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프로덕트 #마인드셋
🐑 제품력에 대한 자신감은 억만장자를 만듭니다.


데이제로인사이트


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아직도 많은 이민자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그릭요거트 브랜드 초바니(Chobani) 창업자 함디 울루카야 이야기 입니다.

그는 튀르키예 작은 산속 마을, 반유목민 공동체 내의 양치기와 농부들 사이에서 자본주의와는 아주 동떨어진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시절 영어를 배우기 위해 건너간 미국에서 필연적으로 치즈와 요거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요거트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함디는 5년 만에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죠.

자본주의와 동 떨어져서 살아온 사람이, 그것도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던 상태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요거트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초바니의 창업자 함디 울루카야의 의 Day 0, 1970년대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창업
2. 진짜 고객이 누구인지 알면 해답이 보인다.
3. 자신감은 제품력으로부터 나온다.
4. 경쟁에만 집중하다 보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5. 때로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1.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창업

함디는 1970-80년대 튀르키예 동부 쿠르드 지역의 깊은 산속에 있는 반유목민 공동체에서 자랐습니다. 현실과도 동떨어진 고립된 환경이었죠. 공동체 속 사람들은 같은 조건의 텐트 아래에서 살았으며, 장난감도 없고 먹는 것도 동일한 환경이었다고 합니다.

함디는 소수민족을 위해 만들어진 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당시 튀르키에는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고, 정치적/사회적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튀르키예가 더 이상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리곤 튀르키예를 떠나 남들처럼 유럽에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자본주의 제국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형 가게의 단골 손님의 권유로 미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것은 물론이고, 뉴욕 주를 하나의 도시인 줄 알 정도로 미국에 아는 것이 없었던 함디는 형이 쥐어준 3,000 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함디가 어린시절 자라 온 튀르키예 동부 쿠르드 지역 내 작은 마을의 전경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xML4qjhIyPI)

현실과 단절되어 살던 그에게 미국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진 돈은 한 달만에 떨어졌고, 근근이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죠.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가 꼭 필요했기에 학비가 더 저렴한 학교로 편입을 합니다.

이 때 편입한 학교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과제로 ‘치즈를 만드는 방법’을 제출한 적이 있는데, 과제를 내주셨던 선생님이 우연히도 뉴욕 북부 농장에서 소를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치즈를 만드는 법을 몰랐던 선생님은 주말 동안 함디를 농장에 초대합니다. 함디는 고향에서 보던 풍경을 다시 보게 되니 자연에서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렇게 마지막 날, 서투른 영어로 “농장에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함디는 약 1년 반 동안 농장에서 지내게 됩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소의 젖을 짜고, 먹이를 주고,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등 농장 관리 일을 하면서도 60마일을 운전해 학교 수업에도 참석했다고 하죠.

 

그리고 그 다음 해, 함디의 아버지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어머니의 지령을 받고 뉴욕을 방문합니다. 함디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아버지와 깊은 고민을 나누었죠. 그동안 미국에서 지내며 수입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함디의 아버지는 미국의 페타 치즈(튀르키예의 전통 아침 식사)는 맛이 너무 별로인데, 더 나은 치즈가 있는지 물어보았죠. 함디는 불현듯 “고향집에서 만든 페타 치즈를 미국에서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렇게 함디의 첫 사업이 시작됩니다.

 

📒Editor’s Note: 형 가게의 단골 손님은 유럽으로 떠나려던 함디에게 “멍청한 짓 하지 말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해 내일은 보지 말자고 했지만, 계속 미국 생각이 떠나지 않아 다음날 그 손님을 기다려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었다고 한다. 만약 손님이 정말로 나타나지 않았다면, 함디의 인생이 바뀌었을까?

 

 

 

2. 진짜 고객이 누구인지 알면 해답이 보인다.

함디는 고향집에서 보내준 치즈를 팔기위해 유통업체를 찾아다녔지만, 녹록치 않았습니다. 관세, 가격 등의 이유로 “고려해보겠습니다.” 라는 애매한 답변만 들을 수 있었죠.

이때 함디의 아버지가 또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페타 치즈를 미국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었죠. 페타 치즈는 젖소 우유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데다, 미국에서 직접 만들면 환율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니 모든 어려움이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2002년도 회사 ‘유프라테스'를 형제와 함께 설립하죠.

