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줄요약!
1. AI 기술 발전은 정해진 '상수'지만, 수익화 시점은 알 수 없는 '변수'예요.
2. 앤스로픽은 현행 모델만으로도 노동생산성 1.8%p 향상을 증명했어요.
3. 화려한 축제 뒤편, 이제는 속도보다 '현실적 균형'을 고민해야 할 때예요.
AI를 신뢰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기업
2026년 새해, 전 세계 테크 업계의 시선이 라스베이거스 CES로 쏠린 지금. 제 눈길을 붙잡은 기업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앤스로픽(Anthropic)입니다. 2021년 설립 이후 앤스로픽은 늘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주면서도 경쟁사들에 비해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발표도 적었고, 목소리도 낮았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유일하게 ‘신뢰’를 잃지 않은 AI 기업이 바로 앤스로픽이었습니다.
OpenAI는 지브리 스타일 모방 등 저작권 논란에 휩싸였고, 구글은 멀티모달 시연 영상 편집 논란으로 신뢰에 금이 갔습니다. 무엇보다 'AI 거품론'의 핵심인 수익화의 벽 앞에서 많은 기업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요. 앤스로픽은 달랐습니다. 범용 모델의 성능은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코딩이라는 명확한 무기로 B2B 시장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더 인상적인 건 태도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AGI(일반인공지능)를 섣불리 논하며 기대감만 부풀리는 대신, "가장 안전한 모델을 만들겠다"는 본연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갑니다. 스타트업 특유의 날카로움과 성숙한 기업의 신뢰를 동시에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남들이 CES의 화려함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앤스로픽의 '침착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술은 '상수', 경제는 '변수'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AI 산업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기술은 상수이고, 경제는 변수라고요.
기술에 대해서 아모데이는 확신했습니다. 더 많은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가 투입되면 모델 성능은 계속 올라간다는 것을 직접 연구하고 최초로 문서화한 사람으로서 AI가 계속 좋아질 것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거의 확정된 것으로 봅니다. 최근 주목받는 추론 모델이나 테스트 타임 컴퓨트 역시 방향을 바꾸는 혁신이 아니라, 기존 곡선을 더 가파르게 만드는 조정에 가깝다고 봅니다.
무작정 데이터센터를 늘렸다가 파리만 꼬이게 될 수도 (생성 : ChatGPT-5.2)
문제는 경제입니다. AI 산업은 비용이 먼저 발생하고 수익은 나중에 따라오는 구조입니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데이터센터는 짓는 데만 1~2년이 걸리고, 그 비용도 천문학적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매출이 어디까지 커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술은 직진하는데 재무는 안갯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구조에서 AI 버블 논쟁은 논점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이 거품이냐를 묻지만, 실제로 위험한 건 기술이 아니라 타이밍과 투자 판단인 거죠. 컴퓨트를 적게 사면 고객을 놓치고, 많이 사면 비용을 견디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사들이 "YOLO"식의 무모한 확장을 하고 있다며 비판하는데요. 앤스로픽이 무리한 소비자 시장 경쟁보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확실한 마진을 챙기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을 버는 속도가 돈을 쓰는 속도를 따라잡을 때까지 버틸 체력을 비축하기 위함입니다.
칩이 낡는 속도 vs 칩이 발전하는 속도
아모데이는 GPU 감가상각 논쟁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이 논쟁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GPU를 3년 쓰느냐, 5년 쓰느냐에 따라 재무 전망이 크게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수명을 길게 잡을수록 비용은 줄어들고 수익성은 좋아 보입니다. 이를 두고 '빅쇼트'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는 'AI판 분식 회계'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5개 빅테크들의 연도별 네트워크 컴퓨팅 장비 내구연한 (출처 : 버리 X)
아모데이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칩이 얼마나 빨리 닳느냐’가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AI 경쟁이 심화될수록 칩의 세대교체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경쟁사가 새 칩으로 성능과 비용을 동시에 낮추는 순간, 구형 칩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앤스로픽은 칩 효율 곡선이 앞으로도 가파르게 이어질 것을 전제로, 재무 모델을 보수적으로 잡습니다. 다시 말해, 칩의 수명보다 기술 진화 속도와 경쟁 구도를 더 위험 변수로 본다는 인식입니다. 기술을 낙관하되, 숫자에는 낙관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숫자로 검증된 1.8%p의 잠재력
그렇다면 앤스로픽이 이토록 신중하게 준비하는 AI 시대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여기서부터는 수석 경제학자 피터 맥크로리의 데이터가 답을 합니다.
