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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모자 쓴 침팬지 로고를 보신 적 있나요? 이메일 마케팅을 하시거나, 뉴스레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메일침프(MailChimp)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메일침프의 공동창업자 벤 체스트넛(Ben Chestnut)은 웹디자이너로 출발해 이메일 자동화 마케팅 서비스인 메일침프를 구축했다고 해요.
처음엔 돈이 되는 디자인 외주사업을 주로 하다, 메일링 서비스에서 매출 우상향을 포착하고는 이곳에 집중해 보기로 합니다. 이메일 마케팅이 없던 시절부터 SaaS가 트렌드가 된 지금까지 외부 투자 없이 현금 흐름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키워왔는데요,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선택을 했기에 이런 운영을 하게 되었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오늘의 주인공, 창업자 벤 체스트넛의 Day 0, 1970년대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사업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봐 사업을 시작하다.
2. 중요한 것은 매출 규모가 아닌 ‘동향’
3. 투자자 없이 서비스를 성장시킨 Freemium 전략
4. 입소문을 만든 메일침프 표 마케팅
5. 충격적인 피드백도 수용하고 낮은 자세로 배우기
1. ‘사업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봐 사업을 시작하다.
1970년대, 벤은 미국 조지아주, ‘햅시바’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벤의 어머니는 기업가적 면모를 갖추고 계셨는데요, 집의 부엌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이웃들을 손님으로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사업은 어린 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해요. 어머니는 몇 주마다 장난감과 돈을 들고 오셨기 때문에 벤은 ‘커서 사업을 하고 싶다. 사업이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야.’라고 생각했죠. 교훈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엌 미용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벤은 ‘차라리 샴푸 사업을 같이 하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결국엔 비즈니스 파트너들과의 불화로, 어머니가 파산신청을 하게 되는데요, 공교롭게도 메일침프 공동창업자인 댄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해요. 이때의 경험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외부 투자 없는 사업에 집중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성인이 된 벤은 조지아 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는데요, 전자제품 회사에서 인턴십 중에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이 일이 너한테 맞지 않을 수도 있어. 새로운 분야를 알아보는 게 어때? 웹 디자인이라는 게 요즘 대세야.”라고요. 벤은 이 조언을 받아들이고, 웹 디자인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당시에는 90년대 후반이었기에 웹디자인이 각광받는 시기였죠. 벤은 서점으로 달려가 웹 디자인 책을 모조리 읽으며 공부합니다. 그리고 종합 미디어 회사인 콕스 미디어 그룹에 웹디자인으로 지원합니다. 그런데 면접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닫습니다. 웹디자인이 아니라 배너 디자인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벤에게는 비교적 시시하게 느껴지는 일이었죠. 하지만 3,000 달러나 더 받는다는 사실에 냉큼 수락해 버립니다. ‘대충 하다가 다른 데로 옮겨야지’ 하고요. 하지만 이내 배너 디자인에 푹 빠지게 되죠. 2초 만에 누군가를 설득하고 클릭하게 만드는 걸 배우는 게 신기했기 때문이죠. 나중에 메일침프 서비스를 만들 때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벤은 콕스 미디어 그룹에서 훗날 자신의 공동 창업자가 될 댄을 만나게 됩니다. 벤이 웹디자인 매니저 역할을 맡아 처음으로 고용한 사람이 댄이었죠. 당시, 콕스는 라디오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음악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송출할 채널도 있으니 지역 뮤지션들을 다루는 지역 뮤직 포털을 만들자.’라고 지시가 떨어져 사람을 뽑은 거였죠.
그 당시는 그 유명한 닷컴 전성기였는데요, 벤도 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넷 사업만 하면 비즈니스는 성공할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다음 해에 무너지고 맙니다. 닷컴 버블이 꺼지고 만 것이죠. 콕스로 여러 인터넷 사업을 하고 있던 터라, 버블의 여파로 대규모 해고를 하게 됩니다. 벤과 댄도 해고될 위기였죠. 하지만 콕스 본사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제안이 들어옵니다.