 

이제 맛있는 치즈를 만들어 팔기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튀르키예와는 다른 미국 재료의 품질, 그리고 배송과정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마음에 드는 치즈 퀄리티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완벽한 페타 치즈를 완성한 후에야, 그리스 식료품 유통 업체를 찾아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유프라테스의 페타 치즈는 샐러드에 더 적합한 치즈였기 때문에 그릭 샐러드를 취급하는 식당을 타겟으로 유통을 시도하려 한거죠.

 

하지만 이내 마진이 적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심지어 한 대형 업체가 정말 끔찍하게 맛이 없어도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전국에 치즈를 유통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이때 함디는 식당에게는 가장 중요한 구매 요소가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가격’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미 유프라테스는 적은 마진과 높은 퀄리티의 치즈를 만든 후였죠.

 

함디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유프라테스는 2년이 지나서야 수익을 만들 수 있었죠. 그리고 이렇게 적은 고객에게 조금씩 판매해서는 생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소규모 유통업체를 고객으로 삼고, 최대한 많은 고객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즉, 한 달에 두 파레트 정도를 정기적으로 구매해 줄 수 있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유통업체들을 모두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죠. 그는 차에서 잠을 자며 보스턴, 뉴햄프셔, 플로리다 등 미국 전 지역을 돌아 다녔고, 결국 수백 개 유통업체와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2002년 시작한 함디의 첫 비즈니스인 ‘유프라테스’의 제품. 현재까지 웹사이트가 보존되어 있다. 
 (출처 : https://www.euphratescheese.com/pages/products.html)

📒Editor’s Note: 함디는 유프라테스 설립 후 2년 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고한다. 사업은 계속 죽어가고 있었고, 매일 혼자 울다가 울음이 그치면 다시 치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낸 값진 시간이었다고.

 

 

 

3. 자신감은 제품력으로부터 나온다.

치즈 사업이 점차 안정화 되었을 때쯤, 쓰레기통에서 흥미로운 봉투를 하나 발견합니다. 1920년대 지어진 낡은 요거트 공장을 70만 달러에 판매한다는 광고지였죠. 함디는 왜인지 이끌려 매물을 보러가기로 합니다.

그 공장은 식품 대기업이 크림치즈와 요거트를 생산해 내던 곳이었죠. 요거트 사업에서 손을 떼고 공장을 닫았고요. 얼마나 낡았는지, 부동산 중개인조차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거고, 나중에 무를 수도 없다며 모든 선택은 인수자의 책임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함디는 그 곳을 보고 굉장히 놀라운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공장에는 모든 것들이 다 있었죠. 이제 치즈 뿐만 아니라 요거트도 만들 수 있을거고요.

함디가 이 낡은 공장을 인수하려고 하자 변호사가 말립니다. 큰 대기업이 실패한 요거트 사업인데, 어떻게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거냐면서요. 

함디에게는 두 가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첫째, 미국의 요거트 맛은 정말 끔찍했고, 함디는 이미 ‘좋은 요거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 둘째, 튀르키예 하면 대부분 꿀과 호두가 들어간 그리스나 튀르키예식 요거트를 떠올리고, 그들의 인생에서 최고의 음식 중 하나로 여겼다는 것.

그렇게 함디는 대출을 받아 공장을 인수하고, ‘초바니’로 이름을 붙여 본격적으로 요거트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함디가 크래프톤으로 부터 매우 싼 가격에 인수한 70만 달러짜리 요거트 공장. 
(출처 : https://www.chobani.com/about)

 

초바니를 설립할 당시 요거트 용기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고 하는데요. 큰 통에 요거트를 담아 파는 것이 아니라, 1인분 요거트를 담을 수 있는 컵에 담아 판매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또한 요거트의 각 다른 맛에 따른 호일 디자인을 사용하고 싶어 했죠.

당시 사람들은 왜 그런 걸 하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다른 곳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요. 함디는 자신이 만든 요거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요거트와 똑같은 통에 담아버리면, 차이를 알 수 없죠.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한 번 먹어보기만 하면, 그 다음엔 요거트가 알아서 마무리해 줄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함디는 기회는 단 한번 뿐이라고 생각하며 제품을 모든 측면에서 바라보고 사람들에게 완벽한 초바니의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였죠. ‘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도록요.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탈락이라고 생각했죠.

