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프로덕트 #마인드셋
🧹 무일푼이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던 40대 청소기 발명가


데이제로인사이트


위대한 창업가들은 어떻게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까요? 창업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Day 0로 돌아가, “처음”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배웁니다.


 

자신의 발명품을 위해 5년 간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면 믿어지십니까? 그것도 40대 중반에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는데도 말이죠. 심지어 모은 돈을 모두 쓰고,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으면서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수 조원의 자산가가 된 지금도 CEO보다는 제품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그는 목재 공장에서 얻은 영감으로 먼지 봉투가 없는 청소기를 개발합니다. 그 청소기는 2년 만에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린 청소기가 되었죠. 이어서 선풍기, 드라이기, 공기청정기 등 일상에서 쓰는 가전들을 만들었고, 모두 히트시킵니다. 이제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죠. 네, 오늘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가전 브랜드, 연 10조원의 매출과 1조원 이상의 흑자를 만드는 비상장 기업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의 Day 0, 1970년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7년 간 멘토로 부터 얻은 가르침,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
2. 큰 돈 되는 사업을 찾는 방법, 소수의 큰 문제 vs 다수의 작은 문제
3. 5년 간 만든 5,127개의 프로토타입, 하지만 계속되는 거절과 실패
4. 집을 담보로 잡고 받은 마지막 기회, 그리고 얻은 성공
5.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포기할 때
 

 

1. 7년 간 멘토로 부터 얻은 가르침,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

제임스 다이슨은 왕립 예술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가구 디자인과 건축을 전공했죠. 그는 자신이 설계한 버섯 모양의 극장을 실제로 건축하기 위해, 당시 유명한 엔지니어링 회사를 이끌고 있는 제레미 프레이를 찾아갑니다.

제레미 프레이는 극장을 지을 돈은 없지만, 대신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며, 총명해보였던 주니어인 다이슨을 꼬셨죠. 그것은 바로 새로운 형태의 보트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배는 ‘V 자 모양’의 선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변에 정박할 수 없다는 큰 문제가 있었죠. 특히 상륙 작전을 해야하는 군대나, 항구 시설이 없는 해안인 지역은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레미 프레이는 이 문제를 주니어였던 다이슨에게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다이슨은 가구나 건축을 다뤄봤을 뿐 공학 엔지니어링을 해본 적은 없었죠.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배워가며 배의 설계를 마쳤습니다.

 

설계를 마치고, 프로토타입 제작 단계에서 다이슨은 “용접까지는 해본 적이 없어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프레이는 “그냥 가서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도 웃긴 것이 그 말에 바로 돌아서 독학으로 용접을 배웠습니다.

혼자 엔지니어링 도구 사용법을 익혀가면서, 자신이 설계한 배의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 낸 것이죠. 이름도 “Sea Truck”이라고 멋지게 지었습니다.

twitter.com/Dyson

이제 시장에 팔아야 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세일즈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멘토는 웃기지 말라며, “당신은 이 배의 길이, 넓이, 모든 너트와 볼트를 설계했잖아요. 당신은 배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가서 팔아요.” 라고 했습니다. 다이슨은 그 말에 돌아서 그냥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100대를 넘게 파는 성과를 거두죠.

 

그는 7년간 제레미 프레이에게 사업의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그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멘토였고, 성공한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일단 그냥 하면 된다”는 마인드와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덤으로 다이슨이 직접 설계부터 프로토타입 기계까지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풀스텍 디자이너-엔지니어로서 성장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청소기를 위한 자금에 큰 돈을 투자까지 해주었습니다. 이 경험과 그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는 다이슨이라는 회사를 창업할 수 있었죠.

dyson.co.uk

📒memo: 다이슨은 가구와 건축을 디자인했지만, 7년 간의 회사생활 덕분에 제품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20년 앞선 멘토의 가르침과 그의 배움 덕에 스스로 창업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2. 큰 돈 되는 사업을 찾는 방법, 소수의 큰 문제 vs 다수의 작은 문제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아이템은 “바퀴 대신 공이 달린 수레” 였습니다. 집을 고치고 정원을 가꾸다가 금속 수레의 단점을 발견했습니다. 바퀴가 좁아 불안정했고, 땅의 상황에 따라 흙에 가라앉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그걸 뺴내려고 힘을 주다 다치는 경우도 빈번했죠.

