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습니다. 이번 글이 가장 강합니다. 실제 실패 경험이 있고, 구체적인 숫자(7개월, 수백 통)가 있고, 맥도날드·엄지척·투명성 사례까지 다양합니다. EO에서 가장 잘 먹히는 포맷이에요.
다만 지금은 두 개의 글이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사우디 실패 경험 + 글로벌 브랜딩 이론. 이걸 하나의 흐름으로 엮겠습니다. 그리고 목록형으로 나열된 교훈들을 산문으로 녹이겠습니다.
보이는 것과 이해받는 건 다르다: 글로벌 브랜딩에 대한 단상
7개월 동안 준비한 사우디 계약이 무산됐다.
"We'll get back to you soon." 그 soon은 끝내 오지 않았다.
문제는 영어도, 가격도 아니었다
처음엔 내 영어 실력을 탓했다. 계약서 문구가 애매했나, 가격 협상에서 실수했나. 밤새 주고받은 수백 통의 이메일을 다시 읽었지만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메일은 완벽했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나라의 속도와 관계 방식,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조급하게 밀어붙인 나였다.
나는 첫 이메일부터 견적서를 보냈다. 세 번째 이메일엔 계약서 초안을 첨부했다. 중동에서 비즈니스는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거래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라마단을 포함한 종교·문화 캘린더도 변수로 판단했다. 아니었다. 종교와 문화는 매너가 아니라 일정이다. 내가 보낸 이메일이 그들에겐 지금 답할 타이밍이 아닌 순간에 도착했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전이 없자 조급해졌다. 7개월이나 했는데 왜 아직도 안 되는 거지. 그 조급함은 열정이 아니라 리스크로 읽혔을 것이다.
호의적인 반응은 계약 의지가 아니다
이번 실패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있다. 바이어 1명의 호의적인 말보다, 내가 직접 확보한 20개의 시장 데이터가 더 세다.
사우디에서 반려동물은 아직 일상 소비재가 아니다. 사치재에 가깝다. 나는 이 시장의 단계를 과소평가했다. 바이어의 긍정적인 반응에 기대를 걸었고, 그들이 좋다고 하니 시장도 준비됐다고 착각했다.
리드는 관심이지 시장이 아니다. 한 명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나라 전체가 준비된 건 아니다.
보이는 것과 이해받는 건 다르다
인도 델리의 맥도날드에는 빅맥이 없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 문화를 존중해서다. 대신 치킨 마하라자맥이 메뉴판 상단을 차지한다. 한국 맥도날드엔 불고기버거가 있다.
그런데 인도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맥도날드는 어디서나 맥도날드다. 노란 아치, 빨간 로고, 브랜드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다.
본질은 지키되, 표현은 바꾸는 것. 이게 진짜 글로벌 브랜딩이다.
한 글로벌 브랜드의 아시아 진출 프로젝트를 본 적 있다. 핵심 가치는 투명성이었다. 미국에선 최고의 강점이었다. 그런데 아시아 일부 시장에서 반응이 이상했다. 투명성이 오히려 사생활 침해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같은 단어, 완전히 다른 해석. 결국 가치는 유지하되 표현을 바꿨다. 투명성 대신 신뢰로, 정보 공개 대신 약속 이행으로.
한국에서 엄지척은 좋아요다. 중동에선 욕이다. 한국에서 빨강은 열정이다. 서구권 일부에선 위험이다.
요즘은 누구나 전 세계에 브랜드를 보여줄 수 있다. 인스타그램 광고 하나면 뉴욕도, 파리도, 리야드도 닿는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이해받는 것이다.
글로벌 진출은 속도 게임이 아니라 신뢰 게임이다
그날 밤 오래 생각했다. 왜 계약이 안 됐을까.
나는 거래를 원했지만, 그들은 관계를 원했다. 나는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들은 신뢰를 먼저 쌓고 싶어 했다.
해외 시장에서는 빠른 실행보다 느린 확신이 리스크를 줄인다. 이 경험은 끝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대하는 내 기준을 한 단계 낮추고 단단히 만드는 과정이었다.
글로벌 브랜딩은 번역이 아니다. 국적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사람의 마음은 통한다. 단, 그들의 언어로 말할 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