  패키지 상단 호일 포장지에도 소비자들에게 제품마다 각각 다른 맛을 인식 시키기 위해 차용한 초바니만의 디자인. 
 (출처 : https://cnycentral.com/news/local/chobani-recalls-some-greek-yogurt-cups?id=942985)

드디어 2007년에 초바니의 요거트 공장이 가동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부 지역의 식료품 체인점인 ‘샵라이트(ShopRite)’에도 대규모 납품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큰 규모의 체인 식료품점에 입점하려면 하나의 제품 당 $30,000의 리스팅 수수료라는 것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3~6개월 안에 성과를 내지 못 하면 입고를 철회해아 하는 빡빡한 조건이 있었죠.

초바니 같은 작은 브랜드들에게는 굉장히 위험이 높은 조건이었어요. 하지만 함디는 한 번 초바니를 경험에 본 고객들은 분명히 다시 구매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제품을 입고하기 위해서는 약 $150,000 의 수수료를 선납했어야 했는데 함디에게는 그만큼의 넉넉한 자금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 대해 함디는 솔직하게 “돈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신 추후에 발행될 인보이스에서 수수료만큼의 비율을 떼고 발행하는 조건은 어떠냐고 물었죠. 만약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공장을 넘기겠다는 엄청난 조건으로요.

 

입고한지 2주 정도 후, 담당자에게 전화가 옵니다. 선반 위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요거트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도대체 요거트에 무엇을 넣은 것이냐고요.

여기에는 두 가지 전략이 있었습니다. 타 제품 대비 눈에 띄는 밝은 패키지, 그리고 원가 이하로 책정된 가격이었죠.

특히 사람들이 한 번 초바니를 맛보면 다시 구매할 것에 대한 확신으로 첫 두 달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 전략을 세우기로 결정했었죠.

그리고 함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25,000개의 주문을 받게 됩니다. 한 달이 아닌 일주일 치의 주문이었습니다.

📒Editor’s Note: 함디는 요거트 생산에 중요한 기계를 사기 위해 운전을 하던 도중, “초바니(Chobani)” 라는 브랜드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튀르키예어로 양치기(Coban) 에서 따오기도 했고. 목자를 뜻하기도 한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라는 순수함에 매료되어 돌아가자마자 Chobani.com 도메인 구매가 가능한지 확인했다고.

 

 

 

4. 경쟁에만 집중하다 보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2011년 초바니는 미국 내 3위 요거트 브랜드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더 확실하게 생산하기 위해 아이다호에 공장 하나를 더 지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요거트 산업에서 이기려면, 경쟁 기업이 초바니를 모방할 때 더 빨리, 많은 혁신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빠른 결정을 내린 함디는 1년만에 14개의 생산라인을 갖춘 공장을 아이다호에 설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아이다호 공장에서 납품된 다수의 요거트에서 곰팡이가 발견되며 대규모 리콜 사태에 마주하게 됩니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죠. 급하게 추진하느라 발견하지 못 한 공장의 구조적, 인력적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함디의 초바니 경영에 위기를 가져다 준 아이다호 공장에서 2013년도 9월-10월 생산된 제품들에 대한 리콜 사태. (출처 : https://www.naharnet.com/stories/en/137880)

 

곰팡이 문제는 해결 되었고 금액적으로 아주 큰 손실은 아니었지만, 매각 요청, 지분 포기, 대출금 상환 등의 문제로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회사를 함께 성장시켜온 직원들을 해고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죠.

 

그 후 3년이 걸리는 긴 시간 동안 아이다호 공장의 인력 문제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함디는 아이다호의 새로운 공장을 설립하고 투자한 자신의 결정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좀 더 준비하고 신중한 결정을 못 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공장을 짓는 일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결정이 필요했던 일이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복잡한 결과를 가져올 지. 그리고 그가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 회사와 재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과소 평가 했던 겁니다.

지금의 함디 자신이라면 무조건 혁신을 만들기 위해 ‘빨리’에만 집중하여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했을 것 이라고 하네요.

