름도 없었습니다. 이것의 핵심은 '채널(channel)' 구조였습니다.

이메일로 일하는 회사에 새 직원이 들어오면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요. 텅 빈 받은편지함입니다. 그간 팀이 나눈 수년치 논의, 의사결정 맥락, 실패의 이유들이 개인 메일함 어딘가에 흩어져 있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반면 글리치 팀의 채널 구조에서는 고객지원팀에 새 사람이 합류하면, 그 팀이 나눈 대화 전체를 첫날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결정을 왜 내렸는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 없이는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다. 다른 팀들도 이걸 원하지 않을까?" 내부 논의에서 결론이 나기까지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글리치가 문을 닫은 자리에서, 슬랙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2012년 11월 15일, 글리치 종료 직후 스튜어트가 올린 트윗.
2012년 11월 15일, 글리치 종료 직후 스튜어트가 올린 트윗. "타이니 스펙(회사명)은 닫지 않습니다. 글리치만 닫는 겁니다. 앞으로 더 할 말이 있을 거예요." (출처: @stewart / X)

다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습니다. 슬랙은 협업 툴로서 태생적인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이나 문자와 달리, 혼자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도구였습니다. 팀 전체가 동시에 써야만 의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스튜어트와 팀은 외부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시범을 보여줬는데,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같은 회사를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씩 찾아가서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슬랙을 한번 쓰기 시작한 팀에게는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글리치에서는 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새는 양동이' 문제가 슬랙에서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한 번 도입한 팀은 거의 떠나지 않았습니다. 슬랙을 쓰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한 사람이 새 직장에서 "여러분, 이거 써봐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커피숍 줄을 서면서도 동료에게 권했습니다. 업무용 소프트웨어에 대해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죠.

2014년 2월 정식 출시 후, 무료 사용자들에게 유료 전환 안내를 보내자 2~3주 만에 100만 달러(약 13억 원)어치가 팔렸습니다. 같은 해 10월, 기업가치는 12억 달러(약 1조 6천억 원)를 넘어섰습니다. 글리치를 닫은 지 2년 만이었습니다.

 


📒 Editor’s Note:


출처: Triuno / kindpng
출처: Triuno / kindpng

로그인할 때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이메일로 받은 링크를 클릭하는 방식, 아마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매직 링크(Magic Link)'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지금은 수많은 서비스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를 먼저 만들고 표준으로 굳힌 것은 슬랙이었다고.


슬랙 모바일 앱을 처음 출시할 때, 팀은 로그인 방식을 두고 고민했다. 복잡한 비밀번호를 기억해두었다가 스마트폰에서 입력해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편했기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메일 주소 소유 자체가 이미 본인 확인인데, 왜 비밀번호를 또 만들게 하지?" 그렇게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링크를 보내주고, 그 링크를 누르면 바로 로그인되는 매직 링크 방식이 탄생했다.


 

이 성장 뒤에는 제품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슬랙이 출시 2주 전인 2013년 7월, 스튜어트는 팀 전체에 메모를 돌렸습니다. 제목은 "우리는 안장을 팔지 않는다(We Don't Sell Saddles Here)".

안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무도 안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타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이 안장이 있으면 편합니다"라고 설명해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말을 타는 경험, 그 자유와 이동의 감각을 먼저 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안장은 자연스럽게 필요해집니다.

결국 메모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슬랙은 "그룹 채팅 시스템"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 사람들은 그룹 채팅 시스템을 원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절감", "이메일 75% 감소", "조직 전체가 더 나은 결정을 더 빠르게 내리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슬랙이 팔아야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조직의 변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초기에 슬랙을 설득하러 다닐 때 사람들의 반응이 차가웠던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능을 보여줘도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그렇게 일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 경험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은, 말을 타본 적 없는 사람에게 안장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슬랙은 제품의 가치를 통해 결국 그 벽을 넘었습니다. 2019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고, 2021년 세일즈포스(Salesforce)에 277억 달러(약 37조 원)에 인수됩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가 "별 볼 일 없는 제품"이라 했던 것이 출발한 지 7년 만이었습니다.

2019년 6월 20일, 슬랙 IPO 당일 뉴욕증권거래소 앞의 스튜어트 버터필드. (출처: Richard Drew / AP)
2019년 6월 20일, 슬랙 IPO 당일 뉴욕증권거래소 앞의 스튜어트 버터필드. (출처: Richard Drew / AP)

스튜어트는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이런 비유를 꺼냅니다. 골프장에는 수십억 개의 잔디가 있고, 모든 잔디는 골프공이 자신에게 떨어질 거라 믿는다는 것. 그리고 공이 떨어진 잔디는 "내가 맞을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는 것. 성공한 사람들이 사후에 자신의 성공을 필연처럼 포장하는 경향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슬랙도, 그 여정을 돌아보면 결코 '필연적인 성공'은 아니었으니까요.

두 번의 게임을 시도했고,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슬랙이 탄생했습니다. 스튜어트 버터필드의 Day 0는, 실패가 결코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 Insight Note

슬랙은 '그룹 채팅 시스템'을 팔지 않았다. 이메일이 75% 줄어드는 경험을, 새 팀원이 첫날부터 맥락을 이어받는 경험을, 회의 없이도 팀이 정렬되는 경험을 팔았다. 안장을 파는 회사와 승마를 파는 회사는 같은 물건을 팔면서도 전혀 다른 시장에 서 있다.

→ 내가 지금 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품의 기능인가요, 아니면 그 제품이 만들어내는 경험인가요? 고객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안장이 아니라 말을 타는 경험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의 Slack & Flickr: Stewart Butterfield 에피소드와 Lenny's Podcast의 Slack founder: Mental models for building products people love 에피소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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