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프로덕트 #마인드셋
‘실패할 140가지 이유’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간 창업자

데이제로인사이트

격주 목요일, 창업가들의 인사이트를 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창업가들의 Day 0로 돌아가, 그들의 ‘처음’에 담긴 고민과 배움을 살펴봅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이 사업이 실패할 140가지 이유.”

2009년, 두 창업자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 앞에 띄운 피칭 슬라이드입니다. 장밋빛 전망을 보여줘도 모자랄 자리에서, 자기 사업이 안 될 이유를 140개나 먼저 꺼내놓은 겁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피칭은 수십 장의 텀시트(투자의향서)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투자받은 회사가 노점 상인도 스마트폰으로 카드 결제를 받게 만든 스퀘어(Square)입니다. 지금은 캐시앱(Cash App)까지 거느린 블록(Block)이 되어 지난해 매출총이익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넘겼죠.

이 피칭을 설계한 사람은 당시 마흔세 살이던 짐 매켈비입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다 물러나 고향 세인트루이스에서 유리공예가로 지내던 그는, 그 시절의 자신을 “아무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스퀘어 공동창업자 짐 매켈비(Jim McKelvey)의 Day 0로 돌아가봅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행동하지 않음’이 가장 큰 후회로 남을 때
2. 아이디어는 놓친 2,000달러에서 나왔다
3. 자신감이 아니라 솔직함이 통했다
4. 아마존이 베끼지 못한 11가지

 

1. ‘행동하지 않음’이 가장 큰 후회로 남을 때

매켈비는 어려서부터 자기만의 이유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 신입생 시절, 전산학 개론 교수가 자기가 쓴 형편없는 교재를 학생들에게 비싸게 강매하자 “내가 더 잘 쓰겠다”고 떠들다가, 친구의 “그럼 써보든가”라는 말에 진짜로 책을 써서 열아홉 살에 출판 계약까지 따냈습니다.

졸업 무렵에는 대형 컨설팅펌의 입사 기회를 걷어찼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법이 정리된 거대한 매뉴얼을 보는 순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은 죽음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대신 택한 길이 유리공예였습니다. 뜨거울 때는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소재에 매혹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유리 공장들은 예술가에게 가마를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유리공예 자체가 “완전히 열린 필드”였거든요. 내 작품이 형편없어도, 갤러리에 놓인 유일한 유리였던 겁니다.

그렇게 그는 낮에는 유리를 불고, 밤에는 책 덕분에 맡게 된 로스앤젤레스 IBM의 글쓰기 일을 세인트루이스 집에서 원격으로 처리하며 20대를 보냈습니다. CD 수납장을 파는 작은 회사도 함께 굴렸고요.

1985년, 워싱턴대학교에 다니던 스무 살 무렵의 짐 매켈비. (출처: Washington University Archives)
1985년, 워싱턴대학교에 다니던 스무 살 무렵의 짐 매켈비. (출처: Washington University Archives)

📒 Editor’s Note:

열아홉 살의 책 출판에는 비하인드가 있다. 당시 레이저 프린터는 장당 10센트씩 하는 초고가 장비라 교수들도 하루 몇 장만 뽑을 수 있었는데, 한 교수가 매켈비에게 자기 패스코드를 빌려줬다고. 덕분에 타자기로 친 원고가 아니라 “출판사가 낸 책처럼” 보이는 원고를 만들 수 있었고, 그게 진짜 출판 계약으로 이어졌다. 책 내용도 그답다. ‘프로그래밍하는 법’이 아니라 ‘당신이 곧 마주칠 모든 오류를 고치는 법’. 아는 사람만 아는 트릭 때문에 헤맨 시간이 억울해서 쓴 책이었다고.

이 책 덕에 과분한 ‘실력 있는 엔지니어’ 평판을 얻었는데, 본인의 회고가 재밌다. 그때 배운 건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 틈에 입 다물고 섞여 그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법”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 1989년 겨울에 일어납니다. 12월 18일,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매켈비가 스물네 살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낳은 뒤 우울증을 오래 앓았지만 가족조차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잘 숨겼고, 아버지와 매켈비는 완전히 불시에 그날을 맞았습니다. 매켈비는 “제 세계가 폭발했습니다”라고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은 평생의 원칙이 됐습니다.

