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이로그에서 '갓생'이 키워드로 맞물린 시점은 2020년대 초반이다.
2.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2030 청년들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일상을 세부적으로 쪼개고, 극도로 효율화하며 작은 성취감을 얻기 시작했다.
3.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갓생' 언급량이 2020년 27만 건에서 2022년 64만 건으로 폭증했다. 여전히 갓생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1년 사이 반작용처럼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걍생'이다.
4. 걍생은 단순히 게으름이나 포기가 아니다. 성과주의 사회가 초래한 집단적 번아웃에 대한 반작용이자,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또 하나의 생존 방식이다.
5.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더 많이, 더 빨리, 더 열심히"를 외치는 허슬 컬처였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영향으로 갓생이 '성취'에서 '전시'로 확장되는 경향이 짙어졌다.
6. 새벽 4시 미라클 모닝, 운동 인증, 빼곡한 플래너 인증이 넘쳐났고, 일부는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7. 과로와 번아웃을 성공의 훈장처럼 여기거나, 수면 부족과 바쁜 스케줄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신호로 소비되기도 한다. 마치 1930년대 영화에서 흡연이 멋진 행위로 묘사되었던 것처럼.
8. 한편으로 이런 ‘연출된 갓생’이 (은둔하거나 쉬고 있는) 청년들의 비교 압박, 불안, 정체성 피로도, 박탈감, 번아웃을 가중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9. 인간의 에너지는 유한하기에, 갓생으로 압박된 삶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닥터프렌즈)은 과로 환자들에게 "2주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잠만 자라"고 처방한다. 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며, 오히려 충분히 자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하며, ‘멍 때리기’에 관심도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0.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탕핑(躺平)’이다.
11. 탕핑은 ‘평평하게 누워있기’를 뜻하는데, 2021년 밈으로 등장해 현재는 사회 현상으로 번졌다. "노력해도 보상받기 힘들다면, 차라리 최소한의 생존만 유지하자"라는 시각이다.
12. 고속 성장 신화가 끝난 중국에서,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소비를 극도로 줄이며, 자본주의의 생산-소비 사이클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하는 현상이다.
13. 2022년 이후 등장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도 비슷하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는 건 아니지만, 맡은 업무의 최소한만 수행하며 정서적 에너지를 직장에 쏟지 않겠다는 것이다.
14. 팬데믹 시기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많은 이들이 일과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했기 때문이다.
15. 유튜브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 너덜트의 ‘실패한 사람들’ 영상은 무리한 새해 목표(금연, 금주, 운동, 다이어트, 영어, 미라클 모닝) 대신 딱 하나, 실현 가능한 목표(영어)만 세우자고 말하며, 사실 이는 ‘말해 보카’의 광고 영상이다. 그리고 유병재의 '게으름 선발 대회' 영상도, “게을러도 괜찮다”며 유쾌한 공감과 함께, 댓글로 자신의 게으름 공유하고 있다.
16. 2025년 중반에도 비슷한 영상들이 있었다. 띱 채널은 갓생을 쫓는 직장인들과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주인공을 대비시키며, 현재에 만족하는 삶도 하나의 갓생일 수 있다고 보여줬다. 시골쥐의 도시생활에서 갓생 살다가 걍생을 살아본 후기, 전참시에서 한지은이 목표는 갓생인데 현실은 작심삼일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17. 갓생 콘텐츠는 여전히 강력하다. 다만 그 반작용으로 걍생이라는 새로운 결이 함께 떠오르고 있다. 갓생을 원하는 시청자도 있고, 걍생에서 위안을 찾는 시청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