벤은 본사에서도 일을 잘하겠지만,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평생 “내 회사”를 시작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구 마크와 함께 웹디자인 회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죠. 댄은 본사에 남아 일을 하려 했지만, 벤이 1년간 설득한 끝에 창업 여정에 합류하게 됩니다.
(출처: https://amplifier.com/case-studies/mailchimp)
2. 중요한 것은 매출 규모가 아닌 ‘동향’
2000년, 새로 독립한 세 친구들은 회사를 로켓사이언스그룹(Rocket Science Group, 이하 ‘로켓사이언스’)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주요 사업은 마케팅 부서들을 대상으로, 웹사이트를 대신 만들어주는 일이었죠. 콕스에서 일을 하며 지켜봤을 때, 엔지니어들은 서버 관련 어려운 부분들을 처리하거나 기술적인 일에 집중하고 싶어 했고, 항상 바빴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관련 일들은 언제나 뒷전이었죠. 마케터들도 필요한 게 많았지만요. 벤은 이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케팅 부서를 위한 외주 엔지니어 지원팀이 되는 거였죠.
이 외에도 e-card 웹사이드도 만듭니다. 당시 e-card 서비스(HTML을 적용한 이메일)를 제공하는 블루마운틴 닷컴이 6억 달러에 팔렸었거든요. 블루마운틴보다 더 나은 e-card사이트를 만들면 7억 달러에 팔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HTML이메일 보내는 법을 배워서 e-card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이 시도가 다른 기회로 연결됩니다.
당시 로켓 사이언스는 소규모 비즈니스를 위해 웹디자인을 해주고 있었는데요, 고객들이 이메일 뉴스레터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고객들은 CD를 서버에 설치해 사용하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었죠. 그 소프트웨어를 쓸 줄 몰라 일을 부탁했고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지만, 소프트웨어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프트웨어 쓰기 지긋지긋해. 우리 것을 만들자.”
마침 e-card 사이트에 쓰던 코드도 남아 있어 이를 재활용해 메일링 서비스를 만들게 됩니다. 그때가 2001년이었죠. 여전히 주 수입원은 웹디자인이었고, 메일링 서비스로는 점심값이나 벌자 생각했습니다.
웹디자인은 한 프로젝트 당 1만~3만 달러 수준이었다면, 메일링 서비스는 100~150달러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메일링 서비스에서 돈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며 SaaS*로의 시작을 알렸죠. SaaS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이었지만요.
2005년까지 셋이서 근근이 사업을 이어갑니다. 프로젝트를 따내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은 일하느라 바빠 다른 프로젝트를 할 수 없었고,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일이 없어지고 다시 따내야 하는 상황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출연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게 됩니다. 그는 반복 수입과 수동 수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벤은 로켓사이언스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로켓 사이언스는 프로젝트 기반인 웹디자인을 월급처럼 벌고 있었고, 오히려 사이드 프로젝트인 메일링 서비스에서 반복 수업이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닫죠.
셋은 창립 후 처음으로 매출을 엑셀로 정리해 봅니다. 에이전시 사업은 매출이 비슷하게 유지되는 한편, 점심값 정도로 생각하던 메일링 서비스의 매출 동향이 우상향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죠. 그래서 ‘메일링 서비스에만 집중하면 어떨까?’ 하는 논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죠. 워낙 매출 볼륨 자체가 차이가 났으니까요.
2007년, 결국 셋은 웹디자인 사업을 접고 메일링 서비스. '메일침프'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집중하자마자 하룻밤새 매출이 세 배 뛰어 오르죠. 고객들이 수년간 불만을 제기했던 버그 몇 가지를 첫 날 해결했거든요. 웹디자인에 쓰던 시간을 메일침프 문제 해결에 투자하니 사람들이 돈을 내가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건 당 소액결체를 받고 있었는데요, 사람들은 ‘매번 카드 정보 입력하는게 귀찮으니 월별로 청구하세요’라며 건의합니다. 1년 동안 개발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자, 메일침프는 더욱 잘 팔리기 시작하죠.