“그냥 집에 가서 매일 밤 어머니와 산책만 했어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행동하지 않음(inaction)’을 후회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 해야 할 일이 보이면 ‘누군가 하겠지’라며 앉아 있지 않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태도입니다.” - 짐 매켈비

 

어머니의 죽음은 자신의 일을 보는 눈도 바꿨습니다. 수입은 나쁘지 않았지만 CD 사업도, 유리공예도, IBM 일도 전부 ‘그저 그런’ 수준이었고,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평범함밖에 보지 못하고 떠났다는 자책이 남은 겁니다. 매켈비는 IBM을 그만두고 CD 사업을 접고 유리를 중단한 뒤, 컴퓨터로 승부를 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세운 문서 소프트웨어 회사 미라(Mira)는 어도비 아크로뱃(Adobe Acrobat)에 밀려 휘청였지만, 트레이드쇼 카탈로그를 CD롬으로 묶어 파는 사업으로 방향을 틀어 살아남았습니다. 바로 이 회사에서, 열다섯 살의 잭 도시*가 스캐너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잭 도시(Jack Dorsey): 훗날 트위터(현 X)를 공동창업하고 CEO를 지낸 인물. 미라 직원이 밤샘 작업용 초콜릿 커피콩을 사러 간 동네 커피숍에서 주인이 ‘컴퓨터 좋아하는 아들’을 소개했는데, 그 아들이 15살 잭이었다. “50달러 힘들게 벌어볼래요?”라는 제안에 아르바이트로 합류해 첫날부터 밤을 새웠다고.

 

2001년, 미라 경영에서 물러난 매켈비는 세인트루이스에 유리 스튜디오를 짓습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착지였습니다. 2008년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요.

 

💡 Insight Note

매켈비를 움직인 것은 재능이나 야망이 아니라 후회였다. 시도해서 안 되면 시도한 것이지만, 시도하지 않은 일은 평생 남는다. 신경 쓰이는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정말 신경 쓰고 있는지부터 의심해야 한다.

→ 지금 마음에 걸리는데 ‘누군가 하겠지’라며 미뤄둔 일이 있나요? 그 일의 ‘그 사람’이 나일 수는 없을까요?

 

2. 아이디어는 놓친 2,000달러에서 나왔다

매켈비가 유리로 돌아가 있는 동안, 미라에서 스캐너를 돌리던 소년은 실리콘밸리로 가 트위터를 공동창업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10월, 잭 도시는 트위터 CEO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공식적으로는 사임이었지만, 매켈비는 이사회가 잭을 쫓아낸 것도 모자라 언론 보도의 창업자 명단에서까지 지우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는 그게 부당해 보였습니다.

크리스마스 무렵 세인트루이스에서 재회한 매켈비가 잭에게 건넨 첫 제안은 사업 계획이 아니라 “캘리포니아로 가서 트위터 놈들이랑 전쟁을 하자”였습니다. 무슨 뜻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앙심이었죠. 뭘 할지도 몰랐어요”라고 인정합니다.

방향을 잡은 건 잭의 대답이었습니다. “새로운 걸 만들자. 단, 소셜미디어는 안 돼.” 아이폰이 막 세상에 나온 시점, 두 사람은 ‘모바일로 뭔가 하자’까지만 정한 채 캘리포니아로 향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없는데 채용부터 했습니다. 애플에서 첫 아이폰을 만들었던 엔지니어 트리스탄 오티어니(Tristan O’Tierney)가 몇 주 뒤 출근하기로 한 겁니다. 아이폰으로 뭘 할지 좋은 생각은 없는데 사람이 먼저 와버리는 상황. 뭐라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 ‘뭐라도’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왔습니다. 이삿짐을 싸러 돌아간 매켈비의 스튜디오로 전화가 걸려 옵니다. 매켈비가 유리공예가 시절 직접 만들었지만 수년째 팔리지 않고 선반에 놓여 있던 2,000달러(약 260만 원)짜리 유리 수도꼭지, 본인 표현으로는 “더럽게 못생긴 물건”을 사겠다는 파나마 고객이었습니다.

