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개월 만에 100만 유저 모은 팀은 무엇이 다를까
'거래액 30억' 공동구매 앱 올웨이즈 만든 레브잇 강재윤 대표

김지윤
· 에디터

“아마존보다 큰 이커머스 회사가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수 없다고 보신다면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습니다.” 

면접 때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어떨 것 같나요?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싶다가도 뇌리에 콕 박힐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작은 스타트업 면접에서라면 더 그럴 것 같아요.

바로 스타트업 레브잇(Levit) 이야기인데요. 창업자 강재윤 씨가 면접 때 꼭 이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레브잇은 팀 구매 기반 커머스 서비스 ‘올웨이즈’를 운영합니다. 5개월만에 100만 명 사용자를 확보한 앱이에요. 고작 10명의 팀원이 이러한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다들 아마존보다 더 큰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죠? 속된 말로 미친 성장을 추구하는 조직입니다.

그럼에도 반신반의 했습니다. 스타트업은 큰 꿈을 꾸는 동시에 현실적이어야 하잖아요. 이미 강자들의 전쟁이 된 이커머스 판에서 ‘아마존보다 큰 기업을 세우겠다’는 포부는 인상적이지만, 지나치게 큰 꿈이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강재윤 대표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올웨이즈

 

인터뷰 해보니 이 사람, 확실히 성장에 미쳐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설정해서 되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서 함께 움직이고. 큰 그림을 그려서 비어있는 퍼즐을 빠르게 찾아 맞추는. MBTI로 따지자면 P형의 유연성과 J형의 계획성을 모두 갖춘 불도저 유형이랄까. 실행력을 겸비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이런 인재들이 있다면 거칠 게 없을 듯합니다. 가진 것 없고, 정해진 것도 아예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감, 추진력이 생명이잖아요? 6개월 만에 초고속 성장을 이룬 레브잇이 딱 그랬어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마냥 거짓말 같진 않더라고요. 

※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질문 및 답변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검사가 되기 위해 과학고에 간 아이 

 

Q.창업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초등학교 때 꿈은 검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Q.검사라니 지금과는 전혀 다른 꿈이네요.

초등학교 때 우연히 ‘강철중’이라는 영화를 봤거든요. 그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배우 설경구 씨가 딱 권총을 들고 깡패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었어요. 5발을 연달아 쏘더니 ‘여기까지는 공포탄, 나머지 하나는 실탄이다. 모두 엎드려!’ 이렇게 제압하는 장면 하나였습니다. 검사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직업이구나 생각해서 어린시절 꿈이 됐어요.

 

영화 <강철중>의 한 장면.

Q.정의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어렸을 때 괴롭힘도 많이 당했고, 옳지 못한 사건을 보면 치가 떨릴 정도로 (강하게) 반응했어요. 이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Q.근데 문과로 진학해서 법대에 가시지 않고 공과대학에 가셨어요.

제가 잘하는 건 수학, 과학이었어요. 그래서 일단 과학고, 공대를 목표로 삼고 그 다음에 로스쿨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가장 잘 할 수 있으면서도 목표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원칙이거든요.

실제로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법대 수업을 찾아 듣고, 변리사 시험 공부도 하면서 로스쿨 진학 준비를 했습니다. 사법고시 준비하는 공대생 친구는 아마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옳다는 생각이 들면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어요.

제주도 소년이었던 강재윤 대표는 서울과학고에 진학한 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합니다.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면서도 법과대학에 자주 출몰했죠. 하지만 법학 공부를 할수록 그의 방황은 깊어졌습니다.

 

어린 시절 강 대표의 모습. (출처 : 강재윤)

 

Q.결국 원래 꿈꾸었던 검사가 되지 않으셨어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법학과 교과서를 펼쳐 볼 때마다 졸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수학, 물리처럼 로직(논리)이 중심이 되는 사고방식을 키웠는데, (법을 공부하면서) 법이라는 게 제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들과는 차이가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기존 판례를 최대한 따르는 게 제1원칙이라는 점, 같은 법조문이라도 결국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답이 달라진다는 점도 알게 됐죠. 

그때는 정말 어찌 할 바를 몰랐어요. 10년간 법조인이 되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나는 이제 뭘 해야 되는가’, 이런 질문에 봉착 했어요.

 

Q.방황하면서 창업가가 되는 터닝포인트를 얻으셨을 것 같네요.