그는 바퀴 대신 360도 회전하는 플라스틱 공을 넣은 수레로 바꿨습니다. 제품 이름도 간단하면서 명료한 지금의 다이슨의 네이밍처럼 “Ball Barrow(공 수레)”라고 지었죠.

 

하지만 손수레로는 큰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손수레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수레에는 큰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수레 업체들은 제품을 개선하지 않고, 그저 해마다 똑같은 제품을 만들 뿐이었죠.

다이슨은 왜 기존의 수레보다 자신의 제품이 더 나은지 계속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또 시장은 작은데 반해 엔지니어, 디자이너, 세일즈맨을 모두 갖춰야 했기에 사업적으로 경쟁력이 없었죠.

결국 그는 자신의 특허를 매각하며 이 아이템을 접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사업의 성패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alamy.com

📒memo: 그는 Ball Barrow의 실패로 인해 회사의 지분 중 70%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싸이클론 기술이 적용된 청소기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안했지만, 허락을 받을 수 없었죠. 그는 이 실패 과정에서 돈이 되는 제품과 사업의 지분 구조, 특허 재산에 대한 가치관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다이슨은 100% 지분에 제품 제조에 필요한 8,000개 이상의 특허를 직접 보유하고 있죠.

 

 

3. 5년 간 만든 5,127개의 프로토타입, 하지만 계속되는 거절과 실패

다이슨은 목재 가공 공장에서 본 사이클론 기술을 활용해, 청소기를 발명하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의 상사이자 멘토였던 제레미 프레이가 49%의 자본금을, 자신은 은행에서 대출받은 5만 달러로 51%의 지분을 나누고 시작하게 되었죠. 그는 제품 개발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자신의 집 뒷마당 차고에서 제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이클론 기술을 청소기에 적용하기 위해서 5,127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이 나오기 전이라 한 번에 하나의 변경 사항만을 적용한 프로토타입을 실제로 만들고, 성능을 실험해봐야했죠. 그는 결국 기술을 구현하는데 성공했고,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세일즈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다이슨의 집에 있었던 제품 개발실 (www.dyson.com)

사실 다이슨은 제품을 직접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청소기를 판매하는 대기업이나, 다른 가전업체에게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를 판매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이 기술을 모두 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은 자신의 제품을 바꾸고 싶지 않아했고, 청소기의 먼지 봉투를 파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마치 질레트의 면도날과 같은 비즈니스라고 말이죠. 그랬기에, 먼지 봉투가 없는 청소기는 오히려 그들의 비즈니스 성과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거의 5년 간의 제품 개발 기간을 거쳤기에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황이었습니다. 매출이 없으면 직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도 이어졌죠. 하지만 그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불안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제품이 팔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이죠. 처음 자신이 성공을 거두었던 SEA TRUCK을 떠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처럼 안보여서 처음에는 구매를 꺼렸지만, 결국 1년에 100대 이상을 팔아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요.

그는 시장에 있는 제품과 다르게 생겨도, 매우 다른 신기술을 도입한 후 진정으로 더 잘 작동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에이펙스라는 일본의 작은 가전 회사에서 다이슨의 기술을 활용해서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판매 매출의 10%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이 기술을 판매합니다.

일본에 출시되자마자 바로 성공했고, 그는 파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기술이 적용된 좋은 제품은 반드시 시장에서 팔린다는 그의 믿음이 실체로 드러난 것이었죠.

nymag.com

📒memo: 처음 판매된 제품의 이름은 지포스(G-Force) 였습니다. 1981년 당시 이 청소기의 판매 가격은 2,500달러였습니다. 지금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800만 원 정도가 되는 엄청 비싼 제품이었죠. 하지만 일본 부유층은 먼지 봉투가 필요 없는 이 청소기를 구매했습니다.

