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선정 #MVP검증 #마케팅
꿀스틱으로 매출 수억 원 만든 대표가 다시 직장인이 된 이유

 

[인터뷰 한 눈에 보기]

  • 가구 영업사원에서 기획자, 브랜드 창업을 하기까지
  • 꿀빠는시간’ 제품 시행착오와 잘한 점, 아쉬운 점
  • 창업가에서 직장인으로 : 선택의 기준과 과정의 회고
  • 불안했던 취업과 창업 끝에 내가 알게 된 3가지 깨달음

 

스텔러스 인터뷰 4번째 이야기는 직장인에서 창업가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재취업을 선택한 혜미 님을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직장인이 퇴사해서 창업했다는 스토리는 익히 들어보셨겠지만, 창업자가 다시 직장인으로 취업한 이야기는 생소하실 듯합니다. 저 또한 우연히 초기 창업팀에 합류해 공동창업자로 일하다가 일을 쉬게 된 케이스였는데요. 나름대로 제 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재취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부재하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시로, 창업자로 일하다가 직장인으로 재취업하려면 ‘월급쟁이로서 연봉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부터 난감합니다. 보통 벤처에서 일할 때는 이전 연봉을 깎고 지분을 받아 합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가 도중에 다시 직장인이 되기로 선택한다면 연봉테이블을 다시 세팅해야 합니다. 월급에 반영되지 않은, 수년간의 경험치를 일일이 환산해야 합니다. 

 

(강연 연사로도 활동하는 혜미님의 모습, 제공 : 이혜미)
(강연 연사로도 활동하는 혜미님의 모습, 제공 : 이혜미)

 

그럼에도 혜미 님은 직장인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혜미 님은 가구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꿀스틱 제품 ‘꿀빠는시간’을 만들어 창업을 했는데요. 이후 역설적으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 배우고 싶다”는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정성 들여 기획한 브랜드가 인정 받았지만, 열심히 회사를 키웠음에도 재취업이라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저는 혜미 님이 취업-창업-재취업의 과정에서 고민하고 내린 선택의 순간들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120세까지 사는 시대에 누구나 창업을 고민해야 한다지만, 반대로 창업 그 이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쉬이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성공 스토리 사이에서 혜미 님의 스토리는 누구나 겪을 만한, 그래서 꼭 읽어봄 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취업, 창업, 재취업과 그 다음 챕터까지 바라보는 혜미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선택에도 실마리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아래 글은 2024년 10월 11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전체 뉴스레터를 보시려면 옆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뉴스레터 보러 가기]


 

 

가구 영업사원에서 기획자, 브랜드 창업을 하기까지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이혜미입니다. 현재 창업 교육 기업 언더독스에서 비욘드에듀그룹 그룹장으로서 창업가들을 위한 교육과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휴식을 전하는 브랜드 ‘꿀빠는시간’과 그릭요거트 매장 ‘요아시스’를 운영하는 회사 시속삼십킬로미터를 창업했습니다. 

 

Q. (각 브랜드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마케팅 리드로도 일하시면서 따로 창업한 회사가 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창업이 혜미 님의 커리어 첫 시작이셨을까요? 

아니요. 첫 직장은 한샘이었어요. 거기서 가구 영업을 하는 사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건축가셨기 때문에 원래 가구에 관심이 있긴 했어요. 의외로 영업이 저에게 잘 맞았고요. 사람들을 설득해 가구를 판매하는 게 재밌었고, 실적도 좋았어요. 

 

Q. 첫 사회생활에서 맡은 역할이 잘 맞으셨네요! 그렇다면 이후 이직이나 창업 같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저는 한샘에서 처음 선보이는 매트리스를 판매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제품을 판매하지 못 하는 고객의 유형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제가 자사 제품의 스펙에 대해 조리있게 설명했음에도 “침대는 과학 아니냐”는 질문을 주시는 경우였어요. 

(저 질문을 종종 접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권하는 제품 스펙을 고르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 같은데 고객이 마음을 여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그때 ‘브랜드가 도대체 뭐길래’라는 생각이 들었고,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진로에 대해 좀 더 고민하면서 브랜드에 대해 관심을 뒀어요. 브랜드 관련 서적을 계속 읽고, 관련 저자 강연회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한 저자 강연회에서 저자 명함을 받고, 그 분을 찾아가게 됐어요. 

 

Q. 굉장히 적극적인 액션이네요. 

궁금하니까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ㅎㅎ 감사하게도 저자분도 제가 직접 찾아왔다는 걸 좋게 봐주셨고,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 분이 운영하는 회사는 브랜딩 컨설팅 회사였는데요. 정치인부터 기업인, 연예인까지 퍼스널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곳이었어요. 

 

(한샘 가구 영업 당시, 제공 : 이혜미)
(한샘 가구 영업 당시, 제공 : 이혜미)

 

Q. 브랜딩 실무는 처음 해보셨을 텐데 어떠셨나요?

그야말로 우당탕탕 일했어요😂 교육도 기획하고, 컨설팅 상담 자리에도 참여하고. 카드뉴스를 제작해 온라인에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스킬을 얻었어요. 