과학고에 진학해서 처음 서울로 왔을 때부터 쇼킹했어요. 제주도에서는 ‘제주 3인방’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내가 이제까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느꼈죠.

예를 들어 기숙사에서 카드 게임을 할 때 상대편 카드를 보고 남은 카드를 계산해서 게임을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수학을 잘 하는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프로그래밍 수업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카드 게임 앱을 개발해서 론칭한 친구도 있었고요.

내가 한 발짝만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거기에는 내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종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충격은 그에게 행운이 됐습니다. 10년간 품었던 목표를 포기했지만, 방황을 모험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선사했거든요. ‘아이러니하게 법대가 아닌 공대에서 모험이 시작됐습니다.

 

서울과학고 재직 시절 강재윤 대표. (출처 : 강재윤)

 

프로그래밍, 무한대 임팩트에 눈 뜨다

 

Q.창업가로 꿈이 바뀔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현재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질문을 던졌을 때 ‘회로’ 관련 수업 성적이 가장 좋았어요. 그래서 회로 연구실쪽 졸업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학과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회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 입사해서 인턴으로 일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업무를 저에게 지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아직 해본 적 없지만 굉장히 단순한 로직을 가진 프로그램이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배울 수 있다.’ 저에겐 그게 용기가 돼서 실제로 배워서 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까지 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전지전능한 슈퍼파워를 가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 소프트웨어 하나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세상에 낼 수 있는 임팩트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크게 감명을 받았죠.

 

Q.세상을 바꾸는 ‘임팩트’를 주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한 것이네요.

네. 그때부터 거의 본능적으로 ‘나는 기술을 통해 뭔가 해야겠다’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당시 파이썬을 시작으로 인공지능(AI)을 접하면서 AI 기술을 최대한 많이 습득해서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일념을 갖게 될 정도로 거기에 심취했어요.

근데 스스로 학습하는 속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느리고 동기부여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이 기술을 빠르게 익혀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저를 몰아넣어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IT경영학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거기서 이렇게 말했죠.

나는 AI 전문가다. 머신러닝, 파이썬 프로그램 알려줄 수 있다! 

당시에는 (이렇게 말해서) 3~4명쯤 지원받은 후 간단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하는, 그런 배수진을 치려했던 것이었어요.

 

서울대 AI학회 발표 당시 강재윤 대표의 모습. (출처 : 강재윤)

 

근데 이 스터디에 42명이 지원해버렸어요. 졸지에 강연이 돼버린 거죠. 결국 학교 강의도 제대로 못 들을 만큼 스터디, 강연 준비에 몰입했어요. 단순히 저 혼자 공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정밀함과 높은 지식 수준을 요구하는 일이잖아요.

(심지어 스터디에 오는 사람마다) 각자 딥러닝 개발 환경도 다 달랐어요. 어떤 사람은 맥북, 다른 사람은 윈도우, 아니면 리눅스. 서로 다른 운영체제 시스템까지 다 이해해야만 강의를 진행할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린 시절, 세상을 이롭게 바꾸고 싶었던 아이는 “남들의 시간을 그릇되게 쓰는 게 너무 싫어서”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 됐어요. 그의 노력은 스터디원이 AI 분야로 진로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고, ‘디피스트’라는 딥러닝 학회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Q.딥러닝에 푹 빠졌다면 딥러닝 기술 창업을 했을 듯한데, 현재 올웨이즈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여요.

딥러닝 프로젝트, 딥러닝 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제로투원* 임팩트를 내기 위해 이 방향이 오히려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딥러닝으로 임팩트를 내기 위해선 데이터가 중요한데, 데이터는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같이 많은 사람을 커버하는 B2C* 스타트업이 확보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딥러닝 기술로 바로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보다는 앱이나 웹 개발 같은 기술을 익혀서 그걸 통해 임팩트를 내는 게 첫 단계라고 봤어요.

앱 개발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경영학회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앱 개발 고수’라는 배수진을 쳤고요. 이번에는 약 36명이 스터디에 지원했어요.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안드로이드 앱 개발의 기초라는 책을 사서 바로 공부하기 시작했고요. 

학회 수업 일주일 전부터는 이 친구들에게 가르쳐줘야 하는 내용을 혼자 다 개발해보면서 결과를 확인하는 식으로 준비해서, 정말 아찔하게 무사히(?) 강연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1만 개 사업을 분석하고 세운 이론 : 갈망론


Q.지금까지 대화를 종합해보면 ‘임팩트’, 세상을 바꾸는 데 관심이 많으신 듯해요.

