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티클에서는 ‘엔트로피(Ntropy)’ 공동창업자 나레 바르다니안(Naré Vardanyan) 대표의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Ntropy는 대규모 금융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AI 언어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수백 명의 고객을 보유한 플래이드(Plaid), 야필리(Yapily) 등 금융 데이터 관련 대기업들과 협력 중이며, 초기 2만 건의 거래에서 지금은 월 수억 건의 거래를 다루는 금융 인텔리전스 회사가 됐습니다. 그 결과 설립 후 1년 뒤 Ntropy는 400% 급성장했습니다.
나레 바르다니안 Ntropy 대표는 아르메니아에서 전쟁을 경험했고 영국으로 와서 스타트업을 설립한 불굴의 창업자이자 대표입니다. 나레 대표가 첫 번째 데이터세트를 어떻게 구축했으며 이 서비스를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그 가운데 대표의 낙관적인 태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어봤습니다.
[아티클 네비게이션]
- 전쟁을 겪은 꼬마, 자유를 찾아 떠나다
- AI와의 첫 만남과 (실패한) 첫 창업
- 은행의 모든 금융 데이터를 이해하는 AI 모델, Ntropy
- 실제 전쟁에서도, 창업 전선에서도 “희망은 중요합니다”
전쟁을 겪은 꼬마, 자유를 찾아 떠나다
안녕하세요. 저는 엔트로피(Ntropy)의 공동창업자 나레 바르다니안(Naré Vardanyan) 대표입니다. Ntropy는 소스, 포맷, 언어, 통화(currency)에 관계 없이 대규모 금융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설립한 지 3년이 된 지금, 총 1,400만 달러(약 195억 원)를 투자 받았고 100곳의 고객을 유치했습니다.
저는 남부 코카서스에 있는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나 17살까지 살았어요. 제가 태어난 해 소련이 무너졌고, 아르메니아를 포함해 연방에 속해있던 모든 나라가 독립을 하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됐습니다.
어릴 때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등이 켜져 있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따뜻한 물을 쓸 수 있을 때를 설레며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죠.
특히 어려웠던 것은 군인들이 국경에서 잘 싸울 수 있도록, 민간인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압박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저희 세대는 그런 생각과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어요. 이는 (저에게)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속한 환경, 장소,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하고, 더 큰 일을 찾아 나서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4살 때쯤 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대중 연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르메니아를 잠시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저의 세상은 훨씬 더 넓어졌어요. 세계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UN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아르메니아를 떠나서 완전히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UNDP(유엔 개발 계획, UN Development Program)에서 금융 포용(financial inclusion)에 집중해서 일을 했는데요. 그때 저는 어렸고, 무엇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지식과 경험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UN은 너무 거대했고 관료적인 조직이었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AI와의 첫 만남과 (실패한) 첫 창업
퇴사 후 저는 영국의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UCL)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AI 연구소 중 하나인 딥마인드(Deepmind)가 있던 곳입니다. Deepmind 출신 인재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마어마한 혁신에 상당 부분 많이 참여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UCL에서는 다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여기서 큰 영감을 얻었고요.
그때부터 저는 AI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련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업무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니었지만 의지만은 확고했습니다. 그래서 (AI 분야의 대가인)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의 스탠포드 과정을 수강했고 처음으로 머신러닝을 접했습니다.
물론 강의를 들으며 아주 간단한 용어와 개념조차 구글로 검색해야 했죠. 이를 통해 의미를 하나하나 알아가며, 갖고 있던 수학 지식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치적 이슈와 갈등이 잦은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저에게는 온 사방이 한계였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죠. 하지만 AI를 공부하고 있는 저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훗날 UCL을 졸업한 뒤 아르메니아로 돌아가는 길과 런던에 남아서 회사를 시작하는 길 중 선택을 해야했는데요. 다행히 창업가가 되면 비자를 받고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결국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이후 저의 경험에 비추어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UCL에서 유니세프와 주로 협업을 했는데요. 이때 찾은 주제는 어린 아이들이 10대 청소년이 되면서 행동 문제 및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유니세프에서 관심을 가지는 취약 계층의 아이들이 이러한 문제에 노출되기 쉬워요. 결국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저는 해당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첫 번째 스타트업인) ‘마인드인(Mindin)’을 창업했습니다.
Mindin는 초기에 아이들이 휴대전화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그들의 행동 및 정신 건강 이슈를 수동적으로 감지하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어요. 누구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시대이니 유의미한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요. 서비스는 제법 괜찮았지만, (창업은 그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Mindin은 고용주 건강 관리 프로그램의 솔루션 중 하나로 기능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됐어요. 수익화를 하려면 이 방법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요. 그리고 (직원경험 플랫폼인) Mercer와 협업했습니다.
하지만 EU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었고 애플 아이폰의 키보드 등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Mindin을 접어야 했어요.
(첫 창업에 실패한 뒤) 저는 2가지를 재고했습니다.
하나는, 창업가가 되고 싶다는 다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회사는 원하는 방향으로 키우지 못했지만, 어차피 창업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때 저는 그냥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긴 여정의 시작에 있을 뿐이었지요.
