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빌딩 #운영 #마인드셋
창업 팀일수록 “적극적으로 대체되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혹시 거기서 일하다가 갈리는 거(!) 아니에요?”

초기 스타트업에서 꼭 모시고 싶은 인재가 있을 때 간혹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거기서 일하다가 갈리는 거(!) 아니에요?”

보통 초기 스타트업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당백으로, 소위 맨파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분명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탁월한 인재 없이 0에서 1을 만들어야 하는 초기 창업 팀이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스타트업에서도 충분히 구조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운영 시스템을 만들고 조직의 성장에 맞춰 구조를 구축해왔을 뿐더러, “적극적으로 대체되기 위해 일해야만” 오히려 일이 잘 굴러간다는 걸 몸소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커머스 사업을 준비하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또다른 도전이 바로 ‘구조적으로 일하는 팀’입니다. 스타트업이라도 구조를 만들어가며 일할 수 있다는 걸, 그렇게 해야 오히려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증명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글은 제가 그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일하기’에 관해 정리해보려 합니다.

 

01. ‘없어도 되도록’ 일하는 사람

일 매출 30만 원이던 회사는 어느새 일 매출 3천만 원을 넘기고 있었다.

1년여 간 4명이서 일하던 팀은 50명으로 늘었고, 타운홀에서는 매달 10명이 넘는 신규 입사자가 인사를 했으며, 그 절반은 조용히 회사를 떠나곤 했다.

나는 CX, MD, HR, SCM, 경영지원 등 거의 모든 실무를 맡았던 초기 멤버였다.

새로운 인원이 합류할 때마다, 그들이 회사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자연스럽게 내 역할이 되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항상 인수인계 문서를 함께 만들었다.

그 문서들은 내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장치였고, 경력자들이 입사해 팀을 구성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이후 나는 업무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팀을 신설해 ‘업무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전사 모든 팀과 협업하게 되었다.

모든 시작은 대체되기 위해 노력한 태도에서 비롯되었고, 그 과정에서 쌓인 인사이트는 오히려 나를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02. 반복되는 질문, 시스템으로 끊다

신규 입사와 퇴사가 매주 반복되던 시기, 회사 온보딩 문서의 마지막 줄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모르는 건 무엇이든 준석님에게 물어보세요.”

신규 입사자가 늘어날수록, 정말 사소한 일부터 책임이 모호한 그레이존 업무까지 이슈가 되었고, ‘일단 오래된 사람’인 나에게 크고 작은 결정과 해결이 쏠렸다.

이 반복을 끊기 위해, 나는 ‘인수인계 업무 가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질문이 반복되지 않도록 맥락과 체크리스트를 함께 정리했다.

특히 책임이 모호한 그레이존 이슈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기준과 책임자 지정 원칙까지 명시했다.

그때부터 질문은 줄었고, 나는 비로소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03. 감이 아닌 수치로 결정하기 시작했다

운영 업무는 가이드만 있어도 충분했다.

정해진 규칙과 순서대로 처리하면, 실수 없이 결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결정이 필요한 프로젝트성 업무는 달랐다.

예를 들어, 당시 회사에는 MD가 없었으므로 과거의 사례나 감에 기대어 프로모션 가격을 설정하곤 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외부 수수료가 높은 채널에 입점하게 되면서, 프로모션의 빈도는 늘고, 조건은 복잡해졌다.

매출이 늘어도 손해를 보는 구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로모션 설계의 논리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했다.

  • 단가를 기준으로 공헌이익과 최소 ROAS 기준을 만들고,
  • 대량 할인 시 이익 시뮬레이션 구조를 설계했으며,
  • 채널별 수수료를 반영한 프로모션 시트를 구성했다.

 

이 구조 덕분에 손익을 고려한 가격 전략이 가능해졌고, 타 부서와의 협업 과정도 훨씬 수월해졌다.

새롭게 합류한 MD들도 빠르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었다.

구조화는 효율을 넘어서, 신뢰로 이어졌다.

 

04. 조직을 하나의 언어로 정렬하다

 

팀이 생기고 조직이 커지자, 협업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자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 전체가 일하는 방식을 통일하지 않으면, 생산성은 무너지고 미스 커뮤니케이션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누구든 일을 할 때 지켜야 할 기준과 방식 만들었다.

일을 요청하거나 수행할 때는 다음 세 가지가 명확해야 했다.

  • 누가 주도하고, 누가 참여하며, 언제까지 완료할 것인지
  • 일의 규모에 따라 프로젝트, 스프린트, 태스크로 구분할 것
  • 요청 시에는 배경(왜), 내용(무엇과 어떻게), 기대 결과까지 포함할 것

 

이 기준은 노션 템플릿으로 고정해, 개인 간 요청부터 전사 프로젝트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PM에게 빵셔틀 시키기”라는 온보딩 실습도 도입했다.

신입사원들이 실제로 나에게 ‘빵을 사오라’는 업무를 요청해보며, 업무 요청 방식의 기준을 몸으로 익히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전사 모든 업무가 하나의 언어로 말해지기 시작했고, 업무는 정리되었으며, 각자의 우선순위와 책임도 명확해졌다.

업무 프로세스 ‘빵셔틀’ 세션은 다음 아티클에서

 

 

05. ‘업무의 해상도’를 높이는 사람

팀장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내가 맡고 있던 많은 업무가 인계되었다.

이제는 나 역시, 회사 안에서의 새로운 역할을 스스로 정의해야 했다.

나는 내 역할과 팀의 미션을 스스로 정의하고, 회사에 제안해 PM, Problem Manager 팀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대응하는 소방수였다면, 이제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정의하고 제거하는 전략가가 되고자 했다.

그때 내가 정의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업무의 해상도가 낮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 해상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 목표와 과정, 책임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 해상도
  • 수치와 기준을 기반으로 결정하는 의사결정 해상도
  • 각자의 업무 성과와 현황이 잘 보이는 운영 지표의 해상도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과거 서비스 기획자로 일할 때 쌓았던 데이터베이스 설계 경험을 활용했다.

판매, 물류, 광고, 사이트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고, 각 부서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시각화된 대시보드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팀들의 실무를 직접 경험하며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팀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빠르게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전사 모든 부서를 지원하는 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결국, 대체되기 위해 일했던 모든 경험이 오히려 나만의 고유한 역할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06. 사람은 사라져도 시스템은 남는다.

사실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대표 한 명뿐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퇴사한 지금도 회사는 내가 만든 시스템 위에서 일하고, 내가 만든 팀은 그 영역을 계속 확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보다 큰 문제를 해결하려면, 뛰어난 개인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훌륭한 팀이 필요하다.

그 팀은 내가 없어도 돌아가야 하고, 비전과 목표를 향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대체되기 위해 일했던 시간은 결국 내가 회사를 만들고, 팀을 설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체되기 위해 일하고 있다.

혹시 지금, 과거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작은 근거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이 애쓰고 있는 그 태도가, 언젠가 반드시 보상으로 돌아올 거란 믿음을 이 글이 조금이나마 뒷받침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링크 복사

IT와 커머스, 실패와 성공 경험을 공유합니다.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 아티클

IT와 커머스, 실패와 성공 경험을 공유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