이사 비용 때문에 그 2,000달러가 절실했는데, 고객이 가진 카드는 수수료가 비싸 스튜디오에서 받지 않던 아멕스*뿐이었습니다. 거래는 그대로 날아갔습니다.

*아멕스(American Express): 미국의 신용카드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비자·마스터카드보다 가맹점 수수료가 높아,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멕스를 받지 않는 작은 가게가 흔했다.

매켈비가 만든 유리 수도꼭지 작품. 2009년 4월 PBS 뉴스아워가 그의 스튜디오를 소개하며 실은 사진이다. (출처: Molly Finnegan / PBS NewsHour)
매켈비가 만든 유리 수도꼭지 작품. 2009년 4월 PBS 뉴스아워가 그의 스튜디오를 소개하며 실은 사진이다. (출처: Molly Finnegan / PBS NewsHour)

“그분과 제 아이폰으로 통화하면서 아이폰을 내려다봤습니다. 제게 아이폰은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되어야 하는 마법 같은 기기였어요. 책도 되고, TV도 되고, 지도도 되고, 손전등도 되죠. 그런데 신용카드 리더기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저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폰을 신용카드 리더기로 만들자.” - 짐 매켈비

잭의 반응은 한마디였습니다. “흥미롭네. (That’s interesting.)” 그게 전부였죠.

 

💡 Insight Note

카드 한 장 때문에 거래를 놓치는 일은, 평소라면 투덜대고 지나갔을 불운이다. 그러나 ‘뭐라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같은 사건이 사업의 힌트로 읽혔다. 아이디어는 종종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상황이 바꿔놓은 시선에서 나온다.

→ 지금 그냥 지나치고 있는 불편 중에, ‘반드시 뭔가 만들어야 한다’는 눈으로 다시 보면 힌트가 될 것은 없을까요?

 

3. 자신감이 아니라 솔직함이 통했다

첫 논쟁은 하드웨어였습니다. 잭은 아이폰에 이미 달린 카메라로 카드를 찍어 번호를 읽자고 했고, 매켈비는 마그네틱 선을 읽는 별도 장치를 고집했습니다. 잭이 보기엔 미친 소리였지만, 매켈비의 판정은 간단했습니다. “그의 방식이 더 말이 됩니다.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요.”

카드 업계는 결제를 둘로 나눕니다. 실물 카드를 직접 읽은 거래(card present)와 그렇지 않은 거래(card not present)입니다. 후자는 수수료가 더 비싸고, 사기 결제로 차지백*이 발생하면 손실을 가맹점이 전부 떠안습니다. 카드 사진은 얼마든지 복제해 전송할 수 있으니 ‘그 카드가 지금 여기 있었다’는 증명이 되지 못하고, 결국 16자리 타이핑을 아껴주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매켈비의 논리였죠. 당시 card present로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이 마그네틱 선을 읽는 것이었으니, 하드웨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습니다.

*차지백(chargeback): 카드 명의자가 “내가 한 결제가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면 카드사가 결제를 취소하고 대금을 돌려주는 제도. 실물 카드를 읽은 거래는 가맹점이 손실을 떠안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거래는 가맹점이 전액을 부담한다.

 

진짜 문제는 장치 바깥에 있었습니다. 은행 규정, 카드 네트워크 룰, 주마다 다른 송금업 법까지, 두 사람이 만들려는 물건은 시작부터 수많은 규칙 위반이었습니다. 매켈비가 “첫날, 제가 세어본 것만 17개였습니다. 더 있었을 텐데 17에서 세는 걸 멈췄어요”라고 할 정도로요.

그 규칙들이 지키고 있던 시장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연 카드 매출 10만 달러(약 1억 3,000만 원)가 안 되는 가게는 은행 보증과 물리적 점포 같은 조건에 걸려 사실상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파머스마켓 상인은 그냥 포기하는 거냐는 질문에 매켈비는 “네, 포기하는 거죠”라고 답합니다. 어렵게 들어가도 숨은 수수료투성이라, 그는 당시 시장을 “역겨웠다(vile)”는 한 단어로 정리합니다.