지구 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제가 아끼는 친구들이 질병 때문에 스스로 커리어를 포기하는 걸 보면서 (인류에게) 아직 풀어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들이 지구에 있나 찾아보니 실제로 기업가들이 인류의 문제를 푼다는 걸 발견했어요.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만큼의 영향력을 갖춰서 자본, 꿈, 인력을 맞출 수 있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죠. 

(그러려면) 주변에 손에 잡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전 세계 인구를 건드리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봤어요.

영향력 있는 창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지도’를 만들었어요. 4년간 1만 개 기업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하는 작업이었죠. 지피지기 백전백승.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해부하며 인류를 보는 시야가 트였다고 해요.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생명과학 연구 기관 베릴리 홈페이지. (출처 : Verily)
일론 머스크가 대표로 있는 뉴럴링크는 뇌에 칩을 심는 임플란트 제품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출처 : Neuralink)

 

Q.지도를 만들면서 느낀점이 궁금합니다.

전 세게 기업 지도를 만들면서 ‘갈망론’이라는 저만의 원칙을 갖게 됐어요. 이걸 기반으로 기업 지도를 바라봤더니 웬만한 내용이 다 들어맞았죠. 저 또한 이 프레임워크(뼈대)로 기업을 시작하는 계기를 얻었어요.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들의 지갑을 여는 일이잖아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요. 그리고 이 만족은 선사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작동 원리(기작)를 따르고요. 그러니까 갈망은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항상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요소라고 봤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업이더라도 궁극적으로 동일한 갈망을 채워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패션 앱과 소셜미디어 앱이 ‘남들에게 더 특별하게 보이고 싶다’는 과시욕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몇 가지 안 되는 갈망에 기업들을 전부 연결 지을 수 있어요.

 

Q.몇 가지 갈망으로 비즈니스가 모두 분류된다면 새로운 기업도 새롭지 않은 셈이네요.

그 갈망을 만족시켜줄 새로운 방법을 보게 되는 겁니다. 예컨대 의식주의 ‘주거’. 더 편하고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존재했어요. 근데 2010년 이후 1인 가구 주거환경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기술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이 발생한 건데, 이 흐름에 올라타서 주거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켜준 직방, 다방 같은 기업이 새로 등장했다고 봅니다.

변치 않는 갈망을 한 단계 더 높게 만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 그게 결국 비즈니스 혁신을 만든다는 게 제 갈망론입니다.

 

‘모두가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는가. (출처 : 레브잇)

 

‘모매사소’, 성장에 미친 동료를 얻는 법

 

Q.레브잇 창업 전에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디어’의 공동창업자로 일하셨어요. 

군대에서 전 세계 기업 지도를 그리면서 갈망론을 세운 후 전역할 때쯤이었어요. 우연히 학교 선배가 전동 킥보드 서비스를 창업하는데, 기술 역량이 있는 공동창업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전역한 후에 바로 제 서비스를 론칭해서 창업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디어 창업팀에 합류하는 걸) 많이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스타트업을 통해서 조직이나 인사(HR), 실무를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해서 디어에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2년간 근무하면서 기술 개발 조직을 최대 15명 규모로까지 키웠고, 굉장히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2년간 디어의 CTO로 일하며 그는 블리츠스케일링*과 조직 인재 밀도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얻었어요. 적자를 무릅쓰고도 사업을 키워서 경쟁우위를 점하려면 각 팀원이 창업가에 준하는 인재여야 한다는 철학이 생깁니다.

 

Q.디어를 나와 레브잇을 창업할 때 어떻게 조직의 인재 밀도를 만들기 시작하셨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노화,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어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본과 인력을 비전과 맞출 수 있는 거대한 기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가 두 명 있었어요. 여전히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느끼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대한 기업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죠. 

 

레브잇 창업 초기 모습. (출처 : 강재윤)

 

저 너머에 있는 꿈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모두가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줄여서 ‘모매사소’를 키워드로 기업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서 창업에 이르렀습니다.

뛰어난 인재가 이러한 높은 목표를 갖고 달려나갈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세 사람이 모였을 때도 제가 대표지만 개발 경험이 가장 많았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개발을 해야 한다고 여겼고요. 근데 두 친구들이 말리더라고요.

