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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1970년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정보 비대칭성’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정보가 많은 쪽이 가격 책정에서 유리하다는 내용이었죠. 예를 들어, 중고차 딜러가 차량 상태를 더 잘 알기 때문에 가격을 유리하게 정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2001년 노벨 경제학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꺼냈냐구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리치 바튼(Rich Barton)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 억만장자가 된 창업자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최적의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비효율을 투명한 정보 공유로 해결했죠.
그가 해결한 문제로는 여행 예약, 부동산 정보, 직장 정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여행사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문의해야 했고,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웠습니다. 부동산 역시 중개인만 시세 정보를 알고 있어 소비자는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해야 했죠. 직장 정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봉이나 복지에 대한 정보를 지인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하지만 바튼은 기술을 활용해 누구나 객관적인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가 왜 이런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오늘은 익스피디아(Expedia)와 질로우(Zillow), 글래스도어(Glassdoor)의 창업자 리치 바튼의 Day 0, 1990년대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소비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제품은 실패할 수 없다
2. 불편함에서 시작된 두 번째 창업: 숨겨진 정보를 공개된 정보로
3. 소비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철학
1. 소비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제품은 실패할 수 없다
리치 바튼은 1989년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후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던 중,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대학 친구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죠. “리치, 여기야. 네가 일하기에 최적의 회사야.” 당시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학 캠퍼스에 찾아와 신입을 채용하는 작은 회사였는데요. 친구의 도움으로 면접을 본 바튼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합류하게 됩니다.
바튼은 윈도우 이전의 운영체제였던 MS-DOS 5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3년 후 소비자 부문으로 부서 이동을 요청하는데요. 창업을 꿈꾸던 바튼은, 만약 훗날 창업을 하게 된다면 OS(운영체제)보다는 소비자 제품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소비자 부문에서 그는 CD로 판매되는 멀티미디어 제품을 담당했고, 그중 하나가 여행 가이드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진과 글로 된 정보를 CD에 넣어두면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만들려 했죠. 하지만 당시 가장 가벼운 휴대용 컴퓨터조차 여행 가방만한 크기에 무게는 9kg이나 됐기에, CD로 된 여행 가이드를 보기 위해 이를 컴퓨터와 함께 들고 다닌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튼은 여행 정보를 휴대 가능하게 만드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여행 계획과 예약 방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출장이 잦았던 바튼은 매번 여행사에 전화해 항공권을 예약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전화기 너머로 키보드 소리와 함께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정보를 찾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 직접 그 정보를 보고 예약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내 여정에 가장 신경을 쓰는 사람은 사실 여행사 직원이 아닌 바로 본인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당시 온라인 서비스였던 프로디지(Prodigy)*를 이용해 항공사 및 호텔 예약 시스템에 직접 접속했습니다. 여행사가 된 것처럼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서비스를 정말 많이 이용했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소비자도 직접 예약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 팀원들과 함께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걸 일반 소비자에게도 제공하면 정말 편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직접 예약할 수 있는 힘을 주자.”라고 말이죠.
*프로디지(Prodigy): 웹(Web)이 개발되기 전, 1980~90년대에 운영되었던 미국의 초창기 온라인 서비스.
(출처: https://stvp.stanford.edu/contributor/rich-barton/)
그리고 마침내 이 아이디어를 빌 게이츠에게 제안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천 명 내외의 직원으로 구성된, 지금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의 회사였습니다. 매년 ‘제품 리뷰’ 회의를 열어서 각자 작업중인 것, 작업하고 싶은 것, 문제점 등을 발표하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에게 피드백을 받았죠.
이 회의에서 바튼은 본인이 사용한 프로디지 서비스를 우선 보여주었습니다. 프로디지는 직접 명령어를 쳐서 사용하는 커맨드 라인 기반 서비스였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기에는 그리 편리하지 않았죠. 바튼은 이를 윈도우 환경에서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 혁신적인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빌 게이츠도 이에 동의했고, 바튼은 팀을 꾸려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익스피디아(Expedia)’라는 이름을 정하고, 처음에는 이 서비스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MSN 플랫폼의 앱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넷스케이프(최초의 웹 브라우저)가 등장했고, 익스피디아를 웹 사이트로 변경하여 개발하게 됩니다.