 

스퀘어의 답은 그 관문 자체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스퀘어가 하나의 거대한 가맹점이 되고, 소상공인들을 그 아래 하위 가맹점으로 등록하는 구조입니다. 가게 주인은 은행을 만날 일 없이 몇 분 만에 온라인으로 가입하고, 계약서도 월 고정비도 없이 단일 수수료만 내면 됩니다.

남은 벽은 애플이었습니다. 아이폰 하단 커넥터에 기기를 연결하려면 애플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배터리가 나빴던 당시 아이폰에서 전력을 빼 가는 주변기기가 승인받을 가능성은 “거의 0”이었죠.

 

돌파구는 잡지 한 권이었습니다. 스스로 너드라고 말하는 매켈비는 DIY 잡지 메이크(Make) 창간호에서 본 해킹 기사 하나를 기억해냈습니다. 휴대폰의 마이크 입력, 그러니까 헤드폰 잭에 카드 리더를 연결한 사례였죠. 헤드폰 잭은 누구나 이어폰을 꽂아 쓰는 범용 단자라, 이 길로 가면 애플의 커넥터 승인 절차를 통째로 우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헤드폰 잭에 꽂는 손톱만 한 리더기가 완성됐습니다. 원가는 97센트(약 1,300원). 당시 1,000달러(약 130만 원)짜리 카드 단말기가 하던 일을 대신하는 물건이었습니다.

2010년, 아이폰 3G의 헤드폰 잭에 꽂힌 초기 스퀘어 리더기. 원가는 97센트였다. (출처: Chris Harrison / Wikimedia Commons)
2010년, 아이폰 3G의 헤드폰 잭에 꽂힌 초기 스퀘어 리더기. 원가는 97센트였다. (출처: Chris Harrison / Wikimedia Commons)

📒 Editor’s Note:

시제품 단계의 에피소드 하나. 매켈비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리더기가 자기 손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하는데, 유독 잭의 손에서만 먹통이 됐다고 한다. 리더기를 서로 주고받기를 서너 번, 마침내 찾은 원인은 잭의 심장박동이었다. 잭은 리더기가 헛돌지 않게 손으로 꼭 쥐는 버릇이 있었는데, 알루미늄은 전기가 통하는 소재라 잭의 심박이 신호에 섞여 판독을 망치고 있었던 것. “그건 심박 측정기였어요. 그게 제가 알루미늄으로 뭔가를 만든 마지막입니다.” 참고로 당시 잭이 이 리더기로 데모를 보여주려던 상대는 마이클 블룸버그였다고 한다.

 

창업 약 6개월 만에, 두 사람은 시제품을 들고 투자자를 찾아갑니다. 피칭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VC의 카드를 긁어 실제로 결제시켰는데, 금액은 “잭이 그 사람을 싫어하는 정도”에 따라 매겨졌습니다(어떤 투자자는 40달러를 냈습니다). 물론 이때도 허가는 없었습니다. 다 작동했지만, 여전히 많은 법과 룰을 어기는 중이었죠.

그리고 슬라이드 한 장을 띄웁니다. “이 사업이 실패할 140가지 이유.” 이유를 140개까지 꽉 채우지 못해 ‘로봇 반란’ 같은 농담 항목도 섞여 있었다고 하죠. 자신감의 표현이었냐는 질문에 매켈비는 자신감이 아니라 ‘솔직함(candor)’이었다고 답합니다.

“VC 피칭은 이상한 자리입니다. VC는 골키퍼처럼 수비를 하고, 피칭하는 창업가들은 거짓말을 하죠. 우리는 ‘여기 우리가 모르는 것들, 여기 우리 얼굴 앞에서 터질 수 있는 것들, 여기 이 사업에 투자하지 말아야 할 정당한 이유들’을 올려놓음으로써 방 전체의 공기를 바꿨습니다.” - 짐 매켈비

공기는 실제로 바뀌었습니다. 수비하던 투자자들이 목록을 보며 “그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데”라고 반응하기 시작한 겁니다. 한 투자자는 자신이 아마존 이사회에 있다며, 돈을 받으면 아마존이 건드리지 않게 보장하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결과는 수십 장의 텀시트였습니다. 2009년 말, 스퀘어는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 주도로 1,000만 달러(약 130억 원)를 유치합니다.