“재윤아. 너는 개발 하지 마. 우리가 다 배워서 알아서 할게!"

와이콤비네이터 창업가 샘 알트만도 이렇게 말했잖아요. ‘가치관이 제일이고, 직무 스킬 여부는 마지막이다’.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서로 일치했기 때문에 사실 각자 어떠한 기술 역량을 갖고 있는지, 디자인 역량을 갖췄는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레브잇 팀이 초기에 개발했던 오디오 앱 ‘핑’(Ping) 서비스 화면. (출처 : 레브잇)

 

Q.앱 개발 등 실제 사업에 뛰어들면 조직 내 직무 역량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레브잇을 시작할 때 ‘모매사소’라는 키워드가 있을 뿐, 특별히 사업 아이템이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핑(Ping)이라는 음성 기반 통화 서비스를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했어요. 

당시 클럽하우스가 국내에서 핫했기 때문에 한국판 클럽하우스를 표방하면서 개발 경험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클릭했을 때 소리가 나는 음성 이모티콘 기능을 필두로 독특한 보이스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무야호 이모티콘을 누르면 “무야호~” 소리가 나는 식이죠. 

이런 기능이 틱톡에서 바이럴을 타서 순식간에 유저 1만 명을 모았습니다.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두 달 이상 더 많은 시간을 이 프로젝트에 잡게 됐어요.

하지만 ‘이 앱이 모매사소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그들. 앱이 유명세를 얻는 것과 실제로 매일 쓰임 받는 건 다른 문제였다고 해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매일 충족되기 원하는 갈망은 뭘까?’ 고민의 터널 끝에는 ‘가격’이라는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양파를 8만개 팔고서 배운 것

 

Q.이커머스 시장에 이미 여러 서비스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레브잇이 충족할 갈망이 더 남아있었나요? 

10년간 이커머스 시장을 봤을 때 대부분 가격보다는 편의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어요. 물류센터, 배송 인력에 투자해서 당일 배송, 익일 배송과 같은 편의성에 집중해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편의를 주기 위한 비용은 가격에 그대로 녹아들 수밖에 없고요. 그런 관점에서 현재 제대로 된 저가 플레이를 하는 커머스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때마침 중국에서 2015년에 등장해 고속 성장한 ‘핀둬둬’(PDD)라는 기업을 보게 됐는데요. 당시 중국에서 징둥닷컴이 편리한 빠른 배송을 중심으로 이미 성장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다양한 버티컬 커머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들 ‘더는 종합 커머스로서 파이가 남아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죠.

 

Pinduoduo and The Rise of Social E-Commerce | Y Combinator
공동구매 시스템으로 중국 이커머스 업계에서 급성장한 핀둬둬. (출처 : Y-combinator)

 

핀둬둬는 정확히 역주행을 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성장시키더라고요. 불필요한 유통 마진, 시장 가격을 높이는 다양한 비효율을 IT로 해결해서 사람들이 본 적 없는 가격을 만들어주고, 그 갈망을 기반으로 굉장히 빠르게 컸어요. 약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시가총액 100조원 이상, 연간 활성 사용자수 8억명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중국은 모바일 침투율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이커머스 시장 트렌드가 5년쯤 앞서 있거든요. (그렇다면) 2020~2021년에 이런 모델이 글로벌하게 등장할 때구나 싶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직거래가 활성화하는 상황이었고요. 국내로 치면 셀러(판매자) 사이에서 ‘옆 동네 순이가 스마트스토어로 굉장한 매출을 내더라’는 인식이 퍼지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현상을 발견하면서) ‘IT를 통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만드는, 새로운 종류의 종합 커머스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올웨이즈가 만들어졌어요. 지금까지는 편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물류 경쟁을 하며 투자를 했다면, 이런 측면에서 놓치고 있는 ‘가격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설을 토대로 2021년 9월 탄생한 올웨이즈. 처음부터 폭풍 성장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페이백(적립금)부터 번개 모임까지 온갖 기능을 시도했지만, 네이버 맘카페 입소문(바이럴)에서 그칠 뿐, 큰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했죠. 

 

 

Q.처음부터 폭풍 성장을 한 게 아니라니 의외네요. 어떻게 성장 모멘텀을 찾으셨나요?  