*SaaS(Service as a Software): 소프트웨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방식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IwPpe9LBFjk)
3. 투자자 없이 서비스를 성장시킨 Freemium 전략
메일침프에 집중하기로 한 2007년, 시장에는 콘스탄트 컨트랙트(Constant Contact)라는 거대한 경쟁자가 이미 있었습니다. 상장을 통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죠. 그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들이 벤을 찾아와서는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벤은 메일침프로 소기업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투자자들은 ‘귀여운 사업’이라며, 자신들의 투자금을 받고, 대기업을 상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말하죠. ‘그게 진짜 비즈니스’라면서요.
하지만 벤과 댄은 그냥 작은 기업들을 돕는 게 좋았습니다. 사실 처음 한 두 번은 혹했지민, 같은 소리를 열 번쯤 들으니 다 똑같은 레퍼토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투자를 받지 않으면 너희는 점점 약해져서 결국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는 일종의 반협박 전략인 거였죠.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벤과 댄은 고집스럽게 투자를 거절합니다.
그 이후, 시장에 굵직한 경쟁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며 ‘투자자의 말이 옳았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에 메일침프 팀은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하죠. 당시 블로그가 유행하고 있었는데요, 블로그 방문자들의 이메일을 무료로 수집하되, 수집한 이메일을 사용하려면 금액을 지불하도록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개발 구조 상 마감일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경로를 바꿔 수집과 사용 모두 무료로 만들고, 대신 일정 리스트 크기에 도달하면 유료로 전환하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면 이메일 수집 200개 까지는 무료, 그 이상은 유료인 셈인 거죠)
그때, 우연히 ‘프리미엄(Freemium)*’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이 개념을 활용해 ‘메일침프가 Freemium 플랜으로 전환합니다.’라고 공개합니다. 그러자 구글 출신 투자자인 찰스허드슨에게 연락을 받습니다. ‘Freemium 콘퍼런스를 여는데 연사로 나와달라’는 거였죠. 콘퍼런스에 나온 메일침프의 이야기가 미국 유명 IT 매거진인 ‘테크 크런치’에 올라가고, 뉴스에도 보도되기 시작합니다.
이 때, 메일침프는 로켓같은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무려 1년만에 1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게 되었거든요. 6년간 몇 십 만 명을 모은 것에 비하면 폭발적인 성장이었죠. 그 이후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무료 사용자들이 보내는 메일의 하단에는 메일침프 로고를 박아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죠.
하지만 무료 사용자가 유료 사용자로 전환되는 텀이 길었습니다. 고객이 사업을 시작하며 무료로 메일침프 계정을 생성해도, 사업에 실패하며 메일침프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계정을 삭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비즈니스를 위해 메일침프로 돌아와서야 유료 전환을 하는 케이스들이 있었죠. 이 주기는 7~10년이었습니다.
그래도 메일침프는 대부분의 고객이 소규모 비즈니스였던 덕에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나면, 벤은 밥줄 대기업 하나가 휘청하면 자신들의 회사도 흔들리게 되고, 결국 대규모 해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소규모 비즈니스들과 함께 하면 의존성을 낮추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었습니다.
2010년 들어서면서부터는 사용자가 100만에서 200만으로 늘어납니다. 메일침프는 1500만 달러 정도 벌고 있었죠. 투자 없이 온전히 현금흐름만으로요. 투자자들이 와서 돈을 받아달라 했지만, 왜 필요한 지 모르겠다며 거절합니다.
*Freemium: Free + premium의 합성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프리미엄 기능은 유료로 판매하는 전략
(출처: https://mailchimp.com/pricing/transactional-email/)
4. 입소문을 만든 메일침프 표 마케팅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던 메일침프였지만, 대규모의 마케팅을 할 자금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창의적인 마케팅이 필요했죠. 그중 유명한 두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옥외 광고입니다. 사실 시작은 벤의 질투심에서 비롯됐었습니다. 벤은 어느 날 경쟁사가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고는 IT 기업들과 함께 하며 기세등등하게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는 경쟁사 맞은편에 옥외 광고를 설치하고, 고객사들이 방문할 때마다 우리 침팬지 마스코트를 보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죠. 직원들은 만류하면서도 옥외 광고아이디어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애플이 WWDC 행사를 하는 유명한 건물에 광고판을 구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곳에 윙크하는 메일침프 침팬지를 넣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는데요, 배경에 메일침프의 광고판이 걸리며 자연스러운 바이럴 효과를 얻게 됩니다.
