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획하는 별입니다.
초기 창업자분들을 만나 멘토링을 하다 보면, 가끔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멘토님, 저희 지난달보다 매출이 2배나 늘었어요! 가입자도 폭발하고 있고요!”
분명 축하할 일인데, 정작 통장을 열어보면 잔고는 지난달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성장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는 것이죠. 소위 말하는 ‘바쁜 거지’가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우리가 사업의 속도에만 취해, 정작 가장 중요한 엔진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스타트업 생존을 위해 꼭 구분해야 할 두 가지 개념, 트랙션(속도)과 유닛 이코노믹스(엔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자동차로 이해하는 사업의 두 가지 축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여러분이 투자자를 만나거나 다른 아티클을 읽을 때 이 용어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당황하지 않으시도록, 부득이하게 전문용어와 이를 대체할 쉬운 비유를 함께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 먼저 스타트업을 ‘자동차’라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우리가 수시로 확인해야 할 계기판은 딱 두 개입니다.
1. 현재 속도(Traction, 트랙션)
- 지금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시장을 뚫고 나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 매출 증가율, 가입자 수, 앱 다운로드 수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 투자자와 팀원들은 주로 이 ‘속도계’를 보며 환호합니다.
2. 엔진 효율(Unit Economics, 유닛 이코노믹스)
- 이 차가 기름 1리터로 얼마나 갈 수 있는지, 즉 ‘연비’를 뜻합니다.
- 어려운 말로 ‘유닛 이코노믹스’라고 하지만, 쉽게 말해 ‘고객 한 명에게 팔면 얼마가 남는가?’라는 기초 체력입니다.
- 이건 겉으로는 잘 안보이지만, 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게 하는 핵심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트랙션(속도)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화려한 성적표이고, 유닛 이코노믹스(엔진)는 우리끼리 챙겨야 할 내실 있는 건강검진표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적표(트랙션)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느라, 정작 본인의 건강(유닛 이코노믹스)이 망가지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엔진이 고장 난 차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국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과 ‘체질’
그럼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저지르는 가장 위험한 실수는 연비(수익 구조)가 엉망인 차를 타고 무조건 엑셀(마케팅)을 밟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떡볶이 가게 두 곳을 비교해 볼까요?

- A 식당 : 떡볶이 1인분을 팔면 1,000원이 남습니다. (좋은 엔진)
- B 식당 : 떡볶이 1인분을 팔면 1,000원 손해를 봅니다. (고장 난 엔진)
여기서 B식당 사장님이 “일단 손님을 모으는 게 중요해!”라며 마케팅비를 쏟아부어 하루에 1,000그릇을 팔았다고 칩시다. 겉보기엔 손님이 줄을 서는 대박 맛집(엄청난 트랙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단순화를 위해 마케팅비는 계산에 넣지 않아도 하루에 100만원씩 빚이 쌓이는 중입니다.
이걸 전문 용어로 ‘가짜 성장(Vanity Metrics)’라고 부릅니다. 엔진이 고장난 차는 빨리 달릴수록 더 빨리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밑 빠진 독에는 물을 아무리 빨리 부어도 채울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B 식당처럼 하는 게 정답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쿠팡’처럼, 초기에는 의도적으로 적자를 보더라도 빠르게 덩치를 키워 시장을 장악하는 ‘계획된 적자’ 전략이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투자자들 역시 이 시기에는 그 적자를 기꺼이 메워주며 "일단 트랙션(성장)부터 만드세요!"라고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투자가 얼어붙으면서, 덩치만 크고 내실이 없는 기업들이 무너지는 사례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선식품 당일 배송으로 급성장했던 ‘오늘회(오늘식탁)’나,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메쉬코리아)’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폭발적인 매출 성장(트랙션)을 만들어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수익 구조(유닛 이코노믹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투자 시장이 얼어붙자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투자로 적자를 막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겁니다.

오늘회(오늘식탁)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당일 배송으로 매출(트랙션)을 폭발적으로 늘렸지만, 높은 물류 비용과 재고 폐기율이라는 구조적 문제(유닛 이코노믹스)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후속 투자가 끊기자 서비스 중단이라는 아픈 결과를 맞이했죠.
부릉(메쉬코리아) 역시 배달 시장의 성장과 함께 연 매출 3천억원을 돌파하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을 바라봤지만, 만성적인 영업 적자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자금난 끝에 결국 법정 관리를 거쳐 매각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성장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골병이었던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닛 이코노믹스를 먼저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과거에는 엔진이 조금 고장 나도 뒤에서 투자자가 밀어주는 힘(투자금)으로 달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엔진(자생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출발조차 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큰 기업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예비/초기창업패키지 같은 정부지원사업 심사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넘어, “그래서 어떻게 돈을 벌 건데?”라는 자생력과 수익화 가능성을 훨씬 깐깐하게 검증하는 추세입니다.
순서를 지켜야 생존합니다
스타트업에게 성장(트랙션)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팔면 팔수록 돈을 버는 구조인가, 아니면 잃는 구조인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비로소 엑셀을 밟아야 할 타이밍입니다.
아직 우리 사업의 엔진 효율을 계산해 본 적이 없으신가요? 혹은 계산하는 방법이 너무 복잡해서 미뤄두셨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편에서는 복잡한 회계 지식 없이, 종이 한 장으로 우리 사업의 ‘진짜 수익성’을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 아주 쉽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