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프로그램에서 만나다
우리는 앤틀러(Antler) 라는 초기 창업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10월 초부터 풀타임으로 하루 종일 고객, 문제, 기회를 구상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약 2달 동안 쉼 없이 20개 이상의 아이템을 겉핥기 한 것 같다. 아이데이션한 것까지 고려하면 100개가 넘을 듯하다.
처음 시작했을 땐 분야, 고객 등 그 무엇도 특정하지 않고 다 열려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든 좋아, 라는 마인드로 시작했더니 팀원들과 같이 가벼운 아이디어에서 시작했고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불편한 상황을 하나씩 찾으면서 일단 많이 수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침에 지하철 탈 때 사람이 많다든지,
외국인들이 가이드 없이 한국에서 여행하는 게 불편하다든지,
소규모 회사에서 개발자를 구하는 게 어렵다든지,
문제가 뭔가요?
이런 현상들 중 모두가 관심 있어 할 법한 상황을 하나씩 잡고 이게 과연 문제가 맞는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제'는 '불편함을 느끼는 고객이 이걸 해결하기 위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 "아침에 지하철 탈 때 사람이 많다"는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은 '아침에 출근할 때 지하철을 타는 직장인'(타겟)이 될 것이고,
- 이것으로 인한 고통의 크기가 커서(가끔 지하철을 못 타서 회사에 늦음, 지하철을 타는 과정이 고통스러움 등),
-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다른 대안책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건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다.
- '될 수도'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야 하고, 그들이 지불하는 돈이 비용을 웃도는 수준이어야 수익 구조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문제'를 찾아야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리 생각보다 불편함 없이 잘 살고 있었네"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우리의 고객은 누구이며, 어디에 숨어서 고통을 감수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명시적인 고통은 고객이 고통을 인지하고 해소하기 위해 다른 대안을 찾고 있는 상황이고 그 대안에 불만이 있어야 한다. 좀 애매한 고통은 고객이 고통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다른 대안을 찾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찾지 않고 있다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는 뜻일 테고 돈을 지불할 만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발견한 니즈'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고통의 크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비즈니스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비즈니스가 기회가 명확한 비즈니스일까요?
이런 저런 논의를 거듭하면서 기회가 명확해 보이는 비즈니스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 고객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크고(지불 의사 높을 가능성)
- 대안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서(시장의 기회 존재)
- 우리의 솔루션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고(Product-Market Fit 가능성)
- 지불 의사가 있는 고객의 수가 충분한(시장의 크기)
- 그리고 우리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혹은 전문성이 뚜렷한(Founder-Market Fit)
농산물 시장, B2B SaaS, 시니어 시장, 생산성 툴 등 다양한 시장을 고려하고 고객 인터뷰를 하다보니 어느 시장이든 문제는 산재되어 있을 것이기에 계속 파다보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상 단계에서 위의 모든 항목을 확인하면 좋겠지만 가설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었다. 가장 애매한 항목은 '시장의 크기'였다. 비즈니스야 어떻게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정말 사업으로서 유망한가는 다른 문제였고, 창업가의 '열심 모드'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편으론 시장의 크기를 초기 단계에서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포지셔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입하는 시장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데 그걸 구상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유저 인터뷰를 했을 때 어느 정도의 고통이 존재하고, 대안의 불편함이 있으며, 우리 솔루션이 문제 해결할 수 있겠다 싶은 아이템을 찾아서 시장 검증을 해보기로 했다.
창업 & 팀빌딩의 이유
그렇게 두 달 간의 아이데이션이 끝나고 프로그램이 종료될 지점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창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 목표를 생각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고려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나의 경우 창업이란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스스로의 밭을 일구는 삶을 살고 싶었고, 그게 세상에 큰 가치를 더해주는 일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객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고 & 그 혜택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야겠다 꽤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고객 뿐만 아니라 회사 구성원이 성장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마침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싶다, 글로벌로 나가고 싶다는 니즈가 서로 맞았다. (생각보다 이게 맞는 경우가 많진 않다) 서로의 역할도 상호 보완이 잘 되는 듯해서 같이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같이 제대로 파보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 팀의 비전과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