두 번째 사례는 팟캐스트를 활용한 마케팅입니다. 당시 홍보용으로 만들었던 침팬지 모자가 있었는데요, 이 모자를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씌우면서 유명해집니다. 그러자 마케팅 수단으로 후원하던 팟캐스트에 “이메일 마케팅이나 강아지, 반려동물을 위한 모자를 찾고 있다면 메일침프로 오세요”라는 광고를 송출했죠.
후원하던 팟캐스트의 제작진이 ‘시리얼(Serial)’이라는 새로운 팟캐스트를 만들면서 메일침프에게 광고 제안을 합니다. 그 중 ‘메일침프’를 ‘메일킴프’라고 잘못 발음한 광고 버전이 있었는데요, 재미있을 것 같다며 그대로 송출합니다.
그런대 이게 트위터(현 X)에 퍼지면서 대박이 납니다. 벤도 자신의 트위터 바이오를 ‘@mailchimp(mail—kimp?)’ 로 바꾸며 흐름에 동참하고, 심지어 이 음성을 이용한 리믹스도 생기죠. SNL에서도 패러디하기에 이르며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옵니다.
(출처 : https://amplifier.com/case-studies/mailchimp)
5. 충격적인 피드백도 수용하고 낮은 자세로 배우기
2014년에 들어서자, 직원이 수백 명으로 늘어납니다. 메일침프가 20~40명 정도 일 때는 ‘커피 아워’라는 이름으로 전 직원회의를 했었는데요, 벤과 댄은 다시 한번 커피 아워를 추진해 보기로 합니다.
벤은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대단합니다.’는 식의 형식적인 발표를 했지만, 직원들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죠. 벤은 ‘그래서 앞으로의 전략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도 ‘전략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전략이 없는 게 전략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맞아. 전략 같은 건 필요 없어’ 하고 지지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왜 우리에게까지 숨기는 거죠?’ 하고 불안해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 직원은 벤의 사무실로 들어와 아주 조심스럽게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권유합니다. 벤은 충격을 받죠.
이때 정체성의 위기를 겪습니다. 스스로 꽤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이후 회의에서도 소극적이고, 집안에서도 어둡게 지냅니다. 오죽하면 아내가 ‘나랑 애들 없이 혼자 있는 게 좋겠어’ 라며 걱정할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소규모 사업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벤은 연 2억 달러 매출을 내는 메일침프의 CEO라는 사실을 숨기고 수업을 듣게 되죠. 해당 프로그램의 조건이 ‘연매출 200만 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리더십을 배우겠다는 나름의 큰 결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벤은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전략과 조직문화, 팀원들의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방법, 팀으로 일하는 방법 같은 것을요. 가장 도움이 된 건 "나를 위한”모드에서 “팀을 위한”모드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메일침프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문화 책임자(Chief Culture Officer)를 고용했고, 2018년에는 최고 전략 책임자(Cheif Strategy Officer)를 고용하기도 했죠. 그 전엔 전략이라기보다는 제품 로드맵에 불과했다고 해요.
(출처: slate.com)
메일침프는 이제 이메일 서비스를 넘어서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유튜브가 구글 다음으로 큰 검색 엔진이 된 것을 알고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를 연동합니다. 사람들에게 창업가 정신과 관련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튜이트(intuit)라는 재무 소프트웨어 기업에 120억달러 (당시 한화 약 14조원)에 인수됩니다. 벤은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항상 행운을 믿어요. 하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여년간 항상 해답을 찾으려 했어요.”
💬 “처음엔 제 자신이 그냥 햅지바, 조지아에서 온 얼간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 벤 체스트넛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벤은 스몰 비즈니스에 집중하여 아주 큰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와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벤이 창업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창업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혹은 아직 망설이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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