 

 

4. 집을 담보로 잡고 받은 마지막 기회, 그리고 얻은 성공

일본에서 판매가 꽤 되고 있었지만, 그는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자신은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더 많이 판매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가 제품도 직접 디자인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직접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라이센스 매출이 있었기 때문에, 대출이 쉬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은행, 벤처캐피털, 사모펀드들은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다이슨이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많은 은행들을 돌아다니다가 로이드 은행에서 결국 60만 파운드의 대출을 승인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다이슨이 미국의 한 기업과 5년 간 이어진 특허 소송에서 이긴 것을 보고 은행장이 근성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대출을 승인했다고 하죠. 그리고 자신의 부인에게 이 청소기 아이디어를 물어봤을 때, “너무 멋지다”라고 말하는 것도 대출 승인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다이슨은 집을 담보로 잡고 사업 자금을 마련했고,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적은 돈으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60일 안에 부품 대금을 지불해야 했죠. 주문을 받았어야만 했습니다.

제품에 관심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참여한 모임에서 또 한 번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모임에서 만난 사람은 영국에서 가장 큰 통신판매 업체의 카탈로그 제작자였던 것이죠. 그는 다른 청소기보다 3배 정도 비싼 199파운드에 청소기를 판매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판매를 시작한 첫 달 부터 계속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수익이 생기면서 광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제품은 더 빠르게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lUoFGlTSlzE

📒memo: 1995년이 되자 다이슨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진공 청소기가 되었습니다. 창업 2년 만에 1억 달러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죠. IT 업계가 아닌 가전 제조업체가 이렇게 빠른 성장을 한 것은 유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이서 미국에서도 히트를 치게 되었죠. 다이슨의 마케팅 메세지도 매우 간단했지만 강력했습니다. “먼지 봉투에 작별을 고하세요”

 

 

5.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포기할 때

다이슨은 창업가이기 전에 기술과 제품에 몰두했던 발명가이자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는 처음 10년 간만 다이슨의 CEO를 맡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제품에만 몰두했죠. 스스로도 엔지니어링이 아닌 업무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가 다이슨을 만들었던 기간은 매우 길었습니다. 제품 개발에 5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하며 5,000번이 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실패했죠. 제품을 만들고 나서도 그 어려움은 이어졌습니다. 세일즈가 잘 되지 않았고, 투자도 계속 거절 당했습니다. 그가 계속 실패하던 이 시기는 그의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임을 고려할 때, 이 어려움은 훨씬 컸겠죠.

 

그는 다양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바로 다른 모든 사람이 포기할 때라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이죠. 피곤해질수록 오히려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부터의 노력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말이죠.

designsori.com

📒memo: 제임스 다이슨 경은 2006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그의 순자산은 58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직접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제품이 어떤 것이 효과가 있고 어떤 것이 효과가 없는지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말이죠.

 

 


💬 “제게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 다이슨

뉴스레터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전문을 읽고 난 후, 아래 질문에 고민해보시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강해지는 건 아니다. 그럼 나만의 방식은 무엇일까? 

❓ 나는 다이슨처럼 7년동안 커리어와 관련 없이 새로운 배움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 수레랑 청소기는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수레는 포기하고 청소기는 포기하지 않았던 걸까?

👉지금 보러 가기👈


👀 지난 콘텐츠 보러 가기


📧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가만히 있어도 유니콘 창업자들의 인사이트가 내 메일함으로 들어옵니다.

오랜 시간 직접 번역하고 리서치한 “인터뷰 번역본 + 추가 자료”를 매주 2회 무료로 받아보세요

👉바로 구독하기👈

링크 복사

데이제로 인사이트 데이제로 인사이트 · 에디터

창업의 Day 0에서 마주한 고민을 전합니다.

댓글 1
데이제로 인사이트 님의 아티클이 EO 뉴스레터에 실렸습니다. 이번 주 이오레터를 확인해보세요!

👉 https://stib.ee/Y0NC
추천 아티클
데이제로 인사이트 데이제로 인사이트 · 에디터

창업의 Day 0에서 마주한 고민을 전합니다.

1