당시 인턴의 정규직 전환 조건이 ‘스스로 콘텐츠 100개 만들기’였어요. 저는 빙글이라는 소셜미디어에 카드뉴스를 만들어 일주일 중 6일간 매일 올리는 자체 챌린지(!)를 진행했어요. 월요일은 독서, 화요일은 영화, 수요일은 음악 등 하루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주 6개 콘텐츠를 거의 매일 발행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반응을 얻어서 해당 채널에 팔로워 13만 명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콘텐츠가 되게 중요하구나’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하면 계단식으로 성장하는구나’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Q. 신기하네요. 어떻게 매일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자체 챌린지를 생각해내셨을까요?

당시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김민철 님의 강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결국 기획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게 아니라, 자잘한 물길을 계속 만들어 큰 물줄기가 됐을 때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거든요. 그렇기에 다양한 물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거기에 착안해서 저 또한 단단한 기획력을 만들자는 의미로, 주 6개씩 서로 다른 콘텐츠를 발행하는 ‘식스펙’이라는 컨셉을 떠올렸던 겁니다.

 

Q. 공감도 가고, 귀여운 컨셉 같습니다😁 이후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고객사 담당자님이 창업을 하시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화장품 회사를 창업하면서 전에 같이 협업한 적이 있던 제게 연락을 주셨던 것이었요. 덕분에 그 초기 기업에 실무자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품을 만들면서 빡세게 일하던 시절, 제공 : 이혜미)
(화장품을 만들면서 빡세게 일하던 시절, 제공 : 이혜미)

 

Q. 초기 기업에 초기에 합류해 일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주니어 시절이면 더더욱.

아무래도 그렇죠. 다행히 업력과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갖춘 이사 님들 덕분에 회사가 잘 클 수 있었는데요. 실무를 진행시키는 인원이 적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화장품 회사에서) 물성을 가진 제품이 만들어지는 A부터 Z까지 모두 익힐 수 있었어요. 브랜딩, 제조, 디자인, 유통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직접 함께 일하면서 노하우를 압축해서 배웠답니다.  

다만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번아웃이 오고 말았어요. 당시 집은 인천, 회사는 삼성에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마저 녹록치 않았죠. 해가 떠있는 하늘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퇴근길, 광역버스에서 내려서 본 하늘이 너무 생소하다고 느꼈어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지금 제 현실을 자각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그날 하늘을 보면서 온갖 물음표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와르르 무너질 듯한 경험을 했어요. 

 

Q.  저런… 그야말로 현타가 왔네요. 

반면 고향으로 귀촌을 하신 제 어머니는 제 2의 인생을 살고 계셨어요. 당시 어머니께서 갑자기 양봉을 시작하신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갔더니, 엄마가 너무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맞이하셨어요. 그러면서 본인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쭉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양봉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꿀이 얼마나 귀하고 이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그 순간만큼은 저희 엄마가 저보다 더 젊어보였어요. 저는 번아웃에 빠져서 아무 의지도, 의욕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엄마는 열정적으로 눈을 빛내며 일 얘기를 하셨으니까요. ‘(내 상황이) 무언가 잘못 굴러가고 있구나’ 직감했고, 저도 다시 열정을 느낄 만한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머님의 양봉 일을 돕기 시작한 혜미 님, 제공 : 이혜미)
(어머님의 양봉 일을 돕기 시작한 혜미 님, 제공 : 이혜미)

 

 

‘꿀 빠는 시간’ 제품 시행착오와 잘한 것, 아쉬운 점들
 

Q. 다시 열정을 느낄 만한 일이라… 이걸 어떻게 찾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삶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그 무렵 어머니가 양봉을 시작하셨던 거예요. (시기가 맞물려서) 휴식이라는 메시지를 ‘꿀’이라는 상품으로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엄마의 꿀을 통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헌데 엄마가 소속된 양봉 조합에서 손사래를 쳤어요. ‘꿀은 젊은 애들이 사먹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제가 직접 꿀을 사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30년 이상 양봉을 해오신 분들 입장에선 더더욱 ‘귀한 꿀 괜히 줬다가 안 팔릴 수 있다’며 꿀을 제공해주시길 꺼려하셨어요. 

더군다나 제가 창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엇나가 있었어요. 제가 11월에 시속삼십킬로미터의 사업자등록을 했어요. 꿀이 봄에 생산된다는 것조차 간과할 정도로 성급하게 스타트를 해버린 것이었죠. 결국 (젊은 고객층을 타깃으로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더해) 겨울에 꿀을 구해야 한다는 이중고가 겹치고 말았답니다. 

 

Q.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네요. 어떻게 풀어내셨나요?

일단 ‘남아있는 꿀이라고 달라’고 한사코 부탁했어요. 제가 너무 아쉬워하니까 (감사하게도) “뭐라도 해보라”면서 꿀을 조금 받을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남은 꿀을 약간 공급받은 것이라 그 수량이 많지 않았어요. 저는 처음부터 꿀스틱 제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스틱 제품 제조에 필요한 최소 생산량에 못 미치는 용량이었죠. 