 

💡 Insight Note

설득의 자리에서 약점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찾아내면 방어만 남지만, 내가 먼저 꺼내놓으면 대화의 주제가 ‘이 약점을 어떻게 해결할까’로 바뀐다. 약점을 방어하기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쪽이 더 설득적일 수 있다.

→ 중요한 설득을 앞두고 있다면, 상대가 반드시 짚을 약점에 대해 숨길 방법 대신 먼저 꺼내놓을 답을 준비해보면 어떨까요?

 

4. 아마존이 베끼지 못한 11가지

2010년 5월 정식 출시된 스퀘어는 이듬해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2014년, 아마존이 들어옵니다. 스퀘어를 그대로 닮은 카드 리더기를 더 싼 가격에 내놓고, 결제 수수료도 스퀘어의 2.75%보다 낮은 1.95%를 불렀습니다.

당시 스퀘어는 상장도 하기 전이었습니다. 매켈비의 표현으로는 “아마존에 비하면 티끌”이었죠. 이사회 멤버였던 매켈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례 찾기였습니다. 스타트업 시절에 아마존을 이긴 회사를 수소문한 거죠. 한 곳도 찾지 못했습니다.

다음은 대응을 정할 차례였습니다. 이사회가 모여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하나 따져봤지만,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짐 매켈비

가격을 맞춰 싸울 수는 없었을까요. 매켈비의 답은 가격 전쟁을 버틸 대차대조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행동’을 평생의 원칙으로 삼아온 사람의 결정이라기엔 낯설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의 원칙을 다시 읽어보면 앞뒤가 맞습니다. 시도하면 바꿀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후회라면, 시도 자체가 회사를 무너뜨리는 일은 애초에 ‘해야 할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스퀘어는 요란한 대응 대신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2014년 8월 아마존이 공개한 ‘아마존 로컬 레지스터(Amazon Local Register)’.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꽂는 카드 리더기와 결제 앱으로 구성됐다. (출처: Amazon / Business Wire)
2014년 8월 아마존이 공개한 ‘아마존 로컬 레지스터(Amazon Local Register)’.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꽂는 카드 리더기와 결제 앱으로 구성됐다. (출처: Amazon / Business Wire)

결과가 나오기까지 2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리더기는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고, 2015년 말 신규 가입을 멈춘 아마존은 2016년 초 사업을 완전히 접습니다.

그런데 철수하는 방식이 뜻밖이었습니다. 남아 있던 자사 고객들에게 ‘우리는 이 사업을 접으니 스퀘어로 옮기시라’는 안내와 함께, 스퀘어 리더기를 상자에 담아 우편으로 보내준 겁니다. 경쟁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자기 고객을 통째로 경쟁사에 넘겨준 셈이죠.

 

매켈비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스퀘어는 전례가 없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간편 가입부터 빠른 정산, 새로운 사기 탐지 모델까지 14가지를 어쩔 수 없이 직접 발명해야 했는데, 아마존이 베낀 것은 그중 눈에 보이는 3가지(싼 리더기, 소프트웨어, 낮은 가격)뿐이었다는 것. 나머지 11가지에서 승패가 갈렸고, 바닥부터 지어본 적 없는 아마존은 “어딘가 회의실에서 베낀 것뿐”이라는 겁니다.

진짜 새로운 것을 발명하면 한 가지가 아니라 스택(stack)을 발명하게 되고, 그 발명 자체가 방어막이 된다는 것. 그가 훗날 책으로도 쓴 ‘이노베이션 스택’ 이론입니다. 물론 이것은 매켈비의 해석이고, 안 되는 사업을 빠르게 접는 아마존의 관행도 작용했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매켈비는 아마존을 이긴 순간도, 10억 달러를 넘긴 순간도 ‘스퀘어가 진짜가 된 순간’으로 꼽지 않습니다. 그가 꼽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뉴올리언스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스퀘어로 결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사는 뒷좌석 손님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신용카드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신나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물건이라며 스퀘어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죠. 창업자 본인에게, 자기 회사 제품을, 그것도 작동 원리며 기능 설명은 죄다 틀리게요.