사실 소비자가 직접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는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꽤나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기존 여행 산업과 시스템을 뒤바꾸는 일이었으니까요. 항공사들은 이 서비스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한 항공사 임원은 바튼에게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악담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바튼은 ‘소비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면 실패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서비스 개발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를 가장 흥분시킨 건 소비자 권한 강화의 측면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파괴적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하려던 건 소비자들이 원하는 미래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산업의 구조와 역학이 어떻게 변할지는 부차적인 생각이었어요. 소비자가 우리 편에 있으면, 처음에는 수백만 명, 그 다음엔 수천만 명, 나중엔 수억 명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거든요.”
1996년 마침내 익스피디아가 출시되었고, 이 서비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게 바로 미래다”라며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익스피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분리되어 상장했고, 바튼은 익스피디아의 CEO가 되었죠. 이후 몇 년 만에 익스피디아는 IAC에 인수되었으며, 바튼은 2003년 가정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떠납니다.
(출처: https://revenue-hub.com/expedia-converts-visitors-customers/)
📒 Editor’s Note: 바튼은 서비스 이름을 짓기 위해 이름 컨설팅 업체를 고용했고, 여러 후보들 중 ‘익스피디아(Expedia)’를 선택했다. 속도(speed), 신속(expedite), 탐험(expedition) 같은 여행과 연관된 긍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들을 엮은 이름이었는데, X가 들어가 있어서 스크래블* 점수가 높은 단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니 익스피디아는 음절이 많아서 기억하기 쉬운 이름은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다고 한다.
*스크래블: 알파벳 철자를 보드 위에 올려서 단어를 만드는 게임으로, 흔히 쓰이는 알파벳일수록 점수가 낮고 그렇지 않을수록 점수가 높다.
2. 불편함에서 시작된 두 번째 창업: 숨겨진 정보를 공개된 정보로
회사를 떠나 가족들과 이탈리아에서 1년여간의 휴식기를 보낸 바튼은, 장인어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함께 익스피디아를 만들었던 동료 로이드 프링크(Lloyd Frink)와 사무실을 얻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불편함에서 시작된다고 하죠. 미국으로 돌아온 바튼은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큰 좌절을 느꼈습니다. 2005년 당시, 웹 서비스가 등장한지 1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집 사진, 매물 정보, 가격, 심지어 주소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바튼이 원했던 건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집은 얼마일까?”, “우리가 그 집을 사려면 얼마를 제안해야 할까?”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원했을 뿐이었죠.
그는 이 상황을 “어두운 슈퍼마켓에서 손전등으로 쇼핑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합니다. 그러나 손전등마저 부동산 중개사가 들고 있어서, 매번 원하는 곳을 비춰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죠. 바튼과 프링크는 “이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여행 산업에서 했던 것처럼.”하고 다짐하며, 부동산 서비스 ‘질로우(Zillow)’를 설립합니다.
우선 부동산의 적정 가격을 찾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집의 가치를 매기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웠기에 다양한 테스트가 필요했죠. 처음에는 경매 방식을 활용해 가격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바튼은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한 친구에게 그의 매물 중 하나를 경매로 판매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웹사이트에 매물 정보를 올리고, 쇼핑몰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에 전단지를 배포하며 홍보했지만 결국 경매로 집을 팔지는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집을 판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죠. 이에 바튼과 프링크는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에 대한 아이디어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팀원들과 논의를 거듭하던 중, 집이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당시 닷컴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며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던 시기였죠. 누군가 주식 차트를 칠판에 그리며 “이 주식 차트처럼 집값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말했고, 모두가 흥미롭다고 공감하며 이를 실제 제품으로 개발해 보기로 합니다.