중국에 살았던 친구에게 ‘핀둬둬라는 서비스는 어떻게 그렇게 급속도로 유명해졌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친구가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핀둬둬는 휴지 한 방이었어.’ 

핀둬둬 휴지가 너무 저렴해서 중국에서 핀둬둬 휴지 안 사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얘기였어요. 팀에 돌아와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건드려야 할 게 서비스가 아니라 상품 하나일 수도 있겠다’고. 

마침 양파가 2900원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400원으로 바로 가격을 낮추고 10인 팀 구매를 진행하면 바이럴 엔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했어요. 그래서 순식간에 (앱에서 팔고 있던) 양파 가격을 400원으로 낮춰 봤어요.

2시간 만에 양파 1500개가 순식간에 팔렸어요. 판매자분이 전화가 와서 더는 못 팔겠다고 선언하셨어요. 바로 전국에 있는 영농조합에 하나하나 전화를 해서 양파 80톤을 모았죠. 8만 개 다 팔 때까지 원 없이 실험해보자! 이런 실험을 거쳐 매일매일 약 3000명 이상의 고객이 가입하는 단계까지 성장할 수 있었어요.

 

올웨이즈 앱에 고구마 100원 공동구매 딜을 열고서 제품 포장을 하는 팀 초창기. (출처 : 레브잇)

 

Q.양파 다음에는 어떤 상품을 테스트 해보셨나요?  

양파는 비교적 객단가가 싸기 때문에 갈망의 크기도 작을 것이라고 봤어요. 더 큰 갈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높은 가격대 상품으로 바이럴 엔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방식을 활용했어요. 첫번째는 감귤박스 99인 팀 구매를 시도했어요. 두번째는 테팔 프라이팬 추첨. 이 프라이팬이 약 12만원쯤 단가가 나오는데, 팀 구매 인원을 모으면 그 인원이 제품 추첨에 응모를 할 수 있게끔 운영해보면 어떨까 기획했습니다.

사실 이 기능들을 런칭하는 날까지만 해도 ‘이게 될까?’ 싶었어요. ‘99인이 아니라 39인으로 인원을 낮춰야 하지 않을까? 추첨을 누가 믿어줄까?’ 생각했어요. 

퇴근하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서비스 대시보드에 [감귤 99인 팀 구매 100개 성사]라고 돼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인 줄 알았어요. 알고보니 전국에 있는 아파트 단톡방과 맘카페에 [감귤 99인 팀 구매] 링크가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귤박스 하나당 3kg에 1만원짜리였는데, 한 팀이 한 번에 100만원쯤 구매하는 것이라면 100팀이 성사됐기 때문에 오전에 1억 원을 바로 긁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추첨 기획은 규모가 더 컸어요. 3일 만에 테팔에 12만 명이 응모했어요. 총 유저수가 1만 명이었던 시점인데, 3일 만에 유저가 13만 명이 되는 기염을 토하는 사건이었어요. 이 사건 이후로 다양한 팀 구매를 기반으로 바이럴 엔진을 다듬으면서 현재 약 1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모으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레브잇은 5개월 만에 월 거래액 3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멤버가 10명 남짓임에도 빠른 성장이 가능했죠. IT로 해결할 수 있는 최대치를 고민하며 각 팀원이 마치 창업가처럼 일하는 조직 덕분이었습니다.

 

올웨이즈 유저 반응. (출처 : 레브잇)

 

지나치게 큰 꿈을 해내는 사람들


Q.공동 구매 방식이 2010년 초반에 등장했던 소셜커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어요.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요. 일단 팀 구매는 단순히 ‘00명이 달성되면 주문이 완료된다’는 형식이 아니라 카카오톡, 네이버 카페 등 소셜 채널을 통해 직접 친구를 데려와야지 구매가 성사되는 형식이에요. 친구, 지인, 가족을 직접 데려오는 구조라서 실제 수요를 연결해서 수집할 수 있는 거죠.

또한 당시에는 부재했던 IT 기술을 활용해서 소매(리테일) 시장의 비효율을 끊임없이 파괴한다는 점도 기존 소셜 커머스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Q.IT기술도 지금 소셜커머스의 차별점이라고 보시는 걸까요? 

(레브잇은) 근본적으로 물류 조직, MD 조직이 아닌 IT기술로 비효율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편의를 중심으로 하는 커머스 서비스의 경우 저가를 만드는 방식이 대부분 MD가 영업력으로 협상을 잘 하는 게 기본이에요. 가격을 사람이 결정하는 구조에 가깝다고 봤습니다.