매켈비가 그 장면에서 본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눈앞의 기사는 기존 결제 시스템이 상대해주지 않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회사가 시키지도 않은 영업을 스스로 하고 있었으며, 설명이 다 틀렸는데도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산 것은 리더기라는 기능이 아니라 ‘나도 카드를 받을 수 있다’는 감각이었던 겁니다.

“제 제품을 저한테 영업하는데 전부 틀리게 말해요. 다 틀렸는데 너무 신나 있었어요.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잠깐, 이건 진짜 크다.’” - 짐 매켈비

 

💡 Insight Note

경쟁자가 움직였다고 반드시 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퀘어는 가격 전쟁을 버틸 자금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대응 대신 하던 일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대응 여부는 상대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의 체력과 선택지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 지금 경쟁자를 따라 움직이려는 계획이 있다면, 그 근거는 전략인가요, 불안인가요?

 

에필로그: 과거를 1초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사람

매켈비는 2010년 중반, 회사가 막 날아오르기 시작할 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아들이 태어나 하루 14시간 일하는 삶과 “괜찮은 아버지의 의무”를 병행할 수 없었고, 자신이 맡았던 모든 영역에 더 나은 전문가들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시작해서 성공한 모든 회사에서 그렇게 물러났다고 말합니다. 다만 스퀘어, 그러니까 2021년 사명을 바꾼 지금의 블록 이사회에는 ‘가맹점의 목소리’를 자처하며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2019년, 모교 워싱턴대학교를 찾은 짐 매켈비. (출처: Jay Fram /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2019년, 모교 워싱턴대학교를 찾은 짐 매켈비. (출처: Jay Fram /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이제 예순을 넘긴 매켈비의 다음 문제는 신약 임상시험 비용입니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나오는 신약이 30개 남짓인 이유가 수억 달러짜리 시험 비용에 있다고 보고, 그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는 일에 자기 돈을 쓰고 있습니다. 왜 멈추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돈이 동기가 아니게 되니 “다음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자연스러운 장치가 없다”고 답하죠.

인터뷰 말미, 진행자는 지금의 성취 가운데 얼마만큼이 노력이고 얼마만큼이 운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매켈비는 자신이 믿기 어려울 만큼 운이 좋았다며, 인생을 다시 살아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라고 답합니다. 그 이유를 SF 팬답게 타임머신에 빗대어 설명하면서요.

“타임머신이 있어도 쓰지 않을 겁니다. 과거는 1초도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많은 실수를 했고, 사람들을 잃었는데도요. 어머니를 구하는 데조차 쓰지 않을 겁니다. 너무 위험하니까요. 어쩌면, 어쩌면 ‘엄마’ 하고 말을 걸어보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 짐 매켈비

1989년 겨울,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후회는 36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매켈비는 그 후회를, 다음 후회를 만들지 않는 연료로 바꿨습니다. 해야 할 일이 보이면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정직하게 멈추는 것.

어쩌면 그의 Day 0는 회사를 세운 날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로 한 그 겨울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 with Guy Raz의 Square: Jim McKelvey. He Lost a $2,000 Sale, Then Built a $10 Billion Company 에피소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격주 목요일, 가만히 있어도 창업가들의 인사이트가 내 메일함으로 들어옵니다.

격주 목요일, 창업가들의 인사이트를 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창업가들의 Day 0로 돌아가, 그들의 ‘처음’에 담긴 고민과 배움을 살펴봅니다.

👉바로 구독하기👈


👀 지난 콘텐츠도 보고가세요

링크 복사

데이제로 인사이트 데이제로 인사이트 · 에디터

창업의 Day 0에서 마주한 고민을 전합니다.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 아티클
데이제로 인사이트 데이제로 인사이트 · 에디터

창업의 Day 0에서 마주한 고민을 전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