  아이다호에 큰 자금을 들여 세운 공장 전경 (출처 : https://www.chobani.com/about)

 

 

 

5. 때로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초바니는 요거트를 판매한 수익을 회사에 다시 투자할 수 있도록 비용 지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외부 자금 없이 내부의 수익으로만 회사를 운영한 결과 5년 만에 10억 달러가 넘는 마진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폭발적인 성장을 하다보니, 다양한 사모 펀드 관계자, 은행, 대기업 등에서 투자 및 인수 관련 연락을 많이 받았었고. 함디가 100% 지분 소유자였기 때문에, 만약 초바니를 매각했다면 그는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손에 쥘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제안을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초바니를 운영하는 여정 자체가,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보다 더 크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치 축구 경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살아 있음을 느꼈어요. 저는 어린 시절 항상 바라보던 산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엄청난 호기심을 갖고 살았고, 그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죠.”

 

또한 함디는 비즈니스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그의 가치관을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샵라이트에서 들어온 주간 2,500개의 주문량을 소화할 당시, 공장을 24시간 풀가동 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때 함디는 당시 지역 사회에서 떠들썩했던 난민 문제로 해결 방안을 마련합니다.

 

난민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함디는 공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난민 자원 센터로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언어적 장벽과, 출퇴근 교통수단의 부재가 난민 고용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걸 알게 되죠.

함디는 출퇴근을 도울 수 있는 자동차와 버스 몇 대를 마련하였고, 통역사를 고용하여 필요한 업무 교육을 진행하기로 결정합니다. 한 스텝, 한 스텝 천천히 천천히 이를 행동으로 옮겼고, 이 방안은 초바니의 인력 문제와 지역 사회의 난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게 되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함디의 가치관에 대한 일화는 하나 더 있습니다. 초바니에 한 차례 위기가 지나간 후인 2014년도. 초바니는 결국 투자를 받고, 계약 조건의 일부로 임시 사장 겸 새 COO 를 맞이하게 됩니다.

새로운 COO는 이제 초바니에 전문 CEO가 필요한 때라고 압박합니다. 그리고 함디 역시 새로운 CEO를 영입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하게 되죠.

함디는 스스로 ‘일을 시작하는 방법과 확장하는 법은 알지만, 매일 현장에 참여하지 않고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지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이에요. 그렇게 함디는 새로운 CEO 자리를 위한 후보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결국 초바니에 적합한 인물을 발견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이민자들을 지원하고 만남을 갖는 최근의 함디 모습 
(출처 : https://www.insigh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91)

  

브랜드와 돈에 중점을 두기보다, 지난 7~8년 동안 난민문제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지속적으로 지원과 입장을 밝혔던 초바니의 행보에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거부감을 드러낸 겁니다.

함디가 꿈꾸는 초바니,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온 회사 문화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게 되었죠. 결국 함디는 지금까지도 CEO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초바니의 정신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하여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을 위해 유엔난민기구에 2,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여전히 난민들을 고용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디는 회사는 직원에 감사할 줄 알며, 회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주주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먼저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실제 초바니는 2016년 4월 직원 2,000 여명에게 회사 지분의 10% (직원 1인당 평균 1억 7천만 원어치의 지분 분배)을 나눠주거나, 최저 임금을 타 회사 보다 2배 이상 측정하는 등 직원들의 근무 환경에 굉장히 신경을 쓰며 직원 중심의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바니가 요거트 시장에 처음 뛰어 들었을 당시 그릭 요거트의 시장 점유율은 단지 2%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제 초바니는 그릭 요거트 시장을 넘어, 미국 전체 요거트 시장에서 20%이상의 마켓 쉐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그 비결에는 전략적 운영과 제품력이 다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사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의 10%를 나눠주는 발표를 하는 미팅 
 (출처 : https://www.insigh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91)

 

 


💬“저는 대기업들이 매우 느릴 것이라고 내기를 걸었고, 실제로 그들은 느렸습니다.” - 함디 울루카야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제품력에 대한 자신감이 돋보이던 인터뷰였습니다. 나는 나의 제품에 이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족하다면 어떤 점이 부족할까요?

❓ 치즈로 농장에 일을 구하고, 치즈로 사업을 벌인 함디. 그는 당시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잘 만드는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그런 존재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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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천민기 픽디 CEO / 글  김계령 에디터 / 편집  김미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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