(출처: https://stanfordmag.org/contents/ammo-for-the-house-hunt)
📒 Editor’s Note: 바튼은 부동산과 여행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고 한다. 집을 보러다니는 것과 여행 상품을 쇼핑하는 것은 모두 일종의 ‘꿈꾸는 과정’이자, ‘재정(돈)’과 ‘감정’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바튼은 전국 모든 주택의 매도·매수 정보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집이든 적정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을 것이고, 풍부한 정보와 가격 데이터를 갖춘 마켓플레이스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죠.
당시에는 지도 서비스를 웹에 적용하는 것도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바튼은 지도 위에 모든 집의 가격이 표시되고 매일 업데이트된다면, 마케팅 없이도 사람들이 궁금해서 매일 방문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네가 결혼 안 하기로 했던 전 애인의 집 가격 봤어?”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럴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방대한 주택 가격 데이터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산업에서는 부동산 정보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실제 종이 문서를 손으로 입력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바튼은 이들 업체를 찾아가 비용을 지불할테니 데이터의 라이선스를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업체들은 처음에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소비자에게 무료로 데이터가 공개된다면 기존 사업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국 ‘다른 사업에 판매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라이선스를 제공하게 되었는데, 바튼과 프링크가 거액의 수표를 써가며 데이터를 확보한 덕분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익스피디아로 번 돈이 제 역할을 한 셈이었죠.
이렇게 주택 정보 및 거래 내역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했지만, 오래된 거래일 경우 현재 가격을 새롭게 산정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30년 전에 15,000달러에 거래된 집이 지금도 그 가격일 수는 없으니까요. 이에 질로우는 주택의 현재 가치를 측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이를 ‘제스티메이트(Zestimate)’라고 이름 짓습니다. 주택 거래는 계속해서 이루어지므로, 알고리즘이 산출한 가격과 실제 거래 데이터를 비교하며 정확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갔죠.
그리고 2006년 2월, 마침내 질로우 서비스를 런칭합니다. 대대적인 홍보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케팅 담당자였던 에이미는 오히려 비밀스러움을 유지하며 관심을 끌자는 전략을 제안했죠. 바튼과 프링크는 익스피디아 창업자로도 잘 알려져 있었기에, 단서를 조금씩 흘리며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도했습니다.
서비스 공개를 앞두고 바튼과 프링크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술 칼럼니스트 월트 모스버그에게 미리 질로우 서비스를 보여주었습니다. 모스버그는 예정된 시간보다 3시간 먼저 기사를 내보냈고, 질로우는 단숨에 주목을 받게 되었죠.
(출처: https://www.theglimpse.co/p/zillow)
📒 Editor’s Note: 질로우가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트래픽이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되고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마케팅 담당자 에이미는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질로우가 인기가 너무 많아서 서버가 다운됐다’와 같은 기사가 나가도록 유도했다고.
당시 질로우는 미국 내 1억 채의 주택 중 6천만 채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사용자는 ‘제스티메이트’를 활용해 ‘내 집의 현재 가치는 얼마일까?’와 같은 궁금증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과 감정평가사들은 초기에는 제스티메이트를 신뢰할 수 없는 도구라며 무시했지만, 진취적인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를 고객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했죠.
한편 질로우는 비즈니스 모델로 구글 맞춤 광고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들이 질로우에서 광고를 게재하면 수익을 얻는 구조였죠. 제품 경험의 측면에서 잘 타겟팅된 광고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이 집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제 번호입니다.” 같은 광고는 중개인의 홍보이면서도 소비자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이죠.
3. 소비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철학
질로우가 출시 3년 차를 맞이한 2008년, 예상치 못한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의 주택 시장이 붕괴된 것이었죠. 전체 주택의 총가치가 무려 2조 달러나 증발했으며 질로우의 매출 역시 감소했습니다. 회사 규모를 줄여야 했기에 함께 고생했던 팀원들도 내보내야 했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출이 언제 회복될지조차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바튼은 장기적인 변화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비록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졌지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거시적인 트렌드는 여전히 유효했죠. 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질로우가 다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지난 20년간의 기술 역사는 오프라인에 있던 것들을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어요. 바로 이 점이 시작부터 지금까지 질로우를 움직여왔던 원동력입니다. 이 흐름은 주택 시장의 변동과 상관없이 계속 존재하죠.”