그는 최근 앤스로픽에서 공개한 리포트와 전미경제학회에서 "현행 AI 모델이 전면 도입될 경우, 향후 10년간 노동생산성을 연간 1.8%p 향상시킬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았습니다. 클로드 실제 사용자 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과업이 얼마나 빨라졌는지"를 추정하고, 그 과업을 직무·임금 데이터와 연결해 계산한 근거입니다.
직업별 노동생산성 향상률 (출처 : 앤스로픽)
이 숫자가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현행 모델'만 놓고 계산했다는 점입니다. 맥크로리는 모델이 더 복잡한 과업까지 빠르게 확장되면 1.8%p는 오히려 과소 추정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기술 진보가 계속되면 '효율의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반대로 이 숫자는 매우 강한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경제 모든 직업군에 적용'이라는 전제는 사실상 보편적 채택에 가깝고, 절약된 시간이 그대로 생산으로 재투입된다는 가정도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검수·조율·승인 같은 병목이 남고, 절약된 시간이 곧바로 매출이나 산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정이야 어떻든 지금 기술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은 확인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경제가 그 효율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냐'는 질문입니다.
AI가 만드는 부익부빈익빈
맥크로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배입니다. AI 적용이 균등하게 퍼지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인데요. 앤스로픽의 ‘Economic Index’는 이 우려에 숫자를 붙였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워싱턴 D.C., 유타, 캘리포니아, 뉴욕 같은 특정 지역이 AI 사용량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전 세계로 넓혀도 고소득 국가로 사용이 쏠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관측됩니다.
AI가 만들어 낼 부익부빈익빈 (생성 : ChatGPT-5.2)
이건 단순히 "테크 기업이 많은 곳이 AI를 더 쓴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산성 도구가 더 빨리 도입되는 곳이, 다음 성장의 과실까지 먼저 가져가는 구조를 뜻합니다. AI가 정보 격차를 줄여주기는커녕, '도입 속도'의 차이로 인해 이미 부유한 곳의 생산성을 더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죠.
여기서 앤스로픽의 ‘침착함’이 다시 한번 의미를 가집니다. 기술 낙관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장이 알아서 해결하리라는 믿음이 강할수록, 격차는 더 빨리 굳어질 수 있습니다. 맥크로리가 이 불편한 데이터를 공개하며 "정책과 산업이 대비해야 한다"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CES의 화려함 이면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아모데이의 거시적 전략과 맥크로리의 미시적 데이터는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입니다. 남들이 당장의 점유율을 위해 숨 가쁘게 달릴 때, 앤스로픽은 기술과 경제 사이의 괴리, 그리고 필연적으로 뒤따를 불균등한 확산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이 철학이 있기에 앤스로픽은 요란한 속도전 대신 파산하지 않고 버틸 재무적 체력과 사회가 감당할 준비를 돕는 책임을 강조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구글이나 OpenAI의 소모적인 ‘코드 레드’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들만의 템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CES는 '피지컬 AI'를 필두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AI가 로봇과 결합해 우리 눈앞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 밝은 미래를 전망케 했는데요. 눈앞의 화려함이 강렬할수록, 보이지 않는 이면의 구조를 바라보는 냉정함이 절실합니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우리가 앤스로픽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바로 '기술의 속도'와 '현실의 무게'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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