그래도 “젊은 애들도 꿀을 사먹는다”는 걸 꼭 증명해보고 싶었어요

당시만 해도 ‘천연 100%’ 같이 기능을 강조하는 꿀 상품이 대부분이었어요. 디자인이나 스토리, 경험을 중점에 두고 제품을 소개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카피라이팅이나 스토리를 만드는 것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제 강점을 살려서 젊은 고객층의 눈에 띄는 꿀제품을 일단 시도해보자고 가설을 세웠어요. 

 

(출처 : 시속삼십킬로미터)
(출처 : 시속삼십킬로미터)

 

그래서 “개꿀잼”이라는 설 선물세트를 준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어요. 2018년 무술년이 ‘황금 개띠 해’라는 데 착안해 컨셉을 잡았어요. 강아지가 그려진 드로잉컵, 어머니가 직접 양봉해 얻은 아카시아 꿀, 직접 만든 얼그레이 수제잼으로 구성된 선물세트였어요. 

“다가오는 무술년 새해도 개꿀잼 가득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선보였는데, 모금액이 1600만원 가까이 모이면서 20~30대 고객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으로 인정받았어요. 

 

Q. ‘젊은 사람들은 꿀을 안 사먹는다’는 통념을 깨트리는 결과였네요. 

결국 젊은 고객들은 꿀 제품뿐 아니라 ‘스토리’에 반응하셨던 것 같아요. 

(다행히 가설이 검증되면서) 그 다음 해부터 양봉조합에서 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시장에서 진짜 수요가 있다는 걸 검증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뿌듯했던 경험이었습니다. 

 

Q. 이후 선보이신 꿀스틱 제품 ‘꿀빠는시간’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기획, 제조, 생산, 판매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는 없었나요?

거의 모든 게 예상대로 안 됐어요🫠 

아무리 화장품 제조 프로세스를 알고 있더라도 꿀스틱을 제조하는 공장은 완전히 새로 찾아야 했어요. 당시 꿀스틱을 위탁생산(OEM) 하는 공장이 거의 없어서 고민하다가 정관장 홍삼 스틱 제품에 적혀있는 OEM 공장을 찾아보고 거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당하게 “5000~8000개 꿀스틱을 제조하고 싶다”고 문의를 드렸더니 (제 전화를 받으신 공장 관계자분이) 허허허 웃으시면서 ‘최소 수량은 한 10만 개 이상이어야 한다’고 답변을 주셨어요. 화장품과 달리 스틱 제품의 최소 수량 단위는 훨씬 컸던 거예요. 

다행히 공장에서 다른 공장 연락처를 알려주셔서 거기에 또 전화해보고, 또 다른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해보는 식으로 OEM 공장을 수소문했어요. 결국 한 공장에서 ‘원래는 안 되는데 일단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공장에서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안 되는 일인데 워낙 간절해 보여서 해줬다. 잠시 뭐에 씌웠던 것 같다ㅎㅎ’고 말씀해주셨답니다🥹)

 

(공장에 방문한 시속삼십킬로미터 창업 팀, 제공 : 이혜미)
(공장에 방문한 시속삼십킬로미터 창업 팀, 제공 : 이혜미)

 

Q. 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됐네요. 이후 꿀빠는시간 판매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꿀빠는시간의 고객 페르소나는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했어요. 제품 자체가 컨셉과 카피, 스토리에 특화해 있어서 제품의 이런 말맛에 공감하고 흥미로워 하는 초기 고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거든요. 

‘꿀빠는시간’도 네이밍부터 슬로건, 스토리까지 공들여 만들었어요. 휴식의 뉘앙스를 살린 “꿀빠는 시간”이라는 제품명에 더해 귀여운 캐릭터(이름은 꿀빤다)나 디자인을 통해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제품명에 아기자기함과 진중함을 혼합하는 데 신경썼습니다. “힘내지 말고 힘 빼”라는 슬로건을 쓰는 등 메시지 반전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그렇다 보니 (제품의 컨셉이나 스토리가) 일반 대중에게 스며드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마케터나 카피라이터 같이 새로운 것에 빠르게 반응하고 그걸 추구하는 고객층에게 먼저 다가가보면 어떨까 짐작했어요. 당시 스타트업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소셜미디어도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Q. 실제로 그 가설은 효과가 있었나요?

감사하게도 마케팅 비용 없이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으로 2500만원 가량 달성했습니다. 기획 의도대로 스타트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꿀빠는시간 제품을 많이 구매하고 주변에 알려주신 덕분에 입소문이 많이 났어요.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과 고민, 이유와 히스토리를 네이버 블로그에 남겨둬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 펀딩에 참여하시는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출처 : 와디즈)
(출처 : 와디즈)

 

Q. 너무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반대로 이 여정에서 아쉬우셨던 점은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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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빠는시간 창업 이야기
  • 혜미 님의 재취업 결정
  • 창업과 재취업 후 느낀 점
  • 이후 성장스토리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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