바튼은 처음부터 꿈꿔왔던 부동산 시장의 디지털화를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합니다. 단순히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래 과정 자체를 간소화하고 디지털화하는 것이 목표였죠.
집을 사고팔 때 사람들은 수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 집은 얼마에 팔릴까?’ ‘언제쯤 팔릴 수 있을까?’ ‘몇 명이나 집을 보러 올까?’ ‘새 집으로의 이사 일정과 어떻게 조율할까?’ 바튼은 이러한 과정이 감정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질로우 오퍼(Zillow Offer)’는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서비스였습니다. 질로우가 직접 집을 매입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거래 금액의 5~7%를 수수료로 받는 모델이었죠. 또한 이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는 3D로 집 내부를 둘러볼 수 있고, 원하는 집을 언제든 방문할 수 있으며, 디지털 계약까지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질로우 오퍼는 확고한 수익 모델로 자리 잡지 못해 현재는 중단된 상태지만, 이는 질로우가 단순한 정보 제공 플랫폼을 넘어 소비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려 했던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바튼은 또한 질로우가 부동산 중개인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중개인을 대체하거나 기존 산업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우리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에요. 소비자가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우리는 그들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s://www.geekwire.com/2021/zillow-says-its-making-good-progress-on-home-sales-as-it-exits-house-flipping-business-announces-750m-stock-repurchase/)
한편 바튼은 질로우를 론칭하던 시점에 또 하나의 혁신적인 플랫폼인 ‘글래스도어(Glassdoor)’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글래스도어는 회사의 급여 수준, 내부 직원들의 리뷰, 기업 문화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인데요.
취업과 이직은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지만, 한 번 입사하면 쉽게 퇴사하기 어려운 만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죠. 하지만 기존에는 직무별 급여나 회사 분위기 같은 정보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기업들은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걸 꺼려했고, 직원들 역시 내부 불만을 쉽게 표출할 수 없었죠. 글래스도어는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며 취업 시장을 혁신했고, 구직자들이 회사를 파악하기 위한 필수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출처: https://blog.pragmaticengineer.com/layoffs-push-down-scores-on-glassdoor/)
📒 Editor’s Note: 글래스도어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로버트 호먼(Robert Hohman)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익스피디아에서 바튼과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호먼은 회사를 떠난 후에 한동안 집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만 하며 보냈다고 하는데, 이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호먼의 아내가 바튼에게 “리치, 로버트를 지하실에서 끌어내는 걸 도와줘야겠어요.”라고 말했다고. 그래서 바튼은 호먼과 함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떠올린 아이디어가 글래스도어가 되었다고 한다.
리치 바튼이 익스피디아, 질로우, 글래스도어를 창업하며 반복적으로 해결한 문제는 단순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하지만 숨겨진 정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특정 집단이 독점하던 정보를 개방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 것이죠.
익스피디아는 여행사들이 독점하던 항공권 및 호텔 예약 정보를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했고, 질로우는 부동산 중개업자들만 알고 있던 집값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글래스도어는 기업들이 숨기고 싶어 했던 급여 정보와 내부 문화를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죠.
이러한 혁신은 단순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기존 산업의 판도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습니다. 바튼은 세 번의 창업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였으며, 어쩌면 우리 역시 그가 개척한 길 덕분에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 ”운명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변화의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 리치 바튼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기술의 역사는 오프라인에 있던 것들을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이 말에 공감하시나요? 오프라인에 있는 것들 중 아직 온라인으로 옮겨지지 않은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 여행, 부동산, 회사 등 ‘정보의 비대칭’은 많은 영역에서 발생해왔죠. 내가 경험한 ‘정보의 비대칭’ 사례가 있나요?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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