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찰한 것
— 우리는 이미 AI에게 아이디어를 말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열기 전에, 혹은 메모장을 열기 전에 먼저 AI에게 말을 건다.
“이런 생각이 있는데 어때?”
이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반복된다.
흥미로운 건, 이 문장이 아이디어의 시작이 아니라 용기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아직 아이디어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말해도 되는지,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이 생각이 너무 허술하지는 않을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첫 문장은 짧다.
너무 짧아서, 사실상 정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는 묘하게 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
기대, 경계, 약간의 불안,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
AI가 이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대화는 갈린다.
조금만 날카로운 질문이 나오면 대화는 바로 닫힌다.
반대로 “그건 너무 추상적입니다” 같은 말이 나오면, 사람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창을 닫는다.
하지만 한 번, 정말 한 번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이 꽤 있어요”
같은 반응을 받으면, 그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문장이 길어진다.
“사실은…”이라는 말이 나온다.
몇 년 전 경험, 짜증 났던 순간, 계속 마음에 걸렸던 장면들이 쏟아진다.
이때쯤 되면 아이디어는 이미 거의 다 나와 있다.
다만, 말한 사람만 그걸 모를 뿐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여기서부터다.
사람은 이미 핵심을 다 말해놓고도,
“아직 정리가 안 됐어요”라고 말한다.
정리가 안 된 게 아니라, 정리된 형태로 본 적이 없을 뿐인데.
그래서 AI가 한 번 요약해주면, 이런 반응이 나온다.
“맞아, 이거야.”
“내가 생각한 게 이거였네.”
어쩌면 사람은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처음으로 마주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대화는 자주 멈춘다.
AI가 더 깊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럼 누가 이걸 쓰나요?”
“돈은 어떻게 버나요?”
“경쟁사는 어디인가요?”
질문 자체는 틀리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맞는 질문이다.
그래서 문제다.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지친다.
면접이 아닌데 면접을 보는 느낌이 들고,
생각을 꺼내는 자리인데 심사를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많은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아이디어가 나빠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다루는 방식이 사람과 맞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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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선언
— 그래서 AI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AI가 더 똑똑해지면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한 질문, 더 좋은 분석, 더 정교한 답변.
하지만 실제 대화를 보면, 문제는 지능이 아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아이디어 초반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다.
질문도 아니다.
그저 이 생각을 꺼내도 괜찮다는 신호다.
그래서 AI는 처음부터 묻지 않아야 한다.
대신, 먼저 한 발 내밀어야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엔 이런 가능성들이 있어요.”
“완전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런 방향도 있긴 해요.”
이건 답을 주는 게 아니다.
생각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발을 디딜 수 있는 돌을 하나 놓아주는 일이다.
대화가 조금 진행되면, 그때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미 말한 것들을 기억하고,
“아까 이런 얘기를 하셨죠”라고 되짚고,
그 말들 사이에 생긴 간극을 조용히 보여줘야 한다.
이 단계의 AI는 친절한 동료에 가깝다.
같이 메모를 정리해주고,
놓친 부분을 표시해주고,
“여긴 아직 비어 있어요”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 어느 순간이 되면
AI는 조금 불편해져도 된다.
“이 질문은 이제 한 번은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계속 미정으로 두기엔 이 부분이 너무 중요해요.”
“이 상태로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건 공격이 아니다.
압박이지만, 같은 팀의 압박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가능한 말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건,
AI가 모든 걸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화는 길어지고, 컨텍스트는 사라진다.
이건 기술적인 한계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AI에게 기억력을 요구하는 대신,
기억을 정리하는 구조를 주기로 했다.
대화는 흘러가도,
그 대화에서 나온 생각들은 구조로 남는다.
누구를 위한 아이디어인지,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지,
아직 말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
AI는 그 구조를 기준으로 다시 대화에 들어온다.
모든 걸 기억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고 있는 코치처럼.
그리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AI와의 대화는 언제나 개인적이어야 한다.
사람은 공개된 자리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항상 혼자 있을 때 시작된다.
그래서 대화는 비공개로 남기고,
그 결과만을 세상과 나누도록 했다.
아이디어를 전시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디어를 소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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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독자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이 단순히 AI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왜 하나의 서비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이미 한 번쯤은 비슷한 대화를 겪어봤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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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내일 이어집니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