반면 올웨이즈는 유저가 앱에 머무르면서 ‘이것도 좋겠네!’ 느끼고 발견하게끔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디스커버리 기반 인터페이스에서 잠재 수요가 창출되는 거죠. 알고리즘으로 판매자가 스스로 정말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판매량을 내고 이윤을 가져가도록 자동으로 가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올웨이즈에서 양파를 공동구매하는 과정. (출처 : 레브잇)

 

Q서비스 규모에 비해 팀 규모가 작은 데도 이유가 있나요? 

물류 조직이나 MD조직 없이 모든 게 IT 기술로 이뤄졌기 때문에 IT기업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기업을 추구하고요. 여타 커머스 기업보다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조직 구조를 벤치마크한 것이예요.

저희 팀은 마치 대표 10명이 모여있는 조직과 같습니다. 미니 CEO를 채용해서 문제 단위로 조직을 구성해요. 예컨대 기획자, 개발자,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게 아니라 ‘입점 신청이 들어오는 수 많은 판매자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입점 시키면서 가격와 컬리티를 컨트롤할까’라는 문제가 ‘프라블럼 솔버’(문제 해결 담당)에게 할당되는 구조입니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자신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모든 방식을 동원해서 문제를 풀어내는 풀오너십이 부여됩니다. 인재를 채용할 때도 CEO로서의 자질을 가진 분들을 선발한 후 이들이 업무에 필요한 툴을 익힐 수 있도록 보조할 따름이에요.

 

 

Q.서비스 규모가 커지면 실무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가 조직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조직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돼 있어요. 문제 단위로 해결해나가는 프라블럼 솔버 조직, 그리고 프라블럼 솔빙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끔 백그라운드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조직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보안, 인프라 엔지니어링 같이 정답에 가까운 방법론이 존재하고 이에 관한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프라블럼 솔빙의 경우 기존에 없던 문제를 다룹니다.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해본 적이 있다, 영업을 해본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이 (프라블럼 솔빙 조직의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경력과 무관하게, 7가지 인재상을 갖춘 팀원을 레브잇은 선호합니다.

 

Q.그렇다면 레브잇에서 재윤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 또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한 명의 대표라고 봐요. 미니 CEO인 팀원들이 문제를 해결해서 꿈을 달성할 수 있게끔 자원을 제공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요. 제가 집중하는 키워드는 펀딩(자금조달)과 리크루팅(채용)입니다.

또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의하고 각자 문제를 풀어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만드는 조율자의 역할을 한다고 스스로 바라보고 있어요.

 

레브잇 단체 사진. (출처 : 레브잇)

 

[인터뷰를 마치며]

 

“그게 돼?” 

스타트업이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공인인증서 없이 전화번호만 입력해서 송금하는 게 돼?(토스) 상품 결제가 이렇게 바로 되는 게 돼?(쿠팡) 음식 배달을 전화가 아니라 앱으로 하는 게 돼?(배달의민족)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보이는 시도. 그런 시도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왔죠.

솔직히 레브잇 또한 물음표가 붙는 스타트업입니다. ‘반값 이상 할인이 돼? 아마존보다 큰 기업을 만드는 게 가능해? 그런 기업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돼? 창업가에 버금가는 사람들을 뽑아서 직무 스킬부터 익힌다고? 돈을 벌 수 있을까?’ 상식보다 파격에 가깝달까요. 마치 돈키호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잘못을 고칠 줄 알며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 돈키호테

 

 

신기하게도 인터뷰 말미에서 강재윤 대표도 이런 말을 했어요. 

“하루종일 일하지만 행복해요. 저희가 정말로 지금 사회에 가치를 주고 있어서요. 가격에 대한 갈망을 가치로 치환해서 사람들에게 실제로 큰 행복을 주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레브잇은 지나치게 큰 문제를 풀기 시작했어요.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요. “아마존보다 큰 이커머스 회사가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강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행동하는 이상주의자’들이 뭉쳤어요. 돈키호테도 부러워할 특권이죠. “그게 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레브잇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 본 아티클은 2022년 3월 공개된 <2022년 한국에서 가장 빨리 크고 있는 이커머스 회사>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레브잇 강재윤 대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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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Contributor
김지윤

콘텐츠,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버츄얼, 뉴즈 공동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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