다른 하나는,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급여를 많이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업 후 오랫동안 그렇기 때문에 다음 창업을 하기 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구해야 했습니다.
은행의 모든 금융 데이터를 이해하는 AI 모델, Ntropy
다행히 저는 런던 공동투자 펀드(London Co-Investment fund)와 연이 닿았습니다. 여기서 다른 스타트업들에 투자를 해보았고 다른 창업가들과 함께 일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덕분에 입에 풀칠할 정도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 일리야 진첸코(Ilia Zintchenko)와 Ntropy를 창업했습니다.
어느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일리야를 만났는데요. 그는 테크스타스(Techstars)에 속한 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나고 자랐고 노르웨이에서 살다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 일했다고 했습니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에서(ETH)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요.
저희는 둘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고, 대화가 잘 통했고, 상호보완적인 스킬을 갖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창업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하지만 친구에서 공동창업자로 전환하는 시간이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어요. 회사가 어떻게 되든 친구로 남자고 이야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는 변했고, 회사도 변했고, 그에 따른 조건들도 변했기 때문에 적응기를 꽤 힘들게 치러야 했습니다.
그 시기가 지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금융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 모델인 Ntropy를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매할 때마다 흔적(trace)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그 흔적은 은행의 컴퓨터와,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네트워크의 컴퓨터에 있는 텍스트 문자열의 모습으로 표시됩니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최소 두 번의 거래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은행에 수백만 명의 고객이 있다면, 매일 은행에 기록되는 개개인의 거래 수는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이때 다수의 은행은 30년 이상 된 레거시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사실 이런 시스템을 엄청 많이 사용하고 있죠. 문제는 단일 표준이 없어서, 텍스트 문자열이 매우 지저분하게 생성된다는 점입니다.
Ntropy는 은행에서 생성되는 이러한 금융데이터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듭니다. 기존 기술보다 훨씬 뛰어나게 데이터를 일반화해서요. 수 년 사이 AI 기술의 발전 과정을 봤다면 아시겠지만, 모델이 커질수록 일반화하는 데 더 능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Ntropy가 앞으로 금융 상품을 포함해 돈을 경험하는 방식과 다루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초기에는 데이터가 매우 부족하고 따라서 컴퓨터는 좋은 사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가 은행의 품질 낮은 데이터를 개선하려고 해도 선례가 없는 것입니다. 즉, 전형적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Ntropy는 첫 번째 데이터세트를 만들기 위해 소비자를 위한 웹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은행 거래 내역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페이지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거래 내역을 업로드해 달라고 요청했고, 데이터를 받으면,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도록 관련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매우, 매우 작았지만 Ntropy의 모델에 마중물이 되어준, 첫 번째 훈련 데이터세트였습니다.
일을 진행하며 금융 시장에서 데이터 플랫폼과 같이 수평적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금융 서비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해도 사용자들을 이해시키고 그러기 위해 마케팅 캠페인을 하고 적절한 타깃 사용자를 찾는 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틈새시장에서 시작한 다음 확장하는 방법이 거의 항상 더 쉽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됐죠.
그럼에도 Ntropy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양한 데이터 소스가 필요하고, 차별화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쉽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됐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두 배로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Ntropy는 처음부터 모든 산업 및 업무 분야에 적용할 수 있게 개발됐지만, 처음에는 세밀하게 고객 유형을 정의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저희가 원하는 정확한 언어와 방법으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영업할 수 있고,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포석을 깔아야) Ntropy의 서비스가 추후 여러 산업, 업무 분야에 고르게 적용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전쟁에서도, 창업 전선에서도 “희망은 중요합니다”
저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UN에서 일하다가 첫 번째 창업에 실패한 뒤 현재 Ntropy를 창업해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을 ‘낙관적인 태도’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Ntropy의 시드 라운드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이틀 뒤, 제가 임신을 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여러 모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여러 정체성을 이렇게 한꺼번에 갖는 일은 한 사람의 세계에 정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킵니다. 저는 뜻밖에 공동창업자 겸 CEO이자 엄마가 됐어요. 이때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해서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실패하면 영원히 후회로 남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사회, 심지어 공동창업자인 일리야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빚졌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티내기 어렵다는 사실이 큰 압박이 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를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제 안의 모든 나쁜 기운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경험이 이렇게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저는 다른 이에게 일반적인 조언을 하기 어려워 합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빌어) 희망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꼭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많고,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믿는 낙관주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절박하고 끔찍한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낙관과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는 합니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은 인간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여정입니다. 그게 반드시 제품일 필요도 없고요. 꼭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일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험일 수도 있죠. 그 여정은 때로 복잡하기도 하고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와 협업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기업가 정신의 정수(精髓)는 ‘창조’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이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면 절대 안주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창업가이면서 동시에 엄마가 되는 일을 배우는 것이 어렵다고 한 이유는 (엄마로서) 제가 안주하고 정착하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 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계속 전진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지금까지 이런 일들은 많았고 그때마다 ‘두려움 때문에 멈출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다양한 일을 시도하고 더 많은 곳을 경험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있는 그대로에 안주하지 않고 희망과 낙관을 하며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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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집 : 장혜림 에디터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