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세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캠페인을 앞두고, 많은 의사결정권자는 ‘모델의 이름값’이 가져올 즉각적인 화제성에 유혹을 느낍니다. 유명 모델을 기용해 일단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고 나면, 브랜드의 고민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죠. 하지만 비즈니스는 운에 맡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모델의 유명세가 브랜드가 처한 인지적 결함을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면 그건 성장이 아니라 비용일 뿐입니다.
너무 강렬한 모델이 낳은 ‘인식의 미스매치’
과거에 저희와 협업했던 라이프스타일 가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신생 브랜드 L사의 사례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L사는 첫 브랜드 캠페인에서 압도적인 고급스러움과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톱스타를 모델로 발탁했습니다. 광고 송출 직후, 모델의 팬덤과 대중의 관심 덕분에 ‘단기적 화제성(조회수 등)’은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브랜드를 기억하거나 상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타깃한 고객들의 구매 전환률이 계속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비자 서베이를 통해 찾아낸 원인은 명확했습니다. 소비자들이 가전 브랜드에 기대하는 핵심 가치는 ‘성능의 신뢰성’과 ‘실질적인 가성비’였습니다. 하지만 L사가 기용한 모델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럭셔리’와 ‘프리미엄’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소비자의 뇌리에서 L사는 “비쌀 것 같은 잘 모르는 브랜드”로 정의되었습니다. 모델을 보고 느낀 감정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가 반드시 확보했어야 할 ‘합리적이고 믿을만한 가전’이라는 정체성과 충돌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실제로 비싸지 않은 브랜드임에도 '비쌀 것 같다'는 답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브랜드보다 모델만 더 돋보이게 만든 셈입니다.
모델의 아우라에 가려진 브랜드와 제품의 존재감
유명 모델을 기용했을 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시각적 주목도의 불균형입니다. 이를 단순히 모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브랜드가 잃는 기회비용이 너무나 큽니다.

보통 협업을 막 시작하게된 클라이언트들의 예전 광고를 AI 시선 예측 솔루션으로 분석하면, 강력한 페르소나를 가진 모델이 등장하는 영상에서 소비자의 시선은 대부분 모델의 표정과 제스처에 집중됩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모델의 이미지, 표정, 제스처 등이 제품의 핵심 기능이나 브랜드 로고와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맞물리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광고를 시청한 후 “그 모델 참 멋있네.”라는 인상만 남긴 채 정작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었는지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혹자는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에서 브랜드의 톤앤매너를 담아낸 콘텐츠이기 때문에 모델 중심으로 사고했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모델의 느낌만 기억하고 브랜드를 기억하거나 연결하지 못하면 효과적이지 않은 광고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데이터 검증과 제작 가이드
인간은 진화심리학적으로도 타인의 얼굴에 집중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타인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려는 습성도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모델 전략은 광고 분야에서 많이 쓰여왔습니다. 모델 전략은 무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략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으로 기용하게 되면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성공하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마케터는 모델 기용 전에 데이터로 방향을 잡고 제작 단계에서 이를 시각적으로 정밀하게 구현해야 합니다.
데이터 점검
-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델이 자사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 자산과 부합하는 페르소나를 지녔는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소비자 서베이 등의 방법을 통해 다음 지표들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우선 자사 브랜드의 제품 카테고리에서 소비자들은 어떤 핵심 가치와 감성적/기능적 이미지 자산을 추구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소비자들이 가전 분야에서 추구하는 것이 기능적 이미지를 우선하는지 감성적 이미지를 우선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기능적 이미지를 우선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내구성이 좋은', '가격이 저렴한' 등)
- 소비자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아냈다면 현재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는 무엇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또한 서베이로 가능합니다. 여러 이미지 자산을 객관식으로 놓고 자사와 경쟁사들의 이미지가 무엇으로 보이는지 질의하여 답을 얻어낸 로데이터가 있다면, 해당 데이터를 가공하여 브랜드 이미지 자산의 포지셔닝 맵을 그릴 수 있습니다.
- 위 내용이 정리됐다면 우리가 목표하는 이미지 자산에 가장 부합하고 도움이 될만한 모델을 리스트업한 후 선택하면 됩니다. 단순히 요즘 핫한 모델이 아니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모델을 말입니다. 물론 짧은 트렌드가 발생하여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모델을 섭외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전략은 틀리지 않습니다.(ex. 흑백요리사 등장인물 모델 활용)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자사 브랜드와 너무 동떨어지는 인물이라면 우리 비즈니스에 해가 될 수 있으니 잘 판단해야 합니다.
-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광고 전략 방향성이 이 과정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캠페인에서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이미지 자산을 형성하는 것이 목적일 때,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만의 니치한 이미지를 만들 때 각각 제작하는 광고 영상과 섭외하는 모델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광고 기획/제작 시 유념할 점
- 위 내용을 유념한채 신중히 모델을 기용했다면 광고 제작 단계에서도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광고 시청자의 시선 주목/관심/기억이 모델에만 집중되는 '뱀파이어 효과'를 피하고, 모델의 이미지/화제성이 제품과 브랜드로 자연스럽게 전이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이 분야는 감으로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AI 시선 예측 솔루션' 등의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면 어려움을 덜 수 있습니다. 위 사례를 보면 히트맵으로 표현된 주목도 상 모델 뿐 아니라, 제품에 시선/관심은 충분히 집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선으로 표현된 시선 궤적(흐름) 상으로도 시선의 순서가 모델 얼굴과 마시고 있는 제품으로 먼저 이동 후 좌측 제품으로 이동합니다. 각 요소 중 브랜드 자산은 2개나 포함되어 있어 다소 효과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선 추적 관련 원리 참고 포스팅: 링크)
- 이렇게 우리가 기획한 광고 소재(이미지/영상)에서 소비자의 시선과 관심이 모델 얼굴에만 가고 브랜드 자산(로고/색/메시지 등)은 패싱되는지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적 특성상 모델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도 기억해줘야 광고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솔루션을 통해 브랜드 자산이 충분히 노출되고 소비자의 시선 흐름 안에 속하는지 점검하여 기획 단계부터 최적화해야 합니다.
모델은 '전략적 수단'
광고 모델은 브랜드의 결핍을 메우고 메시지를 증폭시키기 위해 선택되는 가장 강력한 전략적 수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모델의 인지도에만 의존하는 마케팅은 브랜드의 자생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단순히 '화려한 광고'가 아니라 '브랜드의 자산이 정교하게 축적되는 광고'입니다. 비즈니스의 진짜 성장은 모델의 얼굴 뒤에 숨겨진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된 기획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지금 모델 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스타의 화제성에 매몰되기 전에 우리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할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데이터로 다시 정의해 보시길 바랍니다.
*더 다양한 광고 기획/제작 인사이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드래프타입 스튜디오 블로그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